“와이파이가 내 딸을 죽였다”
“와이파이가 내 딸을 죽였다”
‘전자기과민성증후군(EHS)’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지만 그 증상으로 고통 받는 사람 많아 제니가 열다섯 살에 자살한 지 1년이 지났다. 어머니 데브라 프라이는 최근 튤립과 해바라기를 들고 묘지를 찾았다.
영국 옥스퍼드셔의 치과 간호사인 프라이는 “처음엔 매일 딸아이 묘지에 갔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하루 걸러 한 번이 됐다가 지금은 사흘이나 닷새에 한 번으로 횟수가 줄었다.”
한숨을 내쉬는 그녀는 진이 빠진 듯 피곤해 보였다. 딸아이의 죽음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로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녀의 탈진은 제니를 잃은 슬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프라이는 지난 1년 동안 딸아이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치열하게 싸웠다.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기술의 가차없는 진전’을 가리킨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심하게 양극화된 과학 논쟁에 휘말렸다. ‘현대 과학의 최전선에서 발생한 증상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라는 문제다.
제니는 2년 반 넘게 두통과 피로를 호소했다. 학교에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밤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프라이는 제니의 증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해주려고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수면에 도움이 될까 싶어 새 매트리스를 사고 커튼을 두꺼운 천으로 바꿨다. 아랫니와 윗니가 제대로 맞물리지 않는 부정교합이 두통의 원인인지 알아보려고 치과 교정 전문의도 찾아갔다. 프라이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말했다. “마치 수사관이 용의자 범위를 줄여나가 듯이 나도 증거를 바탕으로 각 증상의 잠재적인 원인을 추려 나갔다.”
지난해 5월 제니는 코를 감싸 쥐고 거실로 내려와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코피가 났다고 프라이에게 말했다. 프라이는 “코피가 멈추지 않아 아이가 불안해 했다”고 돌이켰다. “코를 파지도 어디에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그런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프라이는 제니의 코피를 멎게 한 다음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검색 결과를 보며 제니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 갑론을박이 치열한 ‘전자기과민성증후군(EHS)’의 피해자라고 확신했다. 논란이 많지만 EHS는 와이파이 공유기와 이동전화 기지국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가 원인으로 꼽힌다. 이 가설을 믿는 사람들은 현대 사회의 기술이 우리에게 해로운 전자기파를 퍼부어 두통부터 메스꺼움, 코피, 수면장애까지 수많은 증상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프라이는 집에 설치된 와이파이 공유기를 떼어내고 대신 유선 이더넷으로 바꾼 뒤 제니의 학교에도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학교는 거부했다. 교장도 인터넷을 검색했지만 도달한 결론은 프라이와 달랐다. 와이파이 신호와 질병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믿은 것이다. 제니의 고통은 계속됐다. 집에선 괜찮았지만 학교에 가면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지난해 6월 어느날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인을 규명하는 자리에서 프라이는 검시관에게 “와이파이가 내 딸을 죽였다”고 단언했다.
한편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사는 12세 소년의 부모도 아이가 학교 와이파이의 강력한 신호 탓에 아프다며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부모는 “아이가 EHS로 진단 받았다”고 밝혔다. 그들은 “아이가 두통, 메스꺼움에 시달리고 코피를 자주 쏟는다”며 “학교측이 2013년 와이파이를 설치한 이후부터 이런 증상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학교는 통신기술 회사인 아이소트로프에 교내 전자기파 방출량을 측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이소트로프의 교내 전자기파 측정 결과 미국 연방정부와 매사추세츠 주정부의 기준치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나왔다”고 학교는 성명을 통해 밝혔다.
지난 5년 동안 와이파이 신호에 노출되는 것과 질병 사이에는 과학적인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측과 그와 정반대로 사람들이 와이파이 때문에 매일 앓는다고 주장하는 측은 웹사이트와 신문, 학술지에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정신의학연구소의 제임스 루빈 교수는 EHS가 질병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들은 신체적 증상으로 고통 받는다. 삶의 질도 때론 끔찍할 수 있다. 그들은 반드시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는 과학적인 증거를 살펴본 결과 EHS의 원인이 전자기파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부 전문가를 포함한 다른 진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뉴욕주립대학(올버니 캠퍼스) 건강환경연구소의 데이비드 카펜터 소장은 “10년 전엔 나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개 사람들은 증상이 있으면 뭔가 탓할 것을 찾는데 그러다 보니 전자기파를 원인으로 지목하게 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전자기파 때문에 삶이 회복 불가능하게 변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주변에서 많아지면서 그의 생각도 달라졌다. 그는 EHS가 허구가 아니라 실질적인 질병이지만 입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회의적인 과학계를 설득할 수 있는 신빙성 있는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지난 30년 동안 EHS가 전자기파에 직접 노출됨으로써 생긴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심리학부터 종양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수많은 테스트를 실시했다. 자원자를 짧은 시간 전자기파에 노출시킨 뒤 반응을 측정한 다음 그 데이터를 가짜 전자기파에 노출시킨 대조군과 비교하는 테스트가 대부분이었다. 결과는 어느 한 쪽으로 단정지을 수 없을 정도로 들쑥날쑥했지만 대다수 테스트 대상자는 실제 전자기파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나 EHS 지지자들은 이런 테스트에 문제를 제기했다. 카펜터 소장은 그런 연구가 “너무 어리석게 실시됐다”고 말했다. 전자기파에 15분 동안 노출시켜 테스트한 결과를 갖고 매일 와이파이에 장기적으로 노출돼도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다는 뜻이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의과대학 환경의학연구소의 레나힐레르트 박사는 EHS와 관련한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를 작성했다. EHS가 그로 인해 고통 받는다는 사람이 주장하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증거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과학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존재하지 않는 무엇을 입증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뭔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계속 실패한다면 새로운 접근법이 없을 경우 이 가설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녀에 따르면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은 EHS가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뭔가가 질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그렇게 아프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과학계의 대다수가 동의하는 가설이다.EHS로 고통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데이터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부 상관관계 연구는 계속되지만 EHS 통계를 위한 조사는 와이파이가 보편화되기 전인 2000년대 중반 중단됐다. 2014년 유럽경제사회 위원회 공청회에서 제시된 추정(동료평가를 거치지 않은 데이터)에 따르면 유럽인의 약 5%가 EHS에 시달린다. 좀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훨씬 이전의 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줬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민의 3.2%, 독일인의 9%, 스위스인의 5%가 EHS가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증상을 호소했다.
일부 국가가 EHS를 산재에 해당하는 질병으로 인정하는 것도 그런 통계 때문인 듯하다. 지난해 프랑스 남서부 도시 툴루즈의 지방법원은 와이파이 전자기파 알레르기로 고통 받아 일을 할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한 여성에게 정부가 매월 약 900달러의 장애인 보조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13년 호주의 한 과학자는 EHS로 산재를 인정 받았다. 또 스웨덴 정부는 EHS 증상의 원인에 관한 공식적인 판단은 유보하지만 EHS를 신체적 기능장애로 분류하고 장애인 보조금을 지급한다. 오스트리아는 EHS가 일으키는 증상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에 관한 공식 지침을 발표했다.
세계의 웬만한 도시 상업지구에선 어디든 와이파이가 설치돼 있다. 와이파이는 완전히 보편화돼 거의 공익 서비스 수준이다. 세계의 대다수 사람에겐 와이파이가 큰 혜택이다. 필요한 모든 정보(심지어 포르노도 포함)에 거의 무료로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와이파이를 차단하는 것이 EHS 확산을 막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는 사람에겐 우리 사회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무선 인터넷 네트워크가 사악한 적이다. 그들은 와이파이를 하루 24시간 존재하는 영속적인 공중보건 위협이라고 믿는다.
프라이는 딸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와이파이 확산을 막으려는 운동단체를 여럿 알게 됐다. 일부는 교내 와이파이 공유기 설치 반대에 초점을 맞춘다. 그녀는 “와이파이를 학교에 설치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실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EHS로 고통 받는 사람 중 일부는 현대 사회에서 탈출하기도 한다. 카펜터 소장은 EHS에 시달린다고 생각하는 변호사 대프나 태코버가 사무실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EHS로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한 시민단체를 운영하는 그녀는 뉴욕시에서 살며 일하다가 얼마 전 250㎞ 떨어진 캣스킬 산속으로 이사했다. 수년 동안 전자기파 노출을 막으려고 차 안에서 자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지만 효과가 없어 결국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설명이었다. 태코버는 “EHS 증상에서 벗어나려면 와이파이를 완전히 피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EHS의 고통으로 와이파이 세계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시골에 그들만을 위한 폐쇄적인 공동체도 생겨나고 있다. 프랑스 남부의 농촌인 드롬에는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EHS 피난처 가 있다. 자연보호 구역 깊숙이 자리한 그곳에선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기기의 사용이 금지된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 그린뱅크는 인근 국립전파천문대의 전파 방해를 막기 위해 모든 무선 신호가 금지된 ‘국립전자파청정구역’ 덕분에 EHS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동네가 됐다. 남아공 웨스턴케이프에는 EHS 친화 농장이 있다.
카펜터 소장은 지금 EHS가 만성피로증후군, 섬유근육통, 걸프전증후군 같은 질병이 과학적으로 인정 받기 전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그런 질병은 예를 들어 피검사 등으로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다. 그런 증후군을 앓는 사람은 과학이 질병으로 인정할 때까지 사회적으로 고통당한다. EHS 같은 특이한 증후군을 앓은 사람을 사회가 포용하지 않으면 아픈 것을 피하기 위해 멀리 숲속으로 피신한 그들은 사회와 격리된다.”
EHS를 실재하는 질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루빈 교수도 그의 말엔 동의했다. “전자기파가 EHS 증상의 원인인지 테스트하느라 과학계는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EHS와 전자기파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 매달리다 보니 치료 방법은 찾아내지도 못했다.”
EHS에 시달리는 사람은 와이파이의 전자기파가 대로와 고속도로, 가게 전면과 모통이에서 방출되는 것을 모두가 실제로 볼 수 있다면 그 폐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프라이는 전자기파 신호의 강도를 측정하는 계량기를 갖고 다닌다. 계량기는 크기가 작아 사람들이 흔히 휴대전화인 줄 안다. 프라이는 “붐비는 패스트푸드점과 카페에서 거의 모두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할 때는 내 계량기가 측정 한계를 벗어날 정도로 전자기파가 아주 강하게 잡힌다.”
- 크리스 스토클-워커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영국 옥스퍼드셔의 치과 간호사인 프라이는 “처음엔 매일 딸아이 묘지에 갔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하루 걸러 한 번이 됐다가 지금은 사흘이나 닷새에 한 번으로 횟수가 줄었다.”
한숨을 내쉬는 그녀는 진이 빠진 듯 피곤해 보였다. 딸아이의 죽음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로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녀의 탈진은 제니를 잃은 슬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프라이는 지난 1년 동안 딸아이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치열하게 싸웠다.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기술의 가차없는 진전’을 가리킨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심하게 양극화된 과학 논쟁에 휘말렸다. ‘현대 과학의 최전선에서 발생한 증상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라는 문제다.
제니는 2년 반 넘게 두통과 피로를 호소했다. 학교에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밤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프라이는 제니의 증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해주려고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수면에 도움이 될까 싶어 새 매트리스를 사고 커튼을 두꺼운 천으로 바꿨다. 아랫니와 윗니가 제대로 맞물리지 않는 부정교합이 두통의 원인인지 알아보려고 치과 교정 전문의도 찾아갔다. 프라이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말했다. “마치 수사관이 용의자 범위를 줄여나가 듯이 나도 증거를 바탕으로 각 증상의 잠재적인 원인을 추려 나갔다.”
지난해 5월 제니는 코를 감싸 쥐고 거실로 내려와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코피가 났다고 프라이에게 말했다. 프라이는 “코피가 멈추지 않아 아이가 불안해 했다”고 돌이켰다. “코를 파지도 어디에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그런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프라이는 제니의 코피를 멎게 한 다음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검색 결과를 보며 제니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 갑론을박이 치열한 ‘전자기과민성증후군(EHS)’의 피해자라고 확신했다. 논란이 많지만 EHS는 와이파이 공유기와 이동전화 기지국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가 원인으로 꼽힌다. 이 가설을 믿는 사람들은 현대 사회의 기술이 우리에게 해로운 전자기파를 퍼부어 두통부터 메스꺼움, 코피, 수면장애까지 수많은 증상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프라이는 집에 설치된 와이파이 공유기를 떼어내고 대신 유선 이더넷으로 바꾼 뒤 제니의 학교에도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학교는 거부했다. 교장도 인터넷을 검색했지만 도달한 결론은 프라이와 달랐다. 와이파이 신호와 질병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믿은 것이다. 제니의 고통은 계속됐다. 집에선 괜찮았지만 학교에 가면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지난해 6월 어느날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인을 규명하는 자리에서 프라이는 검시관에게 “와이파이가 내 딸을 죽였다”고 단언했다.
한편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사는 12세 소년의 부모도 아이가 학교 와이파이의 강력한 신호 탓에 아프다며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부모는 “아이가 EHS로 진단 받았다”고 밝혔다. 그들은 “아이가 두통, 메스꺼움에 시달리고 코피를 자주 쏟는다”며 “학교측이 2013년 와이파이를 설치한 이후부터 이런 증상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학교는 통신기술 회사인 아이소트로프에 교내 전자기파 방출량을 측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이소트로프의 교내 전자기파 측정 결과 미국 연방정부와 매사추세츠 주정부의 기준치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나왔다”고 학교는 성명을 통해 밝혔다.
지난 5년 동안 와이파이 신호에 노출되는 것과 질병 사이에는 과학적인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측과 그와 정반대로 사람들이 와이파이 때문에 매일 앓는다고 주장하는 측은 웹사이트와 신문, 학술지에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정신의학연구소의 제임스 루빈 교수는 EHS가 질병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들은 신체적 증상으로 고통 받는다. 삶의 질도 때론 끔찍할 수 있다. 그들은 반드시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는 과학적인 증거를 살펴본 결과 EHS의 원인이 전자기파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부 전문가를 포함한 다른 진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뉴욕주립대학(올버니 캠퍼스) 건강환경연구소의 데이비드 카펜터 소장은 “10년 전엔 나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개 사람들은 증상이 있으면 뭔가 탓할 것을 찾는데 그러다 보니 전자기파를 원인으로 지목하게 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전자기파 때문에 삶이 회복 불가능하게 변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주변에서 많아지면서 그의 생각도 달라졌다. 그는 EHS가 허구가 아니라 실질적인 질병이지만 입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회의적인 과학계를 설득할 수 있는 신빙성 있는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지난 30년 동안 EHS가 전자기파에 직접 노출됨으로써 생긴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심리학부터 종양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수많은 테스트를 실시했다. 자원자를 짧은 시간 전자기파에 노출시킨 뒤 반응을 측정한 다음 그 데이터를 가짜 전자기파에 노출시킨 대조군과 비교하는 테스트가 대부분이었다. 결과는 어느 한 쪽으로 단정지을 수 없을 정도로 들쑥날쑥했지만 대다수 테스트 대상자는 실제 전자기파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나 EHS 지지자들은 이런 테스트에 문제를 제기했다. 카펜터 소장은 그런 연구가 “너무 어리석게 실시됐다”고 말했다. 전자기파에 15분 동안 노출시켜 테스트한 결과를 갖고 매일 와이파이에 장기적으로 노출돼도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다는 뜻이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의과대학 환경의학연구소의 레나힐레르트 박사는 EHS와 관련한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를 작성했다. EHS가 그로 인해 고통 받는다는 사람이 주장하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증거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과학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존재하지 않는 무엇을 입증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뭔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계속 실패한다면 새로운 접근법이 없을 경우 이 가설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녀에 따르면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은 EHS가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뭔가가 질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그렇게 아프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과학계의 대다수가 동의하는 가설이다.EHS로 고통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데이터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부 상관관계 연구는 계속되지만 EHS 통계를 위한 조사는 와이파이가 보편화되기 전인 2000년대 중반 중단됐다. 2014년 유럽경제사회 위원회 공청회에서 제시된 추정(동료평가를 거치지 않은 데이터)에 따르면 유럽인의 약 5%가 EHS에 시달린다. 좀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훨씬 이전의 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줬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민의 3.2%, 독일인의 9%, 스위스인의 5%가 EHS가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증상을 호소했다.
일부 국가가 EHS를 산재에 해당하는 질병으로 인정하는 것도 그런 통계 때문인 듯하다. 지난해 프랑스 남서부 도시 툴루즈의 지방법원은 와이파이 전자기파 알레르기로 고통 받아 일을 할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한 여성에게 정부가 매월 약 900달러의 장애인 보조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13년 호주의 한 과학자는 EHS로 산재를 인정 받았다. 또 스웨덴 정부는 EHS 증상의 원인에 관한 공식적인 판단은 유보하지만 EHS를 신체적 기능장애로 분류하고 장애인 보조금을 지급한다. 오스트리아는 EHS가 일으키는 증상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에 관한 공식 지침을 발표했다.
세계의 웬만한 도시 상업지구에선 어디든 와이파이가 설치돼 있다. 와이파이는 완전히 보편화돼 거의 공익 서비스 수준이다. 세계의 대다수 사람에겐 와이파이가 큰 혜택이다. 필요한 모든 정보(심지어 포르노도 포함)에 거의 무료로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와이파이를 차단하는 것이 EHS 확산을 막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는 사람에겐 우리 사회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무선 인터넷 네트워크가 사악한 적이다. 그들은 와이파이를 하루 24시간 존재하는 영속적인 공중보건 위협이라고 믿는다.
프라이는 딸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와이파이 확산을 막으려는 운동단체를 여럿 알게 됐다. 일부는 교내 와이파이 공유기 설치 반대에 초점을 맞춘다. 그녀는 “와이파이를 학교에 설치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실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EHS로 고통 받는 사람 중 일부는 현대 사회에서 탈출하기도 한다. 카펜터 소장은 EHS에 시달린다고 생각하는 변호사 대프나 태코버가 사무실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EHS로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한 시민단체를 운영하는 그녀는 뉴욕시에서 살며 일하다가 얼마 전 250㎞ 떨어진 캣스킬 산속으로 이사했다. 수년 동안 전자기파 노출을 막으려고 차 안에서 자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지만 효과가 없어 결국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설명이었다. 태코버는 “EHS 증상에서 벗어나려면 와이파이를 완전히 피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EHS의 고통으로 와이파이 세계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시골에 그들만을 위한 폐쇄적인 공동체도 생겨나고 있다. 프랑스 남부의 농촌인 드롬에는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EHS 피난처 가 있다. 자연보호 구역 깊숙이 자리한 그곳에선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기기의 사용이 금지된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 그린뱅크는 인근 국립전파천문대의 전파 방해를 막기 위해 모든 무선 신호가 금지된 ‘국립전자파청정구역’ 덕분에 EHS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동네가 됐다. 남아공 웨스턴케이프에는 EHS 친화 농장이 있다.
카펜터 소장은 지금 EHS가 만성피로증후군, 섬유근육통, 걸프전증후군 같은 질병이 과학적으로 인정 받기 전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그런 질병은 예를 들어 피검사 등으로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다. 그런 증후군을 앓는 사람은 과학이 질병으로 인정할 때까지 사회적으로 고통당한다. EHS 같은 특이한 증후군을 앓은 사람을 사회가 포용하지 않으면 아픈 것을 피하기 위해 멀리 숲속으로 피신한 그들은 사회와 격리된다.”
EHS를 실재하는 질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루빈 교수도 그의 말엔 동의했다. “전자기파가 EHS 증상의 원인인지 테스트하느라 과학계는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EHS와 전자기파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 매달리다 보니 치료 방법은 찾아내지도 못했다.”
EHS에 시달리는 사람은 와이파이의 전자기파가 대로와 고속도로, 가게 전면과 모통이에서 방출되는 것을 모두가 실제로 볼 수 있다면 그 폐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프라이는 전자기파 신호의 강도를 측정하는 계량기를 갖고 다닌다. 계량기는 크기가 작아 사람들이 흔히 휴대전화인 줄 안다. 프라이는 “붐비는 패스트푸드점과 카페에서 거의 모두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할 때는 내 계량기가 측정 한계를 벗어날 정도로 전자기파가 아주 강하게 잡힌다.”
- 크리스 스토클-워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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