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공 결정 과정 조사한 영국의 ‘칠콧 보고서’, 더 나은 전쟁 계획이 필요하다는 영국의 조언을 부시 행정부가 일축하는 등 미국이 무능의 극치 보였다고 결론지어 2003년 3월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하루 전 쿠웨이트의 사막에서 이라크 쪽으로 이동하는 영국군 특수부대원들.미국 정치인들도 소속 정당보다 국가를 더 중시했던 시절이 있었다. 정부가 중대한 일에서 실패하면 실질적인 조사가 이뤄져 지도자들은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 고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먼 옛날 이야기가 됐다. 지금은 ‘정부의 실책’이 정당의 이익을 위해 막대한 세금을 소모하는 여론호도용 정치 재판으로 활용된다.
2012년 리비아 벵가지의 미국 영사관에서 극단주의 무장세력에 의해 대사를 포함해 미국인 4명이 목숨을 잃자 장장 4년에 걸쳐 10건의 조사가 실시됐다. 그중 일부는 순전히 당쟁의 산물이었다. 어느 것도 첫 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중요한 사안을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한 조사에서 벵가지 사건 당시 국무장관이던 힐러리 클린턴(현재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이 공식 업무에 개인 이메일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이메일 스캔들’로 국무부 감찰의 조사, 그 다음엔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사가 이어졌고 지금은 공화당의 독자적인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그 외에도 미국 현대 정치사에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벌어졌다는 오럴 섹스(빌 클린턴 전 대통령), 화이트워터 부동산 거래(클린턴 부부)에 관한 의혹 등등에 관한 지루하고 돈 많이 든 조사가 숱했다.
물론 그런 이슈들도 조사할 만한 가치는 있었다. 그러나 미국 사상 최대의 전략적 실책은 그보다 더 철저히 짚고 넘어가야 마땅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대량살상무기(WMD)를 파괴한답시고 2003년 감행한 이라크 침공 말이다. 바로 그 판단착오로 인해 지난 13년 동안 미군 4500명 이상이 이라크에서 목숨을 잃었다. 오늘날까지 세계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밀어붙인 그 어리석은 군사적 모험이 몰고온 여파와 힘겹게 씨름 중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그 불길이 중동 전역으로 번지면서 극단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태동에 크게 기여했다(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충성하던 이라크군과 바트당 당원들이 현재 IS의 핵심이다).
미국 상원은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 결정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한 정보를 조사했다. 독립적인 위원회도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을 감싸돈 공화당이 2006년까지 의회를 장악한 동안 의회 위원회나 공식 기구는 명백하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는 건드리지 않았다. 이라크전의 재앙으로 치닫은 부시 행정부 고위층의 의사결정 과정에 결함은 없었는가? 있었다면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그처럼 중요한 문제는 그냥 넘겨졌다.
다행히도 우리 세계에는 아직도 정부의 실책에 대한 조사를 진지하게 다루는 국가가 있다. 영국의 이라크전 참전이라는 정책적 판단 실수를 조사하기 위해 설립된 한 독립적인 위원회는 지난 7월 6일 그 범위와 냉철함에서 참으로 놀라운 수준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260만 단어 분량의 12권짜리 이 보고서(조사위원회를 이끈 존 칠콧 경의 이름을 따 ‘칠콧 보고서’로 불린다)는 영국군 179명의 희생을 불러온 이라크전 참전 과정과 관련된 모든 세부 사항을 철저히 파헤쳤다. 조사의 목표가 각 분야에서 정확히 무엇이 잘못됐는지 확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칠콧 보고서는 미국 공화당 정치인이라면 의회의 그 누구에게도 절대 조사를 허용치 않았을 법한 정보를 담고 있다.
칠콧 보고서의 결론은 뻔하면서도 충격적이다. 우선 백악관과 미국 국방부, 또 어느 정도는 미국 국무부도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부시 행정부의 관리들은 더 나은 전쟁 계획이 필요하다는 영국의 경고와 조언을 오만하게 일축하는 등 무능의 극치를 보였다. 이라크 침공이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라는 증거가 쌓여가는데도 전쟁을 향한 행진의 북소리는 멈출 수 없는 정치적인 추동력을 얻었다.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유엔의 인도주의적 역할을 무시하고 전쟁 후 대책을 간과하며 직감과 슬로건에 의존한 것 등 모든 선입견이 성공할 기회를 망쳤다.
기록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부시 행정부의 무모한 계획을 막기 위해서라도 영국이 이라크 침공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당시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끈 영국 정부의 관리들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계획을 ‘말도 안 된다’고 폄하했다).
특히 칠콧 보고서는 이라크전에 반대한 일부 인사들이 확신했던 점 중 하나를 여지 없이 무너뜨렸다. 부시 대통령이 거짓말로 미국인과 세계를 속여 전쟁을 일으켰다는 주장을 말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WMD 보유를 확신했다. 다만 그와 그의 행정부가 관련 정보를 무책임하게 임의적으로 해석해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칠콧 보고서는 이라크 재건 과정에서 어떤 기업이 이익을 얻을지에 과도한 관심이 집중된 반면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 붕괴 후 인도주의적 재건 문제는 거의 무시됐다는 의혹을 확인해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처음엔 외교·안보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미사일 방어체제 확립을 선정했다. 이라크와 중동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그러나 영국 외무부는 미국 국방부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다른 소리도 들었다.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교체하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였다.
2001년 여름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알카에다의 미국 본토 공격이 임박했다는 정보 보고서를 백악관에 올렸다. 그러나 국방부 고위 관리들이 부시 대통령에게 CIA가 오판했다며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위협이 아니라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대신한 위장 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 당시 서방 전투기들은 이라크 상공의 비행금지구역을 순찰하고 있었다. 1991년 걸프전에서 이라크가 패한 후 유엔 결의에 따른 작전이었다.
그러나 이라크군은 순찰 중인 비행기를 언제라도 격추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새로운 대응 방안을 승인했다. 미군기가 격추될 경우 구조팀을 파견하는 대신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즉시 초토화하는 계획이었다. 영국인들은 미국인들이 거론하는 바그다드의 공습 표적 범위가 그토록 넓은 데 상당히 놀랐다. 당시 영국 외무부의 국방·정보 담당 관리 스티븐 라트는 내부 보고서에서 “미국이 제안하는 전략에 극구 반대해야 한다”며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전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알카에다가 미국 본토를 공격한 2001년 9월 11일 테러(9·11) 직전 영국은 부시 행정부의 각료들 사이에 이라크 대응 전략을 두고 견해가 엇갈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국 국방부 관리들은 영국 측에 후세인이 더 많은 WMD를 갖지 못하도록 그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 관리들은 영국 대사관 측에 국방부의 목표를 ‘헛소동’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라고 전했다. 영국인들은 미국 국방부보다 국무부가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더 잘 반영한다고 믿었다.
9월 초 크리스토퍼 메이어 주미 영국 대사는 부시 행정부가 표류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이라크를 포함해 다양한 문제에서 목표가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9·11 사태가 발생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에 전력투구하기로 결심했다.9·11 직후 미국 국방부는 이라크가 알카에다와 연계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딕 체니 당시 부통령을 포함해 행정부의 여러 각료들이 그후로도 오랫동안 주장한 이론이다. 그러나 9·11 후 두 달 남짓한 시점에 영국 내각부의 합동정보위원회는 이라크-알카에다 연계 주장이 근거 없다고 결론지었다. 2001년 11월 28일자 보고서에서 합동정보위는 ‘이념적으로 후세인은 오사마 빈 라덴과 연계된 수니파 극단주의 네트워크와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지난 7월 6일 영국 런던에서 블레어 전 영국 총리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마스크를 쓰고 이라크전 실책에 항의하는 시위대.부시 대통령은 2002년 1월 29일 국정연설에서 이란-북한-이라크를 묶어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불렀다. WMD를 추구하고 세계적인 테러에 개입한다는 뜻이었다. 미국에선 그 표현이 잘 먹혀들었지만 미국 동맹국들과 적들은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선포로 받아들였다. 일부는 부시 대통령이 카우보이처럼 잘 흥분하고 자제력이 부족해 그의 전쟁 계획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 이라크를 공략하는 데 필요한 다른 나라들의 잠재적 협력(특히 이란의 은밀한 협조)도 사라졌다. 메이어 대사는 2002년 2월 11일 본국에 보내는 메모에 이렇게 적었다. ‘9·11 이래 미국과 협력하기가 힘들어졌다. 올해는 더 힘들 것이다. 미국-유럽 간의 상호환멸이 커지고 있다. 그로 인해 영국이 아주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블레어 총리는 부시 대통령이 지정학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후세인 타도’라는 단일 목표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우려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에게 그런 노력은 반드시 더 넓은 전략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랍-이스라엘 분쟁 해결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외교 보좌관이던 데이비드 매닝은 블레어 총리에게 아랍-이스라엘 문제를 무시하면 “이라크를 공습하면서 페르시아만을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기록에 따르면 2002년 4월 블레어 총리는 부시 대통령에게 중동 평화협상을 밀어붙여야 이라크를 상대로 하는 군사행동이 성공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그런 조언을 대부분 무시했다.
몇 달이 지나면서 영국은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결정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실수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우려했다. 메이어 대사는 2002년 4월 블레어 총리에게 보낸 전문에서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최고사령관을 자임한 뒤 세상에 두려운 게 없는 것처럼 오만하게 행동한다”며 그의 측근들로부터 이라크 침공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전문에서 메이어 대사는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 격파가 악을 소탕하는 전쟁이며 그 임무는 하느님이 선택한 국가가 떠맡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미국에도 그런 생각을 납득하지 못하고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영국은 2002년 내내 부시 행정부로부터 이라크전 참전을 독려 받았다. 그러나 한 영국 고위관리의 표현대로 ‘무모한’ 술책으로 보이는 미국의 계획을 수정하도록 압력을 가할 여지가 없다고 느꼈다. 미국 관료 중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딕 체니 부통령를 비롯한 소수만이 돌아가는 상황을 아는 듯했다. 영국 관리들은 사석에서 그들의 능력에 회의를 표했다. 영국은 이라크에 민주 정부를 강요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계획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이라크가 민주주의 정치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중동 지역 자체가 민주주의 개념을 싫어한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2003년 3월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 직후 남부 바스라에서 영국군 탱크 곁을 지나 피난길에 오른 이라크인들.당시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2002년 7월 블레어 총리에게 올린 보고서에서 미국의 계획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부시 행정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으며 군사계획의 전략적 개념도 없다. 미국의 군사계획은 지금까지 빈껍데기일 뿐이다. 이라크의 WMD를 쉽게 찾아 폐기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가정과 허약한 정보 분석을 바탕으로 한다. 또 미국은 쿠웨이트가 1∼2년 정도 대규모 미군 기지를 제공할 것이고 다른 페르시아만 국가들도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며 시리아와 이란은 얌전히 사태를 방관하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지만 그건 꿈일 뿐이다.”
더구나 블레어 총리 등이 후세인 제거 후 이라크를 재건하는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미국은 그 조언을 거의 무시했다. 영국 관리들은 미국 국방부가 근거 없는 가설을 바탕으로 후세인 정권 붕괴 후의 이라크 재건 전략을 세운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이라크인이 서방의 다국적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할 것이라는 가설을 말한다. 그런 순진한 믿음은 중동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 부족에서 비롯됐다. 미국 관리들은 중동에서 서방의 적과 후세인의 수니파 지지자들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너무도 몰랐다.
신속한 치안 확립과 전력망 같은 인프라의 구축 없이는 수렁에 빠져들거나 내전에 휘말릴 위험이 아주 컸다. 독재자 후세인을 제거해도 서방의 이라크 점령을 이슬람을 없애려는 십자군 전쟁의 일환으로 보는 테러리스트들이 그 공백을 메울 가능성이 컸다. 영국 정보기관은 냉혹한 경고를 보냈다. 적절하고 현실적인 사후 대책 없이 엉성하게 감행되는 이라크 침공은 수많은 무슬림의 극단주의 합류를 촉발하고 앞으로 오랫동안 그들의 공격이 이어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2003년 3월의 이라크 침공 몇 주 전 영국 관리들은 미국 국방부의 ‘붉은 바위 훈련’을 참관했다. 전후 이라크를 미국이 어떻게 관리할지 보여주는 자리였다. 그러나 완전 실패였다. 워싱턴DC의 영국 대사관은 본국으로 보낸 전문에서 이렇게 전했다. “전후 이라크 관리라는 과제는 미국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이 부처간 리허설에서 드러났다. 일각에선 유엔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지만 실제 계획은 그런 것을 전혀 감안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이라크 재건 계획은 아주 초보 단계에 있다.”
영국 고위 관리들의 회의 기록에 따르면 그 훈련은 미국의 야심적인 계획과 그들의 실행 능력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격차를 드러냈다. “다국적군이 필요하며 따라서 유엔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는 우리의 판단이 백번 옳다.”
새로운 이라크 정부의 건설에 유엔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명백한 사실에도 미국은 영국의 제안을 일축했다. 미국 관리들은 엉성한 계획에도 자신들이 새로운 이라크를 잘 건설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블레어 총리는 미국의 계획에 따라 참전하는 도박을 하느냐 아니면 이라크전에서 발을 빼 미국과의 관계를 손상시키느냐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결국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도박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정이 근본적인 실책이었다. 영국 정보팀이 옳았다. 이라크 침공은 끝이 보이지 않는 새로운 테러의 물결을 일으켰다. 그 전적인 책임은 오만하고 무모한 계획을 세운데다가 무능하기도 했던 미국에 있다.
- 커트 아이큰월드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와이파이 이용 가격이..", 북한 여행 간 러시아인들 후기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월드컵 중요"…손흥민 마음 속 새 팀은?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진성준 "코스피 안 망한다"…'대주주 기준 상향' 반대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IPO 실패시 회수 어떻게?…구다이글로벌 CB 투자 딜레마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구독하면 200만원 주식 선물', 팜이데일리 8월 행사 시작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