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탄소 배출은 인권 침해다”
“기업의 탄소 배출은 인권 침해다”
필리핀 시민들의 탄원으로 헌법상의 국가 기구가 ‘탄소 메이저’ 기업들에 대한 공식 조사에 나서 필리핀 시민단체와 주민들은 세계 최대의 석유·석탄·시멘트·광산 기업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자신들의 인권이 침해당했다는 탄원서를 필리핀인권위원회(CHR)에 제출했다. CHR은 국민의 청원에 따른 인권 침해 조사권을 가진 헌법상의 기구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27일 CHR은 로열더치셸·BP·셰브론·BHP 빌리턴·앵글로아메리칸 등 47개 ‘탄소 메이저’(carbon majors,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거대기업)에 그들의 기업 활동이 생명·식량·물·위생·주거·자결에 관한 필리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하는 60쪽짜리 탄원서를 전달하며 45일 이내에 해명하도록 명령했다. CHR의 이 같은 움직임은 탄소배출과 인권에 관한 획기적인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 기구가 다국적 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에 맞서는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이번 조치는 CHR이 47개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국민의 탄원 내용을 공식 조사하기 위한 첫 수순이다. 탄원서의 내용에 따르면 47개 ‘탄소 메이저’들은 필리핀에서 그들이 배출한 온실가스의 영향에 관해 책임져야 하며, 기후변화에서 비롯되는 인권 침해를 어떻게 시정하고 예방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아울러 기후변화와 해양 산성화가 인권에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치며 투자자가 소유한 ‘탄소 메이저’ 기업들이 그 문제와 관련해 책임을 회피하는지에 관한 정부 차원의 공식 조사를 촉구했다.
7000개가 넘는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은 세계에서 기후 변화에 가장 취약한 나라 중 하나다. 지난 10년 동안 사상 최대의 피해를 일으킨 초대형 열대성 폭풍 사이클론 4개가 필리핀을 덮쳤으며 이산화탄소 과다 배출 등 인위적인 지구온난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이곳의 홍수와 열파도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다. 2013년 필리핀을 강타한 하이옌은 지금까지 기록된 가장 강한 태풍 중 하나로 6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고 65만여 명을 이재민으로 내몰았다.
탄원서는 태풍 생존자들과 시민단체가 작성했으며 필리핀인 3만1000명 이상이 서명했다.
필리핀 케손 주 알라바트 섬 주민으로 2008년 발생한 슈퍼 태풍 람마순에서 살아남았고 CHR에 보낸 탄원서 작성에 참여한 엘마 레이스는 “우린 공정한 심판을 원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는 우리 집과 가족을 앗아갔다. 이산화탄소를 마꾸 뿜어내는 이 막강한 기업들은 그들의 기업 활동이 가져온 결과에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CHR의 공식 조사는 47개 ‘탄소 메이저’ 기업들이 해명서를 제출한 뒤 오는 10월께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47개사 전부 공청회 출석을 명령 받겠지만 CHR은 필리핀에 사무실이 있는 10개사(셰브론·엑슨모빌·BP·로열 더치셸·토탈·BHP 빌리턴·앵글로아메리칸·라파지·홀심·다이헤이요 시멘트)만 출석을 강요할 수 있다. CHR은 참석하지 않는 기업들의 협력을 촉구하기 위해 유엔에 도움을 청할 권한도 갖는다.
CHR에 탄원서를 제출한 시민단체 중 하나인 환경 단체 그린피스 동남아 지부의 젤다 소리아노 고문은 “CHR의 이번 조치는 세계적으로 전례 없다”고 설명했다. “사상 최초로 국가의 인권기구가 민간 부문 관련자들의 책임과 기후변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공식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소리아노 고문에 따르면 CHR의 조치는 이산화탄소 배출로 환경을 오염시키는 대기업이 화석연료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발생하는 현재와 미래의 인권 침해에 책임지도록 하는 도덕적·법적 ‘선례’를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다. 그는 “네덜란드부터 미국까지 사람들은 사법 체제를 사용해 기후 문제에서 정부에 책임을 묻고 조치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CHR로부터 해명을 명령 받은 47개 ‘탄소 메이저’ 기업의 명단은 미국 콜로라도 주 소재 비영리기관 기후책임연구소의 리처드 히드 소장이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2013년 히드 소장은 다국적 기업 90개가 18세기 중반 제1차 산업혁명 이래 배출된 온실가스 중 약 3분의 2를 뿜어냈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이 기업들은 이산화탄소 약 315기가t을 대기로 배출했다. 2010∼2013년 세계 전체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 중 약 22%에 해당한다.
구호단체 필리핀 카리타스의 사무총장으로 골드먼 환경상(뛰어난 업적을 세운 풀뿌리 환경운동가에게 수여된다)을 받은 에드윈 가리게스 신부는 “기후변화의 피해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책임규명 장치를 개발하고 채택하도록 CHR이 정책입안자들과 의원들에게 건의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CHR은 재판소가 아니며 기업들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도록 강제하거나 벌금을 부과할 권한도 없다. 그러나 정부에 건의하고 주주들이 온실가스를 대량 방출하는 업체들에서 투자를 회수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세계적인 압력에 힘을 보탤 수는 있다.
최근 들어 이처럼 정부와 기업의 기후변화 관련 책임을 둘러싼 소송이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6월엔 네덜란드의 한 환경단체가 900명의 시민과 함께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에 따라 네덜란드의 고등법원은 네덜란드 정부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최소 25% 감축시킬 것을 명령했다. 법원은 정부가 현행 정책을 지속하면 네덜란드는 2020년까지 배출량을 17% 감축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네덜란드는 국민의 5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은 지역에서 살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중대한 위험에 처했으며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소송을 통해 시민들은 기후변화에 따르는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정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그러나 미국에선 아직 상황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미국 정부의 노력을 촉구하는 소송 여러 건이 기각됐다.
- 존 비달
[ 필자는 영국 신문 가디언의 환경 전문 기자다. 이 기사는 미국 온라인 매체 머더 존스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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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지난 7월 27일 CHR은 로열더치셸·BP·셰브론·BHP 빌리턴·앵글로아메리칸 등 47개 ‘탄소 메이저’(carbon majors,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거대기업)에 그들의 기업 활동이 생명·식량·물·위생·주거·자결에 관한 필리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하는 60쪽짜리 탄원서를 전달하며 45일 이내에 해명하도록 명령했다. CHR의 이 같은 움직임은 탄소배출과 인권에 관한 획기적인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 기구가 다국적 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에 맞서는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이번 조치는 CHR이 47개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국민의 탄원 내용을 공식 조사하기 위한 첫 수순이다. 탄원서의 내용에 따르면 47개 ‘탄소 메이저’들은 필리핀에서 그들이 배출한 온실가스의 영향에 관해 책임져야 하며, 기후변화에서 비롯되는 인권 침해를 어떻게 시정하고 예방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아울러 기후변화와 해양 산성화가 인권에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치며 투자자가 소유한 ‘탄소 메이저’ 기업들이 그 문제와 관련해 책임을 회피하는지에 관한 정부 차원의 공식 조사를 촉구했다.
7000개가 넘는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은 세계에서 기후 변화에 가장 취약한 나라 중 하나다. 지난 10년 동안 사상 최대의 피해를 일으킨 초대형 열대성 폭풍 사이클론 4개가 필리핀을 덮쳤으며 이산화탄소 과다 배출 등 인위적인 지구온난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이곳의 홍수와 열파도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다. 2013년 필리핀을 강타한 하이옌은 지금까지 기록된 가장 강한 태풍 중 하나로 6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고 65만여 명을 이재민으로 내몰았다.
탄원서는 태풍 생존자들과 시민단체가 작성했으며 필리핀인 3만1000명 이상이 서명했다.
필리핀 케손 주 알라바트 섬 주민으로 2008년 발생한 슈퍼 태풍 람마순에서 살아남았고 CHR에 보낸 탄원서 작성에 참여한 엘마 레이스는 “우린 공정한 심판을 원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는 우리 집과 가족을 앗아갔다. 이산화탄소를 마꾸 뿜어내는 이 막강한 기업들은 그들의 기업 활동이 가져온 결과에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CHR의 공식 조사는 47개 ‘탄소 메이저’ 기업들이 해명서를 제출한 뒤 오는 10월께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47개사 전부 공청회 출석을 명령 받겠지만 CHR은 필리핀에 사무실이 있는 10개사(셰브론·엑슨모빌·BP·로열 더치셸·토탈·BHP 빌리턴·앵글로아메리칸·라파지·홀심·다이헤이요 시멘트)만 출석을 강요할 수 있다. CHR은 참석하지 않는 기업들의 협력을 촉구하기 위해 유엔에 도움을 청할 권한도 갖는다.
CHR에 탄원서를 제출한 시민단체 중 하나인 환경 단체 그린피스 동남아 지부의 젤다 소리아노 고문은 “CHR의 이번 조치는 세계적으로 전례 없다”고 설명했다. “사상 최초로 국가의 인권기구가 민간 부문 관련자들의 책임과 기후변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공식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소리아노 고문에 따르면 CHR의 조치는 이산화탄소 배출로 환경을 오염시키는 대기업이 화석연료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발생하는 현재와 미래의 인권 침해에 책임지도록 하는 도덕적·법적 ‘선례’를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다. 그는 “네덜란드부터 미국까지 사람들은 사법 체제를 사용해 기후 문제에서 정부에 책임을 묻고 조치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CHR로부터 해명을 명령 받은 47개 ‘탄소 메이저’ 기업의 명단은 미국 콜로라도 주 소재 비영리기관 기후책임연구소의 리처드 히드 소장이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2013년 히드 소장은 다국적 기업 90개가 18세기 중반 제1차 산업혁명 이래 배출된 온실가스 중 약 3분의 2를 뿜어냈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이 기업들은 이산화탄소 약 315기가t을 대기로 배출했다. 2010∼2013년 세계 전체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 중 약 22%에 해당한다.
구호단체 필리핀 카리타스의 사무총장으로 골드먼 환경상(뛰어난 업적을 세운 풀뿌리 환경운동가에게 수여된다)을 받은 에드윈 가리게스 신부는 “기후변화의 피해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책임규명 장치를 개발하고 채택하도록 CHR이 정책입안자들과 의원들에게 건의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CHR은 재판소가 아니며 기업들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도록 강제하거나 벌금을 부과할 권한도 없다. 그러나 정부에 건의하고 주주들이 온실가스를 대량 방출하는 업체들에서 투자를 회수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세계적인 압력에 힘을 보탤 수는 있다.
최근 들어 이처럼 정부와 기업의 기후변화 관련 책임을 둘러싼 소송이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6월엔 네덜란드의 한 환경단체가 900명의 시민과 함께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에 따라 네덜란드의 고등법원은 네덜란드 정부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최소 25% 감축시킬 것을 명령했다. 법원은 정부가 현행 정책을 지속하면 네덜란드는 2020년까지 배출량을 17% 감축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네덜란드는 국민의 5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은 지역에서 살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중대한 위험에 처했으며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소송을 통해 시민들은 기후변화에 따르는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정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그러나 미국에선 아직 상황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미국 정부의 노력을 촉구하는 소송 여러 건이 기각됐다.
- 존 비달
[ 필자는 영국 신문 가디언의 환경 전문 기자다. 이 기사는 미국 온라인 매체 머더 존스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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