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 모델도 괴롭고 힘들다

나는 프랑스 파리 패션위크에서 두 번 무대에 섰고, 수많은 사진작가·스타일리스트와 일했다. 아름답고 멋진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세계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아담한 체격인 내가 거기선 살쪘다는 소리를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다. 2014년 여름 파리에서 일본 남성복 쇼를 준비할 때 디자이너 팀의 나이 많은 여자들이 내 뒤에 모여 킥킥거리며 가까스로 가린 내 엉덩이를 찰싹 쳤다. 한번은 촬영에서 스타일리스트가 아침 9시부터 보드카를 마시며 “외모는 괜찮으니 게으름 피우지 말고 윗몸일으키기나 열심히 해”라고 말했다. 잘 생겼지만 살쪘다는 소리가 너무 싫어 모델을 관두기로 마음먹었다.
흔히 ‘모델 착취’라고 하면 깡마른 젊은 여자나 소녀가 각진 어깨와 돌출한 엉덩이를 보이며 무대를 걷는 것을 떠올린다. 또는 저명 사진작가들이 젊은 여성 모델에게 성상납을 강요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상기한다. 완벽한 광대뼈와 근육을 가진 남자 모델을 보면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모델로 일하면서 패션업계라는 희한하고 제멋대로인 일터에선 남자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부분 쉬쉬하며 넘어가지만 남자 모델도 종종 성희롱에 시달린다. 또 여자 모델과 마찬가지로 ‘딱 맞는’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을 심하게 받는다. 최근의 남성복 추세는 남자 모델을 극단적인 근육질 아니면 여성처럼 깡마른 몸매로 양극화시켰다. ‘슈퍼 스키니’한 몸을 원한다고? 아마 속이 메스꺼워질 것이다.
요즘 남자 모델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다른 요인도 있다. 동아시아 경제가 뜨면서 그곳에서 디자이너 의상과 그에 따른 모델의 수요가 급증했다. 남자든 여자든 아시아로 진출하는 젊은 모델이 갈수록 늘어난다. 가족이나 친구와 멀리 떨어져 규제가 되지 않는 조건에서 일하며 혹사당하고 보수도 제대로 못 받을 위험이 크다. 완벽한 외모를 가졌다고 해도 소득과 건강,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모델의 권리를 옹호하는 비영리 단체 ‘모델 얼라이언스’의 설립자 사라 지프는 요즘 특히 남자 모델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그들도 여자 모델만큼이나 착취당하고 희롱당한다. 업계의 개혁이 시급하다. 패션산업은 수십 년 동안 규제를 피해왔다.”
이 기사를 쓰려고 인터뷰한 남자 모델과 업계 내부자들은 후환이 두려워 터놓고 얘기하기를 꺼렸다(거의 대부분 익명을 요구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패션업계가 어린 모델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들 중 다수는 고용 보호를 받지 못하며 권리도 모른 채 힘이 너무 강해 맞설 수 없는 학대자들을 보호해주는 침묵의 문화 속에서 신음한다.
나는 스무 살에 그 세계에 발을 들였다. 처음엔 쉽게 돈을 벌고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는 지름길로 보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나자 비참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 나도 서민의 삶과 차단된 엘리트의 세계를 즐겼다. 그러나 그런 특권을 계속 누리리면 때론 무보수로 일하며 성희롱을 당하고도 참아야 했고, 극심한 체중 감량에 시달렸다. 패션위크 직전에는 하루 17시간씩 일했다.
보수도 형편없었다. 남자 모델은 주요 패션쇼에선 몇 천 달러, 국제 패션쇼에선 몇 만 달러를 손에 쥘 수 있지만 잡지 촬영은 대개 보수가 없고 소규모 패션쇼에 나가면 몇 백 달러로 족해야 할 때도 많다. 나는 착취라고 느꼈다. 그러나 ‘까다롭다’거나 ‘요구가 많다’는 낙인이 찍히면 막 시작한 경력을 망칠 수 있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린 계속 입 다물고 포즈만 취했다.
나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영문학·불문학을 공부하다가 3학년 때인 2013년 모델의 길로 들어섰다. 십대 시절 패션을 동경했던 나는 불문학을 공부하려고 잠시 파리에 갔다가 패션에 다시 빠졌다. 패션산업의 속도감에 짜릿함을 느꼈고 디자인과 의상 제작 이면의 과정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모델로 일할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2013년 9월 파리에 도착한 지 사흘 뒤 짐을 정리하느라 지치고 보드카도 좀 마신 김에 게이 클럽에 갔다. 각진 얼굴에 텁수룩한 수염의 사나이가 내 시선을 끌었다.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가자 그가 따라왔다. 그는 불을 빌리자고 말을 붙이며 내가 모델인지 물었다. 캐스팅 감독이었던 그는 며칠 뒤 스튜디오로 나를 초대했다. 그는 내 사진을 찍은 뒤 모델 후보 명단에 내 이름을 올렸다.
우리는 주말에 장시간 촬영했다. 몇 주 뒤 나는 뮤직 비디오에 캐스팅됐다. 또 몇 달 뒤 그는 나를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 에이전시 중 하나에 추천했다. 하지만 거기서 나는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2014년 초 다른 캐스팅 감독을 우연히 만나 다른 모델 에이전시와 연결됐다. 나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몇 장 찍고 내 몸 치수를 적어낸 뒤 판정을 기다렸다. 모델을 선발하는 부커가 내 몸을 아래 위로 훑어보며 조수에게 속삭였다. 마침내 그는 내가 마치 한물간 경주마인 것처럼 “운동을 좀 해야겠지만 한번 같이 일해 보자”고 말했다.
의구심과 함께 불안하면서도 희열을 느꼈다. 내 얼굴로 광고판을 도배하고 무대 위를 걷는 것으로 거액을 손에 쥘 수 있다니! 너무도 큰 유혹이었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하자 현실이 보였다. 모델이 된다는 것. 그것은 인간인 동시에 상품이 되며, 성 약탈자의 표적이 된다는 뜻이었다.
처음엔 패션업계에서 성희롱과 성추행의 정도가 그렇게 심한지 몰랐다. 그곳에선 진지한 성적 접근도 대부분 농담으로 포장됐다. 사진작가나 편집자, 캐스팅 감독 등 힘 있는 사람이 그런 제안을 했다가 거절당하면 언제든 농담이었다고 둘러대면 끝이었다. 2013년 9월 내가 뮤직비디오를 찍는 동안 하루는 60대 남자인 패션 컨설턴트가 내게 음탕한 농담을 건네며 “네 아랫도리 물건도 잘 생긴 네 얼굴만큼 죽여주느냐?”고 물었다. 난 그의 말을 무시했고 그가 계속 내게 몸을 갖다대는 게 싫어 다른 쪽으로 피했다. 내가 곁을 지나갈 때 그는 한 손으로 내 등 뒤를 쓰다듬은 뒤 엉덩이를 찰싹 쳤다.

때론 그 힘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은 처벌 받을 일이 절대 없다는 듯 행동했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인터뷰하려 했던 한 막강한 패션 디자이너는 코카인에 취해 청하지도 않은 자신의 알몸 동영상을 계속 내게 보냈다.
사실 난 크게 당한 것도 아니었다. 영국인 모델인 매튜는 파리의 에이전시에 소속돼 일을 시작하자마자 한 사진작가의 스튜디오에서 몹쓸 짓을 당했다. 이제 모델을 그만두고 런던에서 학교에 다니는 그는 당시를 돌이키며 “끔찍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속옷까지 다 벗게 했다. 내가 모델로서 내 몸을 어색하게 느끼지 않도록 하려면 알몸이 되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며 그렇게 강요했다.”
그 사진작가의 비행을 폭로하긴 불가능했다고 매튜는 말했다. “그가 내 에이전시 소속이어서 불평할 수도 없었다.” 그는 에이전시 부커 중 한 명으로 부업으로 사진을 찍었다.
일본판 보그 등 유명 잡지를 위해 일하는 스위스 출신 사진작가 레네 하버마허는 “패션계에선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을 괴롭히는 관행이 있다”고 말했다. ‘모델 얼라이언스’의 지프 대표는 매튜의 경험담과 비슷한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고 했다. “남자 모델과 이야기하면 늘 성희롱이 거론됐다.”
대개 남자 모델은 나이 때문에 특히 취약하다. 14세에 모델 일을 시작했던 지프 대표는 “남자 모델은 주로 아주 어릴 때 일을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남자 모델은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짧고 대부분 보잘것없는 대우를 받는다. 모델로서 수명이 5년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 위험을 무릅쓰고 사실을 밝히거나 항의하기 어렵다. 경쟁이 너무 치열한 세계라서 더 그렇다.”
나는 모델을 관두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씩 일이 들어오면 마다하지 않는다. 모델 일의 짜릿함이 그립기 때문이다. 또 최근 대학을 졸업해 돈도 필요하다. 어떤 곳에선 모델 중 다수가 너무 어려 충격을 받는다. 지난 1월 파리에서 열린 안드레아 크루스 컬렉션에 참가했을 때 한 소년과 함께 담배를 피웠다. 헝클어진 머리, 호리호리한 몸매, 앳된 얼굴과 도톰한 입술은 중성의 연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몇 살이냐고 묻자 그는 불안해 하며 “열다섯”이라고 답했다. “나도 내가 여기서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
패션업계가 아주 어린 남자 모델을 고용하는 관행은 오랫동안 비판을 받았다. 최근 들어 앳되고 중성적인 모습의 모델을 선호하는 추세가 생기면서 그런 비판이 더 커졌다. 중성적인 모습을 추구하다 보니 남자 모델은 근육량을 잃고 여자 모델은 몸의 자연스런 곡선을 잃는다. 잭이라는 한 모델은 같은 쇼를 두고 남녀 모델 사이의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고 말했다(예를 들어 지난해 1월 구치의 남성복 쇼에서 소년 같은 여성 모델이 호리호리한 남자 모델 곁에서 걸었다).
무대 위에서 중성적인 남자 모델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 근육질 모델이다. 완벽한 조각상 같은 영국인 모델 데이비드 갠디가 근육질의 대표격이다. 그러나 그런 근육 아래는 종종 심각한 건강 문제가 도사린다. 미국판 보그와 프랑스판 GQ를 위해 일하는 영국인 사진작가는 “몸집 크고 근육 많은 남자라고 무조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라고 말했다. “그처럼 체격 좋은 남자는 체육관에서 살다시피 하고 체지방 2%를 유지하기 위해 자주 굶어야 한다.” 연구자들과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비고렉시아(bigorexia)’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근육 추형’을 가리키는 단어로 근육질 남자가 자신의 몸이 허약하고 근육이 모자란다는 왜곡된 인식에 사로잡혀 강박적으로 운동에 매달리는 현상을 일컫는다.

나의 인터뷰에 응한 15명 거의 전부 생로랑 디자인 하우스에서 최근 떠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헤디 슬리마네가 ‘슈퍼 스키니’ 남자 모델의 등장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슬리마네는 지난해 야후 스타일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도 십대 시절 체격이 왜소해 괴롭힘을 당했다며 ‘슈퍼 스키니’ 남자 모델을 선호하는 자신의 취향을 항변했다. “그때 난 지금 내가 모델로 쓰는 남자 모델과 똑같았다. 재킷은 늘 커서 내 몸에 맞지 않았다. 고교 급우들, 심지어 친지도 내가 너무 말라 제대로 된 남자가 아니라고 놀렸다.” 슬리마네는 깡마른 남자를 ‘동성애자’로 보는 시각에는 경멸적이고 동성애혐오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업계 내부자들은 그가 그런 캐스팅을 선호한 이유엔 신경 쓰지 않는다. 중요한 건 슬리마네가 모델만이 아니라 심지어 패션계 외부의 젊은 남자들에게도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다. 미국판 보그를 위해 일하는 영국인 사진작가는 “슬리마네가 말라빠진 소년들을 우상처럼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슬리마네는 자신의 표현대로 “영양 실조에 걸린 미성년자”의 미학을 창조했다. 생로랑과 슬리마네는 뉴스위크의 논평 요청을 거절했다.
남자 모델의 ‘슈퍼 스키니’ 현상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심하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패션계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지만 이제 중국과 한국도 부상하면서 동아시아 시장은 더 중요해졌다. 그러나 아시아엔 새로운 기회만이 아니라 새로운 위험도 가득하다.
패션 역사가이자 큐레이터인 동시에 뉴욕시 패션기술연구소의 박물관장인 밸러리 스틸은 “일본 패션 시장은 어리고 예쁘게 생겼으며 어느 곳보다 사이즈가 작은 남자 모델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린 남자 모델은 문화 충격과 오랜 작업 시간, 가족·친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상황 등으로 자신의 권리와 앞에 도사린 위험도 모르고 이런 시장에 뛰어든다.
2014년 여름 사진작가 하버마허는 내게 모델로 진짜 뜨고 싶다면 동아시아로 가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거기 가면 사람들이 아주 좋아할 걸. 보수도 좋지. 한 달에 보통 1만 유로, 좀 바쁘게 뛰면 2만 유로도 벌 수 있어. 하지만 하루 16∼18시간 끊임없이 사진 포즈를 취해야 하지.” 하버마허는 남자 모델이 아시아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진정으로 내게 권하진 않았다. “그곳에선 작은 남자를 좋아해. 진짜 작은 사이즈 말이야. 자네 같으면 아마 10㎏은 더 빼야 할 걸.”
사실 나도 도쿄나 서울, 상하이에서 새롭고 스릴 넘치는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 그러나 내 체중의 15%를 더 줄이고 싶진 않았다. 내가 10㎏을 감량하면 체질량지수[BMI, 체중(㎏)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가 16.9로 떨어진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라고 규정한 수준이다.
건강이 염려됐지만 난 구미가 당겼다. 아시아는 남자 모델에게 금전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포화상태에 이른 구미 시장이나 남자 모델의 보수가 여자 모델보다 훨씬 적은 패션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회다. 경제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2012년 6월∼2013년 6월 소득 톱10인 여자 모델은 모두 합해 8330만 달러를 벌었다. 반면 2012년 9월∼2013년 9월 소득 톱10인 남자 모델은 모두 합해 800만 달러를 받았다.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여성 모델 지젤 번천은 2012년 6월∼2013년 6월 4200만 달러, 소득이 가장 높은 남자 모델 션 오프리는 2012년 9월∼2013년 9월 150만 달러를 벌었다.
그 시장의 아래쪽에서도 성별 격차가 심하다. 급여조사 전문업체 페이스케일에 따르면 여자 모델의 평균 연간 소득은 4만1300달러다. 반면 포브스 추정에 따르면 남자 모델의 근년 평균 연간 소득은 약 2만8000달러다. 매사추세츠공대(MIT)가 계산한 뉴욕시의 최저 생활임금보다 약 2000달러 적다.
유럽 최대의 에이전시 ‘모델스1’의 한 남자 모델은 아시아에서 여름 한철을 보내면 어떠냐는 부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19세의 영국인 학생인 그는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돈을 좀 벌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 보니 부커가 한 말에서 세부 사항이 빠져 있었다. “돈 문제를 정확히 얘기하지 않았다”고 그가 돌이켰다.
그는 지난해 겨울 도쿄에 가서 일하기 위해 계약서에 서명했다. 작은 글자로 깨알처럼 적힌 조건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기회를 제안 받아 영광이며 조건도 괜찮으리라고 짐작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계약서를 본 뒤 형편없는 조건에 충격 받았다. “어머니는 그 돈으론 기껏해야 겨우 생활만 할 수 있을 뿐 돈을 벌긴 글렀다고 말했다.”항공료와 숙박비는 에이전시가 부담했지만 계약 조건에 따르면 그 비용은 전부 곧바로 상환해야 했다. 상환이 끝나야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일주일에 약 87달러로 살았다. 턱없이 부족해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는 계약서의 일부 조항이 특히 부당했다고 밝혔다. 일을 충분히 하지 않으면 자비로 귀국해야 하며, 허락 없이 머리 스타일을 바꾼다거나 선탠을 한다거나 체중이 늘어도 쫓겨나도록 돼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도쿄행을 택했다. 해외 경험이 가치 있으며 잘하면 성공할 기회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도쿄의 작은 아파트에서 스마트폰 와이파이 무료 통화 프로그램을 통해 “난 운이 아주 좋다”고 했다.
지난 10년 사이에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이스라엘은 모델의 건강진단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했다.
프랑스 의회는 지난해 12월 지나치게 마른 모델을 퇴출하기 위해 건강진단서 제출과 포토샵을 이용한 사진 수정 여부의 표기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BMI가 일정 수치 이하일 경우 무대에 설 수 없다. 이 규정을 위반하는 에이전시·부커에겐 최대 6개월의 징역 또는 7만5000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또 건강을 손상시킬 수 있는 장기적인 섭식제한을 장려해 깡마른 몸매를 요구하면 1년 징역형에 1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도 발효됐다.
패션업계와 모델은 이런 법을 반기지 않는다. 이 기사를 위해 인터뷰한 남자 모델 3명은 전부 체중감량 압박을 제한하는 정책은 지지했지만 그 척도로서 사용되는 BMI 수치의 정확성에 의문을 표했다. 업계 내부자들도 25세 미만인 경우 BMI가 부정확하다며 섭식장애에 시달리는 모델에게 벌금을 부과한다는 발상에 반대했다. 게다가 세계의 대다수 국가는 모델을 보호하는 법이 없다.
패션산업은 규모가 방대하고 널리 분산돼 있다. 따라서 업계 내부자들은 어린 모델을 보호하려면 업계 스스로 그 책임을 떠맡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영향력 큰 패션계 인물 다수는 책임감 있게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일류 에이전시 ‘스톰 모델스’는 모델의 최저 BMI 규정을 지킨다고 공언했다. 그 에이전시의 남성부 책임자 캣 트라덴은 “넓게 보면 우린 공급업체일 뿐”이라며 “우린 고객이 요구하는 대로 제공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트라덴은 패션 브랜드와 잡지 편집자들에게 문제가 있을지 모르지만 에이전시는 모델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가 관리하는 모델 중 남녀를 불문하고 저체중인 사람은 없다.” 그녀는 깡마른 모델을 선호한다고 해서 에이전시에 이익이 되진 않는다고 했다. “저체중인 모델은 병이 나기 쉽다. 모델은 상품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잘 관리해야 한다. 모델이 아프거나 너무 마르면 힘도 없고 무대에서 자신감도 없어 일을 맡길 수 없다.”
한편 ‘AM 캐스팅’의 캐스팅 감독 노아 셸리는 체중감량 압력에 자신도 어느 정도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모델의 건강하지 못한 몸에 내가 반드시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지만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라곤 말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선 분명 책임이 있다.”
반면 프랑스 파리에 있는 컬트 패션하우스 ‘앤 드뮐미스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세바스티앙 뮤니어는 디자이너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항변했다. “우리가 무슨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집단은 절대 아니다. 우린 품위 있고 멋진 옷을 만들 뿐이다. 게다가 모델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성인이다. 우리에겐 책임이 없다.”
뉴욕 패션기술연구소의 스틸 관장은 패션업계가 효과 있는 자율규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며 지시를 따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캐스팅 감독과 디자이너, 심지어 관람객도 깡마르고 창백하며 어린 모델을 원한다. 그들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
에드워드 시던스 - 필자는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했으며 런던과 파리에서 패션·미술 등 문화 전문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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