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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마오쩌둥의 평생 동지 ‘쥔산인쩐

[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마오쩌둥의 평생 동지 ‘쥔산인쩐

쥔산도 72개 봉우리마다 차밭이 조성되어 있다.
쥔산인쩐(君山銀針)을 마신 마오쩌둥(毛澤東)은 “이 차는 맛있다, 정말 좋은 차다”라며 칭찬을 멈추지 못했다. 마오쩌둥의 감탄사는 지금도 쥔산인쩐을 홍보하는 단골 멘트다. 1959년 6월 25일 오전 후난성 샤오산 생가를 찾은 마오쩌둥의 감회는 단순하지 않았다. 1927년 9월 9일 중국 각지에서 동시다발로 전개된 농민 무장봉기에서 ‘후난성 추수봉기’를 지도한 마오쩌둥은 국민당군에 패퇴해 고향을 떠나 장시성 산속으로 숨어든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자기의 소신을 시험하는 첫 무대에서 마오쩌둥은 참담한 시련을 겪었다. 그 후 32년이 지나 고향에 돌아온 마오쩌둥은 금의환향했다는 기쁨보다 권력의 정점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살생부를 만들어야 했다.

쥔산인쩐은 단순한 고향의 차가 아닌 평생 동지로서 마오쩌둥과 함께 했다. 1958년부터 마오쩌둥이 주도한 대약진 운동에 비판적인 군 서열 2위 펑더화이(彭德懷)를 토사구팽 시킬 시나리오에 은밀히 몰두할 때 쥔산인쩐은 마오쩌둥의 곁을 지켰다. 고향을 방문한 지 두 달 후인 1959년 8월 장시성 루산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8기 중앙위원회 8차 총회에서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계급의 대변자로 펑더화이를 지목해 실각시켰다. 7년 후 정치적 생명을 걸어야만 하는 중대 결단이 필요할 때 마오쩌둥은 고향을 찾아 쥔산인쩐을 다시 마셨다. 홍위병을 앞세운 문화 대혁명을 구상할 때도 쥔산인쩐은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한 마오쩌둥을 위로했다. 1966년 이후 마오쩌둥은 더 이상 고향을 찾지 않았지만 중국의 수많은 명차 중에서도 쥔산인쩐을 평생 즐겨 찾았다. 그 어떤 혁명 동지보다 쥔산인쩐은 마오쩌둥의 소울 파트너였다.
 중국 10대 명차 반열
2. 춤추는 찻잎으로 유명한 쥔산인쩐. / 3. 마오쩌둥은 쥔산인쩐을 두고 “이 차는 맛있다, 정말 좋은 차다”라고 감탄했다. / 4. 쥔산도에서 바라보는 둥팅호의 풍광
쥔산인쩐은 1954년 열린 독일 라이프치히 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으며 전 세계에 알려졌으며 1957년 중국 10대 명차로 지정됐다. 황차(黄茶)에 속하는 쥔산인쩐은 후난성을 대표하는 명품차다. 당나라 문성공주가 티베트를 통일시킨 송찬간포에게 시집 갈 때 보물로 가져간 차다. 당나라 명종이 마시려던 찻잔 속에서 피어난 연기가 백학처럼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고 해서 백학차로 알려지기도 했던 쥔산인쩐은 당나라 시절부터 청나라 말기까지 황실 공차로 명성을 떨쳤다. 4000년 전부터 만들어졌다는 쥔산인쩐은 처음에는 녹차로 만들어졌지만 황차로 만든 차가 유명해지며 녹차는 유명무실해졌다. 지금도 ‘쥔산인쩐’이란 이름으로 녹차가 생산되지만 황차가 ‘갑’이다.

쥔산인쩐은 청명(淸明) 전후에 채취한 어린 찻잎을 원료로 12단계의 제조 과정을 거치는 동안 72가지 공정을 통해 88시간 만에 완성시키는 전통 방식과 발효 단계를 압축한 8단계 제조 과정으로 78시간에 만드는 단축 공법이 있다. 쥔산인쩐의 핵심 공정인 미세한 발효 과정에서 분해된 엽록소는 황색으로 변하고, 녹차의 쌉쌀하고 떫은맛이 사라지며 단맛이 증가한다. 황차로 완성된 쥔산인쩐은 찻잎이 바늘처럼 날렵한 모양으로 빛난다. 70°C 정도의 따뜻한 물로 차를 우려내면 맑은 향과 어우러진 등황색으로 빛나는 찻물이 눈과 코를 즐겁게 해준다. 부드러운 맛은 혀와 입을 무장해제시켜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쥔산인쩐은 쥔산(君山)도를 중심으로 둥팅후(洞庭湖) 일대에서 생산된다. 쥔산도는 둥팅후의 진주로 불린다. 0.96㎢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72개의 산봉우리와 풍성한 문화유적지를 보유한 쥔산도는 중국 정부가 최고 등급으로 인정한 5A급 관광지다. 서울의 5배 크기인 둥팅후는 중국에서 2번째로 큰 담수호로, 후난성이라는 행정구역 명칭도 둥팅후의 남쪽이라는 뜻에서 지어졌다. 시성(詩聖)과 시선((詩仙)으로 쌍벽을 이룬 당나라 시인 두보와 이태백이 앞다퉈 ‘등악양루(登岳陽樓)’라는 유명한 시를 발표해 둥팅후의 매력을 예찬한 덕에 둥팅후와 쥔산도는 일찍부터 중국의 명소로 각인됐다.
 생산량 2t인데 수요는 80t 넘어
쥔산인쩐의 고향 쥔산도는 갈수기에는 배가 아닌 차를 타고 갈 수 있다. 쥔산도는 둥팅후에서 가장 큰 섬으로 한동안 둥팅산으로 불렸다. 중국인에게 충신의 아이콘인 굴원(屈原)이 둥팅산에서 왕의 죽음을 애도하다 물에 빠져 자결한 두 명의 왕비를 추모해 ‘쥔산’이라고 격상해 부르면서 섬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쥔산도로 바뀌었다. 훗날 귀양길에 오른 굴원도 변절 대신 자결을 택해 강물에 투신한다. 만고(萬古)의 충신 굴원을 위해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 중국인들은 다양한 추모행사를 전국적으로 벌인다.

쥔산인쩐은 맵기로 소문난 후난 요리와 찰떡궁합이다. 후난성 사람답게 매운 고추를 좋아하는 마오쩌둥은 “매운 음식을 잘 먹어야 혁명도 잘할 수 있다”며 매콤한 돼지고기 요리인 홍샤오로우(紅燒肉)를 대장정 기간에도 거의 매일 먹었다. 식후에 차 마시는 것도 절대로 거르지 않았다. 심지어 마오쩌둥의 은거지가 발각되어 공습을 당하자 전원 퇴각명령을 내린 마오쩌둥은 국민당군이 코앞에까지 들이닥쳐도 자신이 마시던 차를 다 마시고 나서 마지막으로 탈출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돼지고기 한 조각과 차 한 잔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 닥쳐도 혁명을 완수할 수 있다”는 마오쩌둥은 국민당군에 쫓기면서도 농민들의 마음을 얻어 결국 대장정을 성공시킨다.

쥔산인쩐의 생산량은 연간 400Kg에 불과하다. 등급이 떨어지는 쥔산차의 생산량을 합쳐도 2t 정도인데 반해 시장에서 요구하는 연간 물량은 80t 이상이다. 쥔산도 밖에서 생산되는 쥔산차도 35t 정도여서 공급 부족 현상이 매년 발생한다. 그 틈새를 포장만 ‘쥔산인쩐’인 정체 불명의 차가 유통되고 있다. 이런 부조리를 타개하기 위해 2012년 6월 28일 후난성 정부는 ‘쥔산인쩐황차산업단지’ 기공식에서 재배면적의 획기적인 증가를 위한 지원 대책과 정품 쥔산인쩐 유통을 위한 협약을 중국차 유통협회와 체결했다. 후난성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쥔산인쩐의 물량 부족 해소는 멀지 않아 보인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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