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으로 읽는 여왕의 자서전
의상으로 읽는 여왕의 자서전
영국 버킹엄궁에서 열리는 전시회서 왕실의 중요한 행사에서 입었던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의상 선보여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90년 동안 대중의 시선 속에서 살아 왔다. 그녀의 ‘파워 드레싱’(power dressing, 자신의 높은 위치와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입는 격식 있고 값비싼 복장)이 거의 미술에 경지에 이르게 된 연유다. 사람들은 여왕이 지난 50년 동안 애용해온 깔끔한 치마 정장과 단아한 로너 핸드백, 아넬로 앤 데이비드 구두에 익숙하다. 하지만 그녀가 구축한 패션의 영역은 이런 획일적인 스타일을 훌쩍 뛰어넘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상징하는 실루엣 안에는 그녀의 모습을 세상에 올바르게 알리기 위한 수많은 의도가 깔려 있다. 런던 버킹엄궁의 ‘스테이트 룸’에서 열리는 ‘패션으로 본 통치: 스타일 90년(Fashioning a Reign: 90 Years of Style) 전’(오는 10월 2일까지)은 여왕의 의상을 통해 그녀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시각적 축제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 전시회는 올해 여왕의 생일을 기념해 열리는 3개의 전시회 중 하나다. (첫 번째는 지난 4월 에든버러의 홀리루드 하우스에서 개막했고 나머지 하나는 오는 9월 윈저성에서 열린다). 큐레이터 캐롤린 드 기토는 여왕의 가장 대표적인 스타일 뒤에 숨은 정교함과 섬세함을 보여주고 대중에 비교적 덜 알려진 의상들도 소개한다.
이 전시회에서는 패션 산업에 대한 여왕의 관심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여러 개의 대형 무도회장에 전시된 여왕의 의상 중에는 1950년대 크리스찬 디올의 ‘뉴 룩’ 스타일, 1970년대의 기하학적 문양과 화려한 장식이 들어간 드레스들도 눈에 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공주 시절부터 영국 디자이너들의 패션쇼에 자주 참석해 그들의 작품 홍보에 도움을 줬다. 전시회 곳곳에서 노먼 하트넬, 하디 에이미스, 앤젤라 켈리 등 디자이너들과 여왕의 친분이 조명된다. 드 기토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의상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그녀가 영국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품 활동을 꾸준히 지원해 왔다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여왕은 그들과 끊임없는 대화와 협업을 통해 자신의 의상을 완성한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은 그녀가 여왕으로서의 의무를 멋지게 완수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그동안 왕실은 깃털 달린 모자부터 애국심이 느껴지는 자수까지 여왕의 의상을 통해 세계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하면 떠오르는 밝은 색상의 의상들이 전시실을 색채의 향연장으로 만든다. 하지만 드 기토가 말했듯이 그렇게 밝은 색상을 사용한 이유는 과시하려는 욕망에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디서나 여왕을 금세 알아볼 수 있도록 눈에 잘 띄게 하려는 의도에서다.
전시회는 여왕이 어린 시절부터 왕실의 일원으로서 짊어졌던 무거운 짐이 신체적으로도 부담스러웠으리라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엘리자베스와 동생 마거릿 공주는 아버지인 조지 6세의 대관식 때 각각 11세와 7세였다. 대관식에 참석한 어린 공주들의 몸 위에 무거운 왕관과 레이스 드레스, 모피, 금 장신구들이 얹혀졌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어려서부터 왕실 행사 때마다 화려한 장식의 드레스를 입었다. 20대에 입었던 노먼 하트넬의 첫 번째 작품은 반짝이는 검정색 공단 드레스로 1948년 당시 프랑스 파리 디자이너들의 영향을 받았다. 잘록한 허리를 강조한 검정색의 이 드레스는 여왕이 될 자격이 충분한 젊은 공주의 이미지를 부각시켰으며 디자인에 대한 그녀의 감각 또한 돋보이게 했다.
195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즉위한 직후 큰 과제 중 하나는 증조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 이후 최초의 여왕으로서 새로운 공식 복장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이 두 여왕은 남성 국왕들이 영국 군대의 수장으로서 입었던 제복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디자이너들에게 문을 열어줬다.
당시 왕실 의상 공급업체였던 ‘에드 앤 레이븐스크로프트’는 새 여왕이 대영제국의 수장으로서 공식행사에서 입을 망토를 제작할 때 왕립미술학교 학생이었던 메리언 포얼의 디자인을 채택했다. 포얼은 발까지 내려오는 빨간색의 우아한 망토를 제작했는데 신선하고 혁명적인 그녀의 디자인은 왕실 복장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웨딩드레스와 대관식 때 입었던 드레스는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트넬은 1947년 엘리자베스 공주의 웨딩드레스를 제작할 때 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림 ‘프리마베라’에서 영감을 받았다. 당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해 식량 등 생필품의 배급제를 실시했다. 하트넬이 왕실의 배급표를 모아 구입한 천으로 만든 그 웨딩드레스는 영국의 사기를 높이고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이 전시회는 구슬로 수놓은 꽃이 만발한 이 드레스와 약 3m 길이의 실크 튤 드레스 자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하트넬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 때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뿐 아니라 TV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감동시킬 만한 드레스를 제작했다. 드 기토는 “하트넬이 여왕과 긴밀한 협조 하에 완성한 대관식 드레스 디자인은 당시의 스타일을 반영하면서도 대관식의 본질을 고스란히 담았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하트넬이 제시한 9가지 디자인 중 8번째를 대관식 드레스로 선택했다. 그리고 영국을 상징하는 토끼풀과 부추, 엉겅퀴, 장미 자수에 더해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 남아공과 파키스탄 등 영국 연방을 상징하는 식물의 자수도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뷰글 비즈(기다란 관모양의 유리 구슬)와 스팽글(금속편), 금실과 모피로 장식한 이 드레스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여왕의 스타일은 해외순방길에서도 빛났다. 여왕은 그동안 265회의 공식 해외순방에서 116개국을 방문했는데 의상은 시기와 장소에 맞춰 영국 왕실을 대표할 수 있는 이미지를 세심하게 고려해 준비됐다. 요즘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이 해외순방길에 오를 때 왕실에서 그녀가 입을 옷을 세심하게 확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1960~70년대 해외순방 때 여왕은 라메(금실·은실을 섞어서 짠 천)나 실크 원단으로 된 등이 패인 드레스를 많이 입었다. 노먼 하트넬과 하디 에이미스, 이언 토머스 등이 디자인한 화려한 색상의 의상들은 영국의 영광스런 과거를 상기시켰다.
요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파워 드레싱은 앤젤라 켈리가 책임진다. 켈리의 공식 직함은 여왕의 개인비서 겸 고문이자 큐레이터다. 그녀는 2002년부터 여왕의 의상을 담당해 왔으며 여러 명의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로 구성된 전담팀을 이끈다.
켈리는 여왕의 측근에서 일하면서 과거에 그녀가 좋아했던 디자이너들이 시작한 전통을 이어간다. 이 전시회에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의 핑크색 구슬 장식 원피스부터 윌리엄 왕세손 결혼식의 화사한 노란색 코트와 모자까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영국 왕실의 중요한 순간에 입었던 의상이 모두 전시됐다. 지난 90년 동안 영국 왕실의 중요한 순간들을 패션의 측면에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다.
- 앨리스 커프 아이비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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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상징하는 실루엣 안에는 그녀의 모습을 세상에 올바르게 알리기 위한 수많은 의도가 깔려 있다. 런던 버킹엄궁의 ‘스테이트 룸’에서 열리는 ‘패션으로 본 통치: 스타일 90년(Fashioning a Reign: 90 Years of Style) 전’(오는 10월 2일까지)은 여왕의 의상을 통해 그녀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시각적 축제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 전시회는 올해 여왕의 생일을 기념해 열리는 3개의 전시회 중 하나다. (첫 번째는 지난 4월 에든버러의 홀리루드 하우스에서 개막했고 나머지 하나는 오는 9월 윈저성에서 열린다). 큐레이터 캐롤린 드 기토는 여왕의 가장 대표적인 스타일 뒤에 숨은 정교함과 섬세함을 보여주고 대중에 비교적 덜 알려진 의상들도 소개한다.
이 전시회에서는 패션 산업에 대한 여왕의 관심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여러 개의 대형 무도회장에 전시된 여왕의 의상 중에는 1950년대 크리스찬 디올의 ‘뉴 룩’ 스타일, 1970년대의 기하학적 문양과 화려한 장식이 들어간 드레스들도 눈에 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공주 시절부터 영국 디자이너들의 패션쇼에 자주 참석해 그들의 작품 홍보에 도움을 줬다. 전시회 곳곳에서 노먼 하트넬, 하디 에이미스, 앤젤라 켈리 등 디자이너들과 여왕의 친분이 조명된다. 드 기토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의상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그녀가 영국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품 활동을 꾸준히 지원해 왔다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여왕은 그들과 끊임없는 대화와 협업을 통해 자신의 의상을 완성한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은 그녀가 여왕으로서의 의무를 멋지게 완수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그동안 왕실은 깃털 달린 모자부터 애국심이 느껴지는 자수까지 여왕의 의상을 통해 세계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하면 떠오르는 밝은 색상의 의상들이 전시실을 색채의 향연장으로 만든다. 하지만 드 기토가 말했듯이 그렇게 밝은 색상을 사용한 이유는 과시하려는 욕망에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디서나 여왕을 금세 알아볼 수 있도록 눈에 잘 띄게 하려는 의도에서다.
전시회는 여왕이 어린 시절부터 왕실의 일원으로서 짊어졌던 무거운 짐이 신체적으로도 부담스러웠으리라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엘리자베스와 동생 마거릿 공주는 아버지인 조지 6세의 대관식 때 각각 11세와 7세였다. 대관식에 참석한 어린 공주들의 몸 위에 무거운 왕관과 레이스 드레스, 모피, 금 장신구들이 얹혀졌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어려서부터 왕실 행사 때마다 화려한 장식의 드레스를 입었다. 20대에 입었던 노먼 하트넬의 첫 번째 작품은 반짝이는 검정색 공단 드레스로 1948년 당시 프랑스 파리 디자이너들의 영향을 받았다. 잘록한 허리를 강조한 검정색의 이 드레스는 여왕이 될 자격이 충분한 젊은 공주의 이미지를 부각시켰으며 디자인에 대한 그녀의 감각 또한 돋보이게 했다.
195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즉위한 직후 큰 과제 중 하나는 증조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 이후 최초의 여왕으로서 새로운 공식 복장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이 두 여왕은 남성 국왕들이 영국 군대의 수장으로서 입었던 제복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디자이너들에게 문을 열어줬다.
당시 왕실 의상 공급업체였던 ‘에드 앤 레이븐스크로프트’는 새 여왕이 대영제국의 수장으로서 공식행사에서 입을 망토를 제작할 때 왕립미술학교 학생이었던 메리언 포얼의 디자인을 채택했다. 포얼은 발까지 내려오는 빨간색의 우아한 망토를 제작했는데 신선하고 혁명적인 그녀의 디자인은 왕실 복장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웨딩드레스와 대관식 때 입었던 드레스는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트넬은 1947년 엘리자베스 공주의 웨딩드레스를 제작할 때 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림 ‘프리마베라’에서 영감을 받았다. 당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해 식량 등 생필품의 배급제를 실시했다. 하트넬이 왕실의 배급표를 모아 구입한 천으로 만든 그 웨딩드레스는 영국의 사기를 높이고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이 전시회는 구슬로 수놓은 꽃이 만발한 이 드레스와 약 3m 길이의 실크 튤 드레스 자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하트넬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 때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뿐 아니라 TV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감동시킬 만한 드레스를 제작했다. 드 기토는 “하트넬이 여왕과 긴밀한 협조 하에 완성한 대관식 드레스 디자인은 당시의 스타일을 반영하면서도 대관식의 본질을 고스란히 담았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하트넬이 제시한 9가지 디자인 중 8번째를 대관식 드레스로 선택했다. 그리고 영국을 상징하는 토끼풀과 부추, 엉겅퀴, 장미 자수에 더해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 남아공과 파키스탄 등 영국 연방을 상징하는 식물의 자수도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뷰글 비즈(기다란 관모양의 유리 구슬)와 스팽글(금속편), 금실과 모피로 장식한 이 드레스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여왕의 스타일은 해외순방길에서도 빛났다. 여왕은 그동안 265회의 공식 해외순방에서 116개국을 방문했는데 의상은 시기와 장소에 맞춰 영국 왕실을 대표할 수 있는 이미지를 세심하게 고려해 준비됐다. 요즘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이 해외순방길에 오를 때 왕실에서 그녀가 입을 옷을 세심하게 확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1960~70년대 해외순방 때 여왕은 라메(금실·은실을 섞어서 짠 천)나 실크 원단으로 된 등이 패인 드레스를 많이 입었다. 노먼 하트넬과 하디 에이미스, 이언 토머스 등이 디자인한 화려한 색상의 의상들은 영국의 영광스런 과거를 상기시켰다.
요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파워 드레싱은 앤젤라 켈리가 책임진다. 켈리의 공식 직함은 여왕의 개인비서 겸 고문이자 큐레이터다. 그녀는 2002년부터 여왕의 의상을 담당해 왔으며 여러 명의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로 구성된 전담팀을 이끈다.
켈리는 여왕의 측근에서 일하면서 과거에 그녀가 좋아했던 디자이너들이 시작한 전통을 이어간다. 이 전시회에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의 핑크색 구슬 장식 원피스부터 윌리엄 왕세손 결혼식의 화사한 노란색 코트와 모자까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영국 왕실의 중요한 순간에 입었던 의상이 모두 전시됐다. 지난 90년 동안 영국 왕실의 중요한 순간들을 패션의 측면에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다.
- 앨리스 커프 아이비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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