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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있어서 다행이야!

그대로 있어서 다행이야!

스페인, 프랑스 등지의 가족 경영 호텔은 본연의 개성 지키면서 현대적 편리함으로 고객 사로잡아
스페인 ‘마르베야 클럽’ 호텔의 여름 테라스.
요즘은 새로운 것에 가치를 두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얼리 어답터나 탐험가, 선구자가 되고 싶어 한다. 이런 경향은 최신 소셜미디어 앱과 스마트폰, 다이어트, 현대미술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익숙한 것의 편안함을 갈망할 때가 있다. 우리에겐 삶의 중심을 잡아주고 길을 안내해줄 지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것들로 넘쳐나는 바다에서 표류하고 말 것이다. 내가 가족 경영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최고의 가족 경영 호텔은 튼튼한 등대처럼 유행의 파도가 휘몰아쳐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킨다. 난 그 호텔들과 연결된 화려하고 우아한 과거와 그 한결같음이 좋다.

최근 프랑스 프로방스 남동부 산악지대에 있는 호텔 ‘샤토 생-마르탱’에서 하룻밤 묵었다.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 찾아갔는데 정말 그랬다. 그런데 그곳이 매우 친근하고 익숙하게 느껴져 놀라웠다. 대리석과 오르몰루(모조금) 장식, 태피스트리 등이 눈에 익었다. 그 호텔이 파리의 ‘르 브리스톨’ 호텔과 앙티브의 ‘호델 뒤 카프-에덴-로크’와 같은 에트커 가문의 소유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가 갔다(호텔 뒤 카프에서는 아직 숙박한 적은 없지만 그곳에서 열리는 파티에는 여러 번 참석해서 아름다운 실내장식을 익히 알고 있다).

겨울 시즌이면 빈 객실을 찾기 어려운 스위스의 ‘그슈타드 팰리스’도 가족 경영 호텔이다. 1938년부터 경영을 맡은 셰르츠 가문이 1947년에 사들였다. 1970년대 중반 영화 ‘돌아온 핑크 팬더’의 배경으로 등장했던 이 호텔은 그동안 어느 정도 변화는 있었지만 그때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족 경영 호텔은 스페인의 ‘마르베야 클럽’이다. 사실 난 마르베야 클럽의 역사에 관한 책을 썼고, 그슈타드 팰리스에 관한 책에도 기고했을 정도로 가족 경영 호텔의 애호가다.

마라베야 클럽의 탄생에는 동화 같은 사연이 담겨 있다. 60여 년 전 젊고 잘생긴 알폰소 데 호헨로헤 랑겐부르그 왕자가 가문의 궁이 있는 스페인 코스타 델 솔 해안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는 길가에 작은 호텔을 지었다. 그가 미국을 여행할 때 본 모텔과 비슷한 형태였다. 호텔은 말라가와 지브롤터 해협의 중간 지점에 있다. 바퀴 자국이 깊이 패인 도로에는 자동차보다 당나귀가 더 많았다. 1960년대에는 슬림 애런즈(상류층의 바캉스를 주제로 한 사진을 많이 찍은 미국 사진가)의 사진에 등장하는 상류층 인사 대다수가 마르베야 클럽에서 여름을 보냈다.

알폰소 왕자는 말하자면 제트족 프로스페로(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피스트’에 나오는 추방된 공작으로 마술에 능통했다)였다. 그는 수도승의 방 같은 단순한 객실과 욕조, 머리판에 그림이 그려진 침대 몇 개에 본인의 엄청난 매력을 더해 마법처럼 매혹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마르베야 클럽은 프로스페로의 섬처럼 세상과 단절돼 있었다. 클럽이 문을 연 지 몇 년 후 전화가 설치됐지만 손님들은 바깥 세상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등의 뉴스를 전혀 듣지 못했다. 클럽에는 신문도 라디오도 TV도 없었다. 그리고 거의 매일 밤 파티가 열렸다.

이 호텔을 운영하는 샤문 일가는 시설을 확충하고 현대화했다. 바와 레스토랑, 스파, 피트니스 센터, 키즈 클럽, 골프 코스, 승마 클럽, 고급 상점, 부동산 사무소 등을 신설하고 와이파이도 설치했다. 하지만 알폰소 왕자의 아들인 후베르토스 왕자가 보기엔 어린 시절을 보낸 이 호텔이 그때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후베르토스 왕자는 매년 여름 이 호텔에 묵으며 테라스에서 야간 라운지를 운영한다.

호텔의 현대화는 중요하다. 하지만 가족 경영 호텔은 시설 향상이 호텔 본연의 매력과 친숙함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지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그런 호텔에서는 대형 체인 호텔이 제공하지 못하는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대형 체인 호텔들은 시장조사나 마케팅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갑작스럽게 변화를 줌으로써 본래의 개성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향은 오래된 고객들을 멀어지게 하고 새 고객도 끌어들이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훌륭한 가족 경영 호텔의 장점은 변화를 줄 때 고객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미세하게 접근한다는 점이다. 고객은 이전에 뭐가 아쉬운 줄도 몰랐는데 새로 바뀌고 나니 편리하다고 생각되는 그런 작은 변화들을 말한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이 이전과 똑같이 변함없이 좋게 느껴지니 이게 바로 마법이 아니고 뭘까?

- 니컬러스 포크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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