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대통령에 목숨 건 투쟁
필리핀 대통령에 목숨 건 투쟁
두테르테의 초법적인 마약사범 처형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데 리마 상원의원, 반대세력의 섹스 스캔들 소문과 살해 협박에 시달려 필리핀의 레일라 데 리마 상원의원은 수도 마닐라의 한 호텔 회의실에서 뜻을 같이 하는 동료 몇 명과 함께 앉아 있었다. 남성 보좌관 2명이 회의실 밖을 지켰다. 그들은 호텔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요구했다. 인권 운동가이기도 한 데 리마 의원은 “이게 요즘 내 삶”이라며 “악몽 같지만 이제 익숙해져 간다”고 말했다.
데 리마 의원은 지난 9월 20일 필리핀 상원 청문회에서 자신의 집주소와 휴대전화 번호가 공개된 후부터 호텔이나 친구 또는 친척 집을 자주 옮겨 다니며 지낸다. 살해 협박을 받은 터라 널리 알려진 자택에서 밤을 보내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전임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 아래서 법무장관과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그녀는 지난 8월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사범에 대한 초법적이고 무자비한 척결을 가장 큰 목소리로 비판하는 최고위 공직자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데 리마 의원은 당연히 두테르테 추종세력의 공적 1호가 됐다. 그녀는 “두테르테가 아무도 자신을 비판하고 반대하지 못하도록 나를 본보기로 삼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필리핀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아웃사이더’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난 10월 7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필리핀 남부의 다바오시 시장 출신인 그는 유세에서 “범죄자 10만 명을 죽여 물고기 밥이 되도록 마닐라만에 버리겠다” “피비린내는 대통령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지난 6월 말 취임과 함께 그 말을 행동에 옮겨 국내외에서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약 전쟁을 저돌적으로 전개하겠다는 공약을 곧이곧대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의 취임 100일 동안 마약사범 약 3400명이 경찰의 작전이나 자경단에 의해 처형됐다. 그의 초법적인 마약 용의자 사살은 해외의 격분을 샀다. 미국과 유엔, 유럽의 정치인과 관리들은 한결같이 두테르테 대통령을 비난했다. 두테르테 대통령도 감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지옥에나 가라”며 남중국해에서 미국과의 합동 순찰,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24년 만에 미군의 필리핀 재주둔을 허용하는 양국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의 폐기도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내 임기 동안 미국과 결별할지도 모른다”며 단교도 불사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 새로운 무역 동맹과 장기 영토 임대, 중국·러시아와 무기 거래도 제안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60만 명의 마약 중독자가 있는 필리핀에서 마약이 국가와 가정을 파괴한다고 비난했다. 현지 여론조사기관인 SWS가 지난 6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필리핀 가구의 62%가 마약 중독자에 대한 공포감을 나타낼 정도로 마약 문제가 심각하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 소탕전이 인권을 무시하는 초법적 처형이라는 국내외 인권단체의 비판에도 국민이 환호하는 이유다. 그런 대중적인 인기 때문에 필리핀에선 대다수 비판자들이 반대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지난 9월 말 SWS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그의 지지도는 마약 전쟁으로 76%로 치솟았다(펄스아시아가 지난 7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의 신뢰율은 91%에 달하기도 했다).그런 상황에서 데 리마 의원은 지난 8월 공개적으로 처음 그를 비판했다. 그녀는 상원 법사위원장으로서 급증하는 마약 용의자 사살을 조사하는 청문회를 열었다. 그러자 두테르테 대통령은 그녀를 두고 “불륜을 저지른 부도덕한 여성”이라고 불렀다. 또 “내가 그녀라면 목을 맬 것”이라며 “여성으로서 데 리마 의원의 가장 내밀한 것들이 매일 연속해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9월이 되면서 그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더욱 커졌다. 과거 자경단의 일원이었다고 주장하는 에드가르 마토바토가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두테르테 대통령이 필리핀 남부 다바오의 시장으로 재직할 때 경찰과 전 공산반군으로 구성된 자경단을 운영하며 마약범죄 용의자를 재판도 없이 사살하고 정적 암살을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또 마토바토는 법무부 소속 국가수사국(NBI) 직원과의 총격전이 벌어졌을 때 당시 두테르테 시장이 현장에 가서 그 직원을 기관총으로 직접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두테르테 대통령과 경찰청장은 마토바토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맞섰다. 반대 심문에선 마토바토의 모순된 언급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마토바토의 증언 후 두테르테 대통령 지지자들은 더욱 심하게 데 리마 의원을 공격했다. 필리핀의 복싱 영웅으로 지난 5월 상원의원이 된 매니 파퀴아오가 주축이 된 두테르테 대통령 지지자들은 불신임 투표를 통해 데 리마 의원을 법사위원장에서 끌어내렸다. 그때부터 그녀는 살해 협박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9월 말 하원의 두테르테 대통령 지지자들이 데 리마 의원(2007년 이혼했다)과 그녀의 유부남 운전기사가 등장한다는 섹스 비디오테이프를 공개 열람하겠다고 협박했다. 그 비디오테이프가 그녀와 운전기사의 불륜 관계를 입증한다는 주장이었다. 또 그들은 데 리마 의원이 법무장관이었을 때 그 운전기사를 통해 투옥된 거물 마약상으로부터 뇌물을 건네 받았다고 주장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9월 22일 “데 리마는 자신의 운전기사와 간통했을 뿐 아니라 나라까지 욕보였다”며 “그녀는 섹스를 아주 좋아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문제의 섹스 비디오테이프를 볼 때마다 밥맛을 잃는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그 테이프를 왜 한 번 이상 봤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데 리마 의원은 그런 테이프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운전기사와 사귄 적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그건 사적인 문제라고 항변했다. “두테르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를 파멸시키려 한다”고 그녀는 뉴스위크에 말했다. “섹스 비디오테이프와 마약조직 관련설은 나를 모함하려는 터무니없는 조작이다.”
결국 의원들은 문제의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하려던 계획에서 한걸음 물러났다. 또 일부는 그녀가 실제로 테이프에 등장하는지에 관해서도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데 리마 의원을 공격하기 위해 그런 주장을 이용하면 중요한 지지기반이 될 수 있는 여성 유권자들을 소원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지난 10월 4일 상원은 문제의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하려는 계획이 ‘여성 혐오·비하’라고 비난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여야 여성 의원들이 발의한 것이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해시태그 #EveryWoman이 유행했고 여러 여성 네티즌이 ‘의회에서 증언하고 싶다. 섹스 비디오에 나오는 사람은 나’라는 글을 올렸다.페이스북에서 반(反)두테르테 단체인 ‘침묵하는 다수’를 설립한 조지 아코스타-니스페로스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필리핀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단적인 예”라며 “하지만 그는 상대 여성을 잘못 골랐다”고 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과거에도 여성에 관해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막말을 서슴치 않았다. 그는 유세장에서 1989년 다바오에서 발생한 교도소 폭동사건 때 수감자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호주 여성 선교사를 두고 “그녀는 아름다웠다. 시장인 내가 먼저 해야 했는데…”라는 망언으로 세계적인 비난을 샀다. 그러나 필리핀에선 그런 게 ‘두테르테 스타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일부 여성은 그의 노골적인 성차별 언행을 비난하면서도 그가 최소한 여성의 권익을 위한 조치를 취했다는 점을 높이 산다. 블로거인 카트리나 스튜어트 산티아고는 그가 다바오 시장 시절 성차별근절법을 제정했고 적어도 그 도시의 여성은 다른 도시의 거리에서 여성이 받는 희롱은 당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몇몇 페미니스트 단체도 그가 정부 요직에 여성을 임명했다는 사실을 칭찬했다. 섹스 비디오테이프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진 데 리마 의원을 옹호하는 여성은 거의 없었다. 1986년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하야 이래 취임한 대통령 6명 중에 2명이 여성이었지만 여성 문제는 필리핀 정치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데 리마 의원은 두테르테 대통령을 계속 비판하면 자신이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필리핀 여성의 폭넓은 지지가 없다고 해도 그녀는 자신의 명분을 세워야 한다고 느낀다. “그가 마약 전쟁을 내세우며 중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약을 파는 가난하고 방어할 능력도 없는 삼류 사범들을 표적으로 한다는 사실에 충격 받았다. 그게 무슨 전쟁이냐?”
현재로선 두테르테 대통령은 자신만만하다. 그를 제2의 마르코스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변덕이 심하고 불안한 정치 역사를 가진 필리판 같은 나라에선 마르코스 같은 철권 통치자도 순식간 쫓겨날 수 있다. 마르코스는 1986년 부정선거에 대한 거국적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하와이로 망명했다가 그곳에서 3년 뒤 사망했다.
데 리마 의원은 두테르테 대통령에 맞서 계속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들이 나를 공격할수록 나의 전의는 더 굳어진다. 두테르테가 나의 기를 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 필립 셰르웰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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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리마 의원은 지난 9월 20일 필리핀 상원 청문회에서 자신의 집주소와 휴대전화 번호가 공개된 후부터 호텔이나 친구 또는 친척 집을 자주 옮겨 다니며 지낸다. 살해 협박을 받은 터라 널리 알려진 자택에서 밤을 보내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전임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 아래서 법무장관과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그녀는 지난 8월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사범에 대한 초법적이고 무자비한 척결을 가장 큰 목소리로 비판하는 최고위 공직자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데 리마 의원은 당연히 두테르테 추종세력의 공적 1호가 됐다. 그녀는 “두테르테가 아무도 자신을 비판하고 반대하지 못하도록 나를 본보기로 삼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필리핀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아웃사이더’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난 10월 7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필리핀 남부의 다바오시 시장 출신인 그는 유세에서 “범죄자 10만 명을 죽여 물고기 밥이 되도록 마닐라만에 버리겠다” “피비린내는 대통령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지난 6월 말 취임과 함께 그 말을 행동에 옮겨 국내외에서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약 전쟁을 저돌적으로 전개하겠다는 공약을 곧이곧대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의 취임 100일 동안 마약사범 약 3400명이 경찰의 작전이나 자경단에 의해 처형됐다. 그의 초법적인 마약 용의자 사살은 해외의 격분을 샀다. 미국과 유엔, 유럽의 정치인과 관리들은 한결같이 두테르테 대통령을 비난했다. 두테르테 대통령도 감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지옥에나 가라”며 남중국해에서 미국과의 합동 순찰,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24년 만에 미군의 필리핀 재주둔을 허용하는 양국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의 폐기도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내 임기 동안 미국과 결별할지도 모른다”며 단교도 불사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 새로운 무역 동맹과 장기 영토 임대, 중국·러시아와 무기 거래도 제안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60만 명의 마약 중독자가 있는 필리핀에서 마약이 국가와 가정을 파괴한다고 비난했다. 현지 여론조사기관인 SWS가 지난 6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필리핀 가구의 62%가 마약 중독자에 대한 공포감을 나타낼 정도로 마약 문제가 심각하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 소탕전이 인권을 무시하는 초법적 처형이라는 국내외 인권단체의 비판에도 국민이 환호하는 이유다. 그런 대중적인 인기 때문에 필리핀에선 대다수 비판자들이 반대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지난 9월 말 SWS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그의 지지도는 마약 전쟁으로 76%로 치솟았다(펄스아시아가 지난 7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의 신뢰율은 91%에 달하기도 했다).그런 상황에서 데 리마 의원은 지난 8월 공개적으로 처음 그를 비판했다. 그녀는 상원 법사위원장으로서 급증하는 마약 용의자 사살을 조사하는 청문회를 열었다. 그러자 두테르테 대통령은 그녀를 두고 “불륜을 저지른 부도덕한 여성”이라고 불렀다. 또 “내가 그녀라면 목을 맬 것”이라며 “여성으로서 데 리마 의원의 가장 내밀한 것들이 매일 연속해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9월이 되면서 그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더욱 커졌다. 과거 자경단의 일원이었다고 주장하는 에드가르 마토바토가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두테르테 대통령이 필리핀 남부 다바오의 시장으로 재직할 때 경찰과 전 공산반군으로 구성된 자경단을 운영하며 마약범죄 용의자를 재판도 없이 사살하고 정적 암살을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또 마토바토는 법무부 소속 국가수사국(NBI) 직원과의 총격전이 벌어졌을 때 당시 두테르테 시장이 현장에 가서 그 직원을 기관총으로 직접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두테르테 대통령과 경찰청장은 마토바토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맞섰다. 반대 심문에선 마토바토의 모순된 언급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마토바토의 증언 후 두테르테 대통령 지지자들은 더욱 심하게 데 리마 의원을 공격했다. 필리핀의 복싱 영웅으로 지난 5월 상원의원이 된 매니 파퀴아오가 주축이 된 두테르테 대통령 지지자들은 불신임 투표를 통해 데 리마 의원을 법사위원장에서 끌어내렸다. 그때부터 그녀는 살해 협박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9월 말 하원의 두테르테 대통령 지지자들이 데 리마 의원(2007년 이혼했다)과 그녀의 유부남 운전기사가 등장한다는 섹스 비디오테이프를 공개 열람하겠다고 협박했다. 그 비디오테이프가 그녀와 운전기사의 불륜 관계를 입증한다는 주장이었다. 또 그들은 데 리마 의원이 법무장관이었을 때 그 운전기사를 통해 투옥된 거물 마약상으로부터 뇌물을 건네 받았다고 주장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9월 22일 “데 리마는 자신의 운전기사와 간통했을 뿐 아니라 나라까지 욕보였다”며 “그녀는 섹스를 아주 좋아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문제의 섹스 비디오테이프를 볼 때마다 밥맛을 잃는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그 테이프를 왜 한 번 이상 봤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데 리마 의원은 그런 테이프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운전기사와 사귄 적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그건 사적인 문제라고 항변했다. “두테르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를 파멸시키려 한다”고 그녀는 뉴스위크에 말했다. “섹스 비디오테이프와 마약조직 관련설은 나를 모함하려는 터무니없는 조작이다.”
결국 의원들은 문제의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하려던 계획에서 한걸음 물러났다. 또 일부는 그녀가 실제로 테이프에 등장하는지에 관해서도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데 리마 의원을 공격하기 위해 그런 주장을 이용하면 중요한 지지기반이 될 수 있는 여성 유권자들을 소원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지난 10월 4일 상원은 문제의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하려는 계획이 ‘여성 혐오·비하’라고 비난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여야 여성 의원들이 발의한 것이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해시태그 #EveryWoman이 유행했고 여러 여성 네티즌이 ‘의회에서 증언하고 싶다. 섹스 비디오에 나오는 사람은 나’라는 글을 올렸다.페이스북에서 반(反)두테르테 단체인 ‘침묵하는 다수’를 설립한 조지 아코스타-니스페로스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필리핀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단적인 예”라며 “하지만 그는 상대 여성을 잘못 골랐다”고 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과거에도 여성에 관해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막말을 서슴치 않았다. 그는 유세장에서 1989년 다바오에서 발생한 교도소 폭동사건 때 수감자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호주 여성 선교사를 두고 “그녀는 아름다웠다. 시장인 내가 먼저 해야 했는데…”라는 망언으로 세계적인 비난을 샀다. 그러나 필리핀에선 그런 게 ‘두테르테 스타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일부 여성은 그의 노골적인 성차별 언행을 비난하면서도 그가 최소한 여성의 권익을 위한 조치를 취했다는 점을 높이 산다. 블로거인 카트리나 스튜어트 산티아고는 그가 다바오 시장 시절 성차별근절법을 제정했고 적어도 그 도시의 여성은 다른 도시의 거리에서 여성이 받는 희롱은 당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몇몇 페미니스트 단체도 그가 정부 요직에 여성을 임명했다는 사실을 칭찬했다. 섹스 비디오테이프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진 데 리마 의원을 옹호하는 여성은 거의 없었다. 1986년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하야 이래 취임한 대통령 6명 중에 2명이 여성이었지만 여성 문제는 필리핀 정치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데 리마 의원은 두테르테 대통령을 계속 비판하면 자신이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필리핀 여성의 폭넓은 지지가 없다고 해도 그녀는 자신의 명분을 세워야 한다고 느낀다. “그가 마약 전쟁을 내세우며 중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약을 파는 가난하고 방어할 능력도 없는 삼류 사범들을 표적으로 한다는 사실에 충격 받았다. 그게 무슨 전쟁이냐?”
현재로선 두테르테 대통령은 자신만만하다. 그를 제2의 마르코스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변덕이 심하고 불안한 정치 역사를 가진 필리판 같은 나라에선 마르코스 같은 철권 통치자도 순식간 쫓겨날 수 있다. 마르코스는 1986년 부정선거에 대한 거국적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하와이로 망명했다가 그곳에서 3년 뒤 사망했다.
데 리마 의원은 두테르테 대통령에 맞서 계속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들이 나를 공격할수록 나의 전의는 더 굳어진다. 두테르테가 나의 기를 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 필립 셰르웰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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