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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으로 편견에 저항하다

패션으로 편견에 저항하다

남아공·나이지리아를 중심으로 한 남성복 업계, 성중립적인 의상으로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아
남아공 디자이너 리치 므니시는 “작품을 통해 현대 아프리카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늘씬한 키에 체격이 호리호리한 남자가 퇴폐적인 분위기의 흰색 정장을 입고 다리를 벌린 채 서 있다. 어깨의 절개된 부분으로 맨살이 드러나고 목엔 진주 목걸이를 걸었으며 나팔바지를 입었다. 남자 뒤쪽의 벽돌 벽 위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언뜻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이곳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웨토다. 그리고 남자가 입은 옷은 남아공 디자이너 리치 므니시가 디자인한 것이다. “작품을 통해 현대 아프리카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므니시는 말했다(앞서 묘사한 광고 사진은 요하네스버그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크리스틴-리 물만의 작품이다).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미적 감각에 관해 선입견을 지녔다. 그들은 아프리카가 2000여 부족이 모여 살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대륙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 풍요로움 속에 살아가는 현대 남성의 모습을 내 작품에 반영하고 싶다.”므니시는 독일의 디자인·예술 전문 출판사 게슈탈텐의 신간 ‘아프리카 라이징’에 소개된 혁신가 중 한 명이다. 게슈탈텐이 남아공의 온라인 출판사 ‘디자인 인다바’와 손잡고 펴낸 이 책은 창조적 재능을 지닌 신세대 아프리카인들을 소개한다. 가구부터 사진, 건축, 미술, 섬유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뤘는데 그중 가장 역동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쪽이 패션(특히 남성복)이다.

므니시와 므딩기 등 남아공 디자이너들은 게슈탈텐의 신간 ‘아프리카 라이징’에 창조적 재능을 지닌 신세대 아프리카인으로 소개됐다.
아프리카의 남성복 업계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는 남아공과 나이지리아다. 지난해 시작된 ‘사우스 아프리칸 맨스웨어 위크(SAMW)’에는 남아공 디자이너들뿐 아니라 나이지리아 브랜드(오렌지 컬처 등)도 참여한다. 남아공 디자이너로는 므니시를 비롯해 즈느비에브 리용, AKJP, 출랍, 나오 세라티, 루카뇨 므딩기, 도쿄 제임스 등이 대표적이다. 인디고 계열의 직선적인 실루엣을 선보인 므딩기의 2016 봄/여름 컬렉션 역시 ‘아프리카 라이징’에 소개됐다. 올해 초 그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피티 이마지네(Pitti Immagine)’ 남성복 행사에서 동료 남아공 디자이너 니콜라스 코츠와 협업으로 제작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 젊은 디자이너들의 다양한 작품을 한데 묶어주는 요소는 남녀 구분의 기준을 무시한다는 점이다. 영국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유니섹스 라인부터 미국의 트랜스젠더 모델 하리 네프까지 패션업계의 중성 지향적인 취향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이런 경향은 패션의 경지를 뛰어넘는다.복잡한 역사와 사회적 환경을 배경으로 한 아프리카 디자이너들은 유행에 뒤진 인종과 성별의 구분을 무시한다. 이런 맥락에서 성중립적인 패션은 단순한 트렌드를 뛰어넘어 편견에 대한 저항으로 자리 잡았다.

“아프리카 여성은 가부장제가 세운 벽을 무너뜨리려고 노력해 왔으며, 남성은 전통적인 남성성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고 애써 왔다”고 므니시는 말했다. “현재의 실험은 남녀 모두의 표현 수단을 확장하는 방법이다.”

이 ‘표현 수단’은 소셜미디어와 전자상거래의 발전에 힘입어 세계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요즘 남아공의 남성복이 뜬다”고 SAMW의 공동 창설자 사이먼 데이너가 말했다. “이들 디자이너 대다수가 대중 시장에 직접 진출하진 못하더라도 그들이 공략 목표로 삼는 소비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9월 므딩기와 므니시는 런던 패션위크에 참여했다. 이들의 작품은 남아공 패션을 위한 새 전시관 ‘머지 ZA’에 전시됐다. 길거리 패션 브랜드 영&레이지와 완다 르포토, 셀피 등이 가세했다. 므니시는 “우린 디자인에 한계가 없는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고 말했다.

- 헬렌 제닝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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