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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의 G(글로벌)와 I(나)사이 HR(9)

김기찬의 G(글로벌)와 I(나)사이 HR(9)

일본이 노동개혁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호봉제, 순환근무제 등 한국과 비슷한 인사제도 가진 일본의 고용시장 개혁은 한국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노동법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인 도쿄대 아라키 다카시(荒木尙志) 교수의 해설을 소개한다.
지난해 경제5단체장들의 노동개혁입법 촉구 기자회견 장면. 지금 국회에서는 지난 19대 국회에서 무산된 노동개혁 법안 심의가 한창이다.
국회는 지금 법안 심의가 한창이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무산된 노동개혁 법안이 주요 검토 대상이다.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상보험법, 파견근로자보호법, 기간제근로자보호법이다. 이 가운데 기간제 근로자 보호법을 제외한 4개 법안은 당정 협의를 거쳐 새누리당 의원들이 발의했다. 그러나 기간제법도 다시 부활해 올해 안에는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기간제법에는 기간제 근로자의 계약이 만료될 경우 이직수당을 지급하는 것과 같은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내용이 수두룩하다. 9·15 노사정 대타협을 파기한 한국 노총조차 기간제법만은 통과시키라고 주장할 정도다. 야당과 노동계를 중심으로 논의가 재개될 여지가 많은 이유다.

이들 법안은 기업의 인사노무에 큰 영향을 끼친다. 법안이 어떻게 손질되느냐에 따라 HR전략을 새로 짜야 할 지도 모른다. 정규직의 고용유연성이 확보되느냐, 아니면 더 공고한 기득권 구조를 만드느냐가 결정된다. 비정규직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줄 수 있느냐 아니냐는 방향도 정해진다. 문제는 이들 법안이 경제이슈인데도 정치이슈로 변질돼 자칫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 고용 시장은 급속히 얼어붙을 수 있다.

스페인은 노동시장을 개혁해 연간 50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도 노동개혁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수년 전부터 여러 법안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아베노믹스와 맞물려 그 효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일본 노동개혁은 아직 국내에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다.

이와 관련 노동법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인 도쿄대 아라키 다카시 교수의 해설을 소개한다. 9·15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진 뒤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노사정 위원회 위원들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전 세계에서 호봉제를 채택한 국가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현재 일본은 호봉제가 거의 사라지고, 역할에 따른 임금, 즉 역할급으로 개편했다. 직무 중심이 아니라 순환근무제를 운영하는 점도 일본과 한국이 유사하다. 따라서 아라키 다카시 교수의 설명은 한국기업과 노동시장 개혁 방향에도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비정규직의 고용기간을 5년으로 연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저출산을 해소하기 위해 장시간 근로를 강력히 규제하는 등 노동 개혁으로 아베노믹스를 이끌고 있다.


비정규직의 고용기간을 5년(5년 뒤 무기계약직 전환)으로 한 까닭은.


일본에서 정규직을 채용할 때는 비용을 많이 들여서 신중하게 본사가 채용한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사업장 수준에서 현장 인사담당자가 상당히 간단하게 채용한다. 이런 상황에선 비정규직의 능력 향상과 같은 기회를 주기 힘들다. 비정규직의 지속 가능한 고용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5년은 비정규직의 기능 수준을 충분히 높일 수 있는 기간이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기업으로선 숙련된 인력을 얻는 셈이 된다. 별도의 비용을 들일 필요도 없다. 특히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도 기존의 고용조건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사용주가 비용이 많이 들면 계약을 해지 할 수 있어서다. 이를 통해 고용안정이 되는 근로자 수가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5년 뒤에도 근로조건이 나아지는 것이 없지 않는가.


사용주가 근로조건을 개선하면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등 경제적 인센티브를 준다. 이를 통해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 경제와 시장상황에 부합하는 것이다.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맞지 않다. 소프트 룰로 처우개선을 끌어내야 한다. 실제로 2007년 파트타임노동법을 개정하면서 정규직·비정규직 간 균등처우와 관련된 규제를 도입했다. 비정규직의 처우를 정규직과 비슷하도록 개선하면 기업 입장에선 비용이 어차피 많이 들게 된다. 그래서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 요건이 너무 엄격해서 실패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업무가 같아야 하고, 인재 활용의 형태도 같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런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은 1.3%뿐이었다. 실효성이 없었다. 그래서 아예 숙련도를 높일 수 있는 충분한 기간, 즉 5년을 기간으로 정하고 무기계약으로 전환토록 한 것이다.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5년으로 함에 따라 정규직을 쓸 자리에 비정규직을 쓰는 폐단이 생기지 않겠는가.


유럽은 객관적인 이유가 없으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적용해 실업률이 올라가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 이런 원칙을 일본에 도입하면 기업이 해외에 공장을 짓겠다고 하는 등 문제가 생긴다. 해외에 나간 일본 기업을 본국으로 불러들여야 하는데, 그런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입구(入口) 규제를 하지 않는 것이 고용기회를 증가시킨다.
 엄격한 해고 규제는 취업자에게 장벽


해고문제와 관련된 논의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일본에서는 2015년 10월부터 후생노동성에서 검토회의가 만들어져 논의 중이다. 이 또한 법보다는 소프트 룰을 적용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 해결책이란 생각이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을 누가 작성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허용하는 범주를 짜야 한다는 말이다. 다만 규제가 엄하면 고용경직성이 높아져서 실업률이 올라갈 수 있다. 엄격한 해고규제는 현재 근무 중인 정규직에게는 좋지만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취업장벽이 돼 고용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일본은 경제적인 해고규제가 엄격하지만 취업규칙 등을 통해 노동조건을 쉽게 바꿀 수 있는 제도가 도입돼 있다.



노동시간 규제 개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일본 국회에 제출된 내용은 장시간 노동규제, 다양하고 유연한 근로형태 실현과 같은 두 가지다. 일본에서 잔업할증률은 25% 정도이지만 월 60시간 이상 잔업하면 할증률이 50%로 확 올라간다. 그런데 이 규정은 대기업에만 적용된다. 이를 중소기업에도 적용해 장시간 근로를 줄이려 한다. 또 유연한 근무를 위해 화이트칼라이그잼프션(white collar exemption)을 도입하려 한다. 고도 전문직이거나 연봉이 1075만엔 이상자 일 경우 잔업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식이다. 물론 무조건 도입은 안 된다. 직장 내 노사 동수의 위원회를 만들어 위원 5분의 4 이상이 찬성하고, 본인이 동의할 경우에 한해서 시행한다.



연차휴가 사용은 얼마나 하고 있나.


연차휴가 사용률이 너무 낮다. 48.8% 정도다. 특히 연차휴가를 안 쓰고 2년이 지나면 소멸된다. 이건 문제다. 현재 1년에 5일은 무조건 연차휴가를 쓰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진행 중이다.

- 김기찬 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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