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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스루’ 성매매

‘드라이브스루’ 성매매

스위스 취리히의 성매매 복합시설 ‘섹스 박스’, 안전과 근로조건 개선하고 인신매매 막는 효과 커
취리히의 ‘섹스 박스’엔 에이즈 예방과 성교육 포스터가 붙어 있고 콘돔 버리는 쓰레기통과 섹스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비상벨이 설치돼 있다.
세계의 금융 중심지인 스위스 취리히에 자정이 찾아왔다. 나는 택시를 타고 성매매 여성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네온 사인을 보고 그 근처에 왔다고 직감했다. 내 왼쪽으로 기다란 칸막이 주차장의 각 칸을 비추는 붉은색, 녹색, 청색 네온 불빛이었다. 내가 탄 택시가 나무로 지은 칸막이 시설(‘섹스 박스’로 불린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붉게 반짝이는 립스틱을 칠한 20대 성매매 여성 2명이 담배를 물고 서 있었다. 나는 차창을 열어 탈색한 벌집 모양의 머리를 한 여성에게 물었다. “영어 할줄 알아요?”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내가 기자라고 밝히자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자신만이 아니라 이곳의 어떤 여성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여긴 철저히 감시된다”며 건너편을 가리켰다. 그곳엔 청색 상의를 입은 체격 좋은 여성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물리적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특수 훈련을 받은 사회복지사였다. 취리히는 사생활 보호와 무엇이든 사전동의를 요구하는 법이 엄격하다. 드라이브스루(차를 타고 이용한다는 뜻) ‘섹스 박스’ 구역을 돌아보려면 화대에 해당하는 입장료를 내야 한다.
취리히의 사회복지사들은 ‘섹스’ 박스가 성매매 여성의 안전을 지켜주고 포주의 접근을 막아 인신매매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뒷차가 경적을 울렸다. 내가 탄 택시가 길을 막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꺾자 축구장만한 크기의 공간에 버스 정류소만한 크기의 칸막이 공간 10개가 약 3m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그중엔 스프레이 페인트로 가격이 적힌 곳도 있었다. 봉사료는 성 구매자(고객)와 매매자(섹스 근로자) 사이의 흥정에 따라 달라진다. 나를 태운 택시 운전기사(자칭 ‘성매매 전문가’)에 따르면 기본은 50달러, 풀 서비스는 100달러, 예외적인 경우는 200달러 이상이다.

각 칸막이 공간엔 성매매 여성이 2∼6명 있었다. 전부 도발적인 차림의 여성이었다. 남성이나 트랜스젠더는 없었다[그들은 주로 취리히의 LGBT(성 소수자) 성매매 업소나 술집에서 매춘을 한다]. 그 여성들은 대부분 ‘로마’로 불리는 중·동부 유럽 출신의 집시였다. 그들은 담배를 물고 스위스 맥주를 마시고 잡담하며 손님이 차를 타고 와서 자신을 선택해주길 기다렸다. 택시를 타고 유혹하는 차림의 매춘부들이 있는 곳을 돌아다니다보니 마치 섹스 테마공원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취리히의 홍등가는 일반적인 생각과 많이 다르다. 패스트푸드 드라이브 인 매장을 연상시키는 성매매 복합시설인 ‘섹스 박스’로 이뤄져 있다. 이 시설은 차를 탄 채로 햄버거를 주문하는 드라이브 인 매장이나 자동차 극장을 이용하는 것처럼 성 구매자가 성매매 여성을 선택해 흥정이 이뤄지면 차에 태운 뒤 주차장처럼 생긴 ‘섹스 박스’에 들어가 성매매를 하도록 설계돼 있다. 성 구매자는 반드시 차로만 드나들 수 있다.

취리히는 여러 조사에서 삶의 질이 세계 최고이며 유럽 최고의 부유한 도시로 선정됐다. 하지만 환락산업도 번창한다. ‘섹스 박스’ 성매매 복합시설 개발에 참여한 취리히의 전직 공무원 미카엘 헤르지히는 “수요가 아주 많다”고 말했다. “사업체가 많아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도시는 섹스 산업이 번성하게 마련이다.”

취리히에선 1942년부터 매춘이 합법화됐다. 현재 시 당국에 등록한 성매매 여성이 약 1200명이다. 헤르지히는 “미국 언론은 왜 스위스가 성매매를 불법화하지 않는지 궁금해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매매는 불법화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성매매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계속된다. 그러니 안전하게 성매매가 이뤄지고 도움이 필요할 때 찾아갈 수 있는 곳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는 폭력을 줄이고 성매매 종사자들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려는 의도로 ‘섹스 박스’ 구역을 개발했다.”

취리히 구시가지 번화가의 고급 양품점과 시계 부티크 사이 사이엔 사창가와 라이브 섹스쇼 비디오 부스가 박혀 있다. 취리히 시청 주변의 랑스트라세 구역은 과거 마약과 매춘으로 악명 높았던 스트립 클럽 중심지다. 그러나 요즘은 그곳도 고급 치즈와 골동품 가게 부근의 니더도르프에 있는 자갈길에서만 남성 행인을 상대로 한 길거리 여성의 성매매 호객이 허용된다. 차를 탄 남성 성 구매자에게 취리히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곳은 강변의 실콰이 구역이었다.

그러나 실콰이의 성매매 산업은 현지 주민에게 부담이 됐다. 포주들이 그 구역을 조직범죄의 온상으로 만들었다. 성매매 여성이 폭력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취리히 중독·마약단속실의 바바라 루드비히 실장에 따르면 그곳 주민인 여성까지 공격을 받았다.

주민들은 집 뒤뜰과 문간에 콘돔 포장지가 버려져 있다고 불평했다. 취리히 시당국으로선 교통이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대부분은 노출 심한 성매매 여성을 구경하느라 넋이 나간 운전자들이 일으킨 체증이었다. 이런 야외 섹스 시장의 대체 장소가 시급하다고 판단한 취리히 시당국은 2012년 주민투표를 거쳐 건설비 260만 달러와 연간 운영비 76만 달러를 예산에서 조달해 성매매 복합시설을 개발하기로 했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위생적인 성매매 시설을 직접 제공하면서 성매매 종사자의 치안 문제나 건강보험가입 등의 노동조건에도 개입하겠다는 의도였다.
취리히 시당국은 안전하고 위생적인 성매매 시설을 직접 제공하고 성매매 여성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섹스 박스’를 만들었다.
‘섹스 박스’가 개발된 이래 실콰이에선 폭력행위 신고가 한 건도 없었고 성매매 여성들도 그곳과 인근 동네에선 영업하지 않았다. 취리히의 사회복지사들은 새로 개발된 드라이브스루 ‘섹스’ 박스가 취약한 섹스 근로자의 안전을 지켜주고 포주의 접근을 막아 인신매매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섹스 박스’는 예술가와 난민이 좋아하는 취리히 교외 산업단지에 있다. 프리랜스 성매매 여성들의 사업공유 공간인 이곳 시설은 네덜란드와 독일의 성매매 시설을 참고했다. 그러나 취리히에선 성매매 여성을 위한 상담·경비 인력을 상시 배치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취리히의 ‘섹스 박스’에선 성매매가 고리 형태 도로에 있는 대기 장소에서 시작돼 네온 사인이 켜진 주차장 같은 칸막이 시설로 이어진다. 성 구매를 원하는 남성은 고리 형태의 도로를 돌다가 마음에 드는 성매매 여성을 선택해 가격에 합의하면 주차장 같은 시설로 직접 차를 몰고 들어가 빈 박스를 고른 뒤 서비스를 받고 셈을 치른 뒤 차를 타고 떠난다.

‘섹스 박스’ 근로자들은 하루 약 5달러를 내고 공간을 임대한다. 그러나 내년 초가 되면 임대료가 없어진다. 낮에는 경비원이 그곳에서 순찰을 돈다. 입구 쪽에 설치된 도로표지판은 콘돔 사용을 권장하며 ‘섹스 박스’에서 지켜야 할 규칙(사진 촬영 금지, 자전거·도보 이용 금지, 18세 미만 입장 금지, 쓰레기 투척 금지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그곳에 있는 간이 쉼터엔 화장실, 샤워, 콘돔, 무료 세탁기, 작은 주방이 마련돼 있으며 무료 피임약, 성교육, 에이즈 예방 프로그램, 의료 서비스, 상담, 성병 검사를 제공한다. 성매매 여성은 시내의 산부인과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섹스 박스’는 ‘차내 서비스’를 위한 8개의 드라이브인 칸막이 공간과 판자 침대와 고무 매트리스가 놓여진 4개의 칸으로 구성된다. 각 칸엔 에이즈 예방과 성교육 포스터가 붙어 있고 콘돔 버리는 쓰레기통과 섹스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비상벨 버튼이 설치돼 있다. 버튼을 누르면 그곳 전체에 경보가 울려퍼지며 문제의 박스 안에 경고등이 켜진다.

비상벨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울린다고 루드비히는 말했다. 주로 남성 고객과 성매매 여성이 돈문제로 다툰 뒤다. “한번은 여성이 구타당했을 때, 또 한 번은 고객이 여성의 목을 조르려 했을 때 울렸다.”

‘섹스 박스’에서 일하는 여성은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하루하루 고달픈 삶을 산다. 그들은 루마니아·헝가리·불가리아 출신 집시로 1년에 한차례 3개월 한도로 체류할 수 있다. 루드비히는 “그들은 교육은 생각할 수도 없고 심지어 수도도 나오지 않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설명했다. “그들로선 성매매가 유일한 생계 수단이다. 일부는 성매매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대다수는 고국에 있는 자녀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한다.” ‘섹스 박스’에서 일하는 여성은 사창가나 술집에서 일하는 성매매 여성보다 돈을 적게 받는다. 루드비히는 “하지만 그런 곳에서 일하면 착취에 시달릴 위험이 아주 크다”고 말했다. “남성은 강자와 약자의 관계를 즐기기 위해 길거리의 성매매 여성을 찾는 것 같다. 이곳보다 더 지저분하다.”

성매매가 아무리 합법화돼도 인신매매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섹스 박스’가 등장하면서 포주의 사업이 더 어려워졌다. 포주로 의심되는 사람은 그 구역에서 쫓겨나며 무단출입으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되면 평생 그 구역에 들어갈 수 없다. 지금까지 그곳에서 붙잡힌 포주는 없다. 그러나 루드비히는 “성매매 여성이 일을 마치고 이곳을 떠난 뒤엔 어떤 일이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게다가 인신매매는 추적하기 어렵다. ‘섹스 박스’ 시스템의 한 가지 이점은 성매매 여성이 도움을 받기 쉽다는 사실이다. 루드비히는 그곳의 간이 보건소에 사회복지사가 상근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쉽게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섹스 박스’는 연중 무휴로 운영되며 영업 시간은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저녁 7시~새벽 3시,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진 저녁 7시~새벽 5시다. 주말엔 자정 후에 손님이 많다고 루드비히는 말했다. 그들은 대개 술집에서 원하는 상대를 구하지 못하면 그곳을 찾는다. 스위스 팀의 축구경기가 끝난 뒤엔 늘 장사가 잘 되며 특정 명절 기간에는 찾는 고객이 뜸하다. 루드비히는 특히 크리스마스가 ‘섹스 박스’에선 아주 한산한 시기라고 말했다.

- 고고 리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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