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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안(安)하기

인사 안(安)하기

인사는 사랑과 존경을 표현하고, 정과 행복을 나누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행위임에 틀림없다. 어른과 고객을 유난히 섬기는 한국에서는 얼마 전까지 은행들이 앞 다퉈 직원들을 거리에 내보내 행인들에게 90도 인사하기 교육을 했다. 백화점에서는 직원들을 문 앞에 세워놓고 방문객에게 세상에 가장 겸손한 몸짓으로 인사를 시켰는데 최근에는 그런 광경을 보기 힘들다. 서비스 경쟁이 줄었다기보다, 고객이 과도한 인사에 불편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인사의 유래를 알고 보면 왜 과도한 인사가 불편함을 주는지 이해할 수 있다. 윗사람에게 몸을 굽히는 인사 예절은 고대 중국 제사의식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제사의식에서는 살아있는 동물을 제물로 삼았는데, 후에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제물처럼 굽혀서 상대에게 충성한다는 일종의 항복 의식이 인사로 진화됐다는 것이다. 고대 서양에서는 정복당한 패자가 정복자에게 복종을 표하기 위하여 땅 위에 납작 엎드리거나, 목을 쳐도 좋다는 완벽한 항복의 표시로 목을 길게 뻗었다.

요즘은 유교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에서조차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는 경우가 아니면, 허리를 깍듯이 굽혀서 예의를 표하는 인사 행위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가 경쟁하듯 벌리는 과도한 인사는 존경의 표시가 아니라, 동물 위계 질서에서 약자가 강자에게 굴복하는 비굴한 행위에 가깝다. 존경의 상징인 부모에게도 하지 않는 과도한 인사를 왜 고객과 상사에게 마치 충성 경쟁처럼 하는 것일까.

중세 계급사회의 산물인 굴욕적 인사 행태는 일사불란한 상명하달 체계가 효과를 발휘했던 산업사회 초기 대량생산 시대에는 유용했다. 그러나 환경이 급격하게 변한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다르다. 엄청난 양의 새로운 지식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리더 한 사람이 모든 지식과 경험을 완비하고 조직을 이끈다는 것은 마치 눈 가리고 미로를 찾겠다는 것과 같다. 이미 습득한 지식은 곧 쓰레기가 되므로 지식 자체의 가치보다 새로운 지식을 계속 받아드릴 수 있는 열린 문화와 학습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효율의 수직계급 사회가 아니라 소통의 수평사회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보스보다는 경청하고 학습하는 겸손한 리더가 요구된다. 겸손함이란 허리 굽혀 인사하고, 아첨으로 귀를 간질이는 부하가 아니라 자신을 끊임없이 긴장시켜 같이 커 나갈 수 있는 스파링 파트너 같은 상대와 같이 일하는 용기다. 그 안에서 상사에게 무조건 충성하는 부하의 과도한 인사는 독에 지나지 않는다. 수평사회에서도 충성할 수 있다. 단,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가치에 충성하는 것이다.

허리를 굽히는 대신 서로 눈을 마주치고,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하자. 상대가 진심으로 존경스러우면 고개를 끄떡여 동의를 표시하고, 너무 좋으면 안아주자. 반면 과거 이야기만 반복하는 꼰대 상사에게는 눈길도 주지 말고, 어긋난 행위를 하는 상사에게는 용감하게 대들자. ‘인사 안(安)하기’는 인사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인사를 편(安)하게 하자는 제언이다. 편한 인사가 이뤄져야 사회가 다양해지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또 받아들여진다. 청와대에서 편한 인사가 진즉 이뤄졌다면, 오늘의 괴이한 일들이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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