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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셔널리즘 종말을 고하다

프로페셔널리즘 종말을 고하다

인터넷이 배관공부터 대통령까지 모든 전문가를 우습게 보도록 만들어… 정보 민주화 혁명의 부작용인가
2016년 5월 세계 최초로 3D 프린터로 찍어 만든 사무실 건물이 두바이에서 등장했다.
지난 240년 동안 미국은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거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막연한 믿음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2016년 11월 선거에서 그 믿음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 그런 일을 가능케 한 것은 인터넷이었다.

유권자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준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 전부를 알 순 없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그의 지지자 전부는 대통령의 직무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도 않고 또 그런 무지를 약점이 아니라 특장점으로 자랑하는 남자도 얼마든지 백악관을 차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설령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더라도 인터넷이 그들에게 그렇게 믿도록 강요했다. 그 결과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어렵고 복잡하다고 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전문적 경험은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례 없는 일이다.

게다가 트럼프 당선인은 보수논객이자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주자였던 벤 카슨(65)을 차기 행정부의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에 내정했다. 카슨은 싱글맘 아래서 성장해 명문 예일대학을 졸업한 뒤 미시간 의대를 거쳐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최연소 소아신경과장이 된 입지전적 인물로 세계 최초로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 분리수술에 성공해 명성을 얻었다. 그런 그가 정계에 입문해 공화당에서 지금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명문대학에서 신경외과 전문의로 교육 받았다는 사실보다 아무 생각 없는 정치인으로 자신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트윗을 날린 적이 있다. ‘노아의 방주는 아마추어가 지었지만 타이태닉호를 만든 건 전문가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최초의 인류 타락에 대한 벌로 내려진 대홍수에서 신은 노아 일가를 구하기 위해 방주의 제작을 명했고 그에 따라 방주를 지은 그들은 살아 남았다는 구약성서의 대목을 가리킨 것이다. 배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마추어였던 노아가 지은 방주는 홍수에도 끄떡없었지만 전문가가 건조한 타이태닉호는 침몰했다는 뜻이리라. 이런 반(反)전문가 추세가 실제로 옳다면 정치인 누구라도 유튜브 동영상을 본 뒤 뇌수술을 집도할 수 있을 것이다.

저술가 찰스 P 피어스는 ‘바보 미국: 자유의 나라에서 어리석음이 미덕이 된 사연(Idiot America: How Stupidity Became a Virtue in the Land of the Free)’에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을 절대 믿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주류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반전문가 정서가 새로운 건 아니다. 1960년대 초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타터는 저서 ‘미국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의 견해는 허리케인이 오기 직전 빗방울이 몇 개 떨어진다고 우산을 써야할까 고민하는 식이다. . 그는 반전문가 정서가 폭풍우처럼 쏟아지리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왜 요즘 추세가 전문가를 배척하게 됐을까? 인터넷 탓이 크다. 무엇이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검색 엔진과 SNS, 건강 정보 제공 사이트와 온라인 여행 예약 서비스 같은 것 말이다. 인터넷에 온갖 의학 정보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것을 보라. IT 전문가의 말대로 인터넷은 정보의 민주화를 이뤘다. 기업과 정부, 전문가들이 권력을 갖고 유지하기 위해 전유물로 사용하던 정보가 인터넷에 의해 해방됐다. 따라서 여러 면에서 정보의 민주화는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누구나 가격 데이터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자동차 세일즈맨이 소비자에게 사기를 치기 어렵다. 건강과 의료에 관해서도 우리가 의사보다 더 똑똑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를 해방시키는 데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도 따른다. 과거 우리는 의사를 존경하고 그의 판단을 무조건 믿었다(물론 틀린 경우도 없진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몸이 좀 이상하다 싶으면 인터넷으로 자가 진단을 한 뒤에야 병원을 찾는다.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2%는 인터넷에서 건강 정보를 검색한다. 올해 초 구글은 전체 검색의 약 1%가 의학적 증상에 관한 것이라고 밝혔다. 건강 관련 웹사이트에 나와 있는 어떤 질병의 증상에 관해 읽고는 자신이 그 병에 걸린 게 아닌가 하고 병원을 찾는 환자도 부쩍 늘었다. 의사들은 그들을 ‘사이버콘드리악(cyberchondriacs)’이라고 부른다. 그처럼 누구나 인터넷으로 건강 정보를 찾아볼 수 있게 되면서 의사를 향한 존중심이 줄어들고 있다. 이제 우리가 힘들이지 않고 의학에 관해 더 많이 알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의사가 가진 지식이 그리 대단치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2%는 인터넷에서 건강 정보를 검색한다.
내 직업 분야에선 인터넷의 등장으로 블로그와 팟캐스트 등 대중에 도달할 수 있는 더 쉬운 길이 열렸다. 누구나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고 실제로 거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터넷은 저널리즘 직업의 가치를 깎아내렸다.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매스미디어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갤럽 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다른 직업도 거의 마찬가지다. 익스피디아(Expedia)나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 같은 웹사이트에서 온갖 여행 정보를 다 찾을 수 있다면 여행사에서 더 가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믿을 이유가 없다. 화장실 배관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수리하는지 세세히 보여주는 온라인 동영상을 찾을 수 있다면 배관공을 부를 필요가 없다. 과거에 출장비를 주고 사람을 불러서 하던 일을 자신이 직접 할 수 있게 해주는 무료 도구와 정보가 쌓여 있는 거대한 저장소가 웹이다. 그러니 비싼 전문가를 부르기 전에 다시 생각하는 게 정상이 아닐까?

이런 추세는 갈수록 심해진다. 인공지능(AI)은 웹 기반 도구를 더 ‘똑똑하게’ 만들어준다. 이제 곧 일반 정보만이 아니라 전문지식도 무료나 값싼 온라인 서비스에서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머지않아 일부 스타트업은 이혼하려는 사람들에게 AI 변호사를 구하라고 광고할 것이다. 이혼에 합의하는 데 ‘인간’ 변호사에게 비싼 수임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도록 말이다. 제작기술 기반의 공동체 활동인 ‘메이커 운동(The Maker movement)’은 발명과 생산을 민주화했다. 성서 창세기에서 방주를 지은 노아가 지금 살아 있다면 ‘메이커 페어’(메이커들의 축제)에 참가한 뒤 3D 프린터를 구입하고 인터넷에서 선박 제조법을 내려 받아 방주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일을 하는 방식도 전문가주의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우리는 인터넷이 주도하는 ‘긱 경제(gig economy)’로 진입하고 있다. 필요에 따라, 사정에 따라 다양한 일을 조금씩 하는 추세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하루 몇 시간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자신의 집을 임대해주고 직접 만든 도자기를 수공예품 전자상거래 웹사이트에서 판매해 생계를 꾸리는 식이다. 앞으로 살아 남기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많은 것에 관해 조금씩 알고 깊이 아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기업체에서 일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요즘 기업들은 ‘민첩 개발법(Agile development)’을 아주 좋아한다. 개발 대상 제품을 다수의 작은 기능으로 분할해 하나의 팀이 하나의 기능만을 하나의 반복 주기 안에 개발하고 이런 반복 주기를 계속하며 하나씩 기능을 추가 개발하는 방식이다. 그런 환경에서 깊은 지식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공룡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그보다는 소규모 공정에서 신속하게 사용될 수 있는 지식을 가져야 동료보다 빨리 승진할 수 있다. ‘패스트푸드 프로페셔널리즘’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대중문화도 아마추어리즘을 찬미해왔다. 전문가들이 벌 받는 것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1939년 나온 영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에선 뜻하지 않게 상원의원으로 지명된 시골뜨기가 부패한 정치세력과 싸워 이긴다(그 후속작으로 ‘트럼프씨 워싱턴에 가다’는 왜 할리우드가 만들지 않는가?). 요즘 AI 기반의 자율주행 트럭이 나오면 트럭 기사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럴 때 트럭 기사들은 당연히 동정을 받는다. 하지만 AI가 변호사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변호사가 아닌 사람들은 누구나 기뻐하며 춤춘다.

이 모든 사태가 어떻게 발전할까? 일부 기술 전문가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산업화 이전 시대처럼 자급자족의 생활방식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산업화가 이뤄지기 전에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집에서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가장 가까이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 해도 최소한 이틀은 말을 타고 달려야 했다. 그래서 집에서 직접 옷을 짓고 가구를 만들고 지출과 수입을 분석하고 괴저병에 걸린 발가락을 자기 손으로 잘라야 했다.

앞으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자급자족 사회는 전제가 산업화 이전 시대와 다르다. 앞으로 우리가 모든 일을 직접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럴 능력이 있고 또 전문가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를 이용해 자신의 몸을 스캔한 뒤 딱 들어맞는 옷을 손수 디자인하고 만들어 입을 것이다. 3D 프린터로 가구 부품을 찍어내 조립해 사용할 것이다. AI를 이용한 계정으로 수입과 지출을 관리할 것이다. 또 레이저가 장착된 로봇과 유명한 병원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괴사병에 걸린 발바락을 처리할 것이다.

어쩌면 그런 식이 더 나은 삶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점도 한번 생각해 보라. 랩가수 카니예 웨스트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웨스트는 2015 MTV 비디오 뮤직어워드 공연에서 2020년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 케빈 메이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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