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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낭만을 입는다

사막의 낭만을 입는다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카루소, 낙타 털 사용한 원단으로 단열 효과 뛰어난 정장 재킷과 니트웨어 선보여
100% 고비 골드 원사로 만든 카루소의 폴로 넥 스웨터와 ‘프린스 오브 웨일즈’ 바지(왼쪽), 100% 고비 골드 원단으로 제작한 토스카 재킷
사람들은 핵전쟁으로 지구종말이 와도 바퀴벌레는 살아남을 거라는 말을 종종한다. 그렇다면 혹시 쌍봉낙타도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북아시아 원산의 혹 두 개가 달린 이 낙타는 고비 사막에 서식하며 개체수가 약 140만 마리로 추정된다. 고비 사막은 시속 56㎞의 강풍이 불고 기온이 영상 50℃에서 영하 40℃를 오르내리는 지역이다. 기후가 너무도 혹독해 핵무기 공격이라도 받으면 오히려 환경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환경에서도 쌍봉낙타들이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단열 기능이 뛰어난 털 때문이다.

제1차와 2차 세계대전 사이에 영국에서는 듬성듬성한 낙타 털로 만든 폴로 코트가 크게 유행했다. 남성잡지 에스콰이어에 실린 영국 남성 패션의 역사에 따르면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어떤 코트도 이 코트의 인기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무심한 듯 걸쳐 입은 낙타 털 폴로 코트는 남성의 당당함을 더해줬다. 처음엔 폴로 선수들이 경기 도중 휴식 시간에 입는 옷으로 인식됐지만 일반 남성이 즐겨 입으면서 매력적인 남성 정장으로 자리 잡았다.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카루소의 CEO 움베르토 안젤리니(64)는 “남성들은 오랫동안 낙타 털에 매료돼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낙타 털로 만든 코트는 너무 무거워서 언젠가부터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코트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갖고 있으면 좋지만 잘 입지는 않는 아이템이라는 뜻이다.”하지만 안젤리니 CEO는 낙타 털에 낭만적인 요소가 있다고 확신했다. “양이나 염소는 낭만적으로 생각되지 않지만 낙타는 다르다. 낙타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마르코 폴로’ 그리고 모험과 이국적인 땅을 연상시킨다.” 경제학 교수 출신인 안젤리니 CEO는 또 낙타 털이 캐시미어보다 30% 더 저렴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문제는 낙타 털을 어떻게 21세기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하게 만드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젤리니 CEO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섬유 전문가 피에르 루이지(P.G.) 로로 피아나를 찾아갔다. 이탈리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명품 브랜드 로로 피아나는 P.G. 가문의 직조 공장에서 비롯됐다. 요즘도 이 회사는 혁신적인 고급 원단을 꾸준히 시장에 내놓는다. 섬유를 통해서 인생을 보는 P.G.의 천재성 덕분이다. 난 그가 낙타나 개 등 종류를 막론하고 어떤 동물을 볼 때 그 털로 어떤 옷감을 만들 수 있을까부터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00% 고비 골드 원단으로 제작한 카루소의 줄무늬 싱글 정장.
안젤리니 CEO는 처음 P.G.를 찾아갔던 때를 이렇게 돌이켰다. “P.G.는 수십 년 동안 최고급 낙타 털을 모아 왔지만 수요가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낙타 털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가벼운 정장용 원단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P.G.는 재미있는 생각이라면서 실험에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옷감이 ‘고비 골드’라는 원단이다. 낙타 털로 만든 원단의 특징이었던 투박한 털을 없앴다. 로로 피아나는 고비 골드로 두 종류의 정장용 원단을 개발했다. ‘프린스 오브 웨일즈’ 체크(윈저공이 웨일즈 왕자였을 당시 즐겨 입던 체크 무늬)와 초크 스트라이프(짙은 색 바탕에 그려진 흰색의 가는 줄무늬) 스타일에 적합한 소모사 원단이 그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낙타 털 55%에 슈퍼 170 울 플란넬 45%를 혼합한 단색 원단으로 정장 바지에 이상적인 옷감이다. 또 단열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섬유 사이에 공기 층을 끼워 넣은 ‘더블’ 카멜 원단은 외투용으로 적합하다. 이 원단 덕분에 오리지널 폴로 코트의 21세기 스타일과 전통 오버코트의 가벼운 버전을 만들 수 있게 됐다.
100% 고비 골드 원단으로 만든 카루소의 ‘프린스 오브 웨일즈’ 더블 정장과 타이.
이번 실험의 가장 큰 성과는 낙타 털을 이용한 여름용 원단의 개발이다. “낙타 털 섬유에 실크를 혼합하면 광택이 살아나고 린넨을 혼합하면 빳빳하면서도 주름이 잘 생기지 않는다”고 안젤리니 CEO는 말했다. 그는 또 낙타 털을 이용한 다양한 니트웨어도 내놓았다. 내년 겨울엔 낙타 털 벨벳도 선보일 계획이다.

낙타 털을 이용한 섬유의 다양성은 그 길이에서 나온다. “낙타 털은 캐시미어처럼 가느다랗게 분리할 수 있으며 길이가 최대 12.5㎝(캐시미어는 최대 4~5㎝)에 이른다”고 안젤리니 CEO는 말했다. “섬유가 길수록 더 많이 꼬을 수 있어 탄력이 좋고 주름이 잘 생기지 않는 옷감을 만들 수 있다. 또 고비 사막에 사는 낙타에서 나온 털이라 열이나 냉기를 차단하는 단열 효과가 좋다.” 고비 골드는 거의 기적적인 성능을 지녔다. 하지만 핵 공격으로 그 성능을 검증받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 니컬러스 포크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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