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왜 그들은 목숨을 던졌을까
[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왜 그들은 목숨을 던졌을까
이타심은 본능이거나 의지의 문제 … ‘이기적 이타주의 시대’ 도래하기를 늦은 밤 고속도로. 19세 젊은 여성이 어둠이 내린 도로 위를 운전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개 한 마리가 차 앞으로 뛰어 들었다. 그녀는 급히 핸들을 돌렸지만 개를 치고 말았고, 그 충격으로 차는 그대로 몇 바퀴를 회전했다.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역방향으로 멈춰 선 차는 시동마저 꺼졌다. 그녀는 이제 꼼짝없이 죽는구나 생각했다. 그때 건너편에서 운전 중이던 한 남자가 급히 차를 세우고 고속도로 네 개 차선을 가로질러 그녀에게 달려왔다. 필요한 응급조치를 하고 그녀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 다음에 그는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표표히 자리를 떴다. 정신이 반쯤 나간 그녀는 미처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날 밤 자신을 구하고 홀연히 사라진 남자의 모습은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생면부지인 자신을 구해 준 남자의 심리가 못내 궁금했고, 결국 그것을 규명하는 인생을 살게 됐다. 미국 조지타운대의 신경과학과 교수 아비게일 마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의 연구 주제는 어떤 대가도 없이, 때로는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남을 돕는 행동, 즉 이타심(altruism)의 근원에 대한 탐구다. 인간은 본래 선(善)할까, 악(惡)할까. 질문은 단순한데, 대답은 분분하다. 선악에 대한 판단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약간 쉬운 문제로 빗겨나 보자. 인간은 본래 이기(利己)적일까, 이타(利他)적일까. 이건 쉽다. 단언컨대 이기적이다. 필자도 그렇고, 독자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이기적인 사람도 가끔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건 대개 후일의 더 큰 이득을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고 하겠다. 철학이나 경제학, 경영학, 심리학 등 사람을 다루는 모든 학문에서도 인간의 이기심을 기본 전제로 한다. 그럼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남을 돕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마쉬 교수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답을 찾았다. 첫째는 뇌 구조의 차이, 둘째는 심리적인 차이다. 이타심과는 영 거리가 먼 집단으로 사이코패스를 들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선천적으로 발달장애가 있어 차갑고 냉정하며, 종종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 이들은 타인의 감정, 특히 타인의 얼굴에 나타나는 고통의 표정을 인지하는데 장애가 있어 연민이나 동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가히 이기주의의 정수라 할 만하다. 뇌에서 두려움이나 고통과 관련된 자극을 처리하는 부분이 편도체다. 대뇌 변연계에 존재하는 아몬드 모양의 뇌 부위를 말하는데, 사이코패스의 편도체는 일반인보다 20% 가량 작고 그 반응성도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반면 이타주의자들은 정 반대다. 장기 기증자들의 뇌를 MRI로 측정해 보면, 이들의 편도체는 일반인들보다 8% 정도 더 크고 반응 정도도 훨씬 활발하다. 한마디로 이타주의자들은 원래 그렇게 이타적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편도체가 작더라도 상심할 필요는 없다. 마음먹기에 따라 후천적으로 이타주의를 셀프 연마할 수 있다. 마쉬 교수가 장기기증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고, 남들보다 더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이타적인 행동을 별로 특별하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그들은 동정의 대상을 친구나 가족을 넘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확장한다. 마쉬 교수는 이런 놀라운 탈(脫)자기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인격이 성숙하면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라고 말한다.
실제 현대 사회는 과거에 비해 더 이타적으로 발전해 왔다. 역사를 놓고 볼 때 전 세계적으로 동물 학대나 아동 학대, 가정 폭력 또는 사형 같은 각종 잔인함과 폭력이 감소한 것이 사실이다. 요즘은 흔히 있는 혈액이나 골수 기증은 백 년 전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행동이 아닌가. 이미 우리 주변에는 작은 봉사에서부터 자선, 기부, 장기 기증까지 여러 형태의 이타적 행위들이 미덕으로 자리를 잡았다. 편도체의 크기야 어쩌지 못한다 해도 교육이나 여론, 사회 분위기에 따라 보통 사람들도 얼마든지 이타심을 키우고, 그 범위를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양면적이다. 이기심 못지 않게 이타적 본성도 함께 지니고 있다. 문제는 배합 비율이다. 예수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위급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돕는 일이 곧 사랑의 실천이라고 역설했다. 공자는 군자가 행하는 최상의 인(仁)은 자기 생명을 희생해 남의 목숨을 구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고 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 더 이상 은밀한 다짐이 아니라 당당한 주장이 되어가는 지금, 성인들의 가르침이 자꾸 멀게만 느껴진다. 얼마 전 일부 국회의원들은 일명 ‘선한 사마리아인법’을 발의하기까지 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하자는 내용이다. 취지야 물론 좋지만, 과연 법이 어디까지 도덕의 영역에 들어와야 하는지 뒷맛이 영 씁쓸하다. 벌금만 내면 양심의 가책까지 씻어주는 역효과가 나지는 않을지, 쓸데없는 걱정도 미리 해 보게 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우리 주변에, 특히 평범한 이웃들 속에 여전히 이타심의 불꽃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일본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 씨, 세월호 참사 당일 학생들을 끝까지 대피시키고 유명을 달리한 승무원 박지영 씨, 의정부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밧줄 하나로 시민 10명을 구한 이승선 씨(그는 대기업이 지원한 상금 1000만 원을 소방서에 기부하기까지 했다), 출근길 교통사고 피해자를 구조하다가 신호를 위반한 트럭에 치여 목숨을 잃은 정연승 상사, 원룸 건물 화재 현장에서 입주민들을 대피시키다 질식해 숨진 안치범 씨. 이들 의인(義人)들의 용기와 희생이 때론 질책이 되고, 때론 위안이 되어 우리 사회에 온기를 유지해 준다.
‘21세기 르네상스 맨’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는 실업이나 빈부격차 같은 문제들은 인간의 단기적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앞으로 정보화 사회가 성숙하면 세상은 이타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이기적 이타주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일갈한다. 혼자서만 행복한 것은 오래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행복하려면 다른 사람도 행복해야 한다는 논리다. 아탈리의 전망이 노쇠한 석학의 체념 섞인 위로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를 더 이타적으로 인도하는 마법의 주문이 되었으면 한다.
인간은 손이 두 개다. 이기주의가 경제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한’ 손(invisible ‘one’ hand)이라면, 보이지 않는 ‘다른’ 손(invisible ‘the other’ hand)은 이타주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두 손의 협주 속에서 세상은 물질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더 살만한 곳이 된다. 그게 진보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 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세월이 흘렀지만 그날 밤 자신을 구하고 홀연히 사라진 남자의 모습은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생면부지인 자신을 구해 준 남자의 심리가 못내 궁금했고, 결국 그것을 규명하는 인생을 살게 됐다. 미국 조지타운대의 신경과학과 교수 아비게일 마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의 연구 주제는 어떤 대가도 없이, 때로는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남을 돕는 행동, 즉 이타심(altruism)의 근원에 대한 탐구다.
이타심의 근원을 찾아서
마쉬 교수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답을 찾았다. 첫째는 뇌 구조의 차이, 둘째는 심리적인 차이다. 이타심과는 영 거리가 먼 집단으로 사이코패스를 들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선천적으로 발달장애가 있어 차갑고 냉정하며, 종종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 이들은 타인의 감정, 특히 타인의 얼굴에 나타나는 고통의 표정을 인지하는데 장애가 있어 연민이나 동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가히 이기주의의 정수라 할 만하다. 뇌에서 두려움이나 고통과 관련된 자극을 처리하는 부분이 편도체다. 대뇌 변연계에 존재하는 아몬드 모양의 뇌 부위를 말하는데, 사이코패스의 편도체는 일반인보다 20% 가량 작고 그 반응성도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반면 이타주의자들은 정 반대다. 장기 기증자들의 뇌를 MRI로 측정해 보면, 이들의 편도체는 일반인들보다 8% 정도 더 크고 반응 정도도 훨씬 활발하다. 한마디로 이타주의자들은 원래 그렇게 이타적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편도체가 작더라도 상심할 필요는 없다. 마음먹기에 따라 후천적으로 이타주의를 셀프 연마할 수 있다. 마쉬 교수가 장기기증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고, 남들보다 더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이타적인 행동을 별로 특별하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그들은 동정의 대상을 친구나 가족을 넘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확장한다. 마쉬 교수는 이런 놀라운 탈(脫)자기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인격이 성숙하면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라고 말한다.
실제 현대 사회는 과거에 비해 더 이타적으로 발전해 왔다. 역사를 놓고 볼 때 전 세계적으로 동물 학대나 아동 학대, 가정 폭력 또는 사형 같은 각종 잔인함과 폭력이 감소한 것이 사실이다. 요즘은 흔히 있는 혈액이나 골수 기증은 백 년 전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행동이 아닌가. 이미 우리 주변에는 작은 봉사에서부터 자선, 기부, 장기 기증까지 여러 형태의 이타적 행위들이 미덕으로 자리를 잡았다. 편도체의 크기야 어쩌지 못한다 해도 교육이나 여론, 사회 분위기에 따라 보통 사람들도 얼마든지 이타심을 키우고, 그 범위를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기적인 손과 이타적인 손의 협주
그래도 희망은 있다. 우리 주변에, 특히 평범한 이웃들 속에 여전히 이타심의 불꽃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일본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 씨, 세월호 참사 당일 학생들을 끝까지 대피시키고 유명을 달리한 승무원 박지영 씨, 의정부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밧줄 하나로 시민 10명을 구한 이승선 씨(그는 대기업이 지원한 상금 1000만 원을 소방서에 기부하기까지 했다), 출근길 교통사고 피해자를 구조하다가 신호를 위반한 트럭에 치여 목숨을 잃은 정연승 상사, 원룸 건물 화재 현장에서 입주민들을 대피시키다 질식해 숨진 안치범 씨. 이들 의인(義人)들의 용기와 희생이 때론 질책이 되고, 때론 위안이 되어 우리 사회에 온기를 유지해 준다.
‘21세기 르네상스 맨’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는 실업이나 빈부격차 같은 문제들은 인간의 단기적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앞으로 정보화 사회가 성숙하면 세상은 이타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이기적 이타주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일갈한다. 혼자서만 행복한 것은 오래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행복하려면 다른 사람도 행복해야 한다는 논리다. 아탈리의 전망이 노쇠한 석학의 체념 섞인 위로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를 더 이타적으로 인도하는 마법의 주문이 되었으면 한다.
인간은 손이 두 개다. 이기주의가 경제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한’ 손(invisible ‘one’ hand)이라면, 보이지 않는 ‘다른’ 손(invisible ‘the other’ hand)은 이타주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두 손의 협주 속에서 세상은 물질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더 살만한 곳이 된다. 그게 진보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 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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