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보다 로봇·AI가 무서운 이유] 미국에 공장 유치해도 일자리 크게 늘지 않아
[트럼프보다 로봇·AI가 무서운 이유] 미국에 공장 유치해도 일자리 크게 늘지 않아
인공지능과 로봇자동화가 인간 노동력 급속 대체... 값싼 노동력 제공 국가는 직격탄 맞아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방위적인 글로벌 기업 압박은 표면상으로는 이미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작은 글로벌 자동차 업계였다. 포드·GM·피아트크라이슬러 등 미국계 자동차 업체들은 멕시코 공장 신·증설 계획을 포기하고 대신 미국에 공장을 짓거나 증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포드는 미시간공장에 7억 달러를 투자해 새 픽업트럭과 SUV를 생산하기로 했다. GM은 1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1000개의 일자리를 유지·창출하기로 했다. 피아트크라이슬러(FCA)는 미시간·오하이오 공장 현대화에 1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기업이 아닌 외국계 글로벌 자동차 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독일 다임러는 앨라배마공장에 13억 달러를 추가 투자해 SUV 생산을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2019년까지 7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재확인했다. 이는 원래 2015년부터 해오던 것이다. 트럼프가 압박을 가하자 부랴부랴 투자 계획을 급조해 발표하는 것은 물론 기존 계획을 재탕하기도 했다. 급한 모습이 읽힌다. 일본의 도요타는 미국에 앞으로 5년간 1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의 현대·기아차도 앞으로 5년간 미국에서 친환경·자율주행차 개발 등에 31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자동차 외의 업종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에어컨 생산업체인 캐리어는 가장 먼저 트럼프에 백기 투항했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도 미국 내 매장 59곳을 신설하고 전자상거래 서비스 부문에도 인력을 추가 고용해 모두 1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애플도 애리조나주에 서버 장비 생산 승인을 요청했다.
외국계 글로벌기업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도 트럼프의 요구에 호응해 생산설비 설치를 발표하거나 검토에 들어갔다.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트럼프를 만나 무려 100만 명 고용 창출을 약속해 트럼프를 흐뭇하게 했다. 손정의가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는 미국에 500억 달러를 투자해 일자리 5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독일 바이엘도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연구개발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세계적인 브랜드 40여 개를 보유한 프랑스 명품그룹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최고경영자(CEO)도 트럼프를 만나 미국 내 생산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앞으로 미국산 뤼이뷔통 가방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트럼프는 이런 결정이 줄이어 나오자 “대박(big stuff)”이라며 이를 자신의 치적으로 돌렸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고상한 말 대신 “미국산을 쓰고, 미국인을 고용하라”고 강조했던 그는 멕시코 등 미국 국경 밖에서 제조해서 들여오는 상품에 최대 35%의 국경세를 물리겠다는 엄포로 글로벌 기업의 ‘비경제적인’ 결정을 이끌어내고 있다. 전통적인 정치와 경제의 분리 원칙이 사라지고 정치가 경제에 명령하는 형국이 트럼프시대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윤 추구와 투자자인 주주에 대한 봉사를 생명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원칙이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압박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트럼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집요한 인물이다. 한번 물면 놓치지 않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거침없이 목표를 행해 돌진하는 저돌적인 인물이다. 부동산 업자 시절부터 “이기기 위해서는 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에서 거의 모든 일을 거침없이 한다”고 공언해 왔다. 정치를 하고 대통령이 되면서 그의 이런 성격은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고개를 숙이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애초에 남이 반대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접을 인물이었으면 정치 아웃사이더 출신으로 백악관에 입성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 유세 과정과 당선인 시절은 물론 취임식에서도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했던 그는 자신이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운 일자리 확충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원칙이나 국제통상 규범 따위는 깡그리 무시할 수 있다. 그의 말을 무시한 기업들은 실제로 무지막지한 국경세를 맞을 수도 있다. 세금과 통상 문제를 결정하는 미국 의회도 상하원 모두가 트럼프가 소속한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취임 초기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이 40%대라는 역대 최하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사실 미국 유권자의 40%는 철옹성처럼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지지층을 무시하고 트럼프가 쉽게 포기하거나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40%의 지지층을 무시하고 비슷한 숫자의 필사적인 반대파를 위해 마음을 바꿀 정치 지도자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들은 일단 트럼프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측이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의 의사 결정까지도 바꿀 정도로 거침없는 트럼프의 압박이 과연 미국에 원하는 만큼의 일자리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제조업이 경제를 떠받치던 과거 산업화 시대라면 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4차 산업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하는 시대다. 인공지능(AI)·로봇·3D프린팅·자율주행차·사물인터넷 등 쏟아지는 첨단기술은 갈수록 심도를 더하고 있다. 빅데이터가 AI를 기반으로 정보기술(IT)·바이오기술(BT)·나노기술(NT)의 경계를 허물고 결합하면서 산업 자체가 바뀌어 나갈 전망이다. 자본과 단순인력의 대량투입이 아닌 고도 기술이 경제 부문의 거의 모든 기존 원칙을 바꾸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력도 두뇌에 해당하는 고도로 숙련된 과학기술자나 관리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수요가 감소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오스본(Osborne) 등이 개발한 ‘기술의 고용 대체 확률 분석’을 적용하면 로봇과 AI 등 신기술의 도입으로 현재 존재하는 일자리 가운데 약 47%는 조만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은 AI의 확산만으로도 미국 식료품 매장 계산원 86만여 명이 실직하고, 관련 종사자 약 350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실제로 온라인 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노 라인, 노 체크아웃(No Lines, No Checkout : 줄을 설 필요도, 계산할 일도 없습니다)’를 모토로 최근 무인 식료품 매장인 ‘아마존 고’를 개장했다. 매장에서 물건을 들고 나오면 스마트폰 앱이 자동 인식해 계산까지 완료하는 시스템이다. 불과 몇 명의 인력만 있으면 거대한 매장이 운영될 수 있다. 이런 매장은 아무리 많이 설치해도 유통업체의 매출이 느는 만큼 일자리는 증가하지 않는다. 일자리 절벽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트럼프가 그렇게 집착하는 공장은 1차 산업혁명 시대의 상징일 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인 지금은 공장을 세운다고 일자리가 따라서 늘기는 쉽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의 글로벌 스포츠웨어 전문업체 아디다스다. 아디다스는 1993년 이후 값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베트남 등으로 공장을 옮겼다. 이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글로벌 기업으로 입지를 다졌다. 오프쇼어링(싼 임금을 따라 본국이나 제1세계를 떠난 기업) 글로벌 기업의 선주주자다. 그런 아디다스가 24년 만인 올해 다시 독일과 미국에서 운동화 생산을 재개한다. 아디다스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안스바흐와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공장을 건설해 올해부터 ‘독일산’과 ‘미국산’ 운동화를 전 세계에 공급한다.
로봇과 AI 도입으로 인건비를 확 줄이고 고도의 경영관리 시스템을 추구하는 기업은 아디다스뿐이 아니다. 독일의 지멘스도 합류했다. 지멘스는 독일 남부 암베르크에 ‘스마트 팩토리’를 신설했는데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전체 공정의 75%를 로봇이 자율 가동하는 스마트공장이다. 불량률이 0.001%에 불과해 정밀도에서 인간에 뒤지지 않는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한 기계와 센서에서 확보한 5000만 개 이상의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다. 트럼프가 외치는 리쇼어링정책은 그의 강요가 아니라 기술혁신을 통해 더욱 촉진될 전망이다.
하지만 여기서 얻는 일자리는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3D 프린팅과 로봇을 활용한 ‘스피드 팩토리’를 건설해 그곳에서 로봇이 신발을 제조하기 때문이다. 독일 안스바흐 공장의 경우 불과 160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사실상 자율 가동하는 로봇들은 2개의 라인에서 신발 윗부분과 아랫부분으로 나눠 제조를 분업하며 최종적으로 이를 결합해 완제품을 내놓게 된다. 아디다스는 이러한 로봇 공장에서 매년 50만 켤레의 신발을 제조하게 되며 앞으로 3~4년 안에 로봇 공장에서 연 100만 켤레 이상의 신발을 만들 예정이다. 값싼 인건비를 찾아 해외로 나갔던 글로벌 기업들이 로봇화·자동화·인공지능화 때문에 더 이상 그런 곳에서 생산기지를 유지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소비지와 가장 가까운 곳이 더 유리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현지생산화’ 또는 ‘소비지의 생산기지화’가 도도한 경향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배송과 보관 등 물류에 들어가는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저임금 국가에 공장을 둘 이유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술 발달과 4차 산업혁명이 예기치 않았던 리쇼어링(저임금 등을 위해 본국을 떠났던 기업이 다시 돌아오는 회귀 현상)을 촉진하는 셈이다. 아디다스의 경쟁사인 나이키도 이러한 스마트 공장을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공장을 운영하지 않으면 앞으로 경쟁력이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고도의 기술력을 집약해 첨단 공장을 짓거나 가동할 수 있는 과학기술 지식산업 중심지가 공장 입지로 각광받을 가능성도 커진다. 공장 신설을 물론 유지·보수, 소프트웨어나 시스템 업그레이드 등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이런 첨단기술 집약 지역이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AI를 비롯한 첨단기술이 글로벌 산업지도까지 바꾸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로봇 공장이 단순한 무인 생산기지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로봇으로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제품이 바뀌어도 라인을 바꿀 필요가 없다. 간단하게 로봇에 대한 명령어나 소프트웨어만 바꾸면 된다. 지금까지 아디다스는 기획에서 제품 공급까지 18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로봇 공장 시스템 아래에서 이 기간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생산라인 교체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도 절감된다. 모바일을 통한 신속한 정보 유통으로 소비자들의 제품 유행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시스템은 경쟁력 강화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게다가 공장이 본사와 인터넷으로 연결돼 하나의 거대한 AI처럼 작동하기 때문에 마케팅을 비롯한 기업 활동의 성격도 바뀔 수밖에 없다. 시간관리, 노동자 훈련, 분업, 전문화를 바탕으로 노동의 효율성을 추구했던 테일러주의 경영학도 노동자가 기계로 대체되면서 서서히 퇴장할 가능성이 크다. 로봇과 AI의 창조와 관리가 노동관리와 일반 경영을 대신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이 주는 일거리로 고용을 유지했던 제3세계의 경제도 위협받을 수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을 생산기지로 운영하며 경쟁력을 유지해왔던 한국 등의 기업에도 영향력을 줄 수 있다. 이제 로봇과 AI를 응용한 스마트 공장을 따라잡지 못하면 먹히는 상황이 글로벌 경제계에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런 상황은 가시화하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 제조사로 유명한 대만계 폭스콘은 중국 장수성 쿤산에 있는 공장에 로봇을 투입해 근로자 11만 명을 5만 명으로 대체했다. 로봇 엔지니어링이 인간의 단순업무를 대체하면서 무려 6만 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특히 첨단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에 열중하고 있는 중국은 몰라도 낮은 인건비를 활용해 경제활성화를 노리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은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농업부문에서도 이런 현상을 곧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영국기업 CHN인더스트리얼은 인간이 조종하는 대신 컴퓨터 프로그램이 알아서 농사를 짓는 자율주행 트랙터를 내놨다. 공장처럼 여러 층으로 이뤄진 온실에서 재배를 자동으로 관리하는 AI 농장도 이젠 가시화하고 있다. 심지어 서비스업도 예외가 아니다. 공유 서비스업체 우버는 자율주행차의 도로 주행을 합법화한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자율주행차를 이용한 무인택시 서비스에 들어갔다. 로봇이 만든 신발을 신고 걷다가 자동 로봇이 제조한 휴대전화로 택시를 불렀더니 AI로 운영되는 무인주행차가 등장하는 날이 현실화한 것이다.
이 모든 혁신의 과정에서 인간의 노동력이 참여할 부분은 갈수록 줄고 있다. 트럼프가 권력을 앞세운 강압적인 방식으로 미국에 공장을 유치해도 그것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늘릴 가능성이 갈수록 희박해지는 이유다. 4차 산업혁명의 전개에 따라 정치 지도자도 사고와 행동을 전환해야 한다. 트럼프의 강압적인 행동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의미 없는 짝사랑일 뿐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 기업이 아닌 외국계 글로벌 자동차 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독일 다임러는 앨라배마공장에 13억 달러를 추가 투자해 SUV 생산을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2019년까지 7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재확인했다. 이는 원래 2015년부터 해오던 것이다. 트럼프가 압박을 가하자 부랴부랴 투자 계획을 급조해 발표하는 것은 물론 기존 계획을 재탕하기도 했다. 급한 모습이 읽힌다. 일본의 도요타는 미국에 앞으로 5년간 1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의 현대·기아차도 앞으로 5년간 미국에서 친환경·자율주행차 개발 등에 31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자동차 외의 업종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에어컨 생산업체인 캐리어는 가장 먼저 트럼프에 백기 투항했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도 미국 내 매장 59곳을 신설하고 전자상거래 서비스 부문에도 인력을 추가 고용해 모두 1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애플도 애리조나주에 서버 장비 생산 승인을 요청했다.
외국계 글로벌기업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도 트럼프의 요구에 호응해 생산설비 설치를 발표하거나 검토에 들어갔다.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트럼프를 만나 무려 100만 명 고용 창출을 약속해 트럼프를 흐뭇하게 했다. 손정의가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는 미국에 500억 달러를 투자해 일자리 5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독일 바이엘도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연구개발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세계적인 브랜드 40여 개를 보유한 프랑스 명품그룹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최고경영자(CEO)도 트럼프를 만나 미국 내 생산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앞으로 미국산 뤼이뷔통 가방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트럼프에 굴복하는 글로벌 기업, 그러나
글로벌 기업들은 트럼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집요한 인물이다. 한번 물면 놓치지 않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거침없이 목표를 행해 돌진하는 저돌적인 인물이다. 부동산 업자 시절부터 “이기기 위해서는 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에서 거의 모든 일을 거침없이 한다”고 공언해 왔다. 정치를 하고 대통령이 되면서 그의 이런 성격은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고개를 숙이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애초에 남이 반대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접을 인물이었으면 정치 아웃사이더 출신으로 백악관에 입성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 유세 과정과 당선인 시절은 물론 취임식에서도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했던 그는 자신이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운 일자리 확충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원칙이나 국제통상 규범 따위는 깡그리 무시할 수 있다. 그의 말을 무시한 기업들은 실제로 무지막지한 국경세를 맞을 수도 있다. 세금과 통상 문제를 결정하는 미국 의회도 상하원 모두가 트럼프가 소속한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취임 초기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이 40%대라는 역대 최하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사실 미국 유권자의 40%는 철옹성처럼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지지층을 무시하고 트럼프가 쉽게 포기하거나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40%의 지지층을 무시하고 비슷한 숫자의 필사적인 반대파를 위해 마음을 바꿀 정치 지도자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들은 일단 트럼프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측이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의 의사 결정까지도 바꿀 정도로 거침없는 트럼프의 압박이 과연 미국에 원하는 만큼의 일자리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제조업이 경제를 떠받치던 과거 산업화 시대라면 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4차 산업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하는 시대다. 인공지능(AI)·로봇·3D프린팅·자율주행차·사물인터넷 등 쏟아지는 첨단기술은 갈수록 심도를 더하고 있다. 빅데이터가 AI를 기반으로 정보기술(IT)·바이오기술(BT)·나노기술(NT)의 경계를 허물고 결합하면서 산업 자체가 바뀌어 나갈 전망이다. 자본과 단순인력의 대량투입이 아닌 고도 기술이 경제 부문의 거의 모든 기존 원칙을 바꾸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하고 있다.
기술혁신이 리쇼어링 촉진
트럼프가 그렇게 집착하는 공장은 1차 산업혁명 시대의 상징일 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인 지금은 공장을 세운다고 일자리가 따라서 늘기는 쉽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의 글로벌 스포츠웨어 전문업체 아디다스다. 아디다스는 1993년 이후 값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베트남 등으로 공장을 옮겼다. 이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글로벌 기업으로 입지를 다졌다. 오프쇼어링(싼 임금을 따라 본국이나 제1세계를 떠난 기업) 글로벌 기업의 선주주자다. 그런 아디다스가 24년 만인 올해 다시 독일과 미국에서 운동화 생산을 재개한다. 아디다스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안스바흐와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공장을 건설해 올해부터 ‘독일산’과 ‘미국산’ 운동화를 전 세계에 공급한다.
로봇과 AI 도입으로 인건비를 확 줄이고 고도의 경영관리 시스템을 추구하는 기업은 아디다스뿐이 아니다. 독일의 지멘스도 합류했다. 지멘스는 독일 남부 암베르크에 ‘스마트 팩토리’를 신설했는데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전체 공정의 75%를 로봇이 자율 가동하는 스마트공장이다. 불량률이 0.001%에 불과해 정밀도에서 인간에 뒤지지 않는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한 기계와 센서에서 확보한 5000만 개 이상의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다. 트럼프가 외치는 리쇼어링정책은 그의 강요가 아니라 기술혁신을 통해 더욱 촉진될 전망이다.
하지만 여기서 얻는 일자리는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3D 프린팅과 로봇을 활용한 ‘스피드 팩토리’를 건설해 그곳에서 로봇이 신발을 제조하기 때문이다. 독일 안스바흐 공장의 경우 불과 160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사실상 자율 가동하는 로봇들은 2개의 라인에서 신발 윗부분과 아랫부분으로 나눠 제조를 분업하며 최종적으로 이를 결합해 완제품을 내놓게 된다. 아디다스는 이러한 로봇 공장에서 매년 50만 켤레의 신발을 제조하게 되며 앞으로 3~4년 안에 로봇 공장에서 연 100만 켤레 이상의 신발을 만들 예정이다. 값싼 인건비를 찾아 해외로 나갔던 글로벌 기업들이 로봇화·자동화·인공지능화 때문에 더 이상 그런 곳에서 생산기지를 유지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소비지와 가장 가까운 곳이 더 유리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현지생산화’ 또는 ‘소비지의 생산기지화’가 도도한 경향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배송과 보관 등 물류에 들어가는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저임금 국가에 공장을 둘 이유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술 발달과 4차 산업혁명이 예기치 않았던 리쇼어링(저임금 등을 위해 본국을 떠났던 기업이 다시 돌아오는 회귀 현상)을 촉진하는 셈이다. 아디다스의 경쟁사인 나이키도 이러한 스마트 공장을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공장을 운영하지 않으면 앞으로 경쟁력이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고도의 기술력을 집약해 첨단 공장을 짓거나 가동할 수 있는 과학기술 지식산업 중심지가 공장 입지로 각광받을 가능성도 커진다. 공장 신설을 물론 유지·보수, 소프트웨어나 시스템 업그레이드 등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이런 첨단기술 집약 지역이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AI를 비롯한 첨단기술이 글로벌 산업지도까지 바꾸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로봇 공장이 단순한 무인 생산기지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로봇으로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제품이 바뀌어도 라인을 바꿀 필요가 없다. 간단하게 로봇에 대한 명령어나 소프트웨어만 바꾸면 된다. 지금까지 아디다스는 기획에서 제품 공급까지 18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로봇 공장 시스템 아래에서 이 기간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생산라인 교체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도 절감된다. 모바일을 통한 신속한 정보 유통으로 소비자들의 제품 유행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시스템은 경쟁력 강화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게다가 공장이 본사와 인터넷으로 연결돼 하나의 거대한 AI처럼 작동하기 때문에 마케팅을 비롯한 기업 활동의 성격도 바뀔 수밖에 없다. 시간관리, 노동자 훈련, 분업, 전문화를 바탕으로 노동의 효율성을 추구했던 테일러주의 경영학도 노동자가 기계로 대체되면서 서서히 퇴장할 가능성이 크다. 로봇과 AI의 창조와 관리가 노동관리와 일반 경영을 대신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트럼프의 의미 없는 짝사랑
이미 이런 상황은 가시화하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 제조사로 유명한 대만계 폭스콘은 중국 장수성 쿤산에 있는 공장에 로봇을 투입해 근로자 11만 명을 5만 명으로 대체했다. 로봇 엔지니어링이 인간의 단순업무를 대체하면서 무려 6만 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특히 첨단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에 열중하고 있는 중국은 몰라도 낮은 인건비를 활용해 경제활성화를 노리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은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농업부문에서도 이런 현상을 곧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영국기업 CHN인더스트리얼은 인간이 조종하는 대신 컴퓨터 프로그램이 알아서 농사를 짓는 자율주행 트랙터를 내놨다. 공장처럼 여러 층으로 이뤄진 온실에서 재배를 자동으로 관리하는 AI 농장도 이젠 가시화하고 있다. 심지어 서비스업도 예외가 아니다. 공유 서비스업체 우버는 자율주행차의 도로 주행을 합법화한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자율주행차를 이용한 무인택시 서비스에 들어갔다. 로봇이 만든 신발을 신고 걷다가 자동 로봇이 제조한 휴대전화로 택시를 불렀더니 AI로 운영되는 무인주행차가 등장하는 날이 현실화한 것이다.
이 모든 혁신의 과정에서 인간의 노동력이 참여할 부분은 갈수록 줄고 있다. 트럼프가 권력을 앞세운 강압적인 방식으로 미국에 공장을 유치해도 그것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늘릴 가능성이 갈수록 희박해지는 이유다. 4차 산업혁명의 전개에 따라 정치 지도자도 사고와 행동을 전환해야 한다. 트럼프의 강압적인 행동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의미 없는 짝사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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