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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포퓰리즘 돌풍, 네덜란드에서 ‘주춤’

유럽의 포퓰리즘 돌풍, 네덜란드에서 ‘주춤’

지난 3월 16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의사당 앞에서 시위자가 총선에서 패한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PVV) 대표를 조롱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네덜란드는 지난 3월 15일 총선을 치렀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서 프랑스와 독일의 주요 선거에 앞서 치러진 이번 네덜란드 총선은 서방에서 포퓰리즘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이어질지 판가름할 수 있는 계기였다.

드디어 네덜란드 유권자들이 투표를 끝내고 개표 결과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자 마르크 뤼테 총리는 활짝 웃었다. 뤼테 총리는 극우 반(反)이슬람 포퓰리스트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PVV) 대표와 그가 옹호하는 ‘증오의 정치’를 네덜란드 유권자가 단호하게 심판했다며 기뻐했다.

PVV는 전체 의석 150석 중 20석을 얻어 제2당에 머물렀다. 뤼테 총리의 중도보수 정당 자유민주당(VVD)은 33석을 얻어 제1당 사수에 성공했다. 뤼테 총리는 지지자들에게 “네덜란드는 잘못된 포퓰리즘에 제동을 걸었다”고 말했다. 언론은 지난해 반이민주의 정서가 고조되면서 극우 세력의 ‘반란’이 있었지만 네덜란드 유권자는 결국 진보적 중도파를 지지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PVV가 권력을 잡지 못했지만 그의 영향력은 도처에서 피부로 느껴진다. 그는 포퓰리스트가 선거에서 져도 정치 규범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물론 빌더르스 대표는 패배했지만 그의 PVV는 제2당이 됐고 의석수도 5석(15석에서 20석으로 확대)이나 늘렸다.

모든 모스크를 폐쇄하고, 코란을 금지시키겠다고 약속했던 빌더르스 대표는 여전히 다음 선거에서는 원내 1당으로 올라서겠다고 자신한다. 또 뤼테 총리가 승리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빌더르스 대표가 내세운 모든 것에 대한 확실하고 완벽한 거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그의 반이민 담론은 주류 정치권으로 편입됐다.

네덜란드에서 포퓰리즘이 고조되자 이를 의식해 뤼테 총리의 VVD도 이민 문제에서 더욱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대표적인 사례로 총선을 몇 주 앞두고 뤼테 총리는 몇몇 현지 신문 한 면을 통째로 빌려 네덜란드 사회에 잘 통합되지 않는 이민자들에 대한 우려를 담은 편지 형식의 광고를 실었다.

‘적응을 원하지 않고, 우리가 사는 방식을 공격하고, 우리의 가치를 거부하는 사람들, 성소수자를 공격하고,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에게 소리를 지르고, 평범한 네덜란드인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나 역시 같은 기분을 느낀다. 평범하게 행동하거나 아니면 이 나라를 떠나라.’ 난민 문제가 첨예한 이슈로 떠오르며 반이슬람, 반이민, 반EU의 기치를 앞세운 PVV가 네덜란드에서 날로 세력을 키우는 데 대한 견제였다.
자유민주당(VVD)을 이끄는 마르크 뤼테 총리는 지난 3월 15일 밤 총선 직후 출구조사 결과에 따라 승리를 선언했다.
한편 19석을 얻어 공동 제3당이 된 중도우익 정당 기독 민주당(CDA)은 사회적인 보수주의를 내세웠다. PVV와 달리 CDA는 EU를 지지하며 무슬림도 자유롭게 종교활동을 해야 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중국적을 가진 터키계 네덜란드인에게 터키 국적을 포기할 것을 촉구하며, 학교의 국가제창 도입 같은 상징적인 제도를 지지한다. 평소 그런 노골적인 애국주의를 지지하지 않는 네덜란드에선 상당히 파격적인 노선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포퓰리스트 도전자에 맞서는 후보는 자신도 ‘우클릭’을 해야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오는 9월 총선이 열리는 독일을 보자.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중도우파 정당 기독민주당(CDU)은 벌써부터 독일에서 이슬람의 지위를 두고 강경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CDU는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이슬람 베일을 금지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 베일은 독일의 무슬림 중 소수만이 착용하며 전면 금지는 위헌일 수 있는 데도 말이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CDU도 네덜란드의 VVD처럼 이민 문제에서 강경 노선을 취하는 모습이다. 극우 성향의 신생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이슬람은 독일의 일부가 아니다”며 이슬람 사원의 첨탑(미나레트) 건설에 반대하고 얼굴 전면을 가리는 이슬람 베일의 착용은 물론, 이슬람 사원 등에서 하루 다섯 차례 기도 시간을 알리는 방송도 금지할 것을 촉구했다.

오는 4월 대선이 시작되는 프랑스에선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가 인기 대통령 후보다. 그녀의 최대 라이벌로 여론조사에서 1위에 오른 에마뉘엘 마크롱 전진당 대표는 극좌파 후보로 EU를 지지한다. 그러나 제1야당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후보는 중도우파로 한때 1위를 달렸으나 현재 세비횡령 스캔들로 고전한다(그는 잘못을 부인한다). 공화당은 후보 경선에서 좀 더 진보적인 알랭 쥐페 전 총리 대신 피용 후보를 선택했다. 만약 피용 후보가 패한다고 해도 전통적인 가치와 반 이슬람 정서가 공화당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네덜란드의 뤼테 총리는 중도파 정당이 초토화된 의회에서 연정을 이끌어야 한다. 중도좌파 노동당은 지난번 29석을 얻었지만 이번엔 9석에 그쳐 지지기반을 완전히 잃었다. 네덜란드의 유권자는 환경주의를 내세운 녹색좌파당과 진보 자유주의를 표방한 민주66당(D66)을 노동당보다 더 많이 지지했다.

빌더르스 대표가 이끄는 PVV는 20석을 얻으며 제2당이 됐지만 연정에는 참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총선을 마친 뒤 빌더르스 대표는 연정 참여를 희망했지만 다른 주요 정당 대표들이 이미 PVV와는 연대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결국 네덜란드의 연정은 가지각색의 정당이 ‘빌더르스만 아니면 된다’라는 원칙으로만 손잡는 난맥상을 보일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네덜란드 총선 결과로 유럽 전역에서 극우 반 이민주의 외국인혐오가 사라지리라고 추정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해석이다.

- 조시 로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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