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이곳으로 흐른다”
“돈이 이곳으로 흐른다”
미국 플로리다 주 웨스트 팜비치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 ‘새로운 월스트리트’로 불리며 돈과 권력의 새로운 중심으로 빠르게 부상해 비행기를 타고 웨스트 팜비치로 날아간 밤, 위력적인 토네이도가 연달아 플로리다 주를 흔들고 지나갔다. 강풍으로 엄청난 파도가 들쑥날쑥한 해안선에 몰아쳤고 주민들이 ‘뱅커스 로우(Bankers’ Row)’라 부르는 로얄 팜 웨이를 따라 늘어선 약 31m 높이의 나무도 심한 강풍을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며칠 지나지 않은 때였다. 길을 따라 약 3㎞ 정도 내려가면 트럼프가 ‘겨울 백악관’이라 부르는 ‘위대한 개츠비’ 스타일의 개인 별장 ‘마라라고’가 나온다. 새로운 왕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수백 명이 이곳에 모였다. 태풍이 다가오는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팜비치의 억만장자와 기업가, 사회 명사가 참석해 댄스 파티와 만찬을 즐기는 자리였다. 대통령 취임식을 다시 보는 것 같은 파티장에는 성조기 모양의 거대한 얼음 조각이 있었고 밑에는 붉은 글씨로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파티에서는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유모와 함께 리무진을 타고 다녔던 사람들, 은퇴 후 이곳에 와서 매년 11월 말부터 4월 초에 이르는 4개월의 겨울 파티와 갈라축제(주민들은 ‘시즌’이라 부른다)를 즐기기 위해 배우자의 장례식도 잠시 미루는 사람들이다. 파티가 다 끝나면 팜비치 섬의 주민은 3만 명에서 1만 명으로 줄어드는 게 관례였다.
트럼프의 취임 파티는 ‘시즌’의 절정기에 열렸다. 그러나 트럼프의 이웃 중 한 명인 부동산 거물 제프 그린은 참석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파티는 훌륭하다. 그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했다. 트럼프와 사적으로 아는 사이인 그는 마라라고 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트럼프식 정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당선을 위해 그가 했던 행동 중 일부는 이후 위험한 정치 논리로 발전할 수 있다.”
그린은 트럼프를 뽑지 않았다. 사실 팜비치 카운티 주민 과반수가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트럼프가 동네 주민이라는 점에서 혜택을 보고 있다. 트럼프가 권좌에 앉으며 이들의 앞마당으로 세계 최고의 부와 권력이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포드와 듀퐁, 로스차일드, 퓰리처, 로더 등 지난 100년간 팜비치에 둥지를 튼 슈퍼리치 가문뿐 아니라 오랜 시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중산층도 엄청난 부의 변화를 이룩할 수 있을지 모른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마라라고 끝에 있는 플로리다 지역 은행 거리로 금융기관이 모여들면서 금융센터가 조성됐다. 수년 전부터 이곳에는 60여 개(100개라는 주장도 있다)의 헤지펀드가 사무소를 열었다. 사모투자사 수십여 개, 가족투자사 수백 개도 함께 문을 열었다. 크레디트 스위스와 모건 스탠리, JP모건 체이스, 골드만삭스 등 대형 금융기관 또한 늘어났다. 좁은 공간을 임대한 사무소만 열린 게 아니다. 아예 건물 전체를 매입하거나 상업지구의 여러 블록을 사들이는 은행이나 수십억 달러 규모 펀드도 있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 구역을 ‘새로운 월스트리트’라 부른다.
트럼프의 신뢰를 받는 자문가나 지지자 또한 이 구역으로 몰려들었다. 120억 달러의 투자금을 운용하는 스카이브릿지 캐피털의 창업자 안소니 스카라무치는 2년 전 팜비치 가든에 사무실을 열었다(그는 11월 트럼프 정권인수팀 집행위원회에 임명된 후 회사 매각에 동의했다). 헤지펀드 매니저인 억만장자 폴튜더 존스는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 공원 보호를 약속한 트럼프를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팜비치에 있는 론 페렐만의 소유지를 매입했다.
트럼프가 인수팀으로 임명한 헤지펀드 억만장자 칼 아이칸 또한 매년 일정 기간을 이곳에서 보내는 팜비치 주민이다. 그의 저택은 마라라고 근처에 있다. 트럼프팀 고위 간부들 또한 근방에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벤 카슨 주택도심 개발장관, 벳시 드보시 교육부 장관, 골드만삭스를 떠나 국가경제위원회 수장이 된 개리 콘 등이 좋은 예다.
팜비치 카운티는 오래 전부터 전통적 부자가 몰려드는 도시였다. 그러나 이들이 사는 지역은 약 48㎞를 따라 늘어진 좁은 곶 모양의 팜비치 ‘섬’으로 한정돼 있었다. 억만장자들은 이곳 북쪽 끝에 대저택을 지어 모여 살았다. 플로리다 주에서는 1855년부터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점이 억만장자를 끌어모으는 데 한몫했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 후부터는 금융회사까지 새롭게 몰려들었다. “‘플로리다로 갈까, 마이애미로 갈까’고민하던 사람들이 팜비치로 눈을 돌렸다”고 그린은 말했다. “TV를 켰는데 트럼프가 백악관에 없다면 여기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각료, 억만장자를 만나는 걸 볼 수 있다. 취임식이 열리기 전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팜비치 리조트에서 각국 총리와 대통령을 만나기 전 심지어 마라라고 회원들이 핵미사일 발사를 명령하는 대통령의 가방 ‘뉴클리어 풋볼(nuclear football)’ 옆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이 페이스북에 올라오기 전부터 트럼프 정권인수팀은 워싱턴 D.C.에 있는 백악관을 ‘북쪽 백악관’이라 부를 정도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있는 팜비치 섬은 고층건물과 시멘트로만 이뤄진 웨스트 팜비치의 황량한 풍경과 비교했을 때 귀족적 분위기가 넘치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었다. 좁은 간격을 두고 나눠진 이 두 구역 사이에는 대서양 내륙수로를 가로지르는 작은 도개교가 있다. 웨스트 팜비치의 레스토랑에서 발견한 포춘지 1936년 발간호에는 당시 도시 주민이 ‘팜비치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했다. 이들은 수로 건너편에 사는 부유층을 위해 가방을 나르고 자동차를 점검하며 린넨을 빨래한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 이후 최대 수혜지는 카운티 행정청이 위치한 웨스트 팜비치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코카인 고속도로’를 따라 위치한 기착지 중 하나였던 웨스트 팜비치는 이제 성장 전망이 밝고 뉴욕 시만큼 일자리 창출이 활발한 곳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날로 늘어나는 일자리와 주택, 사무공간을 찾아 수많은 사람이 최근 수개월간 이곳으로 이사했다. 웨스트 팜비치 시정부가 기업 컨설팅업체 알펀 로젠탈에 의뢰한 조사 결과, 팜비치 카운티에는 월 평균 2000명의 사람이 전입해 온다고 한다. 지난 3월을 기준으로 팜비치에서는 총 20억 달러 가치의 부동산 건설 프로젝트가 여러 개 기획 중이라고 팜비치 경제개발국장 크리스 루그는 말했다.
요즘 이곳의 스카이라인은 건설 크레인이 가득 메우고 있다. 사무 건물과 아파트, 대중교통 허브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웨스트 팜비치 도시 기획자들은 개발 청사진을 검토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린도 벌써 개발 계획을 여러 개 제출했다. 그는 도시 곳곳에 사무 및 주거 건물을 건설하는 데 수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이와 함께 도심 지역에서는 밀레니엄 세대를 위한 초소형 임대 공간도 건설한다. 그린은 지역 영재를 위한 사립학교도 열었다. 3세 이상 아동을 위한 로봇공학 수업과 명상실, 컴퓨터 코딩 수업을 제공하는 학교다.
트럼프의 대선 승리 이후 이곳의 개발은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마라라고로 갈 준비를 하는 동안 웨스트 팜비치에서는 플래글러 금융지구가 새로 모습을 드러냈다. 대서양 내륙수로와 이곳을 가득 메운 럭셔리 대형 요트가 내려다 보이는 좁은 면적의 고급 사무지구다. ‘은행가의 길’ 뱅커스 로우로 이어지는 도개교 밑 1.3㎢의 땅에 조성된 금융지구는 스탠다드 오일 설립자이자 팜비치 섬의 황금시대를 설계한 헨리 플래글러의 이름을 땄다.
“A급 사무공간이 부족하다”고 웨스트 팜비치 시장 제리 무이오가 말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녀는 레오파드 무늬 상의를 입고 있었고 붉은 매니큐어를 바른 손가락에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꼈다. 그녀는 12월부터 월스트리트 거물을 웨스트 팜비치로 데려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말했다. 뉴욕과 뉴저지, 코네티컷을 포괄하는 3개 주에는 ‘남쪽으로 오라’는 광고를 내보냈다. 인센티브를 넉넉하게 포함시킨 패키지 정책도 마무리 지었다. 일자리 특히 임금이 높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에는 향후 10년간 재산세를 면제하는 정책도 있다. 팜비치 카운티로 옮겨온 금융기관은 슈퍼리치 가문에 맞춘 차별화된 금융서비스를 조용히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별다른 정보를 내놓지 않지만 부동산 전문기업 쿠쉬먼 & 웨이크필드(C&W)는 이런 움직임을 추적하는 중이다. 지난 1월에 C&W는 지역 임대료가 ‘공격적으로 상승’했음에도 금융기관의 이주를 막지 못했다는 자료를 공개했다. 이들 기업은 임대료가 21% 이상 상승한 지난해 수만㎡의 상업용 공간을 공격적으로 매입했다. “남부 플로리다는 더 이상 은퇴 후 여생을 보내는 곳이 아니다”고 C&W의 마크 페이트만 전무이사는 말했다. “가족과 함께 영구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신의 회사도 이곳으로 옮기고 자본 투자를 하고 금융 거래를 한다.”
트럼프가 당선되고 수 주 동안 밀켄 연구소 일자리 및 인적자본 센터에서 발표한 ‘최고 성장률 도시’ 결과를 보면 웨스트 팜비치 도시권의 전반적 금융 성장률은 주요 헤지펀드 지역으로 알려진 코네티컷 주 그린위치뿐 아니라 뉴욕 시, 보스턴보다 순위가 높다(웨스트 팜비치 일자리 수는 향후 10년 간 금융 및 첨단기술 산업의 선도로 40%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팜비치 카운티의 임금 성장률이 (적어도 아직까지) 전 세계 금융수도로 군림하는 뉴욕 시를 뛰어넘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겨울 스키만 빼면 원하는 걸 뭐든 얻을 수 있다”고 그린은 말했다.
30억 달러의 자본금을 가진 사모투자사 웩스포드 캐피털의 조셉 제이콥스 사장은 최근 월스트리트에서 팜비치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그는 플래글러 지구로의 사무실 이전이 “마찰 없이 매끈하게” 이뤄졌으며 이후 회사가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았다고 말했다. 뉴욕이나 그린위치의 인파와 복잡함, 긴 통근시간, 뼛속까지 에이는 추위는 정말 그립지 않다. “여기 있으니까 소음도 크게 줄어든 느낌”이라고 그는 말했다. “스트레스도 덜하다. 그래서 더 많은 일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 매일 눈을 뜰 수 있는데 굳이 뉴욕이나 코네티컷에서 살 필요가 있을까?”
제이콥스 사장은 그린위치에 약 4만8563㎡ 면적의 부동산을 아직 보유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급락한다고 말했다. “흐름은 남쪽으로 바뀐다”고 그는 말했다. “이제 북동부 지역을 그 정도로 선호하지 않는다.”
웨스트 팜비치로의 이동 또한 믿기 힘들 정도로 쉬워졌다. 도심에서 국제공항까지는 10~1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뱅커스 로우에 위치한 J.P.모건 프라이빗뱅크의 에밀리 클리포드 상임이사는 팜비치의 최고 장점 중 하나가 바로 편리한 도시간 이동이라고 말했다. “새벽 6시 비행기를 타면 10시 30분쯤 뉴욕에 도착해서 회의와 업무를 처리한 후 밤이면 우리 집 침실로 퇴근할 수 있다.” 이번 여름에는 웨스트 팜비치 도심과 포트 로더데일, 마이애미를 연결하는 고속철도가 개통된다. 내년 고속철도 서비스는 올랜도까지 연장된다. 그럼 웨스트 팜비치에서 플로리다 주의 또 다른 금융 중심지 마이애미까지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이주민 입장에서는 소득세가 없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다.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을 벌 정도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뉴욕을 떠나 이곳으로 오는 순간 소득이 자동적으로 10만 달러 늘어난다. 소득이 이보다 낮은 사람도 대부분 연봉이 꽤 오르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알펀 로젠탈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플로리다 주의 자본이득세와 부동산세, 기업세는 뉴욕·뉴저지·매사추세츠·코네티컷 주보다 훨씬 낮다. 플로리다 주는 전반적으로 조세피난처와도 비슷한 곳이다. 소득이 높을수록 남쪽으로 이동하면 더 많은 돈을 주머니에 넣어갈 수 있다. 상위 1%가 플로리다 주로 몰려드는 이유라고 팜비치 카운티 사업개발위원회 사장이자 CEO인 켈리 스몰릿지는 말했다.
스몰릿지 CEO는 남부로의 이주를 고려하는 슈퍼리치 가족을 매일 수십 명은 상담한다고 말했다. 매달 수백 통의 문의전화를 받는 것은 물론이다. 웩스포드 캐피털의 제이콥스 사장 또한 스몰릿지 CEO의 도움을 받아 팜비치로 이주했다. 정식으로 이주한 건 최근이지만 팜비치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다. 웩스포드 포트폴리오 매니저 중 일부는 여전히 그린위치에서 근무하지만 고위급 간부 중 상당수는 이미 팜비치로 이주했으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팜비치에 올 것이라고 제이콥스 사장은 말했다. “이곳은 더 이상 시즌만 보내는 곳이 아니다”고 그는 말했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많고 다양해졌다.
트럼프 대통령 때문만은 아니다. 기술도 하나의 요인이다. 요즘 사람들의 이동성이 크게 증가하다 보니 금융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반드시 뉴욕에 살 필요가 없어졌다. 자신과 맞지 않는 도시에서 굳이 살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다.”
지난 1월 말의 어느 화요일, 웨스트 팜비치에 새로 개장한 힐튼 호텔에서 앤드류 슈나이더(43)를 만났다. 투자금을 모집하는 헤지펀드와 은행가, 스타트업을 부자들과 연결해주는 금융기관 패밀리 오피스 네트워크 설립자이자 CEO다. 어두운 로비 바에서 만난 그는 TV 프로그램 ‘샤크 탱크’ 마냥 젊은 벤처 사업가가 블록체인 기술 앱을 설명하는 걸 듣고 있었다. 벤처 사업가의 발표가 끝나자 혁신적 암 연구의 투자자를 찾는 의사와 만나서 연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나는 중매쟁이 같은 사람이다. 투자 기회를 제안하는 사람과 부자 투자자를 연결해준다”고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최근 팜비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슈나이더 CEO가 말했다. 사모투자 사무실을 운영하는 고액순자산가 1만 명의 네트워크에서 투자자를 찾아 계약을 연결하는 일을 끝낸 후에는 스쿠버다이빙을 하거나 보트를 타며 여가를 보낸다. “삶의 질이 크게 좋아졌다”고 그는 말했다.
팜비치에서 알아주는 투자 중개인들은 바, 레스토랑, 커피숍 등에서 계약을 체결한다. 이들은 칵테일 라운지에서 하이볼이나 마티니를 마시며 재무조건을 협상하고 계약서에 서명한다. 월스트리트 취재를 20년이나 했지만 팜비치에서처럼 그렇게 쉽고 태평하게 내 눈앞에서 많은 계약이 체결되는 걸 못 봤다.
젊고 모험심 강한 기업가가 몰려드는 이유는 이곳이 자금모집에 이상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팜비치 헤지펀드협회 설립자 데이비드 굿보이는 말했다. “헤지펀드는 돈을 따라가는데, 돈이 이곳으로 흐른다”고 굿보이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스카이브릿지 캐피털이 팜비치로 사무실을 옮겼을 때 최고투자책임자 레이 놀트는 사우스 플로리다가 “가장 많은 자금이 모집되는 지역 중 하나”라는 사실이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스몰릿지 CEO는 CEO와 사장, 회장이 단순 휴가를 보내는데 그치지 않고 회사 자체를 웨스트 팜비치로 옮겨온 덕분에 “내로라 하는 실세들이 한 장소에 모여들었고” 그 결과 투자금 모집 기회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25억 달러의 자본금을 갖춘 사모투자사 콤베스트의 회장 겸 전무이사 마이클 포크도 여기 해당한다. 그 또한 웨스트 팜비치로 본사를 옮겼다. 포크 회장은 15년 전 뉴욕에서 팜비치로 처음 거처를 옮겼을 때만 해도 그를 따라온 컴베스트 직원이 5명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70명 직원 중 90%가 여기 산다”고 그는 말했다. “커뮤니티가 촘촘해서 자선이나 사회활동 하기에 좋다.”
팜비치의 사교무대 또한 자금을 모으기에 수월한 구조를 갖췄다. 트럼프를 선거에서 지지한 헤지펀드 매니저 케빈 부쉬는 지난해 11월 이곳의 델레이 비치에 사무실을 차렸다. 단순히 부자들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부자들이 좀 더 편하게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들은 다 부자다. 이런 곳은 흔치 않다”고 그는 말했다. “매달 투자금 모집을 위해 이곳과 뉴욕을 오간다. 그러다 보니 환경이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팜비치에서는 사람들이 샌들을 신고 회의에 올 때가 있다. 그만큼 편안하고 접근하기 쉬운 분위기다. 반면, 정장을 입고 맨해튼 미드타운을 걸어가는 사람은 항상 경계 태세다. 이곳은 격식을 차린 느낌이 덜한데 보통은 그래서 결과가 좋다.”
단점이 있다면 교통 체증이다. “사우스 오션 대로를 따라 집에서 사무실로 가다 보면 마라라고 근처에서 차량이 서행을 하며 동영상 촬영을 하는 통에 차가 앞으로 갈 수가 없다”고 그린은 말했다. 트럼프의 자주색 람보르기니를 몰기도 했던 경제개발국장 루그는 도심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대통령 전용기가 웨스트 팜비치 국제공항에 착륙이라도 하는 날이면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상황은 대략 이렇다”고 루그 국장은 설명했다. “전용기가 착륙하고 트럼프가 비행기에서 내린다. 그가 전용차를 탄다. 그리고 마라라고까지 전속력으로 달린다. 시에서는 대통령 전용차가 계속 녹색 신호등만 받도록 신호체계를 조정한다. 이게 엄청난 교통체증을 야기한다. 기자, 시위대, 경찰까지 도로를 채운다. 사람들은 활주로로 나와서 에어포스원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 플로리다에 도착한 후 ‘남부의 로데오 드라이브’라 불리는 팜비치 고급 상점가 워쓰 애비뉴의 희귀책 서점 개장을 축하하는 비공개 파티에 참석했다. 예술가와 기업가, 헤지펀드 투자자들이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흐르는 오페라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샴페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큰손’ 컬렉터가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과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Reminiscences of a Stock Operator)’ 등 월스트리트 고전서를 모은 방대한 컬렉션 북의 초판을 넘겨보고 있었다. 자리에 모인 거물급 금융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니까 아무나 올 수 없는 월스트리트 행사에 온 것만 같았다. 참석자 다수는 트럼프 대통령을 알고 있거나 마라라고의 단골이었다.
최근 햄튼에서 팜비치로 옮겨온 예술가 론 버크하트(마라라고의 링컨 베드룸에 묵은 적이 있다. 겨울 백악관에 실제로 있는 방 이름이다)는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팜비치가 다시 한 번 “존재감을 알렸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케네디 가문이 이곳의 저택을 매각한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제는 우주의 중심이 된 셈”이라고 그는 말했다. “전 세계가 내가 사는 곳을 지켜보는 느낌이다.”
확실히 지난 수개월을 보면 그렇긴 했다. 지난 2월 북한이 동해로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마라라고에서 정찬을 함께하고 있었다. 지난 3월 초, 오바마 전 대통령이 대선 기간 동안 맨해튼 트럼프 타워 통화 내역을 도청했다고 주장했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팜비치 리조트 수리를 위해 이곳에 있었다. 팜비치가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당혹스런 순간이 있었지만 이목을 집중시키는 트럼프 대통령이 팜비치의 지위를 격상시켰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우리를 향해 많은 문이 열렸다”고 트럼프를 지지했던 슈나이더 CEO는 말했다. “이제 이곳은 자자손손 부자인 사람들만 오는 곳이 아니다. 트럼프가 이곳을 정치 무대로 바꿔 놓았다.”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총리를 마라라고에서 접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한다면 클럽 회원들은 중요한 정치적 활동을 직접 보고, 사진을 찍고, 심지어는 참여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 최고통수권자이지만 클럽 회원들은 마라라고와 웨스트 팜비치 호화 골프장에서 만난 그가 손님과 잘 어울리고 과장스런 대화도 잘한다고 말했다.
최근 그린은 트럼프 골프 클럽에서 어머니의 90세 생일 파티를 하다가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쳤다. 그때 나눈 대화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도 선거에 집착하는 것 같다. “케이크가 나오고 노래를 하는 동안 트럼프가 뒤에서 박수를 쳐줬다”고 그린은 말했다. “그러더니 나가는 길에 어머니에게 와서 ‘아흔 살이라니! 일흔 살이잖아요. 사실을 말해봐요!’라고 말했다. 재치 있게 분위기를 띄운 그는 곧이어 이렇게 외쳤다. ‘아드님이 저를 뽑지 않아서 속상하셨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 그의 회사에서 상임 부사장으로 일하며 골프장 부동산을 관리했던 월스트리트 금융가 애슐리 쿠퍼(그 또한 대선에서 트럼프를 뽑았다)는 자신의 전 상사가 좋은 의도를 갖고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트럼프를 움직이는 건 더 이상 돈이 아니다. 그는 이기고 싶어 한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이 되고 싶은 야심이다. 그는 미국 경제 활성화를 원하며 그동안 많은 국민이 정치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그는 최고급 브랜드 브리오니 수트를 입고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
트럼프 대통령은 존재감으로 웨스트 팜비치에 큰 혜택을 주지만 그린과 달리 이곳에 투자를 하지 않은 지가 수십 년은 된다. 그래도 그가 초기 전성기를 보냈던 흔적은 아직 남아 있다. 또 다른 인터뷰를 하러 가던 날 저녁, 나는 웨스트 팜비치 플래글러 드라이브를 따라 다른 건물보다 먼저 지어진 주거용 고층 건물을 지나갔다. 1990년대 트럼프가 채무 청산을 위해 매각할 수밖에 없었던 고층 콘도 트럼프 플라자도 그중 하나였다. 보고 있자니, 트럼프 대통령과 이 도시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는지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 리 맥그래스 굿먼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며칠 지나지 않은 때였다. 길을 따라 약 3㎞ 정도 내려가면 트럼프가 ‘겨울 백악관’이라 부르는 ‘위대한 개츠비’ 스타일의 개인 별장 ‘마라라고’가 나온다. 새로운 왕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수백 명이 이곳에 모였다. 태풍이 다가오는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팜비치의 억만장자와 기업가, 사회 명사가 참석해 댄스 파티와 만찬을 즐기는 자리였다. 대통령 취임식을 다시 보는 것 같은 파티장에는 성조기 모양의 거대한 얼음 조각이 있었고 밑에는 붉은 글씨로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파티에서는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유모와 함께 리무진을 타고 다녔던 사람들, 은퇴 후 이곳에 와서 매년 11월 말부터 4월 초에 이르는 4개월의 겨울 파티와 갈라축제(주민들은 ‘시즌’이라 부른다)를 즐기기 위해 배우자의 장례식도 잠시 미루는 사람들이다. 파티가 다 끝나면 팜비치 섬의 주민은 3만 명에서 1만 명으로 줄어드는 게 관례였다.
트럼프의 취임 파티는 ‘시즌’의 절정기에 열렸다. 그러나 트럼프의 이웃 중 한 명인 부동산 거물 제프 그린은 참석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파티는 훌륭하다. 그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했다. 트럼프와 사적으로 아는 사이인 그는 마라라고 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트럼프식 정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당선을 위해 그가 했던 행동 중 일부는 이후 위험한 정치 논리로 발전할 수 있다.”
그린은 트럼프를 뽑지 않았다. 사실 팜비치 카운티 주민 과반수가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트럼프가 동네 주민이라는 점에서 혜택을 보고 있다. 트럼프가 권좌에 앉으며 이들의 앞마당으로 세계 최고의 부와 권력이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포드와 듀퐁, 로스차일드, 퓰리처, 로더 등 지난 100년간 팜비치에 둥지를 튼 슈퍼리치 가문뿐 아니라 오랜 시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중산층도 엄청난 부의 변화를 이룩할 수 있을지 모른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마라라고 끝에 있는 플로리다 지역 은행 거리로 금융기관이 모여들면서 금융센터가 조성됐다. 수년 전부터 이곳에는 60여 개(100개라는 주장도 있다)의 헤지펀드가 사무소를 열었다. 사모투자사 수십여 개, 가족투자사 수백 개도 함께 문을 열었다. 크레디트 스위스와 모건 스탠리, JP모건 체이스, 골드만삭스 등 대형 금융기관 또한 늘어났다. 좁은 공간을 임대한 사무소만 열린 게 아니다. 아예 건물 전체를 매입하거나 상업지구의 여러 블록을 사들이는 은행이나 수십억 달러 규모 펀드도 있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 구역을 ‘새로운 월스트리트’라 부른다.
트럼프의 신뢰를 받는 자문가나 지지자 또한 이 구역으로 몰려들었다. 120억 달러의 투자금을 운용하는 스카이브릿지 캐피털의 창업자 안소니 스카라무치는 2년 전 팜비치 가든에 사무실을 열었다(그는 11월 트럼프 정권인수팀 집행위원회에 임명된 후 회사 매각에 동의했다). 헤지펀드 매니저인 억만장자 폴튜더 존스는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 공원 보호를 약속한 트럼프를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팜비치에 있는 론 페렐만의 소유지를 매입했다.
트럼프가 인수팀으로 임명한 헤지펀드 억만장자 칼 아이칸 또한 매년 일정 기간을 이곳에서 보내는 팜비치 주민이다. 그의 저택은 마라라고 근처에 있다. 트럼프팀 고위 간부들 또한 근방에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벤 카슨 주택도심 개발장관, 벳시 드보시 교육부 장관, 골드만삭스를 떠나 국가경제위원회 수장이 된 개리 콘 등이 좋은 예다.
팜비치 카운티는 오래 전부터 전통적 부자가 몰려드는 도시였다. 그러나 이들이 사는 지역은 약 48㎞를 따라 늘어진 좁은 곶 모양의 팜비치 ‘섬’으로 한정돼 있었다. 억만장자들은 이곳 북쪽 끝에 대저택을 지어 모여 살았다. 플로리다 주에서는 1855년부터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점이 억만장자를 끌어모으는 데 한몫했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 후부터는 금융회사까지 새롭게 몰려들었다. “‘플로리다로 갈까, 마이애미로 갈까’고민하던 사람들이 팜비치로 눈을 돌렸다”고 그린은 말했다. “TV를 켰는데 트럼프가 백악관에 없다면 여기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각료, 억만장자를 만나는 걸 볼 수 있다. 취임식이 열리기 전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팜비치 리조트에서 각국 총리와 대통령을 만나기 전 심지어 마라라고 회원들이 핵미사일 발사를 명령하는 대통령의 가방 ‘뉴클리어 풋볼(nuclear football)’ 옆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이 페이스북에 올라오기 전부터 트럼프 정권인수팀은 워싱턴 D.C.에 있는 백악관을 ‘북쪽 백악관’이라 부를 정도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있는 팜비치 섬은 고층건물과 시멘트로만 이뤄진 웨스트 팜비치의 황량한 풍경과 비교했을 때 귀족적 분위기가 넘치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었다. 좁은 간격을 두고 나눠진 이 두 구역 사이에는 대서양 내륙수로를 가로지르는 작은 도개교가 있다. 웨스트 팜비치의 레스토랑에서 발견한 포춘지 1936년 발간호에는 당시 도시 주민이 ‘팜비치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했다. 이들은 수로 건너편에 사는 부유층을 위해 가방을 나르고 자동차를 점검하며 린넨을 빨래한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 이후 최대 수혜지는 카운티 행정청이 위치한 웨스트 팜비치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코카인 고속도로’를 따라 위치한 기착지 중 하나였던 웨스트 팜비치는 이제 성장 전망이 밝고 뉴욕 시만큼 일자리 창출이 활발한 곳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날로 늘어나는 일자리와 주택, 사무공간을 찾아 수많은 사람이 최근 수개월간 이곳으로 이사했다. 웨스트 팜비치 시정부가 기업 컨설팅업체 알펀 로젠탈에 의뢰한 조사 결과, 팜비치 카운티에는 월 평균 2000명의 사람이 전입해 온다고 한다. 지난 3월을 기준으로 팜비치에서는 총 20억 달러 가치의 부동산 건설 프로젝트가 여러 개 기획 중이라고 팜비치 경제개발국장 크리스 루그는 말했다.
요즘 이곳의 스카이라인은 건설 크레인이 가득 메우고 있다. 사무 건물과 아파트, 대중교통 허브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웨스트 팜비치 도시 기획자들은 개발 청사진을 검토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린도 벌써 개발 계획을 여러 개 제출했다. 그는 도시 곳곳에 사무 및 주거 건물을 건설하는 데 수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이와 함께 도심 지역에서는 밀레니엄 세대를 위한 초소형 임대 공간도 건설한다. 그린은 지역 영재를 위한 사립학교도 열었다. 3세 이상 아동을 위한 로봇공학 수업과 명상실, 컴퓨터 코딩 수업을 제공하는 학교다.
트럼프의 대선 승리 이후 이곳의 개발은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마라라고로 갈 준비를 하는 동안 웨스트 팜비치에서는 플래글러 금융지구가 새로 모습을 드러냈다. 대서양 내륙수로와 이곳을 가득 메운 럭셔리 대형 요트가 내려다 보이는 좁은 면적의 고급 사무지구다. ‘은행가의 길’ 뱅커스 로우로 이어지는 도개교 밑 1.3㎢의 땅에 조성된 금융지구는 스탠다드 오일 설립자이자 팜비치 섬의 황금시대를 설계한 헨리 플래글러의 이름을 땄다.
“A급 사무공간이 부족하다”고 웨스트 팜비치 시장 제리 무이오가 말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녀는 레오파드 무늬 상의를 입고 있었고 붉은 매니큐어를 바른 손가락에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꼈다. 그녀는 12월부터 월스트리트 거물을 웨스트 팜비치로 데려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말했다. 뉴욕과 뉴저지, 코네티컷을 포괄하는 3개 주에는 ‘남쪽으로 오라’는 광고를 내보냈다. 인센티브를 넉넉하게 포함시킨 패키지 정책도 마무리 지었다. 일자리 특히 임금이 높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에는 향후 10년간 재산세를 면제하는 정책도 있다. 팜비치 카운티로 옮겨온 금융기관은 슈퍼리치 가문에 맞춘 차별화된 금융서비스를 조용히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별다른 정보를 내놓지 않지만 부동산 전문기업 쿠쉬먼 & 웨이크필드(C&W)는 이런 움직임을 추적하는 중이다. 지난 1월에 C&W는 지역 임대료가 ‘공격적으로 상승’했음에도 금융기관의 이주를 막지 못했다는 자료를 공개했다. 이들 기업은 임대료가 21% 이상 상승한 지난해 수만㎡의 상업용 공간을 공격적으로 매입했다. “남부 플로리다는 더 이상 은퇴 후 여생을 보내는 곳이 아니다”고 C&W의 마크 페이트만 전무이사는 말했다. “가족과 함께 영구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신의 회사도 이곳으로 옮기고 자본 투자를 하고 금융 거래를 한다.”
트럼프가 당선되고 수 주 동안 밀켄 연구소 일자리 및 인적자본 센터에서 발표한 ‘최고 성장률 도시’ 결과를 보면 웨스트 팜비치 도시권의 전반적 금융 성장률은 주요 헤지펀드 지역으로 알려진 코네티컷 주 그린위치뿐 아니라 뉴욕 시, 보스턴보다 순위가 높다(웨스트 팜비치 일자리 수는 향후 10년 간 금융 및 첨단기술 산업의 선도로 40%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팜비치 카운티의 임금 성장률이 (적어도 아직까지) 전 세계 금융수도로 군림하는 뉴욕 시를 뛰어넘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겨울 스키만 빼면 원하는 걸 뭐든 얻을 수 있다”고 그린은 말했다.
30억 달러의 자본금을 가진 사모투자사 웩스포드 캐피털의 조셉 제이콥스 사장은 최근 월스트리트에서 팜비치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그는 플래글러 지구로의 사무실 이전이 “마찰 없이 매끈하게” 이뤄졌으며 이후 회사가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았다고 말했다. 뉴욕이나 그린위치의 인파와 복잡함, 긴 통근시간, 뼛속까지 에이는 추위는 정말 그립지 않다. “여기 있으니까 소음도 크게 줄어든 느낌”이라고 그는 말했다. “스트레스도 덜하다. 그래서 더 많은 일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 매일 눈을 뜰 수 있는데 굳이 뉴욕이나 코네티컷에서 살 필요가 있을까?”
제이콥스 사장은 그린위치에 약 4만8563㎡ 면적의 부동산을 아직 보유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급락한다고 말했다. “흐름은 남쪽으로 바뀐다”고 그는 말했다. “이제 북동부 지역을 그 정도로 선호하지 않는다.”
웨스트 팜비치로의 이동 또한 믿기 힘들 정도로 쉬워졌다. 도심에서 국제공항까지는 10~1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뱅커스 로우에 위치한 J.P.모건 프라이빗뱅크의 에밀리 클리포드 상임이사는 팜비치의 최고 장점 중 하나가 바로 편리한 도시간 이동이라고 말했다. “새벽 6시 비행기를 타면 10시 30분쯤 뉴욕에 도착해서 회의와 업무를 처리한 후 밤이면 우리 집 침실로 퇴근할 수 있다.” 이번 여름에는 웨스트 팜비치 도심과 포트 로더데일, 마이애미를 연결하는 고속철도가 개통된다. 내년 고속철도 서비스는 올랜도까지 연장된다. 그럼 웨스트 팜비치에서 플로리다 주의 또 다른 금융 중심지 마이애미까지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이주민 입장에서는 소득세가 없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다.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을 벌 정도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뉴욕을 떠나 이곳으로 오는 순간 소득이 자동적으로 10만 달러 늘어난다. 소득이 이보다 낮은 사람도 대부분 연봉이 꽤 오르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알펀 로젠탈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플로리다 주의 자본이득세와 부동산세, 기업세는 뉴욕·뉴저지·매사추세츠·코네티컷 주보다 훨씬 낮다. 플로리다 주는 전반적으로 조세피난처와도 비슷한 곳이다. 소득이 높을수록 남쪽으로 이동하면 더 많은 돈을 주머니에 넣어갈 수 있다. 상위 1%가 플로리다 주로 몰려드는 이유라고 팜비치 카운티 사업개발위원회 사장이자 CEO인 켈리 스몰릿지는 말했다.
스몰릿지 CEO는 남부로의 이주를 고려하는 슈퍼리치 가족을 매일 수십 명은 상담한다고 말했다. 매달 수백 통의 문의전화를 받는 것은 물론이다. 웩스포드 캐피털의 제이콥스 사장 또한 스몰릿지 CEO의 도움을 받아 팜비치로 이주했다. 정식으로 이주한 건 최근이지만 팜비치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다. 웩스포드 포트폴리오 매니저 중 일부는 여전히 그린위치에서 근무하지만 고위급 간부 중 상당수는 이미 팜비치로 이주했으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팜비치에 올 것이라고 제이콥스 사장은 말했다. “이곳은 더 이상 시즌만 보내는 곳이 아니다”고 그는 말했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많고 다양해졌다.
트럼프 대통령 때문만은 아니다. 기술도 하나의 요인이다. 요즘 사람들의 이동성이 크게 증가하다 보니 금융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반드시 뉴욕에 살 필요가 없어졌다. 자신과 맞지 않는 도시에서 굳이 살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다.”
지난 1월 말의 어느 화요일, 웨스트 팜비치에 새로 개장한 힐튼 호텔에서 앤드류 슈나이더(43)를 만났다. 투자금을 모집하는 헤지펀드와 은행가, 스타트업을 부자들과 연결해주는 금융기관 패밀리 오피스 네트워크 설립자이자 CEO다. 어두운 로비 바에서 만난 그는 TV 프로그램 ‘샤크 탱크’ 마냥 젊은 벤처 사업가가 블록체인 기술 앱을 설명하는 걸 듣고 있었다. 벤처 사업가의 발표가 끝나자 혁신적 암 연구의 투자자를 찾는 의사와 만나서 연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나는 중매쟁이 같은 사람이다. 투자 기회를 제안하는 사람과 부자 투자자를 연결해준다”고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최근 팜비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슈나이더 CEO가 말했다. 사모투자 사무실을 운영하는 고액순자산가 1만 명의 네트워크에서 투자자를 찾아 계약을 연결하는 일을 끝낸 후에는 스쿠버다이빙을 하거나 보트를 타며 여가를 보낸다. “삶의 질이 크게 좋아졌다”고 그는 말했다.
팜비치에서 알아주는 투자 중개인들은 바, 레스토랑, 커피숍 등에서 계약을 체결한다. 이들은 칵테일 라운지에서 하이볼이나 마티니를 마시며 재무조건을 협상하고 계약서에 서명한다. 월스트리트 취재를 20년이나 했지만 팜비치에서처럼 그렇게 쉽고 태평하게 내 눈앞에서 많은 계약이 체결되는 걸 못 봤다.
젊고 모험심 강한 기업가가 몰려드는 이유는 이곳이 자금모집에 이상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팜비치 헤지펀드협회 설립자 데이비드 굿보이는 말했다. “헤지펀드는 돈을 따라가는데, 돈이 이곳으로 흐른다”고 굿보이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스카이브릿지 캐피털이 팜비치로 사무실을 옮겼을 때 최고투자책임자 레이 놀트는 사우스 플로리다가 “가장 많은 자금이 모집되는 지역 중 하나”라는 사실이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스몰릿지 CEO는 CEO와 사장, 회장이 단순 휴가를 보내는데 그치지 않고 회사 자체를 웨스트 팜비치로 옮겨온 덕분에 “내로라 하는 실세들이 한 장소에 모여들었고” 그 결과 투자금 모집 기회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25억 달러의 자본금을 갖춘 사모투자사 콤베스트의 회장 겸 전무이사 마이클 포크도 여기 해당한다. 그 또한 웨스트 팜비치로 본사를 옮겼다. 포크 회장은 15년 전 뉴욕에서 팜비치로 처음 거처를 옮겼을 때만 해도 그를 따라온 컴베스트 직원이 5명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70명 직원 중 90%가 여기 산다”고 그는 말했다. “커뮤니티가 촘촘해서 자선이나 사회활동 하기에 좋다.”
팜비치의 사교무대 또한 자금을 모으기에 수월한 구조를 갖췄다. 트럼프를 선거에서 지지한 헤지펀드 매니저 케빈 부쉬는 지난해 11월 이곳의 델레이 비치에 사무실을 차렸다. 단순히 부자들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부자들이 좀 더 편하게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들은 다 부자다. 이런 곳은 흔치 않다”고 그는 말했다. “매달 투자금 모집을 위해 이곳과 뉴욕을 오간다. 그러다 보니 환경이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팜비치에서는 사람들이 샌들을 신고 회의에 올 때가 있다. 그만큼 편안하고 접근하기 쉬운 분위기다. 반면, 정장을 입고 맨해튼 미드타운을 걸어가는 사람은 항상 경계 태세다. 이곳은 격식을 차린 느낌이 덜한데 보통은 그래서 결과가 좋다.”
단점이 있다면 교통 체증이다. “사우스 오션 대로를 따라 집에서 사무실로 가다 보면 마라라고 근처에서 차량이 서행을 하며 동영상 촬영을 하는 통에 차가 앞으로 갈 수가 없다”고 그린은 말했다. 트럼프의 자주색 람보르기니를 몰기도 했던 경제개발국장 루그는 도심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대통령 전용기가 웨스트 팜비치 국제공항에 착륙이라도 하는 날이면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상황은 대략 이렇다”고 루그 국장은 설명했다. “전용기가 착륙하고 트럼프가 비행기에서 내린다. 그가 전용차를 탄다. 그리고 마라라고까지 전속력으로 달린다. 시에서는 대통령 전용차가 계속 녹색 신호등만 받도록 신호체계를 조정한다. 이게 엄청난 교통체증을 야기한다. 기자, 시위대, 경찰까지 도로를 채운다. 사람들은 활주로로 나와서 에어포스원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 플로리다에 도착한 후 ‘남부의 로데오 드라이브’라 불리는 팜비치 고급 상점가 워쓰 애비뉴의 희귀책 서점 개장을 축하하는 비공개 파티에 참석했다. 예술가와 기업가, 헤지펀드 투자자들이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흐르는 오페라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샴페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큰손’ 컬렉터가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과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Reminiscences of a Stock Operator)’ 등 월스트리트 고전서를 모은 방대한 컬렉션 북의 초판을 넘겨보고 있었다. 자리에 모인 거물급 금융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니까 아무나 올 수 없는 월스트리트 행사에 온 것만 같았다. 참석자 다수는 트럼프 대통령을 알고 있거나 마라라고의 단골이었다.
최근 햄튼에서 팜비치로 옮겨온 예술가 론 버크하트(마라라고의 링컨 베드룸에 묵은 적이 있다. 겨울 백악관에 실제로 있는 방 이름이다)는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팜비치가 다시 한 번 “존재감을 알렸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케네디 가문이 이곳의 저택을 매각한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제는 우주의 중심이 된 셈”이라고 그는 말했다. “전 세계가 내가 사는 곳을 지켜보는 느낌이다.”
확실히 지난 수개월을 보면 그렇긴 했다. 지난 2월 북한이 동해로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마라라고에서 정찬을 함께하고 있었다. 지난 3월 초, 오바마 전 대통령이 대선 기간 동안 맨해튼 트럼프 타워 통화 내역을 도청했다고 주장했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팜비치 리조트 수리를 위해 이곳에 있었다. 팜비치가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당혹스런 순간이 있었지만 이목을 집중시키는 트럼프 대통령이 팜비치의 지위를 격상시켰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우리를 향해 많은 문이 열렸다”고 트럼프를 지지했던 슈나이더 CEO는 말했다. “이제 이곳은 자자손손 부자인 사람들만 오는 곳이 아니다. 트럼프가 이곳을 정치 무대로 바꿔 놓았다.”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총리를 마라라고에서 접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한다면 클럽 회원들은 중요한 정치적 활동을 직접 보고, 사진을 찍고, 심지어는 참여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 최고통수권자이지만 클럽 회원들은 마라라고와 웨스트 팜비치 호화 골프장에서 만난 그가 손님과 잘 어울리고 과장스런 대화도 잘한다고 말했다.
최근 그린은 트럼프 골프 클럽에서 어머니의 90세 생일 파티를 하다가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쳤다. 그때 나눈 대화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도 선거에 집착하는 것 같다. “케이크가 나오고 노래를 하는 동안 트럼프가 뒤에서 박수를 쳐줬다”고 그린은 말했다. “그러더니 나가는 길에 어머니에게 와서 ‘아흔 살이라니! 일흔 살이잖아요. 사실을 말해봐요!’라고 말했다. 재치 있게 분위기를 띄운 그는 곧이어 이렇게 외쳤다. ‘아드님이 저를 뽑지 않아서 속상하셨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 그의 회사에서 상임 부사장으로 일하며 골프장 부동산을 관리했던 월스트리트 금융가 애슐리 쿠퍼(그 또한 대선에서 트럼프를 뽑았다)는 자신의 전 상사가 좋은 의도를 갖고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트럼프를 움직이는 건 더 이상 돈이 아니다. 그는 이기고 싶어 한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이 되고 싶은 야심이다. 그는 미국 경제 활성화를 원하며 그동안 많은 국민이 정치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그는 최고급 브랜드 브리오니 수트를 입고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
트럼프 대통령은 존재감으로 웨스트 팜비치에 큰 혜택을 주지만 그린과 달리 이곳에 투자를 하지 않은 지가 수십 년은 된다. 그래도 그가 초기 전성기를 보냈던 흔적은 아직 남아 있다. 또 다른 인터뷰를 하러 가던 날 저녁, 나는 웨스트 팜비치 플래글러 드라이브를 따라 다른 건물보다 먼저 지어진 주거용 고층 건물을 지나갔다. 1990년대 트럼프가 채무 청산을 위해 매각할 수밖에 없었던 고층 콘도 트럼프 플라자도 그중 하나였다. 보고 있자니, 트럼프 대통령과 이 도시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는지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 리 맥그래스 굿먼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탈 서울 기업들 몰리는 청라 국제도시…新랜드마크 ‘청라파이낸스센터’ 주목
2 코스피 2400선 내줘…8월 '블랙먼데이' 이후 처음
3대한전선, 역대 최대 수주 잔고…실적 상승세 가속
4도미노피자, ‘K-쌈장 채끝 스테이크 피자’ 출시 프로모션 진행
511번가, 3분기 영업손실 55% 개선…오픈마켓은 8개월 연속 흑자
6“최대 80% 할인”…LF몰, ‘블랙프라이데이’ 시작
729CM ‘이굿위크’ 누적 거래액 1100억 돌파
8뉴욕증시, 파월도 인정한 인플레 불안…나스닥 '휘청'
9노티드, 2024 크리스마스 케이크 출시 및 사전예약 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