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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 해리 타누수딥조

억만장자 해리 타누수딥조

인도네시아 사업가 해리 타누수딥조와 미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럭셔리 리조트 개발자이기도 하지만, 미인 대회를 주최하고 TV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끊임 없이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등, 타누수딥조는 트럼프의 모든 점을 닮은 ‘미니 트럼프’로 거듭나는 중이다. 그런 그가 인구 기준 세계 4위 대국인 인도네시아의 대통령이 되기 위한 밑작업을 시작했다.인도네시아 억만장자 해리 타누수딥조(Hary Tanoesoedibjo, 51)는 영어를 말할 때면 다음 단어를 찾느라 말을 자주 중단할 정도지만, 한 단어만큼은 아주 잘 안다. ‘크다’라는 뜻의 ‘빅(big)’이다. 자카르타에 있는 그의 대궐 같은 집은? “크다.” 그가 이루어 놓은 사업 제국은? “아주 크다.” 현재 개발 중인 발리의 리조트는? “제일 크고 최고다.”

운전기사가 몰아주는 허머 H2 차량 뒷좌석에 탄 우리는 그가 자카르타 외곽에서 개발 중인 리도(Lido)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발리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보다 무려 30배나 큰 리조트 단지다.

“큰 프로젝트에요, 그렇지 않나요?” 그가 물었다.

동의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는 약 30분 거리에 있는 경쟁 리조트 란카마야(Rancamaya)로 가보자고 기사에게 지시했다. 자동차가 미국식 맥맨션(McMansions)을 지나칠 때 그는 리도 리조트 단지의 빌라동이 약 1300평방피트에 들어설 란카마야보다 (예상했듯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려 애썼다. 그가 기획 중인 리도 리조트의 크기는 무려 10만 평방피트다. “(거기도) 나쁘진 않은데, 우리 단지가 훨씬 좋을 거란 얘기죠.”

미국 대통령 중 누구와 말투가 아주 비슷하지 않은가? 그랬다면, 우연은 아니다. 타누수딥조는 트럼프의 인도네시아 사업 파트너다. 둘의 연결고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트럼프의 해외사업 파트너들은 죄다 트럼프와 비슷한 특성을 한 두 개쯤 가지고 있다. 단연코 눈에 띄는 공통점은 ‘카니발 호객꾼(트럼프의 별명)’의 자기홍보 능력이다. 그러나 타누수딥조에게 트럼프는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모방하고픈 전방위적인 롤모델이라는 점에서 좀 더 특이한 존재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타누수딥조 또한 차입금을 산처럼 끌어와서 부동산 및 미디어 사업에서 11억 달러로 추정되는 부를 쌓았다. 100만 명의 팔로워를 둔 그는 끊임없이 트위터에 글을 올린다. 미인대회를 주최하고, 리얼리티 TV를 사랑한다. 게다가 끝내주는 미모의 아내를 두고 있다. 타블로이드 언론에서 ‘도널드(The Donald)’라고 트럼프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만 부르는 것처럼, 인도네시아 언론도 그를 ‘타누수딥조’라고 부르기보다 그냥 편하게 ‘해리’라고 지칭한다.
 트럼프처럼 ‘인도네시아 대통령’ 꿈꿔
트럼프처럼 해리도 언제나 목마르다. 그 또한 정치에서 권좌에 오르는 걸 꿈꾸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의 대통령이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기준 세계 4위이고, GDP 기준 세계 16위다. 하나 덧붙이자면, 트럼프처럼 그 또한 온갖 스캔들의 중심이다. 최근에는 (서구에 보도가 되지 않았던) 정치 스캔들에 휘말렸다. 인도네시아 전임 대통령이 고위 공무원에게 살인 누명을 씌운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다. 해리는 이를 격렬히 부인하는 중이다.

“타누수딥조는 선거 운동을 끌고 갈 돈과 함께 여론에 실질적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자카르타 싱크탱크 인도네시아 정치연구센터의 공동 설립자 레이너 휴퍼스(Rainer Heufers)는 말했다. “따라서 그는 상대적으로 단시간에 존재감을 가진 정치인으로 부상할 잠재력이 있다.” 휴퍼스는 해리가 인도네시아를 참여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 체제로 끌고 가려는 정치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1월에 해리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 참가를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트럼프의 아들 에릭, 도널드 주니어와 만남을 가졌고, 뉴욕의 미디어 거물이 집결하는 레스토랑 마이클스(Michael’s)에서 점심을 먹었으며, 워싱턴에서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는 장대한 행사에도 참여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해리는 자신의 정치 야망을 축소해서 이야기하지만, 취임식 전날 워싱턴에 있는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로비에 앉아 있던 그는 시끌벅적하고 들뜬 축제 분위기에 감염됐는지 보다 솔직한 마음을 보여줬다. “10년 안에 인도네시아를 이끌게 될 것 같다”고 그가 자신의 멘토만큼 자신만만한 자세로 말했다.

니르와나 발리 골프클럽(Nirwana Bali Golf Club)에서 절벽 쪽에 자리한 7번 홀은 골프장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장관을 선사한다. 이곳은 해리와 트럼프 가문이 대변신을 시켜줄 리조트의 주요 레저 시설이다. 214야드 넓이의 3타짜리 홀 왼쪽에는 16세기에 지어진 힌두 사원 타나 롯(Tanah Lot)이 있다. 골프장 티 박스에 서면 성스러운 사원에서 은은히 풍겨 나오는 향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초록색 유니폼과 함께 원뿔 모양 밀짚 모자를 쓴 니르와나의 여성 캐디들은 흑사장이 펼쳐진 해변의 건너편 그린으로 공을 보낼 때 대개 5번 아이언을 추천한다.

“이곳은 발리 최고의 부동산이다. 발리의 상징과 같은 장소로 만들 것”이라고 해리가 인도양을 내다 보며 말했다. 그리고 숨도 쉬지 않고 덧붙였다. “여기다가 헬리콥터 이착륙장도 만들 거다.”

직원이 그에게 방금 딴 코코넛 열매에 빨대를 넣어 건네줬다. 수행팀은 손을 닦을 만한 작은 수건(트럼프와 마찬가지로 해리 또한 세균에 민감하다)을 끊임없이 준비했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그가 제일 먼저 타도록 신경 썼으며, 항목별로 세심히 구분한 일별 스케줄을 출력해서 건네줬다. 경호팀은 그를 볼 때마다 얼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경례를 했다. 해리가 이동을 할 때에는 대개 경찰의 수행을 받는다. 덕분에 그의 운전수는 자동차가 꽉 들어찬 인도네시아의 혼잡한 거리를 막힘없이 운전할 수 있다. 인터뷰를 하는 날 아침, 해리가 니르와나 리조트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자 직원들이 군대가 사열을 하듯 입구 계단에 줄지어 섰다. 손에는 무기가 아니라 깨끗한 핸드타월과 파인애플 주스가 들려 있었다.
 골프장과 호텔·리조트 소유한 부동산 부자
해리가 니르와나 리조트를 2억 달러에 구매한 해는 2013년이다. 같은 해 그는 자카르타 외곽에 위치한 더 큰 규모의 리도를 비슷한 가격에 매입했다. 그는 리도 호텔과 골프장 일부는 폐쇄했지만, 니르와나는 계속 개장했다. 그리고 두 개 리조트를 어떻게 할 지 개발 계획을 세웠다. 그는 프로젝트팀에게 파트너로 삼을 만한 인지도 높은 럭셔리 호텔 명단을 만들라고 지시했고, 결국 트럼프 기업(Trump Organization)을 선택했다. “호텔과 골프장에 전문화된 기업이라 트럼프를 선택했다”고 해리는 말했다. “인정해야 하지 않나. 트럼프 브랜드는 고급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2015년 해리는 트럼프 기업이 브랜드 이름을 빌려준 호텔과 골프장을 관리하고, 단지 내 빌라와 콘도에도 트럼프 브랜드 라이선스 권한을 빌리는 계약을 체결했다. 해리는 계약의 재무조건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지만, 업계 관계자가 통상적이라고 말한 내용을 기준으로 추정하면 트럼프는 호텔 매출액의 5%와 골프장 수입의 3%를 가져갔을 것이다. (트럼프 기업은 이번 기사를 위한 인터뷰를 거절했다.) 어차피 모든 자산은 해리의 것이고, 리도와 니르와나 건설에 필요한 자금도 100% 그가 부담하는 등, 모든 위험도 그의 것이다. 해리가 계약 관련해서 주로 만나는 사람은 도널드 주니어와 에릭이다. 이들은 파트너십을 발표하기 수개월 전 처음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대선 후 1월의 만남을 포함해 “여러 번 만났”지만,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니르와나 보수 작업은 올해 하반기 시작이다. 해리는 PGA 대회 개최를 위해 1990년대 그레그 노먼(Greg Norman)이 설계했던 골프장 코스를 연장하며 설계를 필 미켈슨(Phil Mickelson)에게 맡겼다. 그는 호텔에 대해서도 큰 야망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1박에 100~200달러 정도 받고 있지만, 2년 뒤 트럼프 호텔로 재개장하면 1박당 최소 600달러에서 최대 3000달러까지 숙박료 인상을 계획 중이다.

리도는 니르와나보다 보수 공사의 규모가 더 크다. 현재 시설은 대부분 허물고, 지금은 널따란 진흙밭인 곳은 어니 엘스(Ernie Els)의 설계에 따라 골프장으로 재단장할 계획이다. 리도의 부지가 워낙 넓다 보니 250에이커 면적의 테마파크를 건설할 여유도 있다. “리도를 방문한 사람들 입에서 ‘와우’라는 감탄사가 가장 먼저 튀어나오도록 만들 예정”이라고 그는 말했다. 2018~20년 사이로 예상되는 프로젝트 완공까지 리도와 니르와나의 대변신을 위한 투자금은 2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대단한 야심에 따라붙는 위험은 분명하다. 2억 5800만 인구의 90%가 무슬림인 국가에서 트럼프 브랜드를 파는 것이다. 취임 전만 해도 해리는 트럼프가 선거 운동 중 했던 반무슬림 발언이 “오해를 받은 것”이며 트럼프는 “과격 무슬림”만을 지칭한 거라고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 후 무슬림 입국금지 등으로 논란을 일으키면서 해리는 더 이상 트럼프와 관련된 주제에 관해 공식적으로 어떤 발언도 하지 않게 됐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날 밤, 해리는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의 로비 바 근처에 앉아 있었다. 벌써 몇 잔 마신 모습이었다. 페퍼민트 차를 시켜서 기운을 차린 그는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의 찻잔을 내 스카치 위스키잔에 부딪히며 “쭉 들이켜요”라고 말했다. “좀 있으면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겠군요.” 그가 들뜬 기분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준 분이죠.”

영감을 받은 때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트럼프처럼 그의 아버지 또한 건설 사업가였다. 주요 활동 도시는 자바 동부의 항구도시 수라바야(Surabaya)다. 아들의 성공을 꿈꿨던 아버지는 그를 캐나다 대학교로 유학 보냈고, 해리는 오타와 칼튼 대학(Carleton University)에서 재무를 전공했다.
 건설 사업가인 부친 도움으로 사업 시작
졸업 후 고국으로 돌아온 해리는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 돈을 받아 1989년 사업을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5000달러를 받아 중개 사업을 시작했다.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그는 사무소를 자카르타 서쪽에서 15시간 걸리는 지역으로 이전했고, 매출을 2400만 달러로 키워 1997년 MNC그룹으로 상장시켰다. 그러나 곧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회사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 혼란기를 맞은 그는 즉시 모드를 바꿔 헐값에 매물로 나온 기업 인수에 집중하며 “황금기를 이루었다”고 말했다. 향후 수 년간 그는 수십 개의 계약을 따냈고, 그 과정에서 10억 달러에 가까운 돈을 투자했다. 당시 그가 인수한 회사 중에는 TV 방송국 4개가 있는데, 이 중 2개는 최근 권좌에서 물러난 독재자 수하르토의 자식들이 소유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 그는 타 제작사 콘텐트 방송에서 MNC 자체 제작 방송으로 사업 모델을 바꾸었다. 그리고 연예기획사를 세워 자신이 스타로 키워낸 연예인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경직된 계급 사회 구조를 가진 인도네시아는 재능이 있어도 명성과 돈을 얻기가 미국보다 훨씬 힘들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스타를 배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 수 있음을 눈치챈 그는 <엑스 팩터(x-factor)> 와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 의 인도네시아 버전을 제작해 방송을 시작했다. (MNC는 대략 <거꾸로 뒤집힌 세상(the upside-down world)> 으로 번역되는 히트 드라마 등의 장르도 제작한다. 여주인공이 가장이고 남주인공은 “가정주부로 온갖 집안일을 하는” 스토리라고 해리가 설명하자 전원 남자인 해리의 수행단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2005년부터는 미스 인도네시아 연례 미인대회를 주최했고, 2013년에는 미스 월드를 개최했다. 인도네시아 프라임타임 시청률에서 MNC 비중은 40%에 달하며,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10개 중 5개는 MNC 것이다.

지칠 줄 모르는 해리는 하루에 최대한 많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뛰어다닌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그도 하루에 4시간 이상 자는 법이 없다. 기상 시각은 보통 새벽 4시나 5시다. 일어나자마자 그는 이메일이나 왓츠앱 메시지에 답을 한다. (인터뷰를 하는 날도 수 분마다 강박적으로 전화기를 확인하는 등, 종일 손에서 전화기를 놓지 않았다.) 중역들 또한 그와 속도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는 모든 일을 아주 빨리 해낸다. 사무실에서 그가 우리를 얼마나 밀어붙이는지 상상도 못할 것”이라고 트럼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MNC 부사장 이반 카사드발(Ivan Casadevall)은 말했다. “하루 12시간도 아니고, 18시간을 일한다.”

잠시도 가만히 못 있는 열정으로 그는 MNC의 사업을 확장시켰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차입금을 끌어오기도 했다. 현재 회사는 60여 개의 지역 방송국과 함께 4개의 전국 단위 방송국, 신문사 1개, 자카르타 MNC 사무실 부지를 개발하고 트럼프 리조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부동산 개발사 1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광산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수없이 많은 투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MNC 채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5년 만에 350% 증가해 22억 달러가 됐다. S&P 추산에 따르면, 이 중 2018년까지 만기에 도달하는 채무는 8억 달러다. 해리는 사실과 다르다며 실제 만기에 도달하는 채무가 보도된 금액의 절반 수준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무디스와 S&P는 MNC 모기업의 채권 등급을 정크본드로 평가했고, 수익 전망도 부정적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재정적 곤란에 빠질 리스크가 높아서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고 S&P 싱가포르에 주재하는 신용 애널리스트 자비에르 진(Xavier Jean)이 말했다. 그는 MNC가 채무 불이행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향후 수개월 내 만기가 도래하는 일부 채무를 재조정해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포퓰리즘으로 무장한 억만장자’ 이미지
이런 상황은 해리가 대선 당시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사업에 100% 집중하지 못하는 때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그는 MNC 최대 언론사 CEO직에서 물러났다. “지금 여기 오는 게 맞는지 헷갈리네요.” MNC 사무빌딩 중 하나로 들어와서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려다 멈칫한 그는 말했다. 그는 MNC 채무 우려에 근거가 없다고 일축하며 회사를 더 이상 크게 확장시킬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더 많은 분야로 확장할 경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지금은 정계에 입문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기업 경영을 벗어나서 정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2014년 선거 직전 인도네시아 정계로 용감히 발을 내디딘 해리는 혼돈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스뎀(Nasdem) 정당에 들어갔던 그는 지도부와 각을 세우다가 탈당했고, 이후 두 번째 정당 하누라(Hanura)에 합류해 퇴역 장성 위란토(Wiranto, 다른 많은 인도네시아인과 마찬가지로 성 없이 그냥 ‘위란토’로 불린다)의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그러나 이후 보다 유력하고 인지도 높은 후보들이 출마하면서 이들의 선거 운동은 빠르게 동력을 잃었다. 결국 경선에서 패배한 해리는 괴팍한 성격으로 자신을 알리고 대통령제의 독재적 성격을 강화하자고 제안한 또 다른 퇴역 장성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를 지지했다. 그러나 결국 대선에서는 좀더 온건한 성격의 조코 위도도가 승리했다.

대선 이후 해리는 정당을 창당하기 위해 나섰고, 2014년 10월 페린도(Perindo)당을 세웠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즉시 소셜미디어를 활용했다. 사진기자를 고용해 자신이 어디를 가든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도록 했고, 다수의 사진을 즉시 트위터에 올렸다. 그는 하루에 12번 이상 트위터에 글을 남길 때가 많다. 이전에만 해도 해리는 자신의 대선 야망에 대한 추측성 보도가 나올 때마다 “모두가 내 출마를 원하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며 고삐를 잡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1월 워싱턴에서 만난 그는 모든 겉치레를 벗어 던진 모습이었다. “정당은 나라를 위해 일하기 위한 디딤돌이다. 나는 출마해야 한다.”

해리 앞에는 ‘포퓰리즘으로 무장한 억만장자’ 이미지 탈피 외에도 극복할 것이 많다. 일단, 중국 화교가 인구의 1% 밖에 되지 않는 곳에서 화교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게다가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에 사는 그의 종교는 기독교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가 설득력 있어 보이는 쪽으로 상황이 변하고 있다. 2011년 6.2%였던 경제성장률은 가장 최근 공개된 2015년 데이터 기준 4.8%까지 줄어드는 등, 계속 하향 추세다. “미국에서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승리했다”고 해리는 말했다. “여기서도 ‘인도네시아를 다시 위대하게’가 화두다. 내가 정계로 뛰어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화교 출신에 기독교인이라는 약점
해리는 ‘수정’ 민주주의에 장점이 있다고 본다. “미국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모습”이라고 그는 말했다. 자본주의도 ‘반자유시장’의 형태를 가진다. “자유시장은 나 같은 기업가한테 좋고, 인도네시아에는 좋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중국의 국가체제와 정부 통제식 경제가 인도네시아에 맞는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한다. 인도네시아 사탕수수 재배기간이 되면 사탕수수 수입을 제한해 농가가 높은 가격에 작물을 판매하도록 돕는 식이다. “언론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하지만, 권력자는 예외”라고도 그는 말했다. 인도네시아의 기성 정치인이 돈을 주고 시위대를 조직해 자신의 의견을 여론처럼 호도하는 행위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그는 빈곤층을 위한 주택 보조금과 학자금 대출을 옹호하기도 한다.

“트럼프는 힘든 서민을 위한다는 전략을 피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나 또한 거기에 우선순위를 둔다.” 인도네시아에 널리 퍼진 서구의 영향에 대해서는 좋게 보다가도(“국가가 어려움에 처하면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게 좋다”) 금세 조소를 보내는 발언을 한다(“세계은행이나 유엔, IMF는 자카르타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는 인터뷰 중 “우리 당은 떠오르는 별”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치 전문가 대다수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용언어가 700개가 넘고 1만3466개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에서 인지도가 낮은 데다가 화교 출신에 기독교인 그가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승산이 있는 방법은 2019년 대선에서 다른 후보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합류해서 선거 자금을 대고, 다음 번 대선에서 후보로 나오는 길뿐이라고 대다수는 말한다.

그에게 활용 가능한 무기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그의 확성기가 되어줄 미디어이고, 나머지 하나는 트럼프와의 연결 고리다.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 덕분에 국가에 이득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길 것”이라고 인도네시아 전문통이자 기업컨설턴트인 애널리스트 케빈 오루르크(Kevin O’Rourke)는 말했다.

“모두가 나만 보면 트럼프에 관해 묻는다”고 해리는 말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코이바 시가와 3500달러짜리 코냑을 마시며 편안히 휴식을 취할 때였다. “이메일을 보내고, 메시지를 보낸다. 트럼프와는 비즈니스적인 관계지, 개인적으로 아는 게 아니라고 말해준다.” 물론 정치적인 관계도 아니다. “트럼프는 심지어 비즈니스 회의에도 잘 참여하지 않는다.” 그래도 위도도 대통령이 트럼프를 상대할 때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나설 생각이 있다고 해리는 말했다. “만남을 주선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기꺼이 도울 거다.”

해리가 만든 그만의 백악관은 그의 롤모델 트럼프가 사는 백악관과 어깨를 겨룰 정도다. 자카르타의 블록 하나를 다 차지한 부지의 한가운데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기둥이 보이고, 곳곳에 야자나무가 서 있다. 영화 <스카페이스(scarface)> 에 나온 거대한 목사관이나 마라라고(Mar-a-Lago)와 꼭 닮은 모습이다. 비단잉어가 힘차게 헤엄치는 연못 여러 개와 함께 침실 10개가 있으며, 23명의 상주 직원이 상시 대기 중이다. 다시 말해, 아주 트럼프스럽다.

해리는 이곳이 고요하고 평화롭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 이곳으로 초대를 받았기에 ‘고요한 곳’이라는 그의 설명이 마음에 들었다. 8년 전, 인도네시아에서는 대단한 정치 스캔들이 있었다. 반부패위원회 의장인 안타사리 아즈하(Antasari Azhar)가 친구 살해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에서 18년형을 선고 받은 사건이었다. 삼각관계에서 연적이었던 친구를 죽인 치정 살인으로 알려졌지만, 반부패위원장이었던 아즈하가 권력자를 수사하던 중 음모에 휘말려 대가를 치렀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아즈하는 복역을 마치지 않고 2016년 11월 석방됐고, 이후 현 대통령의 사면을 받았다.

초대를 받아 해리의 저택을 방문하기 하루 전에, 아즈하가 언론에 대고 폭탄성 발언을 했다.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었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 해리를 통해 유도요노의 사돈을 향한 수사를 멈추지 않으면 엄청난 대가를 치를 거란 협박을 했고, 자신이 이를 거절하자 누명을 씌웠다”는 주장이었다. “조심하는 게 좋다”고 해리가 말을 전했다고 아즈하는 주장했다. 당시 그는 위협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사법집행을 담당하다 보니 그런 협박을 자주 받는다”고 그는 말했다), 어느 새 재판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풀장 옆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던 해리는 태연해 보이려고 애썼지만, 다음 행보를 숙고 중인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정치 게임판은 더럽다”고 그는 말했다. 코이바 시가 연기를 내뿜은 그는 방금 디캔팅을 한 보르도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포커페이스를 가져야 한다. 침착함을 잃어선 안 된다.” 유도요노와 마찬가지로, 그 또한 아즈하의 발언에 득 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단순히 정치적 의도를 가진 공격이라는 주장이다.

그렇게 말을 끝낸 그는 나를 저택 안쪽으로 불렀다. 트럼프식이라 볼 수 있는 성대한 정찬이 차려져 있었다. 18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는 장미와 백합으로 꾸민 꽃장식이 센터피스로 놓여져 있었고, 각 의자 앞에는 개인 메뉴가 놓여 있었으며, 옆에는 블랙 넥타이를 매고 조끼를 입은 웨이터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와 자녀 중 4명(한 명은 로스엔젤레스에 거주 중)이 자리를 함께 했다. 해리가 워렌 버핏의 이름을 따서 지은 15세의 아들 워렌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인도네시아판 제작하겠다”
샤토 라피트 로쉴드 2000년 빈티지 와인을 곁들여 샤르 쿠테르와 오리고기 콩소메, 조개, 생선, 와규 비프 요리를 차례대로 먹고 화이트 초콜릿 무스까지 물 흐르듯 대접이 이어졌다. 늘 그렇듯 해리가 대화를 이끌었다. 그가 손짓을 할 때마다 주문 제작한 리처드 밀 손목시계가 살짝 보였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뱀 모양 장식이 화려했다. (“전세계에서 오직 한 개만 있는 디자인이죠.” 족히 100만 달러는 됨직한 시계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가족 식사에서 으레 볼 수 있는 순간도 있었다. 해리와 릴리아나가 어린 시절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부부가 함께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가서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정확히 9개월 후 워렌을 얻었다는 이야기 등이 오갔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트럼프가 대선에서 어떻게 이겼는지 묻는 질문으로 채워졌다. 해리는 트럼프의 승리 비결과 함께 어떤 지역이 그의 승리를 이끌었는지 등 미국에 관한 질문을 내게 퍼부었다.

“ <어프렌티스> 시리즈는 누가 계속하죠?”라는 질문도 나왔다. 그는 자신이 호스트로 나선 인도네시아판 <어프렌티스> 제작을 고려 중이다. 트럼프는 <어프렌티스> 를 진행하며 성공한 기업의 최종 결정권자로 이미지를 굳혔고, 결국 대통령까지 됐다. 트럼프에게 “당신은 해고야(You’re fired)”라는 유행어가 있었다면, 해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억만장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할 만한 답을 즉각 내놓았다. “당신은 멍청해(You’re stupid).”

- ABRAM BROWN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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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스기사] 트럼프와 러시아는 어떤 관계?
도널드 트럼프는 러시아와 어떤 관계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정말 사실이 아니다. 그가 확실한 동업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러시아에 두 명 있다. 한 명은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고, 나머지 한 명은 글로벌 팝가수를 꿈꾸는 모스크바 부동산 개발업자다.

우선 펠릭스 세이터(Felix Sater, 51)를 살펴보자. 러시아 출생의 세이터는 뉴욕에 본사를 둔 베이록(Bayrock)에서 일했고, 회사는 2000년대 초반 트럼프와 트럼프 소호 등의 부동산 개발을 함께 추진했다. (베이록에 합류하기 전, 세이터는 월스트리트에서 중개인으로 일했다. 그러다 술집에서 싸움을 벌였고, 마가리타 잔을 깬 유리 조각으로 상대편 남자의 얼굴을 찌른 혐의로 1년간 수감됐다. 이후 1998년에는 마피아와 공모해 작전주 투자를 유도한 증권사기 혐의를 인정하고 복역을 면하는 대가로 연방수사국 정보원 노릇을 했다.) 베이록에서 세이터는 트럼프 브랜드를 붙인 러시아 부동산 개발을 위해 트럼프와 독점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2006년 세이터는 도널드 주니어, 이반카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세이터는 트럼프로부터 자녀들의 모스크바 관광을 함께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고, 트럼프 변호사는 세 명이 동시에 모스크바에 있었던 건 순전히 우연이라고 주장했다.

2007년 뉴욕타임스가 세이터의 전과 이력을 보도했지만,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3년 뒤 그를 ‘선임 고문’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세이터는 트럼프기업 공식 명함, 이메일 계정과 함께 트럼프 타워 사무실도 배정 받았다. 세이터는 이제 트럼프기업 직원이 아니지만, 그와 트럼프기업과의 관계가 언제 끝났는지는 불분명하다. 트럼프는 최근에도 세이터를 잘 알지 못한다고 둘의 관계를 축소하는 발언을 했다. 2015년 12월 AP와의 인터뷰에서는 “펠릭스 세이터라…글쎄, 기억을 더듬어야 할 정도인데. 그를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월 말 세이터와 우크라이나 국적의 변호사가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헨(Michael Cohen)과 뉴욕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타임스에 따르면, 이들은 러시아 경제제재를 중단하는 계획에 대해 논의했으며, 코헨은 문서를 밀봉된 종이에 넣어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던 마이클 플린(Michael Flynn)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코헨은 백악관 누구에게도 밀봉된 봉투를 전달한 적이 없다고 이전의 발언을 부인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전과자·팝스타와 친분트럼프가 러시아와 가진 두 번째 끈은? 팝스타를 꿈꾸는 에민 아갈라로프(Emin Agalarov, 37)다. 부동산 재벌 아라스(Aras, 61)의 아들인 그는 아버지와 함께 부동산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과 트럼프의 인연은 2013년 시작됐다. 당시 이들은 트럼프기업에 700만 달러를 주고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모스크바에서 개최했다. (대회에서 에민은 참가자와 함께 공연을 했다.)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아갈라로프 부자는 트럼프와 두 번째 사업 계획에 착수했다. 러시아에 트럼프타워를 세우는 일이다. 그러나 계획을 상세히 진행시키기도 전에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프로젝트는 보류됐다. “그가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아마 건설 단계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에민은 말했다.

연령대로 보면 아라스와 트럼프가 가까워 보일지 몰라도, 실제 트럼프와 각별한 관계를 맺은 건 에민이다. 2013년 에민의 요청으로 트럼프는 그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1년 뒤 트럼프는 에민의 35번째 생일에 다음과 같은 축하 메시지를 동영상으로 보냈다. “자네는 승자야. 챔피언이지. 그리고 부동산 감각이 뛰어나.” 최근에는 2015년까지 에민과 트럼프가 함께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트럼프가 출마 선언을 하기 직전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다”고 에민은 말했다.

“그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각별한 신경을 써준다.”

5월에 마이애미와 뉴욕, LA, 시카고를 돌며 미국 투어에 나서는 에민은 지난 수 개월간 에릭 트럼프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았으며, 트럼프기업과 파트너십을 재개하기 위해 열심이다. “뭐든 트럼프와 관련된 것이라면 추진할 용의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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