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의 G(글로벌)와 I(나)사이 HR (14)
김기찬의 G(글로벌)와 I(나)사이 HR (14)
삼성전자 인도 공장의 인사시스템은 독특하다. 장대하진 않지만 창조적이고, 문화적이다. 사람이 녹아 있고, 경영이 동화돼 있다. 인도에서 삼성전자는 최고의 기업 중 하나다. 인도 부유층이 사용하는 냉장고 10대 중 3대는 삼성전자에서 만든 거다. 휴대폰도 삼성전자 제품이 가장 많다. 삼성전자에 다니는 근로자는 일등 신랑·신붓감으로 꼽힌다. 직원이란 사실만으로 부러움을 산다.
필자가 삼성전자 인도 노이다공장을 방문했던 10년 전에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그 대단한 위세에 놀랐었다. 한데 인도를 휘어잡는 원동력을 접하곤 무릎을 탁 쳤다. ‘그저 감탄사만 나왔다’고 하는 게 맞다. 필자를 충격에 빠뜨린 건 딱 하나였다. 인도 공장이 만들어 적용하고 있는 독특한 인사시스템이다. 장대하진 않지만 창조적이고, 문화적이었다. 사람이 녹아 있고, 경영이 동화돼 있다. 그 시스템 자체를 감동이라고 부를 만 했다.
삼성전자 노이다공장은 채용 때부터 독특한 시스템을 적용한다. 의도적으로 노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회사로선 매뉴얼에 따라 채용 과정을 수행할 뿐인데 자연스럽게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를 인도 전역에 각인시킨다. 인도 문화에 녹아들어 동질감마저 느끼게 한다.
당시 노이다공장은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생산인력을 뽑았다. 최고경영자(CEO)인 공장장이 인사담당 간부와 함께 현지를 찾아 가는 형식이었다. 심지어 히말라야 자락의 오지 마을도 간다. 차가 못 가는 험한 길을 걸어 오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마을을 찾아 학교나 공터 같은 곳에서 채용시험을 치른다. 채용시험이래야 성실성과 인성을 점검하는 정도다. 어차피 기술은 회사에서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의 관청은 시험장 제공 같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주민들은 삼성의 방문에 일손을 놓고 달려온다. 삼성전자가 마련한 약간의 선물이 더해지면서 마을 전체가 축제화한다.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각인되는 건 물론이다. 이렇게 찾아가는 채용제도로 뽑는 인원은 각 지역에서 기껏해야 2~5명 정도다. 그러나 촌락으로 찾아온 글로벌 기업의 손길은 그들에겐 꿈 같은 일로 받아들여지고, 인근 마을로 입소문을 타고 번져간다. 왜 이렇게 고달픈 채용시스템을 만든 것일까. 당시 공장장이던 유영복 상무는 “어차피 기술을 배운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서 굳이 한군데 모아 집단공채형식으로 뽑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찾아가서 뽑으면 회사에 대한 충성도, 즉 애사심이 높아져 생산성에 도움이 된다. 그러면서 또 다른 비밀도 털어놨다. 인도의 노조가 가진 독특한 성향이다.
인도 노조는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모든 인도의 노사분규는 사실상 정치분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두고 파업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정당의 이해관계와 함께 움직인다. 오죽하면 모 일본 자동차 공장에선 주지사 선거에서 노조가 지지하는 정당 후보가 낙선하자 파업을 감행하고, 이를 말리며 설득하던 관리직을 노조간부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삼성전자는 근로현장에 정당의 색을 빼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조금씩 인력을 선발하는 쪽을 택했다. 자연스럽게 근로자들은 근로조건에만 관심을 가질 뿐 정치색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직원 인사관리도 사람 중심이다. 주말이면 공장장을 비롯한 간부가 근로자의 집을 순회한다. 집단움막집인 경우도 있다. 비닐이나 흙으로 만든 움막 안 흙바닥에 함께 주저앉아 식사를 한다. “좋은 인재를 보내줘서 고맙다”며 가족의 손을 일일이 잡고, 필요한 생필품을 전달하고, 포옹하고, 노래하며 즐긴다. 그 가족이 삼성 사람이 되는 건 불문가지다.
인도 근로자는 좀 느리고 좋은 게 좋은 명상형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삼성전자에서도 처음엔 불량품이 속출하고, 생산성은 크게 낮았다. 유 공장장은 불량품이 나오면 지적하는 대신 그 수만큼 꽃을 가져다 놨다. 불량품이 줄어들었다. 인도 사람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해 생일 때는 극장표를 돌렸다.
무엇보다 독특한 건 인도의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를 십분 활용하면서 카스트 제도를 무력화한 인사정책이다. 초기엔 현장 근로자 가운데 출·퇴근 때는 물론 회사 안에서도 가방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신분질서가 팽배했다.
유 공장장은 이걸 승진에 따른 등급제로 확 바꿨다. 공장 안에서만큼은 최고 계급이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가 아니라 마스터가 되도록 했다. 마스터에 오르려면 여러 단계의 등급을 거쳐야 한다. 한데 마스터가 되기 위해 한밤에도 공장에 남아 기술을 연마하는 근로자가 부지기수다.
마스터가 된다고 해서 월급이 확 오르는 것도, 성과급이 엄청나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 오르려 난리다. 답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통근버스다. 마스터가 되면 그가 지정한 통근버스 좌석에 금박으로 이름을 새긴 커버가 씌워진다. 통근버스가 미어터져도 그 자리는 비워둔다. 오로지 이름이 새겨진 마스터만이 앉을 수 있다. 카스트 제도상 브라만 계급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공장에서 만큼은 마스터라는 명예보다 더 나은 계급이 없는 셈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이보다 더 큰 동기부여가 있을까. 인도 사회 특유의 신분제도를 무턱대고 배척하기보다 경영상 아이템으로 바꾸고, 공장에 이식해 문화경영학을 일군 것이다. 유 공장장은 “돈으로 성과를 관리하는 건 낮은 수준의 인사제도다. 제대로 된 동기부여가 성과관리의 기본이고, 인적 자원관리의 정도(正道)”라고 말했다.
요즘도 이런 경영관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삼성전자의 광고에 전 인도인이 열광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삼성이 찾아갑니다(We will take care of you wherever you are)’라는 제목의 4분짜리다. 역대 인도 광고 사상 최초로 조회 수 1억 건을 돌파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광고 내용은 앞에서 기술한 인사시스템과 흡사하다. 인도의 오지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엔지니어가 서비스차를 타고 찾아간다. 쓰러진 나무, 패인 웅덩이 등 험준한 길을 먼지 바람 일으키며 달린다. 도착지에서 그에게 다가온 사람은 장애우 교사였다. 엔지니어가 TV를 수리하자 장애를 안은 어린이들이 TV 앞으로 몰려들고, 노랫소리 속에 광고가 끝난다. “100번 넘게 봤다”, “마법에 홀린 것 같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지난해 10월 삼성전자는 인도에 197억 루피(34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해 노이다 공장을 증설하기로 했다. 투자가 끝나면 인도 공장에서의 스마트폰 생산량은 두 배로 늘어난다. 무려 연간 1억2000만 대가 된다.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다. “무조건 따라오라고 하는 것은 평균 이하의 성과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무슨 일이든 함께 협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한 뒤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람을 존중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매년 포브스가 뽑는 일하기 좋은 회사의 공통점은 회사에서 끊임없이 직원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회사에서 CEO든, 전문가든 성장할 수 있다는 비전을 준다. 결국 동기부여는 사람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동기부여가 잘 되면 성과는 덤으로 따라온다. 요즘 경영인이 이런 점을 놓치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김기찬 - 중앙일보 라이팅에디터·고용노동선임기자.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하고, 코리아텍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한국인사관리학회 부회장 (산학협동)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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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삼성전자 인도 노이다공장을 방문했던 10년 전에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그 대단한 위세에 놀랐었다. 한데 인도를 휘어잡는 원동력을 접하곤 무릎을 탁 쳤다. ‘그저 감탄사만 나왔다’고 하는 게 맞다. 필자를 충격에 빠뜨린 건 딱 하나였다. 인도 공장이 만들어 적용하고 있는 독특한 인사시스템이다. 장대하진 않지만 창조적이고, 문화적이었다. 사람이 녹아 있고, 경영이 동화돼 있다. 그 시스템 자체를 감동이라고 부를 만 했다.
삼성전자 노이다공장은 채용 때부터 독특한 시스템을 적용한다. 의도적으로 노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회사로선 매뉴얼에 따라 채용 과정을 수행할 뿐인데 자연스럽게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를 인도 전역에 각인시킨다. 인도 문화에 녹아들어 동질감마저 느끼게 한다.
당시 노이다공장은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생산인력을 뽑았다. 최고경영자(CEO)인 공장장이 인사담당 간부와 함께 현지를 찾아 가는 형식이었다. 심지어 히말라야 자락의 오지 마을도 간다. 차가 못 가는 험한 길을 걸어 오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마을을 찾아 학교나 공터 같은 곳에서 채용시험을 치른다. 채용시험이래야 성실성과 인성을 점검하는 정도다. 어차피 기술은 회사에서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의 관청은 시험장 제공 같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주민들은 삼성의 방문에 일손을 놓고 달려온다. 삼성전자가 마련한 약간의 선물이 더해지면서 마을 전체가 축제화한다.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각인되는 건 물론이다. 이렇게 찾아가는 채용제도로 뽑는 인원은 각 지역에서 기껏해야 2~5명 정도다. 그러나 촌락으로 찾아온 글로벌 기업의 손길은 그들에겐 꿈 같은 일로 받아들여지고, 인근 마을로 입소문을 타고 번져간다.
카스트 제도를 무력화한 삼성의 정책
인도 노조는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모든 인도의 노사분규는 사실상 정치분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두고 파업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정당의 이해관계와 함께 움직인다. 오죽하면 모 일본 자동차 공장에선 주지사 선거에서 노조가 지지하는 정당 후보가 낙선하자 파업을 감행하고, 이를 말리며 설득하던 관리직을 노조간부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삼성전자는 근로현장에 정당의 색을 빼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조금씩 인력을 선발하는 쪽을 택했다. 자연스럽게 근로자들은 근로조건에만 관심을 가질 뿐 정치색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직원 인사관리도 사람 중심이다. 주말이면 공장장을 비롯한 간부가 근로자의 집을 순회한다. 집단움막집인 경우도 있다. 비닐이나 흙으로 만든 움막 안 흙바닥에 함께 주저앉아 식사를 한다. “좋은 인재를 보내줘서 고맙다”며 가족의 손을 일일이 잡고, 필요한 생필품을 전달하고, 포옹하고, 노래하며 즐긴다. 그 가족이 삼성 사람이 되는 건 불문가지다.
인도 근로자는 좀 느리고 좋은 게 좋은 명상형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삼성전자에서도 처음엔 불량품이 속출하고, 생산성은 크게 낮았다. 유 공장장은 불량품이 나오면 지적하는 대신 그 수만큼 꽃을 가져다 놨다. 불량품이 줄어들었다. 인도 사람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해 생일 때는 극장표를 돌렸다.
무엇보다 독특한 건 인도의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를 십분 활용하면서 카스트 제도를 무력화한 인사정책이다. 초기엔 현장 근로자 가운데 출·퇴근 때는 물론 회사 안에서도 가방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신분질서가 팽배했다.
유 공장장은 이걸 승진에 따른 등급제로 확 바꿨다. 공장 안에서만큼은 최고 계급이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가 아니라 마스터가 되도록 했다. 마스터에 오르려면 여러 단계의 등급을 거쳐야 한다. 한데 마스터가 되기 위해 한밤에도 공장에 남아 기술을 연마하는 근로자가 부지기수다.
마스터가 된다고 해서 월급이 확 오르는 것도, 성과급이 엄청나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 오르려 난리다. 답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통근버스다. 마스터가 되면 그가 지정한 통근버스 좌석에 금박으로 이름을 새긴 커버가 씌워진다. 통근버스가 미어터져도 그 자리는 비워둔다. 오로지 이름이 새겨진 마스터만이 앉을 수 있다. 카스트 제도상 브라만 계급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공장에서 만큼은 마스터라는 명예보다 더 나은 계급이 없는 셈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이보다 더 큰 동기부여가 있을까. 인도 사회 특유의 신분제도를 무턱대고 배척하기보다 경영상 아이템으로 바꾸고, 공장에 이식해 문화경영학을 일군 것이다. 유 공장장은 “돈으로 성과를 관리하는 건 낮은 수준의 인사제도다. 제대로 된 동기부여가 성과관리의 기본이고, 인적 자원관리의 정도(正道)”라고 말했다.
요즘도 이런 경영관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삼성전자의 광고에 전 인도인이 열광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삼성이 찾아갑니다(We will take care of you wherever you are)’라는 제목의 4분짜리다. 역대 인도 광고 사상 최초로 조회 수 1억 건을 돌파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동기부여는 사람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
지난해 10월 삼성전자는 인도에 197억 루피(34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해 노이다 공장을 증설하기로 했다. 투자가 끝나면 인도 공장에서의 스마트폰 생산량은 두 배로 늘어난다. 무려 연간 1억2000만 대가 된다.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다. “무조건 따라오라고 하는 것은 평균 이하의 성과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무슨 일이든 함께 협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한 뒤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람을 존중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매년 포브스가 뽑는 일하기 좋은 회사의 공통점은 회사에서 끊임없이 직원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회사에서 CEO든, 전문가든 성장할 수 있다는 비전을 준다. 결국 동기부여는 사람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동기부여가 잘 되면 성과는 덤으로 따라온다. 요즘 경영인이 이런 점을 놓치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김기찬 - 중앙일보 라이팅에디터·고용노동선임기자.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하고, 코리아텍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한국인사관리학회 부회장 (산학협동)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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