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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감각’을 만끽하다

공포의 ‘감각’을 만끽하다

유년 시절의 악몽 떠올리는 ‘리틀 나이트메어’, “꼬마 소녀를 악의와 탐욕의 구렁텅이에서 탈출시켜라!”
노란 우비를 입은 작은 소녀 식스는 ‘목구멍’으로 불리는 끔찍한 곳을 탈출해야 하지만 괴물들의 손이 계속 다가온다. / 사진제공·TARSIER
아주 무시무시한 세상이다.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극심한 공포가 우리를 짓누른다. 증오와 탐욕이 연민과 공감을 압도하는 것이 시대적 대세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처럼 우린 끔찍한 시대를 살아간다. 그러나 약간의 희망마저 없는 건 아니다.

타시어 스튜디오의 게임 ‘리틀 나이트메어(Little Nightmares)’에선 커다란 모자가 달린 노란 우비를 입은 작은 소녀 ‘식스’가 희망과 천진함을 상징한다. 식스는 ‘목구멍(The Maw)’라고 불리는 끔찍한 선박에서 탈출하려고 한다. 그게 무엇이든 그곳은 적의와 추악한 풍요가 지배하는 거대한 공간이다. 먹이를 찾아 헤매는 타락한 영혼들의 소굴이며 구석구석마다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다.

‘리틀 나이트메어’는 그림자가 전부 다 거대한 어둠으로 느껴지던 유년 시절의 꿈과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게임이다. 거인의 나라처럼 모든 것이 커 보이는 그곳은 조그마하고 연약한 식스에게 어울리는 세계가 아니다. 늘 보듯이 익숙한 물건과 장소로 구성된 우리의 일상 세계처럼 보이지만 너무도 섬뜩하고 처참한 모습이다. 배경은 물론 등장인물, 각종 사물들은 마치 ‘인형의 집’을 보는 것 같이 왜곡된 모습이다. 어린 아이의 시점에서 느끼는 공포를 기괴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틀 나이트메어’는 기본적인 줄거리 구성(작은 아이가 끔찍한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과 게임 방식 둘 다에서 게임개발사 플레이데드의 클래식 ‘림보’와 ‘인사이드’를 많이 본떴다. 그 게임 중 하나를 해봤다면 ‘리틀 나이트메어’의 퍼즐 모험 플랫폼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식스는 물리학에 기초한 퍼즐을 풀며 주변의 물건을 밀고 당기고 끌어 새로운 길과 숨겨진 통로를 찾아내야 한다. 그렇다고 플레이데드의 클래식 게임들과 완전히 같진 않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계를 이동하면서 각 지역마다 나오는 3차원의 하부 세계에서 돌아다닐 수 있다.

그런 깊이는 현실감을 더해 지저분한 환경이 실제처럼 와닿고 식스도 그 세계의 일부처럼 느끼도록 해준다. 만약 이동이 2차원에 제한된다면 환경이 그냥 배경의 연속처럼 느껴질 것이다.

‘목구멍’은 부패한 영혼들이 곪아터지고 탐욕과 폭식을 잉태하는 곳이다. 마치 도살장처럼 고기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주제다. 살코기가 무시무시한 형태로 갈고리에 걸려 있다. 그중 일부는 잘라지고 해체돼 ‘목구멍’의 거주자들이 먹어치운다. 말라 붙은 피와 신선한 피가 모든 곳에 칠해져 있다. 하나의 세계로선 불길하고 역겨운 곳이지만 비디오게임 세팅으로선 더할 나위 없다. 타시어의 개발팀이 그 뒤틀린 환상을 멋지게 만들어냈다.
파이프를 건너 이동할 때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발을 내려 디뎠다간 아래로 굴러 떨어져 죽을 수 있다. / 사진제공·TARSIER
시각과 청각의 측면에서 ‘리틀 나이트메어’는 흠잡을 데 없다. 그러나 게임을 보여주는 방식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 2차원의 시각과 3차원의 이동이 때로는 충돌하면서 공간적 인식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파이프나 널빤지를 건너 이동할 때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발을 내려 디뎠다가 몇 번 죽음을 맞았다.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플레이어에게 원치 않는 스트레스를 준다. 나의 경험으로선 게임을 통해 고조된 긴장이 약간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3차원의 이동은 게임에 추가적인 차원을 제공한다. 그로써 타시어는 기본적인 스텔스 요소를 도입할 수 있었다. 식스는 ‘목구멍’의 소름끼치는 거주자(눈이 멀고 팔이 길며 병적으로 비만인 괴물 요리사)가 있는 곳에 들어갈 때마다 들키지 않기 위해 사뿐사뿐 걷고 그림자 속에 숨어야 한다. 들키면 괴물이 사악하게 울부짖고 비명을 지르며 식스를 뒤쫓는다. 추격이 시작되면 게임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마지막 몇 초의 공황 속에서 공포가 엄습한다.
식스는 ‘목구멍’의 소름끼치는 괴물 요리사가 있는 곳에 들어갈 때마다 들키지 않기 위해 사뿐사뿐 걷고 그림자 속에 숨어야 한다. / 사진제공·TARSIER
이 게임은 ‘답을 주지 않는’ 진행 방식을 사용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까지는 결과를 알 수 없으며, 게임 속 세계를 탐험하면서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동시에 등장인물의 대사를 없애는 대신 소음 효과음의 비중을 높여 분위기를 극적으로 조성한다. 특히 스웨덴의 뮤지션 토비아스 릴리아가 만든 사운드트랙이 이 게임을 잘 받쳐준다. 음악이 상황을 압도하지 않고 잔잔히 뒷전에 머물며 때를 기다린다. 마치 이 끔찍한 곳에서 피어나는 듯한 썩은 고기 냄새처럼 음악이 배경에서 맴돌며 긴장에 맞춰 서서히 고조되다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등골이 오싹한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전율을 선사한다. 스토리 디자이너 데이브 메르빅은 “피가 튀는 호러 게임을 구현하기보다는 공포의 ‘감각’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리틀 나이트메어’는 여러 면에서 플레이데드의 클래식 게임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알맹이 없는 모방 작품은 결코 아니다. 특히 타시어의 디자인이 빼어나다. 노련한 팀에게서만 기대할 수 있는 예술성이 엿보인다. ‘리틀 나이트메어’는 ‘림보’와 ‘인사이드’의 짝퉁 게임이 아니라 그런 클래식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작품이다.

- 벤 스키퍼 아이비타임즈 기자

[박스기사] 우리의 평가 - ‘리틀 나이트메어’ ★★★★ -

플랫폼: PS4, 엑스박스 원, PC


‘리틀 나이트메어’는 보기 드문 호러 게임이다. 위험 요소들이 캐릭터를 공격해 유혈 낭자한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충격을 주는 게 아니라 피부 아래를 뭔가가 기어가는 듯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며 무시무시함이 내면 깊숙이 파고 들어 증폭된다. 희망과 천진함, 그리고 슬프게도 현시대의 두려움을 부추기는 부패가 주제다. 게임 방식의 일부 문제로 플레이데드의 ‘인사이드’ 같은 클래식 지위를 누리긴 어려울지 모르지만 예술성 높은 공포를 즐기는 게이머에겐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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