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이 내 인생 이끌었다”
“직관이 내 인생 이끌었다”
벨기에 인테리어 디자이너 악셀 베르보르트, 미술 작품 전시회 통해 관람객과 자신의 체험 공유하길 원해 가장 먼저 직관이 있다. 판단이나 추리 같은 사유를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 파악하는 작용을 말한다. 거기서 혁신이 시작된다. 과학자에게 갑작스럽게 하나의 가설이 떠오를 때, 아니면 화가가 캔버스 위에서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 때가 그렇다. 벨기에의 유명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골동품 수집가 겸 화상인 악셀 베르보르트(69)도 바로 거기서 시작했다. 그는 “직관이 언제나 내 인생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베르보르트는 오랫동안 직관을 따라 살아왔다. 1960년대 중반 10대 시절부터 유럽의 골동품과 그림을 싼값에 구입해서 비싸게 팔았다. 21세 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한 점을 2400달러에 사서 4만7600달러의 이익을 남기고 팔기도 했다. 곧 고객들이 그에게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전시 협조부터 실내 디자인, 집 설계까지 다양한 요청이 들어왔다. 그는 미술과 디자인에서 고대와 현대를 융합하고, 부드러운 색채를 혼합하며, 돌 표면과 나무 바닥을 다듬어 편안하고 고급스러우면서도 미니멀리즘적인 미학을 추구했다. 1990년 대 말이 되자 그의 인테리어 감각이 유럽 전역에 알려지면서 미국까지 명성이 자자해졌다. 곧 영국 팝가수 스팅,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드니로, 래퍼 카니예 웨스트도 그의 고객이 됐다. 얼마 전 미국의 인테리어 전문잡지 아키텍처럴 다이제스트는 그를 ‘2017 AD100 명예의 전당’에 올렸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베르보르트는 인테리어에서 서서히 손을 떼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미술 작품을 향한 열정을 말한다. 2007년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팔라조 포르투니에서 첫 전시회 ‘아르템포(Artempo)’를 기획했다. 그 이래 그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행사 때마다 전시회를 열었다. 그의 전시회는 공식 프로그램에 들진 않았지만 비엔날레의 필수 관람 코스로 꼽혔다. 최근 그는 팔라조 포르투니에서의 마지막 전시회를 열었다. 앞으로는 아내 메이와 함께 2008년 설립한 재단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동시에 벨기에 앤트워프 외곽의 옛 양조장을 개조해 직접 설계한 주상복합단지 카날에 마련한 공간에서 미술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베르보르트의 마지막 팔라조 포르투니 전시회 ‘인투이션(Intuition, 직관)’의 주제는 특정 유파나 미학에서 비롯되지 않은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반영한다. 그는 미술품을 수집하듯이 자신의 직관에 따라 전시실을 꾸몄다. 질감과 형태를 혼합하고 순수성과 현실적 안락함을 융합하는 방식으로 옛것과 새것을 아울렀다.
외모에서도 베르보르트는 자신의 인테리어 작품과 마찬가지로 시간을 초월한 매력을 발산한다. 지난 3월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의 2017 유럽순수예술재단(TEFAF) 아트페어에서 만난 그는 회색 정장에 경쾌한 황록색 타이 차림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스에 로마제국 시대의 대리석 작품, 1950년대의 스칸디나비아식 의자, 반짝이는 금속 조각 수천 개로 장식된 벽걸이(아프리카 현대 미술가 엘 아나트수이의 작품)를 진열해 놓았다. 어울리지 않을 듯하면서도 희한하게 조화가 잘 되는 느낌이었다. 그곳을 찾은 방문객 열댓 명은 모두 그에게 말을 붙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인터뷰에만 집중하며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베르보르트는 어려서부터 본능을 바탕으로 고유한 취향을 발달시켰다고 설명했다. “10대 시절인 1960년대부터 오페라와 베토벤, 모차르트를 아주 좋아했다. 비틀스 노래는 듣지 않았다.” 그는 말 중개상이었던 아버지와 앤트워프에서 역사적인 저택을 구입해 복원하는 일을 하던 어머니에게서 옛것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14세 때 이미 골동품 애호가가 된 그는 아버지의 돈을 빌려 영국에 가서 지방 경매에서 오래된 작은 물건 여러 점을 구입했다. 그는 순전히 직감에 따라 선택했다고 돌이켰다. 앤트워프로 돌아온 그는 그 골동품을 철저히 조사한 뒤 값어치가 나갈 만한 것을 내다 팔아 아버지에게서 꾼 돈을 갚았다. 그는 지금도 똑같은 방식으로 일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그는 어머니의 고저택 복구 프로젝트에 참여해 함께 가구를 만들며 인테리어 디자인을 도왔다. 그때도 지금처럼 그가 만든 가구는 현대와 과거의 미술품과 대조를 이루는 동시에 시각적인 보완품 역할을 했다. 요즘도 그는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가구 컬렉션을 판매한다. 현대와 과거의 명화와 에스키모 나무 탈, 고대 이집트 조각상 곁에 매끈한 점판암 탁자와 우아한 소파, 대리석 램프가 자리한다.
그러나 베르보르트의 미적 감각에 무엇보다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앤트워프 출신의 화가 예프 베르헤얀과의 만남이었다. “보는 것은 눈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믿었던 베르헤얀은 네덜란드·독일·벨기에·이탈리아 화가들과 함께 1950년대의 제로(Zero) 그룹을 결성했다. ‘제로’란 하나의 음이 끝나고 다음 음이 시작되기 전의 침묵, 또는 새로운 창조행위의 시작을 의미했다. 그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독일 미술가 오토 피네는 “우린 새로운 시작의 순수한 가능성과 침묵의 영역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베르보르트는 베르헤얀을 통해 사물의 본질로서의 ‘비어 있음’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그 개념이 궁극적으로 일본식 디자인 철학에 대한 이해로 이어졌다. ‘와비사비’를 말한다. 일본인 특유의 검소하고 조용한 미의식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빈약하고 부족한 가운데 마음의 충족을 찾아내는 의식’이라는 뜻이다. 완벽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이 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미완의 상태라는 개념이다. 베르보르트와 오래 함께 일한 네덜란드 사업가 한스 반 베겔은 “내가 보기에 그는 영적인 디자이너”라고 말했다. “그의 디자인 솔루션에서 나타나는 침묵과 일종의 공허함이 충만함과 따뜻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거기선 극도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베르보르트는 ‘인투이션’ 전시회에서 이런 주제를 탐구하는 동시에 그가 기획한 모든 전시회에 존재하는 아이디어도 다시 부각시킨다. 그의 비서인 안네-소피 두셀리어는 그 개념을 “텅빈 공간과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잘 알려진 인테리어 작품처럼 ‘인투이션’ 전시회는 사물 사이의 대화를 강조한다. 사물들이 공간과 형태, 서로간의 관계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직관이 이성에 반하는 방식으로 뭔가를 느끼거나 깨닫는 것이라면 사물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나 우리가 그 사이에서 인식하는 상호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베르보르트는 이 전시회를 찾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며 자신의 직관력을 깨달을 수 있기 바란다. “직관은 아주 진실된 무엇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것과 같다. 관람객이 순례를 하듯 이 전시회를 둘러볼 때 그들의 직관이 더 많이 깨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이 전시회는 그의 개인적인 순례이기도 하다. 아내와 함께 설립한 재단에 집중하고 카날과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서 추가적인 전시회를 기획하는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전환점을 상징한다. 베르보르트는 그런 전시회를 통해 자신이 고객을 위해 만들고 개인적으로 많은 영감을 받은 예술적 체험에 더 많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시된 작품들 사이의 대조에서 나타나는 에너지를 모두가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베르보르트는 60대 중반인 이 시점에 자신의 비전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배운 것을 더 많이 나누고 싶어진다. 전시회를 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체험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영감을 준 예술 작품들을 보여주는 것이 그 체험을 공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
- 애비게일 R. 에스먼 뉴스위크 기자
[ ‘인투이션’ 전시회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팔라조 포르투니에서 오는 11월 26일까지 열린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제로 베르보르트는 오랫동안 직관을 따라 살아왔다. 1960년대 중반 10대 시절부터 유럽의 골동품과 그림을 싼값에 구입해서 비싸게 팔았다. 21세 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한 점을 2400달러에 사서 4만7600달러의 이익을 남기고 팔기도 했다. 곧 고객들이 그에게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전시 협조부터 실내 디자인, 집 설계까지 다양한 요청이 들어왔다. 그는 미술과 디자인에서 고대와 현대를 융합하고, 부드러운 색채를 혼합하며, 돌 표면과 나무 바닥을 다듬어 편안하고 고급스러우면서도 미니멀리즘적인 미학을 추구했다. 1990년 대 말이 되자 그의 인테리어 감각이 유럽 전역에 알려지면서 미국까지 명성이 자자해졌다. 곧 영국 팝가수 스팅,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드니로, 래퍼 카니예 웨스트도 그의 고객이 됐다. 얼마 전 미국의 인테리어 전문잡지 아키텍처럴 다이제스트는 그를 ‘2017 AD100 명예의 전당’에 올렸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베르보르트는 인테리어에서 서서히 손을 떼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미술 작품을 향한 열정을 말한다. 2007년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팔라조 포르투니에서 첫 전시회 ‘아르템포(Artempo)’를 기획했다. 그 이래 그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행사 때마다 전시회를 열었다. 그의 전시회는 공식 프로그램에 들진 않았지만 비엔날레의 필수 관람 코스로 꼽혔다. 최근 그는 팔라조 포르투니에서의 마지막 전시회를 열었다. 앞으로는 아내 메이와 함께 2008년 설립한 재단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동시에 벨기에 앤트워프 외곽의 옛 양조장을 개조해 직접 설계한 주상복합단지 카날에 마련한 공간에서 미술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베르보르트의 마지막 팔라조 포르투니 전시회 ‘인투이션(Intuition, 직관)’의 주제는 특정 유파나 미학에서 비롯되지 않은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반영한다. 그는 미술품을 수집하듯이 자신의 직관에 따라 전시실을 꾸몄다. 질감과 형태를 혼합하고 순수성과 현실적 안락함을 융합하는 방식으로 옛것과 새것을 아울렀다.
외모에서도 베르보르트는 자신의 인테리어 작품과 마찬가지로 시간을 초월한 매력을 발산한다. 지난 3월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의 2017 유럽순수예술재단(TEFAF) 아트페어에서 만난 그는 회색 정장에 경쾌한 황록색 타이 차림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스에 로마제국 시대의 대리석 작품, 1950년대의 스칸디나비아식 의자, 반짝이는 금속 조각 수천 개로 장식된 벽걸이(아프리카 현대 미술가 엘 아나트수이의 작품)를 진열해 놓았다. 어울리지 않을 듯하면서도 희한하게 조화가 잘 되는 느낌이었다. 그곳을 찾은 방문객 열댓 명은 모두 그에게 말을 붙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인터뷰에만 집중하며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베르보르트는 어려서부터 본능을 바탕으로 고유한 취향을 발달시켰다고 설명했다. “10대 시절인 1960년대부터 오페라와 베토벤, 모차르트를 아주 좋아했다. 비틀스 노래는 듣지 않았다.” 그는 말 중개상이었던 아버지와 앤트워프에서 역사적인 저택을 구입해 복원하는 일을 하던 어머니에게서 옛것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14세 때 이미 골동품 애호가가 된 그는 아버지의 돈을 빌려 영국에 가서 지방 경매에서 오래된 작은 물건 여러 점을 구입했다. 그는 순전히 직감에 따라 선택했다고 돌이켰다. 앤트워프로 돌아온 그는 그 골동품을 철저히 조사한 뒤 값어치가 나갈 만한 것을 내다 팔아 아버지에게서 꾼 돈을 갚았다. 그는 지금도 똑같은 방식으로 일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그는 어머니의 고저택 복구 프로젝트에 참여해 함께 가구를 만들며 인테리어 디자인을 도왔다. 그때도 지금처럼 그가 만든 가구는 현대와 과거의 미술품과 대조를 이루는 동시에 시각적인 보완품 역할을 했다. 요즘도 그는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가구 컬렉션을 판매한다. 현대와 과거의 명화와 에스키모 나무 탈, 고대 이집트 조각상 곁에 매끈한 점판암 탁자와 우아한 소파, 대리석 램프가 자리한다.
그러나 베르보르트의 미적 감각에 무엇보다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앤트워프 출신의 화가 예프 베르헤얀과의 만남이었다. “보는 것은 눈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믿었던 베르헤얀은 네덜란드·독일·벨기에·이탈리아 화가들과 함께 1950년대의 제로(Zero) 그룹을 결성했다. ‘제로’란 하나의 음이 끝나고 다음 음이 시작되기 전의 침묵, 또는 새로운 창조행위의 시작을 의미했다. 그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독일 미술가 오토 피네는 “우린 새로운 시작의 순수한 가능성과 침묵의 영역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베르보르트는 베르헤얀을 통해 사물의 본질로서의 ‘비어 있음’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그 개념이 궁극적으로 일본식 디자인 철학에 대한 이해로 이어졌다. ‘와비사비’를 말한다. 일본인 특유의 검소하고 조용한 미의식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빈약하고 부족한 가운데 마음의 충족을 찾아내는 의식’이라는 뜻이다. 완벽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이 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미완의 상태라는 개념이다. 베르보르트와 오래 함께 일한 네덜란드 사업가 한스 반 베겔은 “내가 보기에 그는 영적인 디자이너”라고 말했다. “그의 디자인 솔루션에서 나타나는 침묵과 일종의 공허함이 충만함과 따뜻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거기선 극도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베르보르트는 ‘인투이션’ 전시회에서 이런 주제를 탐구하는 동시에 그가 기획한 모든 전시회에 존재하는 아이디어도 다시 부각시킨다. 그의 비서인 안네-소피 두셀리어는 그 개념을 “텅빈 공간과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잘 알려진 인테리어 작품처럼 ‘인투이션’ 전시회는 사물 사이의 대화를 강조한다. 사물들이 공간과 형태, 서로간의 관계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직관이 이성에 반하는 방식으로 뭔가를 느끼거나 깨닫는 것이라면 사물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나 우리가 그 사이에서 인식하는 상호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베르보르트는 이 전시회를 찾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며 자신의 직관력을 깨달을 수 있기 바란다. “직관은 아주 진실된 무엇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것과 같다. 관람객이 순례를 하듯 이 전시회를 둘러볼 때 그들의 직관이 더 많이 깨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이 전시회는 그의 개인적인 순례이기도 하다. 아내와 함께 설립한 재단에 집중하고 카날과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서 추가적인 전시회를 기획하는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전환점을 상징한다. 베르보르트는 그런 전시회를 통해 자신이 고객을 위해 만들고 개인적으로 많은 영감을 받은 예술적 체험에 더 많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시된 작품들 사이의 대조에서 나타나는 에너지를 모두가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베르보르트는 60대 중반인 이 시점에 자신의 비전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배운 것을 더 많이 나누고 싶어진다. 전시회를 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체험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영감을 준 예술 작품들을 보여주는 것이 그 체험을 공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
- 애비게일 R. 에스먼 뉴스위크 기자
[ ‘인투이션’ 전시회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팔라조 포르투니에서 오는 11월 26일까지 열린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0월 코픽스 0.03%p↓…주담대 변동금리 내릴까
2국민이주(주), 국민은행과 함께 미국투자이민 프라이빗 세미나 개최
3바디프랜드, 3분기 누적 매출 3326억... 전년 대비 7.8%↑
4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韓 밸류업 선도 사명감 갖고 노력”
5정유경 회장, ㈜신세계 ‘미래 메시지’ 던질까
6HD현대重, 캐나다 잠수함 포럼 참석...현지 맞춤 모델 소개
7함영주 회장 “글로벌 시장 눈높이에 맞는 주주환원 이행할 것”
8케이뱅크 “앱에서 한국거래소 금 시장 투자 가능”
9DGB금융, ‘디지털 상생 기부 키오스크’ 이웃사랑 성금 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