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가 만난 사람(7) 양기대 광명시장
에디터가 만난 사람(7) 양기대 광명시장
버려진 광산을 ‘광명동굴’로 관광자원화해 수도권 최고의 여름 관광지로 만들어낸 양기대 광명시장의 혁신 스토리에서 CEO와 리더들은 새로운 조직경영의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는 양기대(55) 시장과 두 번 만났다. 한 번은 그가 정치에 입문할 무렵이다. 2004년 3월, 42살이던 그가 메이저 언론사의 사회부 차장을 그만두고 당시 열린우리당 광명을 당원협의회 회장으로 금뱃지에 도전할 때다. 첫 인상은 무모한 돈키호테 같다고나 할까. 정의감과 도덕성은 충만했지만 정치 물정은 모르는 ‘초짜’였다. 선거에 필요한 자금도, 조직도 바닥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단기필마로 총선에 출마했다가 광명시장을 지낸 당시 정계 거물 전재희 의원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또 한 번은 얼마 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장이다. 지난 6월8일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가진 『폐광에서 기적을 캐다』 출판기념회장 앞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지갑을 꺼내 양 시장의 책을 샀다. ‘양복쟁이’들이 눈도장 찍으러 오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아니라 유명 저자의 팬 사인회 같았다. 후원금 한푼 받지 않고도 준비해온 1200권이 금새 동이 났다. 나이 아흔이 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세 분은 양 시장의 출판기념회장에서 민감한 시국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어 국내외 기자들을 불러모았다. “양 시장을 아들처럼 아낀다”며 출판기념회 홍보를 자발적으로 ‘측면지원’(?) 했다.
출판기념회 순서도 흥미로웠다. 이수성 전 총리, 박지원·정동영·박영선 의원 등 내로라 하는 정치인과 기관장을 제쳐놓고는 출판사 사장(김현종 메디치미디어 대표)이 가장 먼저 인사말을 했다. 저자인 양 시장은 내빈들의 축사가 다 끝난 뒤 행사의 맨 나중에 간략한 감사의 메시지로 화답했다. 저자와 관객의 소통의 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창의성과 혁신이 엿보였다.
무엇이 양기대 시장을 지방자치 혁신경영의 대표주자로 만들어냈을까? 당장 네트워크를 총가동해 취재에 들어갔다. 알고 보니 양 시장이 관광자원으로 개발한 광명 동굴 스토리는 ‘기업가정신’의 전형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도전정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 관료 조직을 춤추게 한 혁신경영의 모범적 사례였다. 포브스코리아가 양기대 시장을 만난 이유다. 쇠뿔은 단김에 빼야 한다. 6월12일 오후 광명시청을 찾아 양기대 시장과 마주 앉았다.
이렇게 배포가 큰 분인지 일찍이 알아보지 못했다.(웃음) 괄목상대가 양 시장을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광명에서 기업가정신을 실천한 생생한 사례다.
기업가정신으로 봐주시니 고맙다. 돌아보니 꼭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그 길을 걸어온 것 같다. 제가 81학번인데, 사회정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던지고, 투옥되는 선후배와 동료들을 보면서 저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부채의식이 늘 있었다. 그래서 기자로 살면서 출입처에서건, 취재 현장에서건 사회정의를 위해서라면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으면서 살았다.(실제 그는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한국기자상을 2회, 이달의 기자상을 7회나 수상하는 등 특종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다 기자생활 그만두고 충분한 준비도 없이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호되게 당했다.(웃음) 2008년에도 또 한 번 도전했는데, 그때도 떨어졌다. 코가 쑥 빠져 있는데, 주위에서 광명시장 선거에 도전하라는 성원이 많았다. 그때 제가 48세 한창 일할 나이였다. 6년이나 쉬었기 때문에 정말 일을 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2010년에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광명시장에 당선됐다. 뭔가 해보고 싶은데 광명시가 전형적인 서울의 베드타운이라 뭘해야 할지 막막했다. (양 시장의 말대로 35만 명 광명시민 대다수가 서울이나 인천으로 출퇴근한다. 광명시의 1년 예산은 7500억 원 정도. 1000여 명의 공직자들도 주민들을 위한 행정적인 뒷받침에 익숙할 뿐 경영혁신이나 도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광명동굴 얘기를 해 달라.
당시 광명시의 숙원사업은 58만 평에 이르는 KTX광명역 역세권 개발이었다. 그런데 가보니 허허벌판이라서 너무 답답하더라. 사실은 동굴 개발에 집착한 것도 그 때문이다. 동굴을 찾은 사람들이 역과 역세권을 이용하게 되면 활성화될까 싶어서였다.(웃음) 선거를 준비하면서 당시 ‘가학광산’으로 불리던 광명동굴의 존재를 알게 됐다. 전임 시장들도 활용도를 고민해봤지만 재원 마련이라든지 동굴 내부가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개발을 선뜻 못했다고 들었다. 겨우 용역 보고서 하나 있는 정도였다. 2010년 8월, 관련 부서 직원들과 함께 동굴에 처음 들어가 봤다. 일제강점기 때 금과 구리, 아연을 캐던 광산이 소유주가 바뀐 후 40여 년간 방치돼 새우젓 저장고로 사용되고 있었다. 새우젓 담은 드럼통이 뒹굴고, 동굴 천정과 벽에선 물이 떨어지고, 어두운 데다 바닥은 물이 차서 질척거리고···.
그런 폐광산을 동굴로 개발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기자생활하면서 얻은 특유의 감(感)이랄까. 동굴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잖나! 서늘했고, 어두웠다. 동굴이 생각보다 깊고 길었다. 보존상태도 양호했다. 전문 기관에 확인해보니 중금속으로 인한 인체 피해도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이 어두움과 서늘함을 활용해 무언가 기가 막힌 것을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두세 번 더 동굴에 들어가 찬찬히 살펴보니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공무원들과 시의원들을 설득해나갔다. 그래서 1년 뒤인 2011년에 개인 소유였던 가학광산을 시비 43억 원을 들여 샀다. 우선 우리 광명시 재산으로 만들어서 조금씩 개발해서 관광자원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전북 군산 태생으로 투박한 이미지의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추진력과 집념의 소유자다. 그가 펴낸 『폐광에서 기적을 캐다』에는 양 시장의 집념과 끈기로 진행된 2300여 일의 광명동굴 개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책 표지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거봐요, 내가 해낸다고 했잖아요”라는 양 시장의 발언이다. 책 하단에도 이렇게 씌여 있다. “수도권의 베드타운에 불과했던 광명시가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우뚝 섰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을 광명시민과 공무원 모두가 뜻을 모아 이루어냈다. 광명동굴은 폐광의 기적을 넘어 사람의 기적을 이룬 쾌거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구절이다.
“거봐요, 내가 해낸다고 했잖아요” 이 대목에서 저는 양기대 시장이 가진 기업가정신의 싹을 보았다. 광명시가 43억원이나 들여 버려진 광산을 샀으니 욕 안먹으려면 제대로 개발 청사진을 제시해야 했을텐데.
당연하다. 그런데 당시엔 시장인 나도, 직원들도 구체적인 개발계획이 없었다.(웃음) 그저 막연한 구상만 있었다. 예를 들어 동굴 안에 수백 명이 너끈히 앉을 수 있는 큰 홀이 있는데, 여기에서 공연도 하고 영화상영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 동굴 안의 기온이 사시사철 12∼13℃ 온도를 유지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도록 와인 바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 광산 주변으로 난 길이 2km 남짓 있으니 코끼리 열차를 운행해보자는 그런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출발했다.
동굴을 개발하려면 지속적으로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그 돈은 어떻게 마련했나.
당시 광명시의회가 여당과 야당의원 비율이 6:6이었다. 동굴 관련 예산이 올라가면 깎이기 일쑤였다. 동굴을 개발하려면 전체 설계도인 마스터플랜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시청의 국장, 과장, 팀장과 함께 미국에 가서 벤치마킹도 하고 설계회사 자문을 받겠다고 했더니 공무원들이 반대하는 거다. 전임시장이 해놓은 용역 보고서를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장이 1~2년 추진하다가 그만둘 게 뻔한데 괜히 직원들이 개입했다가 감사 받고 문제 될 것 같으니 못 하겠다’는 그런 심리였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동굴 안에 인체에 해로운 카드뮴 비가 내린다는 둥, 피부병 걸린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루머까지 흘렸다.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다.
소통이 최고의 방책이더라. 옛날에 기자생활하면서 배운 소폭 실력으로 폭탄주도 돌리고(웃음). 인간적으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큰 도움을 줬다. 저는 야당 시장이었는데, 당적과 무관하게 광명동굴 아이디어가 좋다면서 특별조정교부금을 지원해 주셨다. 경기도의 지원을 받게 되자 자연히 사업의 정당성도 확보하게 되었다. 그렇게 테마를 정해 하나 하나 아이디어를 내서 개발해 공개했더니 입소문을 듣고 서서히 관광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2013년 여름에 350석 규모의 예술의 전당을 오픈하면서 TV로 중계돼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동굴 안은 특히 여름에 시원해서 피서지가 따로 없다. 서울에서도 가깝고 이것 저것 볼 거리도 많으니 입소문이 나더라. 지난해는 7월 한달에만 30만 명이 찾아왔다. 하루에 1만 명 꼴이다. 승용차들이 1~2km씩 길게 줄을 선다. 광명동굴을 유료화했는데도 관광객들이 밀려들더라.
동굴 유료화 얘기를 듣고 싶다. ‘돈 내고 볼만한 가치가 있나’. ‘돈 주고 동굴 탐험한다면 누가 가겠나?’ 하는 반대가 있었다고 하던데.
주위에서도 “손님 안 오면 양 시장 정치생명 끝나는 것 아니냐”고 걱정을 했다. 그런데 저는 당연히 유료화 해서 지역경제 활성화하고 일자리도 만들고 광명시 세금 수입도 올려야 동굴이 제대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5년 4월에 광명동굴을 유료화했고, 결과적으로 그게 성공을 가져왔다. 저와 직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다. 가학광산이 일제의 유산 아닌가! 광산에서 광부로 일했던 장명화(89) 할아버지를 광명동굴 문화해설사로 모셨다. 동굴 입구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고, 입장료 수입금의 1%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기부하기로 했다. 그게 지금까지 피해 할머니들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광명시는 약속대로 올해 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광주 나눔의 집’에 지난해 수입금의 1%인 5300만원을 지원했다.) 결과적으로 처음에 마스터플랜 없이 시작해 점진적으로 개발한 것이 광명동굴만의 독특한 관광 콘셉트로 이어졌다. 처음 계획대로 미국 설계회사가 마스터플랜을 마련했더라면,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거액의 개발비용 때문에 의회의 반대로 추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웃음)
리더가 조직혁신을 추진하고자 해도 중간층이 움직이지 않으면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관료조직은 더 그렇다. 어떻게 해서 공무원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반영해주려고 했다. 예를 들어 팀장 한 명이 시장실로 찾아와서 동굴 안 바닥과 벽, 천정을 온통 황금칠을 해서 황금길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래서 7000만원 예산을 지원해 황금길을 칠하고 황금폭포를 만들었다. 그러자 황금 좋아하는 중국 관광객이 몰리면서 인기 있는 테마길이 됐다.
또 하나는, 직원들과 스킨십을 나누고 신뢰를 쌓은 것이다. 끊임없이 담당 직원들과 토론하고 대화를 했다. 시장 지시를 따랐다가 감사에 걸릴까봐 주저하면 시장이 책임지겠다고 설득했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도 아닌 광명동굴 안에서 음식이나 와인을 파는 게 가능할까? 전무후무한 이야기다. 하지만 광명시는 해냈다. 직원들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광명동굴 성공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광명시가 7월 4일에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관광투자 설명회를 연다. 기초자치단체가 국내외 투자자를 상대로 강남 한복판에서 관광투자 설명회를 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 광명시 공무원들이 의욕적이다. 제가 뛰는 만큼 공무원들도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
양 시장은 광명동굴 개발에 아이디어를 낸 공무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지난해 광명시에서 출판한 책이라며 『광명동굴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책을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단행본으로 제작된 책에는 ‘광명동굴 초기 개발담당, 자부심 느낀다-정광해 공원녹지과장’, ‘광명동굴은 내 운명, 죽을 때까지 못잊어- 최봉섭 테마개발계장’, ‘광명동굴을 와인의 메카로 만들다-최정욱 광명동굴 소믈리에’ 등 동굴 개발과 아이디어, 홍보에 기여한 공무원 15명의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맨 뒷장에는 ‘광명동굴을 만들 때 함께 한 공무원들’ 63명의 이름도 모두 기록해 놓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양 시장이 공무원들을 움직인 성공스토리에는 임직원들에 대한 칭찬과 격려, 긍정마인드가 한몫 했다. 양 시장은 “광명동굴 개발에 아이디어를 내거나 성과를 낸 부서 직원들은 모두 승진 등으로 보상을 해주었다”고도 했다. 칭찬과 격려, 합리적 보상이 관료조직을 움직였던 것이다. 광명동굴은 또한 ‘상생’의 성공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 현재 광명동굴 안에서는 국산와인 175종을 판매하고 있다. 올해는 10만 병 판매가 목표다. 국내 와이너리 대표들이 광명시를 자주 찾는 이유다.
리더인 양 시장과 팔로워인 공무원들이 서로 믿고, 소통하고, 힘을 합쳐 만들어낸 성공스토리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기적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그러고 보면 광명동굴을 만들기까지 양 시장의 공이 가장 큰 것 같다.
아니다. 폐광의 기적은 결국은 사람의 기적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더라.(웃음) 광명동굴을 개발하면서 소중한 인연들이 많이 생겼다. 동굴 안에 영화 <반지의 제왕> 에 나오는 용과 골룸 등 각종 소품들을 전시중인데, 제작사인 뉴질랜드의 웨타워크숍과 손을 잡고 국제 판타지 공모전도 했다. 그게 인연이 되어 판타지 관련 전문가를 연수 보내 판타지 산업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는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으로 아시아 최초로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 광명동굴전을 개최했는데, 17만 명이 방문했다. 덕분에 광명동굴 위상이 국제적으로 높아졌다. 7월1일부터는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의 바비인형전을 개최한다. 이제는 라오스정부에 동굴 개발 노하우를 전파, 콘텐트 수출까지 하게 됐다. 앞으로 속초에서 러시아 하산 자루비노항까지 카페리가 재취항하는데 러시아 하산군수와 중국 훈춘 부시장이 광명동굴을 와서 보고는 그 관광노선을 광명까지 연결하자고 하더라.
그러고 보니 양 시장의 재임 7년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소통한 역사인 듯하다.
제가 1년 365일 중에 360일을 출근한다. 우리 광명시 공무원들이 많이 힘들다는 것도 안다.(웃음) 처음에 공무원들 눈에는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이 무모한 도전으로 비쳤을 것이다. 광명동굴도 그렇고, KTX광명역세권 활성화를 위한 대형 유통업체 유치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이케아, 코스트코를 광명에 유치할 때 그것을 추진하면 시장의 정치생명이 끝난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야당 당적을 가진 시장이 중소상인들을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저는 자신이 있었다. 대형유통업체 입점을 반대하는 중소상인들과 유통기업들이 상생협약을 맺어 신뢰를 쌓게 하고, 광명시에서 중소상인들을 위한 주차장, 물류센터를 지어 배려했다. 그렇게 투트랙 전략으로 신뢰를 만들어갔다.
리더가 정책을 시행할 때는 반대가 있다고 해서 물러서면 안된다. 옳은 일, 필요한 일이라면 끊임없이 토론하고 설득해야 한다. 대부분의 조직이 그렇지만 리더가 말하면 20%는 적극적으로 따라오고 30~40%는 소극적이다. 나머지는 방관하거나 비판세력이 된다. 겪어보니 공무원 조직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리더에게 기대를 걸더라. 그러니 인사차별로 소외된 자리에 있는 직원일지라도 능력이 있다면 과감히 등용해야 한다. 그에 따른 주위의 비판이 있더라도 감수하는 게 리더의 몫이다. 그렇게 등용한 인재는 설사 일의 진척도가 느리더라도 리더가 기다려주면 일을 성실히 잘 수행해낸다. 제 경험으로는 그렇다.
광명동굴은 앞으로 더 개발되는가.
문화·예술·관광을 융합한 광명동굴은 대한민국 대표적 관광지를 넘어 이제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했다. 앞으로는 기존 포맷에 첨단과학기술을 입힐 생각이다. 가상현실(VR)·첨단과학기술을 접목한 공포체험관 등 다양한 콘텐트 중심의 볼 거리 및 즐길 거리를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예를 들어 VR 광부체험관이라든지, 대형 3D 미디어타워 등을 동굴 안팎에 배치, 기존 콘텐트와 결합시켜 발전시키려 한다. 아시아권에서는 보기 힘든 프로그램과 콘텐트를 광명동굴에서 보여줄 생각이다. 광명동굴의 깊이가 275m이고 동굴 길이가 7.8km인데, 개발된 부분은 이제 2km가 조금 넘는다. 동굴 개발의 아이디어는 아직 무궁무진하다. 광명동굴 성공의 최대 수혜자는 양 시장과 광명시다. 동굴 입장 수입만 지금까지 125억원이다. 2014년 말에 가구공룡 이케아를 유치한 것도 양 시장의 과감한 도전이 빛을 발한 사례다. 이케아 출점을 전후해 코스트코와 롯데 프리미엄아울렛도 개장하면서 KTX 광명역세권은 한 해 2000만 명이 찾아오는 수도권 서남부 지역의 쇼핑·유통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양 시장이 취임한 2010년에 광명시를 찾은 관광객은 문화체육관광부 집계로 3000명이었다. 지난해는 광명동굴을 찾은 142만 명을 포함해 210만 명이다. 6년 만에 700배나 증가했다. 양 시장과 공무원들이 ‘변방의 기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현재 KX광명역세권 일대는 한류열풍을 일으킬 ‘광명미디어아트밸리’ 조성 공사가 진행중이고 아파트단지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양 시장은 지금의 성공에 머무르지 않을 테세다. 광명을 국제적인 도시로 바꾸겠다는 새로운 꿈을 시나브로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시장실 벽에 옛 고조선 지도와 유라시아 대륙철도 지도가 있어서 놀랐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은가 보다.
통일문제는 사회정의 실현과 함께 오래된 제 꿈이다. 저는 KTX광명역이 북한을 통과해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과 영국까지 가는 유라시아 대륙철도의 출발역이 될 것을 꿈꾸고 있다. 남북한이 교류를 시작하면 남북철도 연결 등 현실적으로 서로 이익이 되는 사업들이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KTX광명역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종단철도(TKR) 건설이 현실성 있는 남북한 우선 사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러시아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중국횡단철도(TCR)를 연결한다면 광명역에서 출발해 유럽으로 가는 유라시아철도의 꿈이 이뤄질 것으로 확신한다. 이를 위해 광명시는 이미 북한과 인접한 중국 단둥시·훈춘시, 그리고 러시아 하산군과 경제교류 우호 협약을 체결했다.
올 하반기에 KTX광명역에 도심공항터미널이 들어선다고 들었다.
새 정부가 국정 과제로 유라시아 대륙철도를 추진할 것에 대비해 광명시도 광명역에서 김포공항~대곡역~문산~개성까지 가는 철로 관련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광명역이 우리의 꿈대로 유라시아 대륙철도의 출발역이 되면 베이징~하얼빈~ 블라디보스톡까지 7시간이면 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광명시는 한반도 첨단·특급물류 중심의 유라시아대륙 철도가 출발하는 거점도시가 된다. 이름 그대로 광명(光明)의 도시가 될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해 도전하지 않는다면 성공도 없다. 양기대 시장과 공무원들, 광명시민이 함께 일군 광명동굴은 할 수 있다는 긍정마인드와 도전으로 일궈낸 혁신경영의 성공 사례다.
양기대 시장은 중심성성(衆心成城)과 배사향공(背私嚮公)을 강조했다. 중심성성은 여러 사람의 뜻을 합치면 못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그는 “한 사람의 비전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것은 그 뒤를 받치는 수많은 사람들이며, 그 사람들이 모일 때 비로소 창조와 혁신이 태동한다”고 믿는다. 배사향공은 개인의 욕심은 버리고 공공의 이익을 향한다는 뜻이다. 이런 자세로 사람의 힘을 모아 낮은 자세로 살아가는 그가 또다른 어떤 성공 스토리를 써낼 것인지 ‘기대된다’. 그렇다. 이런 돈키호테라면 백번 환영이다. 광명동굴은 2016년 관광공사 선정 한국의 대표 관광지 100선에 선정된 광명시의 명소다. 동굴 안 350석의 객석 앞 무대에서는 오케스트라와 국악 공연이 펼쳐진다. 동굴 벽에 쏘는 판타지 동영상과 그림도 환상적이다. 동굴 내 와인 창고와 와인레스토랑에서는 국내에서 생산된 다양한 와인을 맛볼 수 있다. 광명동굴은 2015년 4월 유료개장 2년 만에 누적 관광객 234만 명을 기록했다. 광명동굴의 운영과 관리 인력 등에 필요한 630여 개 일자리 창출은 덤이다. 광명시가 운영비 등 지출을 뺀 수익을 검토한 결과 광명동굴의 현재 경제적 가치는 1530억원 정도로 나왔다. 2011년 사들일 때 쓴 43억원에다 진입로 확충과 주차장 조성 등에 국비와 도비, 시비 등 6년간 573억원을 들여서 이 정도 가치를 일궜다니 어느 민간투자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성공적인 개발사업이다. 프랑스 <르 피가로> 지는 “광명동굴은 백만의 인파가 몰려오는 현대의 알리바바 동굴”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양기대 시장
1962년: 전북 군산 출생. 전주고·서울대 지리교육학과 졸업.
2003년: 동아일보 법조담당 차장.
2008년: 민주당 광명을 지역위원회 위원장.
2010년: 7월~현재 경기도 광명시 시장, 2015.3 <중앙선데이> 2015 창조경영대상 수상. 2016 제8회 다산목민대상 본상 수상(광명시). 중앙선데이> 르>반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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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은 얼마 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장이다. 지난 6월8일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가진 『폐광에서 기적을 캐다』 출판기념회장 앞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지갑을 꺼내 양 시장의 책을 샀다. ‘양복쟁이’들이 눈도장 찍으러 오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아니라 유명 저자의 팬 사인회 같았다. 후원금 한푼 받지 않고도 준비해온 1200권이 금새 동이 났다. 나이 아흔이 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세 분은 양 시장의 출판기념회장에서 민감한 시국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어 국내외 기자들을 불러모았다. “양 시장을 아들처럼 아낀다”며 출판기념회 홍보를 자발적으로 ‘측면지원’(?) 했다.
출판기념회 순서도 흥미로웠다. 이수성 전 총리, 박지원·정동영·박영선 의원 등 내로라 하는 정치인과 기관장을 제쳐놓고는 출판사 사장(김현종 메디치미디어 대표)이 가장 먼저 인사말을 했다. 저자인 양 시장은 내빈들의 축사가 다 끝난 뒤 행사의 맨 나중에 간략한 감사의 메시지로 화답했다. 저자와 관객의 소통의 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창의성과 혁신이 엿보였다.
무엇이 양기대 시장을 지방자치 혁신경영의 대표주자로 만들어냈을까? 당장 네트워크를 총가동해 취재에 들어갔다. 알고 보니 양 시장이 관광자원으로 개발한 광명 동굴 스토리는 ‘기업가정신’의 전형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도전정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 관료 조직을 춤추게 한 혁신경영의 모범적 사례였다. 포브스코리아가 양기대 시장을 만난 이유다. 쇠뿔은 단김에 빼야 한다. 6월12일 오후 광명시청을 찾아 양기대 시장과 마주 앉았다.
베드타운 광명이 수도권 대표 관광지로
이렇게 배포가 큰 분인지 일찍이 알아보지 못했다.(웃음) 괄목상대가 양 시장을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광명에서 기업가정신을 실천한 생생한 사례다.
기업가정신으로 봐주시니 고맙다. 돌아보니 꼭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그 길을 걸어온 것 같다. 제가 81학번인데, 사회정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던지고, 투옥되는 선후배와 동료들을 보면서 저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부채의식이 늘 있었다. 그래서 기자로 살면서 출입처에서건, 취재 현장에서건 사회정의를 위해서라면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으면서 살았다.(실제 그는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한국기자상을 2회, 이달의 기자상을 7회나 수상하는 등 특종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다 기자생활 그만두고 충분한 준비도 없이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호되게 당했다.(웃음) 2008년에도 또 한 번 도전했는데, 그때도 떨어졌다. 코가 쑥 빠져 있는데, 주위에서 광명시장 선거에 도전하라는 성원이 많았다. 그때 제가 48세 한창 일할 나이였다. 6년이나 쉬었기 때문에 정말 일을 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2010년에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광명시장에 당선됐다. 뭔가 해보고 싶은데 광명시가 전형적인 서울의 베드타운이라 뭘해야 할지 막막했다. (양 시장의 말대로 35만 명 광명시민 대다수가 서울이나 인천으로 출퇴근한다. 광명시의 1년 예산은 7500억 원 정도. 1000여 명의 공직자들도 주민들을 위한 행정적인 뒷받침에 익숙할 뿐 경영혁신이나 도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광명동굴 얘기를 해 달라.
당시 광명시의 숙원사업은 58만 평에 이르는 KTX광명역 역세권 개발이었다. 그런데 가보니 허허벌판이라서 너무 답답하더라. 사실은 동굴 개발에 집착한 것도 그 때문이다. 동굴을 찾은 사람들이 역과 역세권을 이용하게 되면 활성화될까 싶어서였다.(웃음) 선거를 준비하면서 당시 ‘가학광산’으로 불리던 광명동굴의 존재를 알게 됐다. 전임 시장들도 활용도를 고민해봤지만 재원 마련이라든지 동굴 내부가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개발을 선뜻 못했다고 들었다. 겨우 용역 보고서 하나 있는 정도였다. 2010년 8월, 관련 부서 직원들과 함께 동굴에 처음 들어가 봤다. 일제강점기 때 금과 구리, 아연을 캐던 광산이 소유주가 바뀐 후 40여 년간 방치돼 새우젓 저장고로 사용되고 있었다. 새우젓 담은 드럼통이 뒹굴고, 동굴 천정과 벽에선 물이 떨어지고, 어두운 데다 바닥은 물이 차서 질척거리고···.
그런 폐광산을 동굴로 개발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기자생활하면서 얻은 특유의 감(感)이랄까. 동굴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잖나! 서늘했고, 어두웠다. 동굴이 생각보다 깊고 길었다. 보존상태도 양호했다. 전문 기관에 확인해보니 중금속으로 인한 인체 피해도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이 어두움과 서늘함을 활용해 무언가 기가 막힌 것을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두세 번 더 동굴에 들어가 찬찬히 살펴보니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공무원들과 시의원들을 설득해나갔다. 그래서 1년 뒤인 2011년에 개인 소유였던 가학광산을 시비 43억 원을 들여 샀다. 우선 우리 광명시 재산으로 만들어서 조금씩 개발해서 관광자원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관광 랜드마크로 부활한 폐광의 기적
“거봐요, 내가 해낸다고 했잖아요” 이 대목에서 저는 양기대 시장이 가진 기업가정신의 싹을 보았다. 광명시가 43억원이나 들여 버려진 광산을 샀으니 욕 안먹으려면 제대로 개발 청사진을 제시해야 했을텐데.
당연하다. 그런데 당시엔 시장인 나도, 직원들도 구체적인 개발계획이 없었다.(웃음) 그저 막연한 구상만 있었다. 예를 들어 동굴 안에 수백 명이 너끈히 앉을 수 있는 큰 홀이 있는데, 여기에서 공연도 하고 영화상영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 동굴 안의 기온이 사시사철 12∼13℃ 온도를 유지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도록 와인 바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 광산 주변으로 난 길이 2km 남짓 있으니 코끼리 열차를 운행해보자는 그런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출발했다.
동굴을 개발하려면 지속적으로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그 돈은 어떻게 마련했나.
당시 광명시의회가 여당과 야당의원 비율이 6:6이었다. 동굴 관련 예산이 올라가면 깎이기 일쑤였다. 동굴을 개발하려면 전체 설계도인 마스터플랜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시청의 국장, 과장, 팀장과 함께 미국에 가서 벤치마킹도 하고 설계회사 자문을 받겠다고 했더니 공무원들이 반대하는 거다. 전임시장이 해놓은 용역 보고서를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장이 1~2년 추진하다가 그만둘 게 뻔한데 괜히 직원들이 개입했다가 감사 받고 문제 될 것 같으니 못 하겠다’는 그런 심리였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동굴 안에 인체에 해로운 카드뮴 비가 내린다는 둥, 피부병 걸린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루머까지 흘렸다.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다.
소통이 최고의 방책이더라. 옛날에 기자생활하면서 배운 소폭 실력으로 폭탄주도 돌리고(웃음). 인간적으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큰 도움을 줬다. 저는 야당 시장이었는데, 당적과 무관하게 광명동굴 아이디어가 좋다면서 특별조정교부금을 지원해 주셨다. 경기도의 지원을 받게 되자 자연히 사업의 정당성도 확보하게 되었다. 그렇게 테마를 정해 하나 하나 아이디어를 내서 개발해 공개했더니 입소문을 듣고 서서히 관광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2013년 여름에 350석 규모의 예술의 전당을 오픈하면서 TV로 중계돼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동굴 안은 특히 여름에 시원해서 피서지가 따로 없다. 서울에서도 가깝고 이것 저것 볼 거리도 많으니 입소문이 나더라. 지난해는 7월 한달에만 30만 명이 찾아왔다. 하루에 1만 명 꼴이다. 승용차들이 1~2km씩 길게 줄을 선다. 광명동굴을 유료화했는데도 관광객들이 밀려들더라.
동굴 유료화 얘기를 듣고 싶다. ‘돈 내고 볼만한 가치가 있나’. ‘돈 주고 동굴 탐험한다면 누가 가겠나?’ 하는 반대가 있었다고 하던데.
주위에서도 “손님 안 오면 양 시장 정치생명 끝나는 것 아니냐”고 걱정을 했다. 그런데 저는 당연히 유료화 해서 지역경제 활성화하고 일자리도 만들고 광명시 세금 수입도 올려야 동굴이 제대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5년 4월에 광명동굴을 유료화했고, 결과적으로 그게 성공을 가져왔다. 저와 직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다. 가학광산이 일제의 유산 아닌가! 광산에서 광부로 일했던 장명화(89) 할아버지를 광명동굴 문화해설사로 모셨다. 동굴 입구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고, 입장료 수입금의 1%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기부하기로 했다. 그게 지금까지 피해 할머니들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광명시는 약속대로 올해 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광주 나눔의 집’에 지난해 수입금의 1%인 5300만원을 지원했다.) 결과적으로 처음에 마스터플랜 없이 시작해 점진적으로 개발한 것이 광명동굴만의 독특한 관광 콘셉트로 이어졌다. 처음 계획대로 미국 설계회사가 마스터플랜을 마련했더라면,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거액의 개발비용 때문에 의회의 반대로 추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웃음)
관료를 춤추게 한 것은 소통·칭찬·보상
리더가 조직혁신을 추진하고자 해도 중간층이 움직이지 않으면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관료조직은 더 그렇다. 어떻게 해서 공무원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반영해주려고 했다. 예를 들어 팀장 한 명이 시장실로 찾아와서 동굴 안 바닥과 벽, 천정을 온통 황금칠을 해서 황금길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래서 7000만원 예산을 지원해 황금길을 칠하고 황금폭포를 만들었다. 그러자 황금 좋아하는 중국 관광객이 몰리면서 인기 있는 테마길이 됐다.
또 하나는, 직원들과 스킨십을 나누고 신뢰를 쌓은 것이다. 끊임없이 담당 직원들과 토론하고 대화를 했다. 시장 지시를 따랐다가 감사에 걸릴까봐 주저하면 시장이 책임지겠다고 설득했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도 아닌 광명동굴 안에서 음식이나 와인을 파는 게 가능할까? 전무후무한 이야기다. 하지만 광명시는 해냈다. 직원들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광명동굴 성공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광명시가 7월 4일에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관광투자 설명회를 연다. 기초자치단체가 국내외 투자자를 상대로 강남 한복판에서 관광투자 설명회를 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 광명시 공무원들이 의욕적이다. 제가 뛰는 만큼 공무원들도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
양 시장은 광명동굴 개발에 아이디어를 낸 공무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지난해 광명시에서 출판한 책이라며 『광명동굴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책을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단행본으로 제작된 책에는 ‘광명동굴 초기 개발담당, 자부심 느낀다-정광해 공원녹지과장’, ‘광명동굴은 내 운명, 죽을 때까지 못잊어- 최봉섭 테마개발계장’, ‘광명동굴을 와인의 메카로 만들다-최정욱 광명동굴 소믈리에’ 등 동굴 개발과 아이디어, 홍보에 기여한 공무원 15명의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맨 뒷장에는 ‘광명동굴을 만들 때 함께 한 공무원들’ 63명의 이름도 모두 기록해 놓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양 시장이 공무원들을 움직인 성공스토리에는 임직원들에 대한 칭찬과 격려, 긍정마인드가 한몫 했다. 양 시장은 “광명동굴 개발에 아이디어를 내거나 성과를 낸 부서 직원들은 모두 승진 등으로 보상을 해주었다”고도 했다. 칭찬과 격려, 합리적 보상이 관료조직을 움직였던 것이다. 광명동굴은 또한 ‘상생’의 성공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 현재 광명동굴 안에서는 국산와인 175종을 판매하고 있다. 올해는 10만 병 판매가 목표다. 국내 와이너리 대표들이 광명시를 자주 찾는 이유다.
1년 365일 중에 360일을 출근한다
리더인 양 시장과 팔로워인 공무원들이 서로 믿고, 소통하고, 힘을 합쳐 만들어낸 성공스토리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기적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그러고 보면 광명동굴을 만들기까지 양 시장의 공이 가장 큰 것 같다.
아니다. 폐광의 기적은 결국은 사람의 기적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더라.(웃음) 광명동굴을 개발하면서 소중한 인연들이 많이 생겼다. 동굴 안에 영화 <반지의 제왕> 에 나오는 용과 골룸 등 각종 소품들을 전시중인데, 제작사인 뉴질랜드의 웨타워크숍과 손을 잡고 국제 판타지 공모전도 했다. 그게 인연이 되어 판타지 관련 전문가를 연수 보내 판타지 산업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는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으로 아시아 최초로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 광명동굴전을 개최했는데, 17만 명이 방문했다. 덕분에 광명동굴 위상이 국제적으로 높아졌다. 7월1일부터는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의 바비인형전을 개최한다. 이제는 라오스정부에 동굴 개발 노하우를 전파, 콘텐트 수출까지 하게 됐다. 앞으로 속초에서 러시아 하산 자루비노항까지 카페리가 재취항하는데 러시아 하산군수와 중국 훈춘 부시장이 광명동굴을 와서 보고는 그 관광노선을 광명까지 연결하자고 하더라.
그러고 보니 양 시장의 재임 7년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소통한 역사인 듯하다.
제가 1년 365일 중에 360일을 출근한다. 우리 광명시 공무원들이 많이 힘들다는 것도 안다.(웃음) 처음에 공무원들 눈에는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이 무모한 도전으로 비쳤을 것이다. 광명동굴도 그렇고, KTX광명역세권 활성화를 위한 대형 유통업체 유치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이케아, 코스트코를 광명에 유치할 때 그것을 추진하면 시장의 정치생명이 끝난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야당 당적을 가진 시장이 중소상인들을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저는 자신이 있었다. 대형유통업체 입점을 반대하는 중소상인들과 유통기업들이 상생협약을 맺어 신뢰를 쌓게 하고, 광명시에서 중소상인들을 위한 주차장, 물류센터를 지어 배려했다. 그렇게 투트랙 전략으로 신뢰를 만들어갔다.
리더가 정책을 시행할 때는 반대가 있다고 해서 물러서면 안된다. 옳은 일, 필요한 일이라면 끊임없이 토론하고 설득해야 한다. 대부분의 조직이 그렇지만 리더가 말하면 20%는 적극적으로 따라오고 30~40%는 소극적이다. 나머지는 방관하거나 비판세력이 된다. 겪어보니 공무원 조직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리더에게 기대를 걸더라. 그러니 인사차별로 소외된 자리에 있는 직원일지라도 능력이 있다면 과감히 등용해야 한다. 그에 따른 주위의 비판이 있더라도 감수하는 게 리더의 몫이다. 그렇게 등용한 인재는 설사 일의 진척도가 느리더라도 리더가 기다려주면 일을 성실히 잘 수행해낸다. 제 경험으로는 그렇다.
광명동굴은 앞으로 더 개발되는가.
문화·예술·관광을 융합한 광명동굴은 대한민국 대표적 관광지를 넘어 이제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했다. 앞으로는 기존 포맷에 첨단과학기술을 입힐 생각이다. 가상현실(VR)·첨단과학기술을 접목한 공포체험관 등 다양한 콘텐트 중심의 볼 거리 및 즐길 거리를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예를 들어 VR 광부체험관이라든지, 대형 3D 미디어타워 등을 동굴 안팎에 배치, 기존 콘텐트와 결합시켜 발전시키려 한다. 아시아권에서는 보기 힘든 프로그램과 콘텐트를 광명동굴에서 보여줄 생각이다. 광명동굴의 깊이가 275m이고 동굴 길이가 7.8km인데, 개발된 부분은 이제 2km가 조금 넘는다. 동굴 개발의 아이디어는 아직 무궁무진하다.
KTX광명역을 유라시아 대륙철도의 시발점으로
시장실 벽에 옛 고조선 지도와 유라시아 대륙철도 지도가 있어서 놀랐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은가 보다.
통일문제는 사회정의 실현과 함께 오래된 제 꿈이다. 저는 KTX광명역이 북한을 통과해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과 영국까지 가는 유라시아 대륙철도의 출발역이 될 것을 꿈꾸고 있다. 남북한이 교류를 시작하면 남북철도 연결 등 현실적으로 서로 이익이 되는 사업들이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KTX광명역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종단철도(TKR) 건설이 현실성 있는 남북한 우선 사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러시아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중국횡단철도(TCR)를 연결한다면 광명역에서 출발해 유럽으로 가는 유라시아철도의 꿈이 이뤄질 것으로 확신한다. 이를 위해 광명시는 이미 북한과 인접한 중국 단둥시·훈춘시, 그리고 러시아 하산군과 경제교류 우호 협약을 체결했다.
올 하반기에 KTX광명역에 도심공항터미널이 들어선다고 들었다.
새 정부가 국정 과제로 유라시아 대륙철도를 추진할 것에 대비해 광명시도 광명역에서 김포공항~대곡역~문산~개성까지 가는 철로 관련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광명역이 우리의 꿈대로 유라시아 대륙철도의 출발역이 되면 베이징~하얼빈~ 블라디보스톡까지 7시간이면 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광명시는 한반도 첨단·특급물류 중심의 유라시아대륙 철도가 출발하는 거점도시가 된다. 이름 그대로 광명(光明)의 도시가 될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해 도전하지 않는다면 성공도 없다. 양기대 시장과 공무원들, 광명시민이 함께 일군 광명동굴은 할 수 있다는 긍정마인드와 도전으로 일궈낸 혁신경영의 성공 사례다.
양기대 시장은 중심성성(衆心成城)과 배사향공(背私嚮公)을 강조했다. 중심성성은 여러 사람의 뜻을 합치면 못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그는 “한 사람의 비전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것은 그 뒤를 받치는 수많은 사람들이며, 그 사람들이 모일 때 비로소 창조와 혁신이 태동한다”고 믿는다. 배사향공은 개인의 욕심은 버리고 공공의 이익을 향한다는 뜻이다. 이런 자세로 사람의 힘을 모아 낮은 자세로 살아가는 그가 또다른 어떤 성공 스토리를 써낼 것인지 ‘기대된다’. 그렇다. 이런 돈키호테라면 백번 환영이다.
[박스기사] “백만 인파가 몰려오는 현대의 알리바바 동굴”
양기대 시장
1962년: 전북 군산 출생. 전주고·서울대 지리교육학과 졸업.
2003년: 동아일보 법조담당 차장.
2008년: 민주당 광명을 지역위원회 위원장.
2010년: 7월~현재 경기도 광명시 시장, 2015.3 <중앙선데이> 2015 창조경영대상 수상. 2016 제8회 다산목민대상 본상 수상(광명시). 중앙선데이> 르>반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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