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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빈 풀러 한국지사장

김영빈 풀러 한국지사장

김영빈(33) 풀러 한국지사장은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 중 하나인 레드닷 어워드의 디자인 콘셉트 부문 수상 경력의 디자이너다. 지방대 출신으로 어학을 전공했다가 제품 디자인을 복수전공 한 지 1년 만에 이뤄낸 쾌거다. 그는 자신의 성공이 “항상 가슴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뛰어갔던 결과”라고 말했다.
사진 : 풀러 제공
스마트폰의 대표주자 애플의 성공은 디자인 경영(design management)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도 디자인 경영이 대세다. 김영빈 풀러 한국지사장은 인문학을 전공했다가 디자인 경영으로 방향을 전환한 이색 경력을 가지고 있다.

청년 김영빈은 어릴 적부터 교사가 꿈이었다. 조선대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그는 일본어 교사가 되길 꿈꿨다. 하지만 일본에서 유학하며 그 꿈이 흔들리고 만다. “나는 일본어학과를 다니는데도 전공이 다른 저들보다 일본어를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충격을 받았어요. 일본어 이외에 다른 전문 분야가 있다는 게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요.”

자극을 받은 그는 전문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분야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취업을 위해서는 왠지 경영학을 공부해야할 것 같았다. 하지만 디자인에도 관심이 갔다. 여동생이 패션 디자이너였고, 지인 중에도 디자인 분야 종사자가 많았다. 고민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 일본 타마미술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는 지인을 붙잡고 ‘딱 30분만 이야기하자’고 부탁했다. 김 지사장의 말을 듣던 그 지인은 ‘디자인 경영’이라는 분야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때 진짜 소름이 돋았었어요. 디자인과 경영에 둘 다 관심 있었는데, 두 개가 합쳐진 학문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거든요.” 유레카였다.

급한 마음에 일본 유학 도중 귀국해 버렸다. 가장 기초적인 포토샵도 스케치도 할 줄 몰랐지만 디자인을 전공할 수 있는 미대로 방향을 돌렸다. 다행히 면접만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면접 시험장에서 디자인학과 교수인 한 심사위원은 “디자인은 만만한 게 아니다, F학점을 주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그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난상토론 끝에 교수들은 그가 일본어학과 생활을 열심히 했다는 점을 인정해 입학을 허가했다. 입학은 했지만 역시 만만치 않은 길이었다. 학부 3학년 때 ‘제품 디자인’ 전공을 부여받고 1·2학년 미대생들과 함께 포토샵과 스케치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3대 국제 디자인 공모전을 준비하는 동아리에도 들어갔다. 김 지사장은 “미술을 계속 하던 사람이 아닌 인문학과 출신 학생은 디자인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친구들이 알고 싶어했던 것 같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김 지사장은 역대 수상작을 핸드폰 카메라로 다 찍어서 저장하고, ‘그 작품들이 왜 상을 받았을까?’를 연구했다. 그 해 주제는 리사이클(recycle·재활용)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손잡이가 떨어진 쇼핑백을 어머니가 버리는 모습을 봤다. 화장실에서 갑 티슈를 발견하고는 갑 티슈를 처음 쓰기 전 뜯어내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끊어진 손잡이를 제거하고 갑 티슈처럼 소정의 공간을 뜯어내어 손잡이처럼 만들면 쇼핑백을 다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 레드닷 어워드 디자인 콘셉트 수상작인 ‘리자드백(lizard bag)’은 그렇게 탄생했다. 꼬리를 잘라도 다시 자라는 도마뱀에 착안해 후배와 함께 디벨롭(develop)했다. 이후 삼성 글로벌 디자인 멤버십 프로젝트, LG재팬의 글로벌 디자인 리포터(일본 담당) 등에 참여하면서 김 지사장은 “디자인이란 외형적인 것보다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김 지사장은 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디자인을 더 공부하고 싶었다. 치바대학교 대학원을 목표로 했는데, 일본은 사립대학교보다 국립대학교에 입학하기가 더 어렵다고 들었다. 일단 연구생으로 들어가 두 번의 시험을 치르고 디자인 매니지먼트 석사 과정에 합격했다. 그런데 일본 취업 시장 특성상 입학하자마자 취업 준비를 해야 했다.
 데이터 비즈니스에 또 도전
2010년 레드닷 어워드 디자인 콘셉트 부문 수상작‘리자드백’. 손잡이가 끊어져도 다시 쓸 수 있는 쇼핑백이다. / 사진 : 김영빈 제공
마침 일본 IT 기업 사이버에이전트(cyberagent)가 공채로 디자이너를 뽑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김 지사장은 BX(Brand eXperience) 디자이너로 채용돼 나이키, 캐논 등 굵직한 광고 프로젝트를 맡았고, 한동안 재미있게 일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를 잃어버렸다. “아무리 내가 디자인적으로 옳다고 해도 광고에 있어서는 결국 광고주가 정답이더라고요.” 낙담해 있던 그때 디자이너 출신 경영인인 김봉진 ‘우아한 형제들’ 대표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김 지사장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돈을 많이 받는 일보다는 가슴이 두근대는 일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치바대학교 동기인 풀러공동대표로부터 입사 제의를 받았다. 김 지사장도 데이터 비즈니스에 관심이 생기던 차였다. 당시 그는 풀러의 첫 외국인 직원이자 최고령자였다. 2016년 포브스아시아가 30세 이하 유망주로 선정한 풀러 CEO 시부야 슈타(30)도 김 지사장보다 더 젊다.

앱에이프(App Ape)는 풀러가 한국에서 전개 중인 B2B 서비스이다. 패널 기반 빅데이터를 통해 모바일 시장 동향을 분석하는 모바일 앱 분석 서비스이다. 최근 2.0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해 한국 내 출시된 대부분 앱의 MAU(월간 활성 사용자 수), WAU(주간 활성 사용자 수), DAU(일간 활성 사용자 수), HAU (시간대별 활성 사용자 수), 성별/연령대별 비율은 물론, 이용 빈도별 사용자 비율, 평균 실행 횟수, 동시 소지 앱 등 앱별로 세분화된 데이터를 제공한다. 풀러의 고객사들은 이 데이터를 마케팅·영업·앱 개발·사업 기획 등에 활용하고 있다. 풀러의 해외 진출은 한국이 최초다. 지난해 5월 판교에 둥지를 틀었다. 현재 확보된 대표 고객사는 이노션, 슈퍼셀코리아, IBK기업은행 등이다. 이들은 앱에이프의 가장 큰 장점으로 피드백이 빠르다는 점을 꼽았다. WAU가 한국 고객사들의 요청으로 만들어졌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김영빈 풀러 한국지사장은 자신이 이 자리까지 온 데에는 ‘사람과 타이밍’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겸손해했다. 하지만 그의 포부는 컸다. “고객의 니즈가 있고 시장이 있다면 스타트업은 해외 진출을 통해 성장 속도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풀러가 일본 시장에만 갇혀 있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입사 시부터 저는 풀러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국 진출도 적극적으로 추진한 거고요.” 풀러는 동남아 및 미국 진출도 시도하고 있다. 김 지사장과 함께 커나갈 풀러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 양미선 기자 yang.mi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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