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아시아에 무슬림 스타트업 뜬다

아시아에 무슬림 스타트업 뜬다

기도 시간 알려주는 앱, 할랄 제품 전용 온라인 스토어 등 활기 띠지만 앤젤 투자와 벤처캐피털에 동원할 자본은 많지 않아
앱 ‘할랄 트립’을 이용하면 어디에서든 기도 시간과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여행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에서 5성급으로 평가받는 레스토랑이라지만 음식은 할랄(halal, 이슬람 율법에서 허용된 음식)일까? 인도네시아 우붓에 근사한 쇼핑가가 있지만 최신 유행의 히잡(머리와 목을 가리는 스카프)을 갖춘 부티크가 있을까? 호반의 그 근사한 호텔에는 기도실이 있을까? 무슬림은 소비자 그룹으로서 오랫동안 온라인 세계에서 외면당해 왔지만 이제 그들의 규모와 구매력이 커지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이슬람 시장, 다시 말해 가처분소득을 지닌 무슬림 시장 규모가 2조 달러를 넘는다. ‘글로벌 이슬람 경제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에는 3조735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2000만 명의 무슬림이 거주하는 말레이시아에는 무슬림판 실리콘밸리도 있다. 사이버자야(Cyberjaya)로 불리는 ‘멀티미디어 슈퍼회랑(multimedia super corridor, 정보도시계획)’이다. 스타트업 기업들이 적은 비용으로 창업할 수 있는 곳이다. 말레이시아는 이들이 사업에 시동을 걸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사이버자야가 전 세계 스타트업들에 액셀러레이터(성장 촉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년간 임대료와 세금 면제 혜택을 제공할 정도다.

특히 동남아의 스타트업들은 무슬림 시장을 정조준한다. 말레이시아 팝스타 유나 자라리가 개설한 패션 웹사이트 ‘노벰버 컬처(November Culture)’는 긴소매 드레스, 테이퍼드 팬츠(tapered pants, 밑단으로 내려갈수록 통이 좁아지는 바지), 바지, 인조 가죽 퀼로트(culotte, 치마바지)를 판매한다. 이 온라인 장터에서 요즘 뜨는 품목은 ‘파워 소매(power sleeves)’이며 세련된 머리 스카프 제품들을 갖췄다.

할랄 트립(Halal Trip)은 새로운 도시로 여행하는 무슬림들이 사원과 할랄 음식점을 찾도록 돕는 앱이다. 2년 전 파잘 발하르딘은 레저와 호텔 업계가 무슬림 여행자에게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발하르딘은 “여행을 할수록 뭔가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며 “그때 무슬림 친화도에 따라 여행 서비스 등급을 부여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는 20년 동안 기업에 근무한 뒤 싱가포르에서 회사를 차렸다. 그는 싱가포르를 가리켜 “역동적인 스타트업 업계가 있는 곳”이라며 “중심적 위치, 다문화 환경 그리고 ‘싱가포르’ 브랜드가 분명 비즈니스 장벽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할랄 트립은 쌍방향 지도를 포함해 무슬림 이용자 전용 기능이 많다. “우리 기능 중 가장 인기 있는 두 가지는 다목적 기도시간 계산기와 비행 중 기도 계산기”라고 발하르딘은 말한다. “여행자들이 기도 시간에 맞춰 호텔에 도착할 수 있는지도 계산해준다. 비행 중 기도시간 계산기는 모든 항공편에서 기도시간을 알려준다. 무슬림은 이 두 기능만 있으면 땅·바다 또는 하늘 어디에서든 기도 시간과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이젠 무슬림판 아마존도 생겼다. 2014년 루시디 시디키가 말레이시아에서 할랄 제품을 전문으로 하는 온라인 슈퍼스토어 질자르(Zilzar)의 문을 열었다. 글로벌 무슬림 식품시장 규모는 2015년 12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용자들은 할랄 음식, 전자 코란, 심지어 기도용 염주까지 도매로 구입할 수 있다.

시디키는 영국 신문 가디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시장 판도를 바꾸고 싶다. 소비자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고용을 창출하려는 목적이다. 누구나 자신의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기술은 사람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한다. 원조는 신흥시장의 무슬림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전에는 그들에게 먹을 양식을 주려 했지만 지금은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친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스타트업 업계가 성장함에 따라 이들 나라가 무슬림 커뮤니티 대상의 스타트업에 계속 투자하려는 조짐이 보인다. 말레이시아·싱가폴·인도네시아는 샤리아(이슬람법)를 따르는 크라우드펀딩(다수 대중으로부터 자금조달) 앱 ‘에티스(Ethis)’로부터 #HHWT(할랄만 있으면 여행하리라)에 이르기까지 세계로 뻗어나가는 역동적인 스타트업 커뮤니티에 터전을 마련해준다.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에두아르도 사바린에 따르면 동남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인터넷 시장이 분명하다.” 동남아 최대 국가 인도네시아는 스타트업 업계에 자원을 쏟아붓는다. 승차공유 업체 리프트셰어 그랩(Grab)은 인도네시아의 IT 분야에 1억 달러를 투자해 우버와 경쟁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2015년 말레이시아는 80만 달러에 상당하는 스타트업 투자 계약 96건을 중개했으며 싱가포르는 750만 달러 상당의 스타트업 투자 55건을 성사시켰다. 동남아 인구의 40%가 무슬림이다. 이들 중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브루나이는 무슬림이 과반수인 국가들이다. 이슬람에서 허용되는 제품·앱·휴가의 활용을 원하는 사람들의 잠재 시장은 엄청나다.

영국 런던에 있는 시티대학 비즈니스스쿨의 메지안 레퍼 교수(금융학)는 무슬림이 스타트업 분야에 대거 진출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는 “무슬림은 스타트업 자본을 빚으로 조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앤젤 투자(사업 지분과 투자 자본의 교환)를 통한 자본 조달은 가능하다. 무슬림 세계에서 스타트업이 붐을 이루는 이유 중 하나다.

레퍼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무슬림이 사업을 시작할 때 따라야 하는 규칙이 있다. 예컨대 이슬람법에서는 리바(Riba) 즉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 이자로 받은 돈을 빌려서도 안 된다. 무슬림 고객을 대상으로 할랄 서비스 사업을 하려는 이슬람 스타트업은 필수적으로 샤리아 법에 부합해야 한다.”

지난해 말레이시아에 세계 최초의 이슬람 벤처캐피털이 문을 열었다. 샤리아 법에 따라 스타트업 자본 투자를 한다. 이슬람 금융 규칙에 따라 운영되는 스타트업을 지원하려는 목표다. 12개월 시한의 이 ‘엘리베이트(Elevate)’ 개발 프로그램은 말레이시아 재무부와 이슬람개발은행(Islamic Development Bank)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동남아 지역의 신흥 IT 업계에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새내기 창업자들의 넘치는 의욕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자카르타 소재 벤처캐피털 ‘벤투라 캐피털’의 스티븐 융 대표는 뛰어난 창업자가 많지 않다는 점이 동남아 지역의 최대 제약요인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멘토를 만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앤젤 투자와 벤처캐피털로 동원할 자본도 많지 않다.

융 대표는 “동남아 각국의 문화적 뉘앙스에 관한 통찰을 지닌 창업자와 투자자가 거의 없다”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게다가 싱가포르 같은 더 큰 중심지는 사무실 임대료와 인재 확보에 많은 비용이 든다.

골든 게이트 벤처스의 저스틴 홀 대표는 프놈펜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스타트업의 부상에 관해 조심스럽게 낙관을 표명했다. “동남아는 중국이나 인도의 뒤를 따를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지역에서 막대한 규모의 투자와 스타트업 창업을 이끌고 있다. 앞으로 지역 내 벤처 창업이 더 활발해질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될 것이다.”

- 엘리너 로스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뺑소니 혐의’에 ‘음주운전 의혹’에도…가수 김호중, 공연 강행

2 “푸틴, 시진핑과 ‘올림픽 휴전’ 문제 논의”

3尹, 과학계 숙원 ‘R&D 예타’ 폐지 언급…“건전재정, 무조건 지출 감소 의미 아냐”

4‘민희진 사태’ 처음 입 연 방시혁 “악의로 시스템 훼손 안 돼”…법정서 ‘날 선 공방’

5“‘치지직’ 매력에 감전 주의”…팝업스토어 흥행

6“자신감 이유 있었네”…‘AI 가전=삼성전자’에 압축된 전략들

7넷마블 '아스달 연대기: 세 개의 세력', 총세력장 결정하는 첫 선거 예고

8“트랙스 공짜로 드립니다”...쉐보레, 특별한 행사 연다

9거래소, 미래에셋·신한·KB자산운용 등 ETF 4종목 21일 상장

실시간 뉴스

1‘뺑소니 혐의’에 ‘음주운전 의혹’에도…가수 김호중, 공연 강행

2 “푸틴, 시진핑과 ‘올림픽 휴전’ 문제 논의”

3尹, 과학계 숙원 ‘R&D 예타’ 폐지 언급…“건전재정, 무조건 지출 감소 의미 아냐”

4‘민희진 사태’ 처음 입 연 방시혁 “악의로 시스템 훼손 안 돼”…법정서 ‘날 선 공방’

5“‘치지직’ 매력에 감전 주의”…팝업스토어 흥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