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괴물과 4가지 이야기
나무 괴물과 4가지 이야기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몬스터 콜’, 판타지와 리얼리즘 혼합해 소년의 스토리 감동적으로 그려 패트릭 네스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몬스터 콜’(국내 개봉 9월 14일)은 13세 소년 코너 오맬리(루이스 맥두걸)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코너는 불치병에 걸린 어머니(펠리시티 존스) 때문에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데 학교에 가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우울한 표정과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폭력에 시달린다.
삶이 갈수록 힘겨워지면서 코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어머니를 돕는 데서 위안을 찾는다. 스스로 아침을 차려먹고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어머니가 쉴 때는 방해하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밤마다 어머니가 사라지는 악몽에 시달리면서 그런 나쁜 꿈을 또 꿀 것이 두려워 자정 너머까지 잠 못 드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러던 중 인간의 모습을 한 거대한 주목 나무 괴물(리암 니슨)이 매일 밤 코너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 몬스터는 이후 며칠 밤 동안 코너에게 3가지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그 다음엔 그 자신의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망설임 끝에 몬스터의 제안을 받아들인 코너는 그로부터 용기와 믿음, 인간의 복잡성을 배우게 된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블록버스터가 판치는 요즘 할리우드에서 보기 드물게 등장인물과 스토리에서 깊이와 풍성함이 느껴질 때가 많다. ‘몬스터 콜’도 예외가 아니지만 이 경우엔 흥미롭게도 플롯이 매우 단순하다. 코너를 비롯한 모든 캐릭터가 경험하는 정서적·은유적 여행이 중심을 이룬다. 데뷔 작품 ‘팬’(2015)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맥두걸은 작은 어깨에 온 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어린 소년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한다. 코너라는 캐릭터가 어린이에게 지워져선 안 될 무거운 짐을 진 것과 마찬가지로 맥두걸에게는 관객을 이끌어 가는 책임이 주어졌다.
촬영감독 오스카 포라는 첫 장면부터 관객을 코너의 경험 속으로 끌어들인다. 코너의 어머니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그녀의 상태가 얼마나 나쁜지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관객은 반쯤 닫힌 문을 통해서, 혹은 다른 방에서 들리는 코너의 속삭임으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관객도 코너만큼이나 어둠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며 그래서 그가 처한 상황이 더 걱정스럽다.
관객은 모든 걸 맥두걸의 얼굴에서 읽는다. 그의 표정은 슬픔과 혼란에서 순식간에 기쁨과 경이로 바뀌곤 한다. 매혹적이고 섬세한 그의 연기는 고통과 상실감이 뒤엉킨 복잡한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한다.
또 출연 시간은 얼마 안 돼도 존스와 니슨, 시고니 위버 등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탄탄하다. 집 거실이나 병원 침상 장면이 대부분인 존스가 등장할 때마다 어린 아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화면에 흘러 넘쳐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한지 느낄 수 있다. 위버가 연기한 코너의 할머니는 그녀보다 훨씬 더 엄격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마음의 벽을 허물고 손자와 가까워진다.
‘몬스터 콜’은 로우 판타지(low fantasy, 현실을 모델로 한 세계에 초자연적 요소를 가미한 판타지)의 형식을 빌렸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강점은 인간과 그들에게 닥친 시련에 초점을 맞췄다는 데 있다. 그 시련은 실패한 결혼생활과 가정불화, 죽음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인생을 바꿔 놓을 수도 있는 것들이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오퍼나지’와 ‘더 임파서블’ 등 전작에서 이런 민감한 주제를 훌륭하게 다뤘다.
영화의 비주얼도 출연진과 스태프만큼이나 인상적이다. 몬스터의 이야기는 모두 니슨의 내레이션을 곁들인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처리된다. 사람들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거나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도덕적 교훈을 담은 우화가 아름다운 수채화로 펼쳐진다.
‘몬스터 콜’은 판타지와 리얼리즘을 혼합해 슬픔에 성숙하게 대처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영화 막바지에 코너가 몬스터와 함께한 경험과 그의 친척들이 실제로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감정이 북받치는 장면이 연출된다.
몬스터는 코너가 상상 속에서 꾸며낸 존재일까? 영화에서 그 여부가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지만 몇 가지 힌트는 주어진다. 바요나 감독은 궁극적으로 그 말하는 나무가 진짜인가 하는 판단을 관객에게 맡김으로써 몰입도를 높인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엔 몬스터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니라 몬스터의 존재와 그 이야기를 당신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아닐까?
- 에이미 웨스트 아이비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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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갈수록 힘겨워지면서 코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어머니를 돕는 데서 위안을 찾는다. 스스로 아침을 차려먹고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어머니가 쉴 때는 방해하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밤마다 어머니가 사라지는 악몽에 시달리면서 그런 나쁜 꿈을 또 꿀 것이 두려워 자정 너머까지 잠 못 드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러던 중 인간의 모습을 한 거대한 주목 나무 괴물(리암 니슨)이 매일 밤 코너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 몬스터는 이후 며칠 밤 동안 코너에게 3가지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그 다음엔 그 자신의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망설임 끝에 몬스터의 제안을 받아들인 코너는 그로부터 용기와 믿음, 인간의 복잡성을 배우게 된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블록버스터가 판치는 요즘 할리우드에서 보기 드물게 등장인물과 스토리에서 깊이와 풍성함이 느껴질 때가 많다. ‘몬스터 콜’도 예외가 아니지만 이 경우엔 흥미롭게도 플롯이 매우 단순하다. 코너를 비롯한 모든 캐릭터가 경험하는 정서적·은유적 여행이 중심을 이룬다. 데뷔 작품 ‘팬’(2015)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맥두걸은 작은 어깨에 온 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어린 소년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한다. 코너라는 캐릭터가 어린이에게 지워져선 안 될 무거운 짐을 진 것과 마찬가지로 맥두걸에게는 관객을 이끌어 가는 책임이 주어졌다.
촬영감독 오스카 포라는 첫 장면부터 관객을 코너의 경험 속으로 끌어들인다. 코너의 어머니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그녀의 상태가 얼마나 나쁜지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관객은 반쯤 닫힌 문을 통해서, 혹은 다른 방에서 들리는 코너의 속삭임으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관객도 코너만큼이나 어둠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며 그래서 그가 처한 상황이 더 걱정스럽다.
관객은 모든 걸 맥두걸의 얼굴에서 읽는다. 그의 표정은 슬픔과 혼란에서 순식간에 기쁨과 경이로 바뀌곤 한다. 매혹적이고 섬세한 그의 연기는 고통과 상실감이 뒤엉킨 복잡한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한다.
또 출연 시간은 얼마 안 돼도 존스와 니슨, 시고니 위버 등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탄탄하다. 집 거실이나 병원 침상 장면이 대부분인 존스가 등장할 때마다 어린 아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화면에 흘러 넘쳐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한지 느낄 수 있다. 위버가 연기한 코너의 할머니는 그녀보다 훨씬 더 엄격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마음의 벽을 허물고 손자와 가까워진다.
‘몬스터 콜’은 로우 판타지(low fantasy, 현실을 모델로 한 세계에 초자연적 요소를 가미한 판타지)의 형식을 빌렸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강점은 인간과 그들에게 닥친 시련에 초점을 맞췄다는 데 있다. 그 시련은 실패한 결혼생활과 가정불화, 죽음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인생을 바꿔 놓을 수도 있는 것들이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오퍼나지’와 ‘더 임파서블’ 등 전작에서 이런 민감한 주제를 훌륭하게 다뤘다.
영화의 비주얼도 출연진과 스태프만큼이나 인상적이다. 몬스터의 이야기는 모두 니슨의 내레이션을 곁들인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처리된다. 사람들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거나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도덕적 교훈을 담은 우화가 아름다운 수채화로 펼쳐진다.
‘몬스터 콜’은 판타지와 리얼리즘을 혼합해 슬픔에 성숙하게 대처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영화 막바지에 코너가 몬스터와 함께한 경험과 그의 친척들이 실제로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감정이 북받치는 장면이 연출된다.
몬스터는 코너가 상상 속에서 꾸며낸 존재일까? 영화에서 그 여부가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지만 몇 가지 힌트는 주어진다. 바요나 감독은 궁극적으로 그 말하는 나무가 진짜인가 하는 판단을 관객에게 맡김으로써 몰입도를 높인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엔 몬스터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니라 몬스터의 존재와 그 이야기를 당신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아닐까?
- 에이미 웨스트 아이비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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