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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현장에선 내가 해적선의 선장”

“촬영 현장에선 내가 해적선의 선장”

1979년 배경의 영화 ‘우리의 20세기’ 내놓은 마이크 밀스 감독이 털어놓는 부모님과 어린 시절, 그리고 영화 이야기
마이크 밀스 감독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파일 카드에 적어놓고 그것을 바탕으로 각 캐릭터의 배경과 가족 관계를 완성해나간다. / 사진 : YOUTUBE.COM
마이크 밀스(50) 감독의 새 영화 ‘우리의 20세기’(국내 개봉 9월 27일)는 많은 것에 관한 영화다. 스케이트보딩, 토킹 헤즈(미국의 뉴웨이브 밴드), 10대 시절의 혼란과 외로움, 수전 손택(미국의 소설가 겸 사회운동가), 페미니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신뢰의 위기’에 관한 연설 등등. 하지만 이 영화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여자들만 있는 집에서 10대 소년으로 살아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혹은 영화에서 누군가 묻는 것처럼 ‘남자는 남자가 키워야 하는가?’에 관한 성찰이다.

아네트 베닝이 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바바라의 낡고 커다란 집에서 사는 이혼녀 도로시아를 연기한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그녀는 버켄스톡 슬리퍼를 신고 줄담배를 피운다. 그녀 곁을 떠난 지 오래된 남편은 아들의 생일 때만 돌아온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제이미(루카스 제이드 주만)의 양육에 어려움을 느낀 도로시아는 아들의 절친 줄리(엘르 패닝)와 2층에 사는 페미니스트 사진가 애비(그레타 거윅)의 도움을 청한다. 줄리는 플라토닉한 사랑을 증명한다며 제이미의 침대에 숨어들어 애를 태우는가 하면 데이비드 보위처럼 머리를 붉은색으로 염색한 애비는 제이미에게 ‘우리 몸, 우리 자신’ 같은 페미니즘 도서를 건네주고 여성의 생리와 클리토리스에 대해 알려준다.

“사람들은 이 영화에 내 개인적인 이야기가 얼마나 반영됐는지 궁금하게 여긴다”고 밀스 감독은 말했다. “그들은 ‘저 캐릭터는 당신 어머니(혹은 아버지)를 모델로 했느냐?’고 묻곤 한다. 그러면 난 ‘알아서 생각해라. 나도 모르겠다. 양쪽 다라고 해두자’라고 답한다.” 이 영화는 밀스 감독이 자신의 부모에 관해 만든 두 번째 영화다. 첫 번째는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70대의 나이에 커밍아웃하는 홀아비로 나오는 ‘비기너스’(2011)였다. 플러머가 연기한 캐릭터는 밀스 감독의 아버지를 모델로 했다.

“우리 아버지는 식사 때마다 필요한 포크가 어느 서랍에 들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집안일엔 관심이 없었다”고 밀스 감독은 말했다. “아버지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였지만 우리 가족 중엔 동성애 기질을 지닌 사람이 많다. 아버지는 여자처럼 연약한 게이가 아니라 마음이 여성스러웠다. 반면 우리 어머니는 험프리 보가트처럼 터프했다.”
‘우리의 20세기’는 ‘현재의 시작 지점’으로서 1979년을 배경으로 사춘기 소년을 키우는 싱글맘(아네트 베닝·가운데)의 이야기를 담았다. / 사진 : YOUTUBE.COM
밀스 감독의 어머니 잰은 199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산타바바라의 집에서 아들과 캐치볼 게임을 하고 그를 스케이트보딩 대회에 데려갔다. 스케이트보딩 선수들이 구사하는 온갖 기술의 이름을 다 알고 있었다. 그들 모자는 마치 커플 같았다. “우리는 동지였다”고 밀스 감독은 말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이성애자였던 난 어머니의 어린 남편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깊은 마음 속은 알 수 없었다. 아니, 내가 알고 싶었던 만큼은 몰랐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어머니는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다. ‘비기너스’와 ‘우리의 20세기’는 우리 부모님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영화다.”

밀스 감독은 50세의 나이에도 소년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푸른 눈과 핸섬한 용모, 막 벗겨지기 시작한 머리와 수줍은 태도가 그렇다. 그는 자신의 우상인 이탈리아의 거장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처럼 정장을 즐겨 입는다. 잠이 안 올 때는 펠리니 감독의 인터뷰를 모은 책을 다시 읽으면서 마음을 달랜다. “펠리니는 영화에 관한 한 내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밀스 감독은 말했다.

촬영 현장에서 밀스 감독은 평소보다 더 사교적이 된다.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그의 부인 미란다 줄라이는 그런 그의 모습이 늘 당황스럽다(두 사람은 로스앤젤레스 도심의 고급주택 지역에서 네 살 된 아들 헌터와 함께 산다). “아내는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고 그는 말했다. “난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는 것 같다. 감독으로서 영화 작업을 할 때는 누구보다 자상한 사람이 된다. 현장에 있는 사람 모두가 연인이라도 되는 듯 껴안아 주고 싶어진다.”

밀스 감독은 ‘우리의 20세기’를 촬영할 때 불교 승려를 초빙해 출연진과 스태프를 축복하게 하고 리허설 때는 첼리스트를 초청해 연주를 부탁했다. 그는 캐릭터마다 특정 음악을 지정해 매일 아침 그 곡에 맞춰 춤추게 했다. 버즈콕스의 ‘Why Can’t I Touch It?’과 글렌 밀러의 ‘As Time Goes By’ 등이 대표적인데 어느날 배우들이 노래를 바꿨다. “매우 아름다운 일이었다”고 밀스 감독은 말했다. “배우들은 감정에 경계가 없고 기복이 심하며 매 순간 생명력이 넘친다.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정말 좋다.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 재즈처럼 즉흥적이고 창조적인 교류가 이뤄지는 순간이다.”
‘비기너스’에서 크리스토퍼 플러머(왼쪽)가 연기한 캐릭터는 밀스 감독의 아버지를 모델로 했다. / 사진 : YOUTUBE.COM
밀스 감독은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39세가 돼서야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는 서브리미널 브랜드의 스케이트보드와 마크 제이콥스의 스카프, 힙합 그룹 비스티 보이스의 앨범 커버를 디자인했다. 에어와 소닉스 등 밴드들의 뮤직 비디오를 감독하기도 했다. 1999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한 뒤 영화감독 로만 코폴라와 광고 회사를 공동 설립해 나이키와 포크스바겐, 아디다스, 갭 등의 광고를 제작했다. “난 영화 대본을 쓰는 것만큼이나 음반 커버나 포스터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고 밀스 감독은 말했다. “그 일들은 모두 일맥상통한다. 영화는 커다란 상자와 같아서 그림과 사진, 개념미술의 아이디어 등 많은 것을 안에 담을 수 있다.”

밀스 감독은 마치 디자이너처럼 감독한다. 이는 그가 그래픽 감각이 넘치는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프랑스 감독 장-뤽 고다르처럼 대담한 색상을 사용하며 스틸 사진을 몽타주해 시대적 배경을 나타낸다. 스토리를 조합해가는 방식도 독특하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파일 카드에 적어놓고 그것을 바탕으로 각 캐릭터의 배경과 가족 관계를 완성해나간다. ‘우리의 20세기’를 제작할 때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79년의 이미지 2000개를 이용한 비디오 몽타주를 만들었다.

1979년은 현재가 시작된 시점”이라고 밀스 감독은 말했다. “퍼스널 컴퓨팅, 이슬람 혁명, 인공수정, 학교 총기난사, 석유 문제, 중동과 미국의 이상한 관계 등이 모두 이때 시작됐다. 오사마 빈 라덴이 무자헤딘(아프간 무장 게릴라 조직)에 가담하고 미 중앙정보국(CIA)의 자금을 지원받은 것도 1979년이었다. 이상한 일이 너무도 많이 일어났다. 또 당시는 디지털 이전 시대였기 때문에 삶이 지루했지만 그 지루함 속에 아름다움과 기회가 있었다.

밀스 감독의 통찰력은 이 지루함과 그것을 탐험하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피어난다. ‘비기너스’와 ‘우리의 20세기’는 가볍고 자유로운 구조로 엮여 있다. 부드럽고 재미있으면서도 편안한 연출로 한 대목이 다른 대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강한 감정의 울림이 보편적인 할리우드에서 밀스 감독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게 바로 이런 특성이다. 또한 ‘비기너스’는 플러머에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우리의 20세기’는 베닝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되는 영광을 안겨줬다.

“기쁜 일”이라고 밀스 감독은 말했다. “베닝이나 플러머 같은 배우와 일할 때는 마치 내가 해적선의 선장이 된 듯한 기분이다. 뱃머리에 깃발과 선수상을 꽂고 바다 위를 달리면 모든 게 완벽하다. 난 그 배의 선장 노릇을 하는 게 정말 좋다.”

- 톰 숀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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