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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못 막는다 보호자를 보호하라

치매는 못 막는다 보호자를 보호하라

미국 농촌 인구의 고령화로 환자 급증하지만 자금·전문가·의료서비스 없어 환자 가족의 고립과 부담 가중된다
사진:GETTY IMAGES BANK
남편 데이브는 꽤 자주 준 아만을 놀린다. 하지만 그녀는 이젠 웃지 않는다. 뭔가를 수리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핀잔을 주면 남편은 빨리 하라고 한 적이 없지 않냐고 대꾸한다. 남편에게 자기 말고는 놀릴 사람이 그렇게 없냐고 말하면 그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받는다. 때로는 아내의 아름다움에 관해 과거형으로 말하곤 그녀의 나무람에도 바로잡지 않는다.

지난 56년간 한 이불을 덮고 살았던 남편이 짓궂은 농담을 던질 때 준은 긴장한다. 그의 심한 말이 상처를 주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된다. 농담인지 아니면 달리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몰라 눙치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브는 3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남편이 의사들을 가리켜 “그들이 뭘 알아?”라고 농으로 받을 때 가슴이 답답해진다.

데이브는 준보다 3일 먼저 태어났다. 열 살 때부터 알고 지내며 미국 뉴욕 주 북부지역에서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살았다. 십대 시절에 데이트를 하고 18세에 결혼해 6명의 자녀를 뒀다. 아직도 손을 잡고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지만 요즘엔 데이브의 시선이 흐리고 불투명하다. 정신이 나간 듯하고 이야기를 듣는 건지 아니면 그런 척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리고준은 그의 놀림이 애정에서 하는 건지 아니면 그의 머리 속이 어두워져 가는 사실을 숨기려는 건지 알 길이 없다.

데이브는 필시 그녀가 누구인지 곧 못 알아보게 될 것이다. 그는 요실금이 있고, 혼자 옷을 입지 못하고, 가끔씩 상소리를 한다. 막 농장을 팔고 은퇴생활을 즐겨볼까 하는 시점에 데이브의 증상이 시작됐다. 준은 “하느님에게 울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준과 데이브는 뉴욕 주 온타리오의 작은 마을에서 산다. 온타리오 호수 호안에서 불과 3㎞ 남짓한 거리다. 두 사람은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역 전체가 농지로 덮여 있었다. 가장 가까운 도시인 로체스터가 불과 40㎞ 거리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농작물과 과수원의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주말에는 가족들과 스퀘어댄싱(4쌍의 커플이 정사각형을 이뤄 추는 포크댄스)을 즐겼다. 외부로 통하는 교통수단은 거의 없었다. 그들의 수십 년에 걸친 시골 생활은 로체스터를 마치 딴 세상처럼 보이게 한다. 준과 데이브는 미국 농촌에서 살아가는 전형적인 농민이다.

준에게 농촌 생활은 앞으로 갈수록 제 앞가림을 못하는 남편과 단 둘이 무한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의미다. 대황과 참오글잎버들(curly willow) 같은 작물은 이젠 재배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이젠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일이 거의 없다. 자식들은 타지로 떠나갔다. 하느님에게 충분히 울화가 치밀 만하다. 미국 농촌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많은 사람에게 지옥이나 다름없다.

미국이 급속히 고령화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최고령자가 2020년에는 74세가 된다(1946~64년 태어난 7300만 명에 육박하는 미국 인구 집단으로 그중 약 6500만 명이 아직 생존해 있다). 현재 미국인 중 약 7500만 명이 51~69세다. 이 같은 고령 인구의 급팽창은 치매로 알려진 퇴행성 뇌질환을 안고 사는 사람 수도 그에 따라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65세 이상 미국인 10명 중 1명(약 550만 명)이 치매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인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받았다. 2030년에는 8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일종의 치매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미국 농촌이 특히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청년 세대의 이촌향도 현상에 은퇴자의 전원환경 이주가 맞물려 농촌에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높아진다. 미국 농무부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농촌에서 은퇴연령 인구가 큰 폭으로 늘어나리라고 예상한다. 인구 밀도가 가장 낮은 카운티의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지역보다 14% 높아진다.

농촌 지역에서의 고령 인구 증가는 그에 따른 치매 인구의 증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지역의 카운티 정부에는 밀려드는 인지기능 저하의 물결에 대처할 만한 자금·전문가 또는 서비스가 없다. 지리적인 위치, 빈곤 그리고 보건의료 시설 부족으로 인해 보호자가 치매 환자를 돌보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결과적으로 보호자가 무거운 짐을 짊어진다. 심리적 고립에 육체적인 고통까지 더해진다. 가족들은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종종 환자를 장기 요양시설로 보내기도 한다. 미국 내 치매의 공식 지원 규모는 연간 2590억 달러로 추산된다.

그러나 뉴욕 주는 보호자를 구제하는 혁신적인 계획을 마련했다. 보호자가 휴식을 취하거나 샤워를 하거나 허드렛일을 처리하거나 또는 그냥 낮잠을 즐길 수 있게 말이다. 뉴욕 주는 보호자 지원에 5년 동안 6250만 달러를 배정했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건 뉴욕뿐이 아니다. 미국 전역 특히 노스다코타·미네소타·노스캐롤라이나 같은 농촌 지역에서 그런 주정부 지원 프로그램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런 프로그램으로 수십억 달러를 절감하고 준 같은 사람들이 다시 살 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뇌를 서서히 좀먹는다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치매는 미국인의 최대 사망원인 중 6위로 꼽힌다. / 사진:JENS MEYER-AP-NEWSIS
치매는 넓은 의미로는 아직 인지력과 주의력이 있는 사람의 의식 또는 기억 손상으로 정의된다. 치매 환자의 관심을 끌 수는 있지만 그리 오래 잡아두지는 못한다. 단기 기억을 상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환각에 사로잡히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성격이 괴팍해지거나 사람들 앞에서 자제력을 잃는다. 이 모두에 덤으로 다른 증상까지 보이는 사람도 있다. 어떤 증상을 보이든 모든 형태의 치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신경인지 질환으로 뇌가 죽어간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치매는 미국인의 최대 사망원인 중 6위로 꼽힌다.

알츠하이머는 멈출 수 없다. 일부 환자의 일부 증상을 완화하는 몇몇 약품 말고는 치료제가 없다. 과학자들이 병의 진행을 늦추는 다양한 식생활 변화를 연구 중이지만 아직껏 효과가 입증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치매는 뇌를 서서히 잠식해 들어가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치매에 걸리면 평균 9년 때로는 훨씬 더 오래 병을 안고 살아간다.

치매에 걸리면 평균 9년 때로는 훨씬 더 오래 병을 안고 살아간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 사진. / 사진:DAVID DUPREY-AP-NEWSIS
치매 환자 간병은 풀타임을 넘어 풀라이프, 모든 생활을 바쳐야 하는 일이다. 치매 환자는 목욕하고 옷 입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 음식을 차리거나 떠먹지도 못한다. 제때 약을 복용하지 못하고 진찰 예약이나 병원 방문을 하지 못한다. 때때로 도움 없이는 침대 또는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 목적 없이 배회하는 경향이 있어 가족의 속을 태운다.

뉴욕주립대학(플래츠버그) 소속 신경행동건강 센터의 신경 심리학자인 리처드 듀란트 임상팀장은 “무시무시한 질병”이라고 말했다. 치매는 서서히 뇌를 잠식해 들어가기 때문에 보호자 입장에선 부인 또는 아들이나 딸을 더는 알아보지 못하는 배우자 또는 부모와 긴 하루를 보내고, 억지로 욕실로 밀어 넣어 샤워를 시키고, 뇌의 통제를 받는 기능(예를 들어 삼키는 능력) 중 다음 번엔 어떤 게 멈출지 예측하지 못하는 생활을 수년간 지속해야 한다.

미국 내 치매 환자의 비공식 보호자 수는 1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주로 부인과 딸인 보호자는 대체로 진료비 납부나 의사 면담과 같은 부수적인 업무까지 처리해야 한다. 미국인은 비공식적인 치매 환자 요양에 연간 약 182억 시간을 들인다. 환산하면 4000억 달러에 상당하는 무료 봉사인 셈이다.

그렇게 할 일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보호자는 종종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치매가 진행될 때까지 의료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신경행동건강 센터의 발레리 드라운 정신건강 카운슬러가 한 보호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녀의 남편이 커피를 사오겠다고 차를 타고 나가 목적지 아닌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2시간 거리의 마을까지 갔다는 내용이다. 정도가 덜한 건망증이 몇 년 동안 지속된 뒤 이 일에 놀란 부인이 드라운 카운슬러에게 전화 상담을 요청했다. 보호자는 종종 치매환자가 환각을 느끼기 시작하거나 더는 대화를 지속할 수 없게 된 뒤에야 듀란트의 클리닉을 찾는다. 듀란트 임상팀장은 “그때는 우리로선 손 쓸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보호자가 지원 서비스에 도움을 청할 때쯤엔 스스로 준비할 기회를 놓치고 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는 긴 대기자 리스트의 제일 뒤에 서게 된다..

치매 환자 지원에 따르는 어려움은 농촌 지역에선 훨씬 더 심각하다. 특히 혹한의 겨울 날씨에는 병원(또는 단순히 슈퍼마켓) 방문이 어려울 수 있다. 언제든 보건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미국인 중 20%가 농촌지역에서 살지만 그런 지역의 개업의는 10%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전체적으로 고령자 돌봄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부족하며 농촌 지역에서 인력난이 더 심각하다.

가족원 간에도 종종 불만이 고조된다. 도시로 이주한 자녀들은 보호자 역할을 맡은 부모를 도울 수 없다. 남은 사람들은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지는 것처럼 느낀다”고 노스다코타대학 의과대학 농촌건강 연구소의 브래드 기븐스 부소장은 말했다. 그리고 본인도 질병이 있는 주로 60대의 보호자는 버림 받고 고립됐다고 느낀다. 준은 “아이들은 어디 있나? 왜 이곳에 오지 않나?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치매는 보호자에게 큰 희생을 강요한다. 최대 40%가 우울증에 시달린다. 전체 인구 중 같은 연령대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동년배보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비율이 더 높다. 또한 자신도 인지능력 저하가 시작될 가능성이 더 크다. 로체스터대학 의과 대학의 기억관리 프로그램을 이끄는 캐롤 포드골스키 소장은 “보호자에게 이런 스트레스가 누적돼 감각과 정서 그리고 신체 기능의 모든 측면이 무뎌진다”고 말했다. 준은 “나도 깜빡깜빡한다”며 “내 자신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집에서 돌보기
치매가 진행될수록 환자가 요양시설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 사진:LIU DONGYUE-XINHUA-NEWSIS
1980년대 초 메리 미텔먼의 모친은 치매를 앓으며 서서히 그녀에게서 멀어져 갔다. 뉴욕대 정신과의사인 미텔먼 박사는 그때의 정신적 충격을 계기로 자신을 비롯한 형제자매가 어떻게 더 잘 대처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을 갖게 됐다. “어떤 방법이 있는지는 몰랐지만 우리 가족이 어떤 전문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가족 드라마를 과학적인 탐구 과제로 삼기로 했다. 그런 노력이 평생의 업이 됐고 치매 환자 보호자의 고난에 절실히 필요한 관심을 집중시켰다.

미텔먼 박사는 보호자에게 갖가지 카운슬링을 더 많이 다양하게 제공하면 그들과 치매 환자에게 도움이 될지 알고 싶었다. 그녀는 무작위 임상시험을 설계해 별도의 카운슬링 기회를 얻은 가족과 그렇지 않은 가족의 결과를 비교했다. 1987년 시작된 이 조사는 치매 환자의 배우자 406명을 대상으로 18년간 지속됐다. 대조군은 기본적인 지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안내책자와 전문가 상담용 전화번호). 실험군은 4개월 동안 개인 상담 2회와 가족상담 4회, 필요할 때 전화상담 서비스 그리고 주간 상조회 참여 권유를 받았다.

조사 결과는 보호자 지원에 관한 한 다다익선이라는 미텔먼 박사의 직감을 뒷받침했다. 실험군 가족은 대조군보다 평균 1년 반 늦게 치매환자를 풀타임 요양 시설로 보냈다. 집에서 돌보는 시간이 늘어난 데는 추가 지원의 두 가지 혜택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됐다. 보호자가 치매에서 비롯된 행동 문제에 더 잘 대응할 수 있었고, 우울증을 덜 느꼈다.

치매환자를 집에서 돌보는 기간이 길어지면 병의 진행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치매가 진행될수록 환자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양로원이나 요양시설의 낯선 환경이 스트레스를 유발해 인지능력 저하를 재촉할 수 있다(침대에서 내려오는 방향의 변화 같은 사소한 듯한 일도 마찬가지다). 기븐스 부소장은 “그 환자에게는 모든 게 새롭다”며 “따라서 혼란에 빠진다”고 말했다.

자신이 선택한 곳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뜻하는 ‘재가생활(aging in place)’도 비용을 절감한다. 미국에서 알츠하이머병 발병률이 가장 높은 워싱턴 주에선 양로원 이용료가 연평균 9만7000달러다. 생활간병주거시설(assisted-living facilities, 경비·응급호출·식사·청소·목욕 등의 서비스가 제공되는 주거형태) 이용료는 연간 5만5000달러로 더 저렴하지만 최고 부유층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메디케어(고령자 의료보장)는 치매 수급자의 양로원과 전문 요양시설 비용으로 연간 1인당 약 2만2000달러를 지출한다. 반면 치매가 없는 수급자에 대한 같은 항목의 지출은 약 1100달러에 불과하다. 미텔먼 박사 그리고 미네소타 기반의 여러 보건의료 경제학자와 역학자들의 2014년 조사에선 미텔먼 박사의 보호자 개입 프로그램을 통해 2010~2025년 주 정부 예산 중 최대 9억9600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주 인구 중 3분의 1이 농촌에 거주하는 노스다코타 주에선 보호자 지원 프로그램을 통한 잠재적인 비용 절감액이 연간 1200만 달러 이상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미텔먼 박사는 그런 경제성이 보호자 개입 프로그램의 목적은 아니라고 말한다. “환자 가족의 웰빙 증진이 우리의 일차적인 목표다. 보호자가 버텨내지 못하면 치매환자에게 훨씬 더 어렵고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초래한다.” 환자를 도우려면 보호자를 편하게 해주라는 의미다.

약 10년 전 앤드류 스트레이트는 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할머니 애니를 발견했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도 몰랐다”고 그는 말했다. 할머니는 2009년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 지금은 안락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옆에는 2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것과 똑같은 안락의자가 놓여 있다. 그녀는 대화를 이어가지 못한다. 자신이 살아온 삶에 관해 거의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소녀 시절 올라서서 하늘을 향해 노래 부르던 바위도, 뉴욕 주의 자택 옆 레이크 플래시드 근처의 산에서 곰과 정면으로 맞닥뜨렸던 일도, 미니 레이스카 경주에서 우승한 일도 떠올리지 못한다. 잃은 것들(30대에 자동차 사고로 떠나 보낸 아들, 남편)은 기억하지만 항상 명확하거나 정확한 건 아니다. 83세의 할머니는 말한다.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어. 중요한 일이라서 잊고 싶지 않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

할머니는 질문에 대답할 수는 있지만 대화를 이어갈 수는 없다. “어떤 말이 옳은지, 또는 정확한지, 또는 그냥 지어낸 말인지, 또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에 지어낸 것인지 난 전혀 몰라.” 할머니는 드물게 정신이 맑아지는 순간에 말한다.

애니에겐 항상 보호자가 필요하다. 밤중에 일어나지 못하도록 측면 난간이 달린 병원 침대를 이용한다. 주 보호자는 아들 제프(64)와 며느리 섀런(62)이다. 밤중에 동태를 살필 수 있도록 애니의 방에 아기 모니터를 설치했다. 애니는 낮에는 주로 안락의자에 앉아 TV를 시청하거나 창밖을 내다보지만 혼자 둬서는 안 된다. “어머니는 두 사람의 간병이 필요하다”고 제프가 말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2시간 거리에서 살던 제프 부부가 어릴 적 고향 집으로 이주했다. 1841년 레이크 플래시드 북쪽에 선조가 세운 농가다. 42세인 손자 앤드류도 자식들을 데리고 할머니 집으로 이주해 4세대가 대가족 생활을 한다. 아들 제프 부부가 어머니 애니를 양로원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한 뒤로 모두 보호자 역할을 맡는다. 그는 “양로원에서도 어머니를 잘 돌봐드릴 수 있지만 우리가 집에서 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손자 앤드류의 자녀들도 기꺼이 간병을 돕는다. 트로이(17)는 곧잘 증조 할머니 손에 캔디를 쥐어드린다. 최근 2시간 거리로 이사해 나간 매켄지(20)는 매달 한 주씩은 집에서 지낸다. 헤일리(15)는 이들 가족의 헌신에 친구들이 감탄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너네 가족이야말로 진짜 가족 같아”라고 그녀에게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모두가 거들어도 충분하지 않다. 며느리 섀런은 2년 동안 병원을 가지 않다가 두어 달 전에 찾아가 진찰을 받았다. 전이성 전립선암을 앓는 아들 제프는 곧 호르몬 요법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둘 다 시간이 부족해 의사가 추천한 운동요법을 게을리했다. 손자 앤드류가 지하에 기초적인 운동기구를 설치했지만 1시간씩 이용할 만큼 할머니 곁을 오래 비우지 못한다.

도움을 받기가 힘들다. 가장 가까운 치매 전문 신경과 병원이 2시간 이상 떨어진 올버니, 가족 주치의들은 1시간 거리의 플래츠버그에 있다. 마을 주민은 2500명이지만 그중 가정 간호 보조원은 거의 없는 듯하다. 아들 제프 부부는 어머니 간병을 위해 귀향하기 전까지 2시간 떨어진 곳에 살았기 때문에 이 지역에는 연고가 거의 없다. 섀런은 “여기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알츠하이머병 후원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을 모색했다. 그러나 거주지가 농촌지역이라는 점이 항상 걸림돌이었다. 제프는 “그런 이유에서 가족이 총동원됐다”며 “기꺼이 도우려는 다른 사람들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잊지 않고 싶지만 기억이 안 나’
“보호자가 버텨내지 못하면 치매환자에게 훨씬 더 어렵고 불만족스러운 결과가 초래된다.” / 사진:LIANG SEN-XINHUA-NEWSIS
치매의 확산에 따른 심리적·경제적 고통이 커지면서 실용적인 새 방안을 모색하라는 압력이 주 정부에 거세지고 있다. 뉴욕 주는 예상 외의 접근법을 택했다. 보호자 지원에 전례 없이 거금을 배정하는 방안이다. 2015년 말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주내 비공식 치매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약 100만 명에게 675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9개 단체가 5년간에 걸쳐 750만 달러를 지원받아 스트레이트 가족과 아만 부부 같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게 된다.

쿠오모 주지사는 또한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현장 임상지원 분야에서 ‘10대 알츠하이머병모범센터’에 5년 동안 매년 230만 달러를 추가로 배정했다. 이 지원금으로 치매 간병은 당뇨·천식 같은 만성 질환과 암 예방 지원 서비스와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게 됐다. 모범센터 보조금을 받은 포드골스키 소장은 “뉴욕 주가 약간 지원하는 주에서 가장 많이 지원하는 주로 바뀌었다”며 “대단한 변화”라고 말했다.

‘알츠하이머 보호자 지원 프로그램’이라는 이 자금지원 프로그램은 미텔먼 박사의 보호자 개입을 모델로 삼았다. 보건부는 연간 750만 달러를 배정해 개인·가족 상담, 24시간 지원 핫라인, 상조회 모임, 지역 교육 강좌, 치매 환자와 보호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합동 강화’ 활동의 비용을 지원한다.

이 예산지원 프로그램은 메디케어·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장) 그리고 연방건강보험법과는 별도로 이례적으로 관료주의적 행정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실종자 긴급 대응 비용도 부담한다. 뉴욕 주 하워드 저커 보건국장은 “현장에서 보호자가 직면하는 온갖 부담을 덜도록 돕는 게 우리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보조금 중 가장 인기 있는 부분은 휴식 시간이다. 보호자는 이 보조금을 이용해 이웃·친구 또는 다른 일반인을 고용해 시간 당 15달러로 가족 치매 환자의 간병을 맡길 수 있다. 다른 경제적 자격요건은 없다. 뉴욕주립대학(플래츠버그) 신경행동건강센터에 지급되는 보조금을 관리하는 이본 로트는 “필요로 하는 보호자는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메디케이드 수혜 자격은 없는데 민간 돌봄 서비스는 자력으로 부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젠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신경행동건강 센터의 드라운 카운슬러는 “그런 이들이 내가 걱정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보호자에게 직접 지원을 제공하는 주는 뉴욕뿐이 아니다. 80%가 농촌지역인 노스캐롤라이나는 2001년부터 보호자 자금지원을 실시했다. 다만 2011년 예산삭감으로 휴가 시간은 폐지됐다. 노스다코타도 미네소타 주와 제휴해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뉴욕 주가 보호자 지원에 제공하는 자금 규모는 과거의 어떤 노력보다 몇 배는 크다. ‘로체스터·핑거 레이크스 지역 알츠하이머 협회’의 테레사 갤비어 회장은 “그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뉴욕주립대학(플래츠버그)을 통해 제공되는 휴식시간 혜택의 최초 수혜자 중 제프와 섀런 부부도 있었다. 각각 연간 최대 120시간 동안 다른 비공식 보호자에게 간병을 맡길 수 있다. 그들은 그 시간을 자신의 병원 진료, 가사 돌보기, 부부 동반 외출 등에 이용했다. 제프는 그 프로그램 덕분에 모친을 계속 돌볼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우리가 집에서 어머니를 계속 모실 수 있는 이유다.”

이 프로그램은 또한 거꾸로 의료 전문가들이 보호자 가족을 찾아가도록 하는 비용을 부담한다. 일부 보호자는 당사자인 배우자나 부모 앞에서 치매에 관해 논하기를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환자를 집에 혼자 남겨두고 클리닉을 찾아갈 수는 없는 형편이다. 또는 환자를 태우고 장거리 운전이 어려운 사람도 있다. 프로그램은 드라운 같은 카운슬러들이 멀리 외딴 곳까지 보호자를 찾아가도록 보조금을 지급한다. 그에 따라 보호자가 친숙한 환경에서 편하게 사적인 대화를 나누도록 하면서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드라운 카운셀러는 “어디든 보호자가 가장 편하게 느끼는 곳으로 그들을 찾아가는 게 우리 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머리 속엔 내 자리가 없다’
치매 환자 간병은 풀타임을 넘어 풀라이프, 모든 생활을 바쳐야 하는 일이다. / 사진:LIU DONGYUE-XINHUA-NEWSIS
이 모든 새로운 방안 덕분에 특히 농촌 지역 보호자가 큰 부담을 덜면서 막대한 비용을 절감한다. 치매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보호자의 통상적인 사비 부담은 8만 달러를 웃돌 수 있다. 그중 상당액이 가정 간병인 비용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런 보조금 지원으로 얻는 힐링은 그 이상의 혜택을 안겨준다. 알츠하이머병 간병 스트레스로 인해 표면화된 평생의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준은 오랫동안 부정적인 자기인식과 싸워 왔다. 먼저 어렸을 때는 엄마가 그녀를 아둔하고 못생긴 아이라고 불렀다. 커서는 꽃집을 운영하다가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져 문을 닫았다. “일처리가 능숙하지 못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농작물에 집착하는 농부의 아내가 된 뒤론 “남편이 농사일만 생각할 뿐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준은 남편 데이브가 치매에 걸린 후 보이는 고약한 언행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나는 상당히 부정적인 자화상을 갖고 있다”며 “데이브는 그런 아픈 상처를 쑤신다”고 말했다.

그러나 준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남편을 계속 극성스럽게 두둔한다. 거의 평생 동안 일궈온 사랑의 힘이다. 남편은 “내 기억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고 시인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로체스터대학 메디컬센터의 신경과 전문의가 내린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게 진단을 부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보호자 입장에선 자신의 상황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당사자가 치매 환자임을 시인하지 않아 보호자가 그 신분을 인정받지 못하면 도움도 받을 수 없다고 미텔먼 박사는 말한다. “그렇게 되면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다.” 준으로선 다른 많은 보호자와 마찬가지로 남편의 자존감과 긍지에 상처를 줄까 걱정해 그의 병명을 입밖에 내지 못해 간병의 어려움이 더 가중된다. 포드골스키 소장은 “준이 큰 비밀을 안고 가야 하는 탓에 고립이 더 심해진다”고 말한다.

포드골스키 소장과 상담하는 비용은 ‘알츠하이머병 보호자 지원’ 프로그램에서 부담한다. 덕분에 준은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마음 속 비밀을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피난처가 생겼다”고 포드골스키 소장은 말했다. 대화 상대가 생기면서 준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그녀는 “내게 생각보다 더 큰 힘이 있었다”고 말했다. 마침내 자식들에게 더 자주 찾아오라고 말하고 뉴스위크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용기도 얻었다. 그리고 데이브의 고약한 언행에 상처받지 않는 법을 익혔다.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고 그녀는 말한다. 이제 집 뒷마당의 헐린 헛간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할 때 상처와 불편함이 눈 녹듯 사라지면서 56년에 걸친 동행의 밑거름이 된 그들의 사랑이 빛을 발한다.

드라운 카운슬러는 예산지원 덕분에 보호자가 종종 가장 필요로 하는 대화 시간을 더 많이 얻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곤경에 처한 보호자로부터 수시로 전화를 받는다. “그들은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어줄 시간을 내준다는 데 눈물을 흘린다.” 게다가 그녀의 카운슬링 시간에는 제한이 없다.

이 프로그램은 갈수록 헷갈리는 건강보험 시스템을 보호자가 제대로 활용하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준은 인공어깨관절치환수술을 앞두고 있어 몇 주 또는 몇 개월 동안 남편을 돌볼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는 한 사회복지사가 건강보험과 기타 연방·주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그녀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냈다. 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치매 환자 보호자가 직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미국 의학연구소(IOM)의 2008년 보고서에서 의사·간호사·정신과의사·사회복지사 등 노인병학 전문가가 얼마나 부족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 같은 경고 이후로도 상황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 프로그램으로도 인력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가정 간병 도우미 보수가 패스트푸드점 점원과 비슷한 수준이니 더 힘든 간병인 일을 선택할 만한 경제적 인센티브가 거의 없다.

연방 차원에서 건강보험 혜택의 적용이 불확실해 아만 부부와 스트레이트네 같은 가족은 치매 간병비를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 지금은 환자가 의료서비스 제공자와 치매 예방 대책을 논의한 상담 비용을 메디케어에서 환급해주고 인지검사 비용을 대납해주는 덕분에 앞으로 치매 조기진단이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특히 오바마케어(환자보호·의료부담적정화법)의 불확실한 미래에 비춰볼 때 연방 건강보험법의 개정이 미국 고령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리고 아무리 많이 도와줘도 보호자가 그것을 찾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베이비붐 세대 중 연장자 그룹은 대체로 남에게 짐이 되는 걸 싫어한다고 저커 보건국장은 말한다. “세대 전체적으로 훨씬 더 독립적이다.” 농촌 주민 사이에선 그런 독립적인 성향이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노스다코타 주의 농장에서 성장한 기븐스 부소장은 “그들은 고통을 감내하며 한 가족으로서 대처한다”고 말했다. 관절염과 섬유근육통을 앓는 섀런은 애니 할머니를 돌보는 스트레이트 일가에 관해 “우리는 동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통은 삶의 동반자다. 죽음으로 고통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뉴욕 주 같은 프로그램은 지속 가능한 치매 확산 억제 대책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디뎠다. 신세대로 하여금 노년층을 다시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 간호보조원으로 일하기를 희망하는 애니의 증손녀 매켄지는 “보호자 가족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며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제시카 웨프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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