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16) 에너지 생성의 3가지 원리] 품거나 공존하거나 쪼개거나
[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16) 에너지 생성의 3가지 원리] 품거나 공존하거나 쪼개거나
일부 식물·미생물 빼곤 스스로 에너지 못 만들어...에너지 확보에 생존 달려 갈수록 살아가는 일이 힘들어지고 있다. 왜 사는 게 힘들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어서 그럴 수도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어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표면에 나타난 현상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 보면 결국 하나에 다다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획득하기 위해서다. 시쳇말로 먹고 살기 위해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뛰어 다닌다. 석기시대엔 사냥과 채집을 하러 다녀야 했다면 이제는 그것을 교환할 수 있는 수단인 돈을 ‘사냥’하고 할인되는 제품을 ‘채집’하러 다녀야 한다. 보기 싫은 사람도 만나야 하고 억울한 일도 감수해야 한다.
지금은 석기시대가 아니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단순한 생존이 아닌 생존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 해도 어쨌든 살아가는 모든 일은 우리 몸에 에너지를 잘 공급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허겁지겁 먹든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세련되게 먹든, 에너지가 있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아무리 비싼 자동차도 기름이 있어야 달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에너지가 중요하기에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나 교환가치가 있는 걸 가진 이들이 큰소리를 친다. 회사 조직에서도 그렇고 중동 산유국들이 국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그렇다. 결국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우리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동물이 그렇다. 단, 식물과 몇몇 미생물은 예외다. 식물은 무한한 햇빛과 물, 그리고 이산화탄소로 자기네들이 먹고 살 것을 스스로 만든다. 그렇기에 먹이를 찾아 다닐 필요도, 입이나 소화기관 같은 것도 필요 없다.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에너지 생산능력이 없는 동물은 ‘먹어야’ 산다. 먹는 것으로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 초식동물은 식물을,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에게서 에너지를 얻어야 하고, 우리 같은 잡식동물은 양쪽 모두에게서 그렇게 한다. 하지만 누가 스스로 자기 생명을 헌납하겠는가. 우리 눈에는 소와 양이 풀을 뜯는 광경이 평화 그 자체이지만 그들에게도 그럴까? 그럴 리 없을 것이다. 식물들이 탄닌 같은 쓰디 쓴 독과 날카로운 가시, 그리고 소화가 잘 안 되는 섬유소를 만든 게 무엇 때문이겠는가. 그러니 초식동물 또한 사는 게 쉽지 않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자의 역동적인 사냥 장면은 우리 눈에나 역동적일 뿐이다. 그들의 삶은 항상 ‘먹어야 사는’ 쪽과 ‘먹히지 않아야 사는’ 쪽의 운명이 충돌하는 경계에 있다.
우리가 먹이사슬이라고 하는 이 생태계 질서의 본질은 말할 것도 없이 살아가는 힘을 얻기 위한 에너지의 흐름이다. 묘한 건 이 에너지 흐름이 선순환한다는 점이다. 이 사슬의 최종 소비자도 결국은 죽어서 미생물에 의해 땅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에너지 흐름은 식물에게서 다시 시작된다. 강물의 흐름이 위에서 아래로 ‘그냥’ 흘러간다면, 에너지 흐름에는 ‘그냥’이라는 게 없다. 의도하지 않는 한, 그러니까 스스로 행하지 않는 한 에너지는 내게 흘러오지 않는다. 산다는 건 에너지를 흘러가게 하는 게 아니라 흘러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식물은 어떻게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이 귀중한 능력을 획득했을까?
지금으로부터 15억년 전, 그러니까 지구에서 살아있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생명들이 아주 작은 단세포로 살던 시절 작지만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어떤 세포가 자신의 내부로 들어온 한 특별한 미생물(남세균)을 소화시켜 버리지 않고 같이 살기로 한 것이다(세포의 오목한 곳에 붙어 기생하다가 내부로 들어왔다는 가설도 있다). 소화시키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녀석에게는 무한대로 쏟아지는 햇빛을 에너지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이 능력을 높이 사 품에 안은 것이다. 요즘 각 기업에서 유능한 인재를 예우하는 것처럼 말이다. 엽록체의 탄생이었다.
엽록체는 어떻게 햇빛으로 에너지를 만들까? 우선 햇빛을 이루는 광자를 붙잡아 이걸로 뿌리에서 길어 올린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시킨다. 그런 다음 산소는 버리고 남은 수소를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와 합쳐 포도당을 만들어 낸다. 쉬워 보이지만 절대 쉽지 않다. 연구에 따르면 160단계의 과정이 여기에 들어있다. 현재 수많은 과학자가 인공 광합성을 실현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지만 세상에 흔하디 흔한 잎이 하는 광합성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는 게 좋은 방증이다.
이 능력을 가진 덕분에 미생물은 우리 식으로 하면 ‘엽록체’라는 ‘작위’를 받고 대대로 광합성을 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대신 세포는 엽록체에게 단백질 같은 영양분을 나누어 준다. 윈윈 공생이다. 덕분에 식물세포는 이전보다 훨씬 효과적인 에너지를, 그것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어느 생명체보다 간결한 삶의 형태를 갖게 되었고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 수 있으니 더 커질 수도 있었다. 이뿐인가? 지구 생태계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이 살아가는 토대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첫 번째 부인이자 생물학자였던 린 마굴리스는 이걸 ‘공생 사건’이라고 불렀다. 생명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굴리스에 따르면 이 ‘공생 사건’은 한 번이 아니었다. 이전에 획기적인 사건이 한 번 더 있었다. 식물과 동물 모두에게 있는 미토콘드리아 ‘공생 사건’이 그것이다.
미토콘드리아 또한 엽록체가 된 미생물처럼 자유롭고 독립적인 생활을 했던 미생물 출신인데, 같이 살게 된 이유 역시 특별한 능력 덕분이었다. 엽록체가 빛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미토콘드리아는 우리가 마시는 산소를 이용해 우리가 먹은 영양분을 에너지로 만든다. 일종의 체내 발전소다. 미토콘드리아가 많은 세포는 그렇지 않은 세포보다 같은 양의 포도당에서 훨씬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볼 게 있다. 세포가 미토콘드리아의 능력을 높이 사 살아갈 곳을 마련해 준 건, 마치 황제가 영주나 제후에게 일정한 영토를 하사한 것과 비슷하지만 다른 게 하나 있다. 둘은 지배-종속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 관계, 그러니까 말 그대로 공생관계다. 예를 들어 미토콘드리아는 자신의 DNA를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다. 마치 봉건 영주가 자신의 영토를 자신의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독립성을 인정한 것이다. 에너지 생산능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힘, 생물학적인 에너지는 대체로 이렇게 생성되는데,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생성되는 방식은 두 가지가 더 있다. 이 둘은 물리학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알다시피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원자다. 원자는 원자핵과 그것을 둘러싼 전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운데에 있는 원자핵을 쪼개면(분열시키면) 엄청난 에너지가 생긴다. 예를 들어 양성자와 중성자가 모두 235개나 되는 우라늄을 핵분열시키면 보통 화학반응의 1억배 가까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걸 이용해 만든 게 바로 원자폭탄이고, 이 과정을 느리게 해서 우리가 쓸 수 있도록 한 것이 원자력발전이다.
또 다른 에너지는 이와 반대인 융합에서 만들어진다. 우리 행성의 빛나는 별 태양이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그렇다. 태양의 중심부는 온도가 1000만도에 이르는데, 이 속에서는 평소라면 부딪치지 않을 수소 양성자들이 격렬하게 움직이며 부딪친다.
엄청난 고온이 수소를 구성하고 있는 전자를 일찌감치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게 한 때문이다. 서로 부딪치는 양성자들은 가까워지면서 하나로 결합, 헬륨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질량이 줄어드는데, 이 줄어든 질량이 태양을 빛나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 핵융합 반응이다. 우주에 있는 별이 대체로 이런 식으로 빛나고, 이 원리를 이용해 만든 게 수소폭탄이다. 이렇듯 세상의 에너지는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능력 있는 존재를 품에 안고, 독립성을 인정해주면서 같이 살아가는 포용이 생물학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물리학적인 에너지는 꽉 뭉쳐있는 걸 쪼개는 과정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뜨거움으로 평소에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원자핵을 하나로 만드는 융합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런 에너지 생성원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은 적국이었던 거란족 출신의 야율초재를 재상으로 모셔 그가 정복한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게 했다. 낯설고 이질적이지만 특별한 능력이 있는 인재를 받아들인 덕분에 그는 대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당 태종은 쓴 소리만 골라서 하는 위징을 그럼에도 곁에 두었기에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두 번째 원리도 마찬가지다. 너무 커지는 조직을 분할해서 각자 자유롭게 자신에 맞는 일을 하게 하는 것도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구글이 얼마 전 지주회사 체제를 선택한 건, 회사가 커지면서 각 사업이 각자 서로 다른 전략을 전개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분리를 통해 더 나은 힘을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뭉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흩어져야 더 잘 사는’ 경우도 있다. 융합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생명의 역사는 언제나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거나 같은 에너지라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생명체가 주도했고 세상을 그들의 시대로 만들었다. 인류 역사도 마찬가지다. 인류는 불을 이용한 덕분에 다른 생명체보다 생존율을 확실하게 높일 수 있었고 겨울에도 잘 살 수 있었으며 북극에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현재 북극에 살고 있는 생명체 중 두꺼운 피부나 털이 없는 생명체는 인간이 유일하다. 자본이 에너지가 되는 시대에서도 마찬가지다. 근대에 일약 부국이 된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발굴하면서 세계적인 강국이 됐다. 하지만 이걸 재생산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해 부국에서 탈락했다. 농업경제를 더 생산적인 산업경제로 만들지 못했다. 뒤이어 등장한 네덜란드는 작은 나라임에도 세계를 넘나드는 배와 네트워크를 통해 엄청난 자본을 벌어들였고, 영국은 단순한 무역이 아니라 증기기관과 석탄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해내는 혁신을 이뤄낸 덕분에 한동안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다들 자신만의 에너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 내는 법을 터득했기에 찬란한 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생존은 에너지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확보하느냐에서 시작되고 좌우된다. 원리란 세상이 불확실할수록 필요한 법, 그래서 우리는 항상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세상을 작동시키고 있는 원초적인 에너지 생성 원리를 어떻게 나에게, 또 조직에게 적용시킬 수 있는지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낯설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미래에 필요한데 이질적이라고, 나와 맞지 않다고 눈 밖에 두고 내치고 있지는 않는가?
-지금 있는 것을 분리시키면 더 나은 걸 만들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건 뭘까(떨어져 있어야 일이 잘 되는 경우가 분명 있다)?
-보통은 하나로 만들 수 없는 수소 원자핵을 태양은 범접할 수 없는 뜨거움으로 하나로 만든다. 그러기에 스스로 빛난다. 리더로서 나는 조직을 하나로 만들고, 여기저기 산재한 기회를 하나의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걸 말로 하고 있는가, 아니면 뜨거운 행동으로 하고 있는가? 세계적인 완구 전문점 토이저러스가 심각한 위기에 몰려있다. 이유는 하나, 미래의 살아갈 힘, 핵심 역량을 예측하는 데 실패한 까닭이다. 지난 2000년 토이저러스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업체인 아마존과 계약을 맺었다. 10년 동안 아마존에서 어린이용품을 독점 판매하는 권한을 얻은 것이다. 아마존은 ‘장난감=토이저러스’라는 힘을 자기 사이트로 끌어들일 수 있어서 좋았고, 토이저러스는 자신들이 잘 모르는 온라인 쇼핑을 전문 업체에게 맡겨 좋았다. 온라인에서 토이저러스를 선택한 소비자들은 곧바로 아마존으로 연결되었다. 제휴는 엄청난 이득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마존이 독점 계약을 어기고 다른 업체에게도 판매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판매가 좋았기에 못 본 척했지만 수익에 변화가 생기자 결국 소송을 걸었다. 결과는 승소. 배상금으로 5100만 달러(약 560억원)를 받아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동안 세상이 바뀐 것이다. 토이저러스는 2006년 따로 온라인 사이트를 열었지만 이미 세상 소비자들의 머리 속에서는 ‘장난감=아마존’이라는 등식이 굳어진 후였다. 미래의 핵심 동력이 온라인에서 시작된다는 걸 예측하지 못한 채 아마존에 맡겼던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편의를 위해 미래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일에 소홀했던 것이다. 유기체들의 세상에서 통용되는 진리가 있다. 미래에 살아갈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는 유기체에게 세상은 혹독하다! 토이저러스는 새로운 생명력을 찾아낼 수 있을까?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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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석기시대가 아니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단순한 생존이 아닌 생존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 해도 어쨌든 살아가는 모든 일은 우리 몸에 에너지를 잘 공급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허겁지겁 먹든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세련되게 먹든, 에너지가 있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아무리 비싼 자동차도 기름이 있어야 달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에너지가 중요하기에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나 교환가치가 있는 걸 가진 이들이 큰소리를 친다. 회사 조직에서도 그렇고 중동 산유국들이 국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그렇다.
먹어야 사는 vs 먹히지 않아야 사는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에너지 생산능력이 없는 동물은 ‘먹어야’ 산다. 먹는 것으로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 초식동물은 식물을,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에게서 에너지를 얻어야 하고, 우리 같은 잡식동물은 양쪽 모두에게서 그렇게 한다. 하지만 누가 스스로 자기 생명을 헌납하겠는가. 우리 눈에는 소와 양이 풀을 뜯는 광경이 평화 그 자체이지만 그들에게도 그럴까? 그럴 리 없을 것이다. 식물들이 탄닌 같은 쓰디 쓴 독과 날카로운 가시, 그리고 소화가 잘 안 되는 섬유소를 만든 게 무엇 때문이겠는가. 그러니 초식동물 또한 사는 게 쉽지 않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자의 역동적인 사냥 장면은 우리 눈에나 역동적일 뿐이다. 그들의 삶은 항상 ‘먹어야 사는’ 쪽과 ‘먹히지 않아야 사는’ 쪽의 운명이 충돌하는 경계에 있다.
우리가 먹이사슬이라고 하는 이 생태계 질서의 본질은 말할 것도 없이 살아가는 힘을 얻기 위한 에너지의 흐름이다. 묘한 건 이 에너지 흐름이 선순환한다는 점이다. 이 사슬의 최종 소비자도 결국은 죽어서 미생물에 의해 땅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에너지 흐름은 식물에게서 다시 시작된다. 강물의 흐름이 위에서 아래로 ‘그냥’ 흘러간다면, 에너지 흐름에는 ‘그냥’이라는 게 없다. 의도하지 않는 한, 그러니까 스스로 행하지 않는 한 에너지는 내게 흘러오지 않는다. 산다는 건 에너지를 흘러가게 하는 게 아니라 흘러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식물은 어떻게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이 귀중한 능력을 획득했을까?
지금으로부터 15억년 전, 그러니까 지구에서 살아있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생명들이 아주 작은 단세포로 살던 시절 작지만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어떤 세포가 자신의 내부로 들어온 한 특별한 미생물(남세균)을 소화시켜 버리지 않고 같이 살기로 한 것이다(세포의 오목한 곳에 붙어 기생하다가 내부로 들어왔다는 가설도 있다). 소화시키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녀석에게는 무한대로 쏟아지는 햇빛을 에너지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이 능력을 높이 사 품에 안은 것이다. 요즘 각 기업에서 유능한 인재를 예우하는 것처럼 말이다. 엽록체의 탄생이었다.
엽록체는 어떻게 햇빛으로 에너지를 만들까? 우선 햇빛을 이루는 광자를 붙잡아 이걸로 뿌리에서 길어 올린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시킨다. 그런 다음 산소는 버리고 남은 수소를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와 합쳐 포도당을 만들어 낸다. 쉬워 보이지만 절대 쉽지 않다. 연구에 따르면 160단계의 과정이 여기에 들어있다. 현재 수많은 과학자가 인공 광합성을 실현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지만 세상에 흔하디 흔한 잎이 하는 광합성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는 게 좋은 방증이다.
이 능력을 가진 덕분에 미생물은 우리 식으로 하면 ‘엽록체’라는 ‘작위’를 받고 대대로 광합성을 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대신 세포는 엽록체에게 단백질 같은 영양분을 나누어 준다. 윈윈 공생이다. 덕분에 식물세포는 이전보다 훨씬 효과적인 에너지를, 그것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어느 생명체보다 간결한 삶의 형태를 갖게 되었고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 수 있으니 더 커질 수도 있었다. 이뿐인가? 지구 생태계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이 살아가는 토대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첫 번째 부인이자 생물학자였던 린 마굴리스는 이걸 ‘공생 사건’이라고 불렀다. 생명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굴리스에 따르면 이 ‘공생 사건’은 한 번이 아니었다. 이전에 획기적인 사건이 한 번 더 있었다. 식물과 동물 모두에게 있는 미토콘드리아 ‘공생 사건’이 그것이다.
미토콘드리아 또한 엽록체가 된 미생물처럼 자유롭고 독립적인 생활을 했던 미생물 출신인데, 같이 살게 된 이유 역시 특별한 능력 덕분이었다. 엽록체가 빛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미토콘드리아는 우리가 마시는 산소를 이용해 우리가 먹은 영양분을 에너지로 만든다. 일종의 체내 발전소다. 미토콘드리아가 많은 세포는 그렇지 않은 세포보다 같은 양의 포도당에서 훨씬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인공 광합성 아직도 성공 못해
세상을 살아가는 힘, 생물학적인 에너지는 대체로 이렇게 생성되는데,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생성되는 방식은 두 가지가 더 있다. 이 둘은 물리학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알다시피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원자다. 원자는 원자핵과 그것을 둘러싼 전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운데에 있는 원자핵을 쪼개면(분열시키면) 엄청난 에너지가 생긴다. 예를 들어 양성자와 중성자가 모두 235개나 되는 우라늄을 핵분열시키면 보통 화학반응의 1억배 가까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걸 이용해 만든 게 바로 원자폭탄이고, 이 과정을 느리게 해서 우리가 쓸 수 있도록 한 것이 원자력발전이다.
또 다른 에너지는 이와 반대인 융합에서 만들어진다. 우리 행성의 빛나는 별 태양이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그렇다. 태양의 중심부는 온도가 1000만도에 이르는데, 이 속에서는 평소라면 부딪치지 않을 수소 양성자들이 격렬하게 움직이며 부딪친다.
엄청난 고온이 수소를 구성하고 있는 전자를 일찌감치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게 한 때문이다. 서로 부딪치는 양성자들은 가까워지면서 하나로 결합, 헬륨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질량이 줄어드는데, 이 줄어든 질량이 태양을 빛나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 핵융합 반응이다. 우주에 있는 별이 대체로 이런 식으로 빛나고, 이 원리를 이용해 만든 게 수소폭탄이다.
핵분열 원리 원자폭탄, 핵융합 원리 수소폭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은 적국이었던 거란족 출신의 야율초재를 재상으로 모셔 그가 정복한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게 했다. 낯설고 이질적이지만 특별한 능력이 있는 인재를 받아들인 덕분에 그는 대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당 태종은 쓴 소리만 골라서 하는 위징을 그럼에도 곁에 두었기에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두 번째 원리도 마찬가지다. 너무 커지는 조직을 분할해서 각자 자유롭게 자신에 맞는 일을 하게 하는 것도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구글이 얼마 전 지주회사 체제를 선택한 건, 회사가 커지면서 각 사업이 각자 서로 다른 전략을 전개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분리를 통해 더 나은 힘을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뭉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흩어져야 더 잘 사는’ 경우도 있다. 융합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생명의 역사는 언제나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거나 같은 에너지라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생명체가 주도했고 세상을 그들의 시대로 만들었다. 인류 역사도 마찬가지다. 인류는 불을 이용한 덕분에 다른 생명체보다 생존율을 확실하게 높일 수 있었고 겨울에도 잘 살 수 있었으며 북극에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현재 북극에 살고 있는 생명체 중 두꺼운 피부나 털이 없는 생명체는 인간이 유일하다.
어떻게 에너지 생성 원리를 적용할 것인가
개인이든 기업이든 생존은 에너지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확보하느냐에서 시작되고 좌우된다. 원리란 세상이 불확실할수록 필요한 법, 그래서 우리는 항상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세상을 작동시키고 있는 원초적인 에너지 생성 원리를 어떻게 나에게, 또 조직에게 적용시킬 수 있는지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낯설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미래에 필요한데 이질적이라고, 나와 맞지 않다고 눈 밖에 두고 내치고 있지는 않는가?
-지금 있는 것을 분리시키면 더 나은 걸 만들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건 뭘까(떨어져 있어야 일이 잘 되는 경우가 분명 있다)?
-보통은 하나로 만들 수 없는 수소 원자핵을 태양은 범접할 수 없는 뜨거움으로 하나로 만든다. 그러기에 스스로 빛난다. 리더로서 나는 조직을 하나로 만들고, 여기저기 산재한 기회를 하나의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걸 말로 하고 있는가, 아니면 뜨거운 행동으로 하고 있는가?
[박스기사] 토이저러스의 추락, 미래 핵심 역량을 모른 죄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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