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Uli Sigg’s residence, photographs by Gu Changwei, vases by Ai WeiWei, opium beds by Zhao Zhao -copyright the artists, courtesy Sigg Collection청소년 시절까지 딱히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지 않았던 그였다. 그러나 늘 자신을 틀에 끼우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한 결과 미지의 나라를 향해 주저 없이 떠났다. 1979년 처음 도착한 중국은 그의 환상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그 어디에도 산수에 젖어 난을 치는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중국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은 경제적 궁핍과 정치적 억압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중국 작가를 만나게 된다. 이 작가는 울리 시그에게 동료 작가들을 소개하고 그들은 또 다른 동료 작가들을 소개해 그는 자연스럽게 작가들과 넓고 깊은 교류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들과의 만남은 그의 컬렉션 과정에 본질적인 과정으로 자리 잡는다. 아직은 중국 작가들의 작품 성향이 지극히 정치 선동적이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중국인의 사고를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충분히 기록적으로 남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소임을 실천할 주체가 아무도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스스로 그 사명을 실천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우고 나서도 10년이 넘는 기간을 연구의 시간으로 보낸다. 그러는 동안 중국 내부의 인플레이션과 소득 격차에서 오는 위화감 속에 새로운 정치 개혁을 절실히 원하는 중국인들의 갈망은 중국 작가들의 작품 속에 그대로 반영되었으며 작가들의 예술적 기술도 한층 발전한다. 이러한 과도기를 중국에서 몸소 체험한 그는 중국 작가들의 아틀리에를 방문하며 10년이 넘는 충분한 연구의 시기를 거친 후에 비로소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 내부에 쌓였던 불만들이 폭발된 톈안먼 사건(1989년 6월)이 터진다. 울리시그는 1990년 쉰들러 그룹을 떠났고 그 후 5년동안 그는 스위스 법인 이사회에서 회사 이사직을 맡았다. 그리고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중국, 북한, 몽골의 스위스 대사로 역임했다. 그의 컬렉션 중에 몽골 작가와 북한 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된 것은 대사로서의 삶을 기록하는 깊은 의미가 있다.
그에게 훌륭한 컬렉션이란 “Good collecting is no doubt a skill. It forces you to examine things in more depth. But for me, art is simply vacationing in my head"이다. 그는 Vacationing in my head 의 의미를 [사고와 상상력을 확장하기 위해 이미 소유하고 있는 내부 엔진을 가동시키는 것이다] 라고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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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통한 중국 현대사 상기
Office Uli Sigg by Ai Weiwei, copyright the artist번하드 피비셔(Bernhard Fibicher) 와 아이웨이웨이 (AiWeiWei)가 공동 기획한 2005년 6월 베른 쿤스트 뮤지엄의 [Mahjong, Contemporary Chinese Art from the Sigg Collection] 전시는 모든 컬렉터들에게 컬렉션의 기준이 되는 성경과도 같은 전시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홍콩 정부에 기증한 작품들은 2019년에 개관될 M + Museum에 소개되어 전 세계의 컬렉터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게다가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좀 더 의미 있는 아트 컬렉션의 방향을 제시하는 컬렉션이 되기를 바라는 그의 소망은 예술을 통한 중국 현대사를 상기시키고 있다.
2009년부터 미디어 회사 Ringier의 부회장이며 중국개발은행(China Development Bank)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그는 40여년에 걸친 컬렉션을 예술 애호가들에게 공개하며 기증 이후 더욱 분주한 삶을 살고 있다. 본인의 기증 작품으로 큐레이터로서의 자질까지 드러내고 있으며 프로급의 스키와 달리기 실력을 자랑하는 그는 또한 스포츠맨이기도 하다. 아트 컬렉션에서의 탁월한 감각, 열렬함은 스포츠에서도 단연코 필요한 감성이다.
21세기에는 단 한 생애 동안 여러 직업을 다양하게 소화한 인물들의 예가 수없이 많다. 경제부 기자, 경제인, 대사, international editor, 다시 경제인으로 돌아온 후 전문 스포츠맨이 되고자 하는 울리 시그는 여러 직업을 갖게 된 것에 대해 “게으름뱅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환경을 바꾸면서 그때마다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며 도전할 수밖에 없는 스스로를 만들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갖고 늘 그가 속한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자였지만 그를 훌륭한 인물로 역사에 남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아트 컬렉션이다. 이러한 유별난 경력을 소유한 울리 시그는 “기업가로서 컬렉션의 시작은 본인이 관심이 가는 전시에 몰두하는 단 한 시간만으로 족하다. 스스로에게 부여한 이 짧은 시간들이 쌓여 컬렉터의 높은 안목을 만든다”라는 조언을 남겼다.
Sculpture Wang by Wang Jin,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igg Collection울리 시그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과 예술에 대한 연구자로서의 삶이 [Sigg + Museum]을 통해 그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게 된다. 전 세계의 컬렉터들이 헤르조그 앤 드 뫼론 Herzog & de Meuron이 건축 중인 Sigg + Museum 박물관의 개관을 기다리고 있다. ※ 박은주는… 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 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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