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배구조 개선 현주소는] 격변기 거치며 더디지만 조금씩 변화
[기업 지배구조 개선 현주소는] 격변기 거치며 더디지만 조금씩 변화
지주사 전환 늘고 주주권 강화… ‘3~4세 경영권 강화에 초점’ 비판도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가 한파 못지 않게 살벌하다. 특히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6월 14일 취임 후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남용을 억제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힘쓰겠다”며 “연말이 데드라인”이라고 수 차례 언급한 바 있다. 1차 데드라인이 경과하자 김 위원장은 3월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까지의 시간을 2차 데드라인으로 제시했다. 롯데·효성·태광그룹 등 재계 순위 50위권 이내의 기업이 잇따라 지배구조를 개편하면서 ‘김상조 효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한국 정치·경제·사회 변화의 분수령이 된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것 중 하나가 기업 지배구조다. 지주회사로의 전환 등 외환위기 이후의 지배구조 변화상과 과제를 살펴봤다.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과 전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다음 여섯 문단을 기업 지배구조에 초점을 맞춰서 읽어보자.
① 김영삼 정부는 재벌의 요구를 수용해 세계화의 깃발 아래 규제를 풀었다. 재벌 기업 CEO들은 자기네의 실력을 과대평가했다. 그들의 의사결정은 지나치게 의욕적이었는데, 경영권을 넘겨받은 창업주의 2세 CEO들은 그런 성향이 더욱 강했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는 의욕에 걸맞은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② 당시 재벌 기업의 지배구조는 1인을 정점으로 했고, 왕조 국가의 지배구조와 다르지 않았다. 이른바 오너라는 소유 경영자는 중층적이고 순환적인 출자관계를 통해 계열사를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였다. 각 계열사의 이사회도 주주총회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소유경영자는 경쟁적으로 몸집을 키우기에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취약하던 재무건전성이 더욱 나빠졌다.
③ 대기업의 재무건전성은 해당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기업이 빚을 갚지 못하면 부실해진 채권은 금융회사에 부담을 준다. 재벌 기업의 과잉 확장에 금융회사가 제동을 걸었어야 했다. 그러나 관치금융에 길들여진 금융회사 경영진은 재벌을 견제할 의지도 판단력도 없었다. 재벌 기업이 분식회계로 재무 상태를 호도한 경우도 많았다. 금융회사는 관행에 따라 재벌 기업의 대출에 담보와 채무보증을 걸어놓고 안심했다.
④ 재벌 기업은 값싼 해외 자본을 더 많이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물꼬를 터줬고, 해외 자본이 전례 없는 규모로 유입됐다. 재벌 기업은 국내외 차입을 최대한 끌어들여 한껏 영역을 확장했다. 실력은 오래 가지 않아 드러났다. 재벌 기업은 휘청거리더니 쓰러지고 실려가기 시작했다.
⑤ 어떤 기업을 응급처치하고 어떤 기업은 수술해서 회복시키고, 어떤 기업은 망하게 하나? 일부 언론은 스스로 지어 낸 장단에 춤을 추며 기업 구조조정과 회생에 훼방을 놓았다. 금융 시스템을 개혁해 해외 투자자에게 한국의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고 신뢰를 회복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은 금융개혁법 처리를 남의 일처럼 여겼다.
⑥ 당시 한국 경제는 감당하지 못할 외채를 짊어지고 있었다.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면서 외환보유액이 줄어들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외환당국의 방만한 대응이 더욱 악화시켰다. 국내외에서 한국 국가부도의 위기가 거론됐다. 하필 그때 아시아 다른 나라들의 상황도 안 좋아졌고, 빌려준 돈을 한국에서 회수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깊어갔다. 우리가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엇갈려 다투는 사이에 외국 자본은 결정을 내렸다. 한국에서 탈출하라. 위기가 발발했다. 기업 지배구조는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을 누가 어떻게 하는지를 정하는 제도적·문화적 틀을 가리킨다. 주요 의사결정에는 증설 투자, 기존 생산방식 혁신, 새로운 사업 진출을 위한 연구·개발(R&D), 신사업 투자, 해외 생산, 기존 사업 부문 정리·매각, 주주·경영진·근로자에 대한 보상 등이 있다. 기업 지배구조는 내부적으로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해 작동하고 외부적으로는 금융회사와 정부도 영향을 미친다. 1990년대 한국 재벌 기업의 지배구조를 이런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면, 확장 일변도 경영 의사결정은 내부적으로 전혀 견제되지 않았고 외부로부터도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금융회사와 정부는 재벌 기업의 외형 확장을 지원했다. 이는 외환위기의 원인이 됐다. 당시 CEO의 독단을 제어하는 제도와 체제가 갖춰져 작동했다면 괜찮았다. 그렇게 할 제도적인 기반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법을 제정하고 개정해 실행해야 했다. 그런데 당시 한국 경제는 이들 조건 가운데 어느 하나도 충족하지 못했다. 경영권을 승계한 소유경영자 중 상당수는 경험도 능력도 없었고, 무능한데 의욕이 넘치는 CEO를 견제하거나 교체하기 위한 제도적·관행적 기반이 취약했으며, 새로운 제도적인 틀을 만드는 노력도 등한시됐다.
선진국에서는 우수한 기업 지배구조가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며 경제의 장기적 안정 성장의 기본 요건이라고 인식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해 1996년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강구키로 합의한 뒤 1999년에 ‘기업 지배구조의 기본 원칙’을 마련했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뒤늦게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착수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양해각서에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조건으로 넣었다. 세계은행(WB)은 외환위기 직후 한국 정부에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위한 기술차관 명목으로 4800만 달러 차관을 제공하면서 이 가운데 45만 달러를 기업 지배구조 개선용으로 지정했다. 이후 한국 정부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안 마련, 사외이사제도 강화, 감사위원회 설치와 감사의 독립성 제고, 집단소송제와 대표소송제를 통한 주주 권리 강화 등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다음은 최근 일본의 주간 경제지 [동양경제]가 외환위기 전과 후의 한국 대기업을 분석한 내용이다. ‘외환위기 발생 21년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기업 내 ‘소통’의 부재가 조직 경직화를 낳고 있다. 한국 주재 일본 직원들은 “책임자가 바뀌면 그 때까지의 업적은 사라진다. 사업 지속성 면에서 생각하자면 답답한 적이 많다”고 토로한다. 삼성 등 한국의 재벌 기업에 출장 경험이 있는 후지타씨는 “오너경영이기 때문에 사원들은 위만 바라본다. 부하가 상사에게 뭐라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조직 횡단적인 정보 공유도 불가능하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조직은 경직화를 낳는다. 외환위기 당시 ‘모르는 사이 회사가 도산했다’라고 회상하는 직원이 많았다. 외환위기에 의외로 쉽게 무너진 한국 기업의 체질은 지금도 그대로다. 더구나 한국에서 재벌의 세대 교체 시기가 다가왔다. 한국에선 경영권 승계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혼란을 야기한 선례가 많다…(중략)…한국 기업들이 후계자 체제로 자연스럽게 이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복잡한 그룹 지배에 있다. 외환위기 이후의 외자 유입으로 재벌 주식의 과반수를 외국인 주주가 보유하는 등 오너 일가가 대주주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늘었다. 오너 일가는 지배를 계속하기 위해 그룹 내 기업에서 주식을 나눠가지는 복잡하고 유연성 없는 지배체제를 낳았다. 이것이 기업 경영의 불투명성과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것도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기 위해 행한 합병에 따른 주식 매매에 대해 정부 측에 양해를 구하고 그 대가로 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경제]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 기업의 내부 구조는 외환위기 이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조직문화는 물론 구조적인 문제도 여전하다. 외환위기 때부터 지속적으로 문제시된 순환출자는 외환위기 이후 오히려 증가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금지된 지주사 체제를 부활시키고 이를 장려했다. 실제 많은 기업이 지주사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이들의 지배구조 변화 대부분이 ‘경영적 판단’이 아니라 ‘경영권 방어적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원활한 기업 활동과 경영을 위해선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더구나 이들 앞에 놓인 난관도 많다. 3~4세 경영 승계가 본격화하는 시점이다. 승계가 반복될수록 총수 일가의 지분율은 자연스레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란 상황에서 거세지는 주주행동주의와 이사회 구성 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도 변수로 떠올랐다. 그래서 기업들은 더욱 경영권 방어에 안간힘이다. 이 과정에서 차등의결권 같은 사안이 쟁점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기업의 속내가 ‘기업 활동을 더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의 소유권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인식이 팽배해서다. 이런 분위기에 이제 정치권까지 움직이고 있다.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도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팔을 걷어 붙였다. ‘재벌 총수 일가 전횡 방지 및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100대 국정과제’에 넣었다. ‘재벌 저격수’라 불리는 장하성·김상조 교수를 각각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공정위원장으로 불러들인 것도 상징적인 제스처다.
롯데·효성·태광그룹 등 재계 순위 50위권 이내의 기업이 잇따라 지배구조를 개편하면서 재계에 ‘김상조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6월 14일 취임 후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남용을 억제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힘쓰겠다”며 “연말이 데드라인”이라고 수 차례 언급한 바 있다. 1차 데드라인이 경과하자 김 위원장은 3월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까지의 시간을 2차 데드라인으로 제시했다. 공정위는 대기업들이 3월 정기 주총에서 ‘자발적 변화’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정위는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편안’과 ‘주주권익 보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공정거래법상 사전규제를 어느 정도 강화할지 판단해 하반기 입법 계획을 세울 방침이다. 공정위는 삼성·현대차·SK·LG·CJ·롯데 등이 투명경영 강화, 지배구조 단순화 및 일감몰아주기 해소, 주총 분산 개최와 주주권익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개선책을 내놓자 데드라인을 연장했다.
다만 재계 순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정중동의 모습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여러 차례 현대차의 지배구조를 언급하며 압박해왔다. 재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공정위가 정한 1차 데드라인에 맞춰 순환출자 해소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했다. 현대차그룹은 그러나 순환출자 구조를 끊어내면서 승계문제까지 동시에 해결할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또 이사회 중심 체제를 만지작거리는 삼성, 미래에셋캐피탈을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두고 있는 미래에셋그룹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어떤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기업 지배구조는 CEO를 정점으로 하는 집행 임원진을 이사회·주주총회가 견제해 CEO가 독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한국 특유의 구조에서 벗어나 소유하고 지배하되 직접 경영하지는 않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기업들이 이런 변화보다는 지배권을 유지하는 방안을 찾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바꿔야 하는 건 알았지만 바꾸지 못한 지난 세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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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재벌개혁 의지가 한파 못지 않게 살벌하다. 특히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6월 14일 취임 후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남용을 억제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힘쓰겠다”며 “연말이 데드라인”이라고 수 차례 언급한 바 있다. 1차 데드라인이 경과하자 김 위원장은 3월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까지의 시간을 2차 데드라인으로 제시했다. 롯데·효성·태광그룹 등 재계 순위 50위권 이내의 기업이 잇따라 지배구조를 개편하면서 ‘김상조 효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한국 정치·경제·사회 변화의 분수령이 된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것 중 하나가 기업 지배구조다. 지주회사로의 전환 등 외환위기 이후의 지배구조 변화상과 과제를 살펴봤다.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과 전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다음 여섯 문단을 기업 지배구조에 초점을 맞춰서 읽어보자.
① 김영삼 정부는 재벌의 요구를 수용해 세계화의 깃발 아래 규제를 풀었다. 재벌 기업 CEO들은 자기네의 실력을 과대평가했다. 그들의 의사결정은 지나치게 의욕적이었는데, 경영권을 넘겨받은 창업주의 2세 CEO들은 그런 성향이 더욱 강했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는 의욕에 걸맞은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② 당시 재벌 기업의 지배구조는 1인을 정점으로 했고, 왕조 국가의 지배구조와 다르지 않았다. 이른바 오너라는 소유 경영자는 중층적이고 순환적인 출자관계를 통해 계열사를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였다. 각 계열사의 이사회도 주주총회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소유경영자는 경쟁적으로 몸집을 키우기에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취약하던 재무건전성이 더욱 나빠졌다.
③ 대기업의 재무건전성은 해당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기업이 빚을 갚지 못하면 부실해진 채권은 금융회사에 부담을 준다. 재벌 기업의 과잉 확장에 금융회사가 제동을 걸었어야 했다. 그러나 관치금융에 길들여진 금융회사 경영진은 재벌을 견제할 의지도 판단력도 없었다. 재벌 기업이 분식회계로 재무 상태를 호도한 경우도 많았다. 금융회사는 관행에 따라 재벌 기업의 대출에 담보와 채무보증을 걸어놓고 안심했다.
④ 재벌 기업은 값싼 해외 자본을 더 많이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물꼬를 터줬고, 해외 자본이 전례 없는 규모로 유입됐다. 재벌 기업은 국내외 차입을 최대한 끌어들여 한껏 영역을 확장했다. 실력은 오래 가지 않아 드러났다. 재벌 기업은 휘청거리더니 쓰러지고 실려가기 시작했다.
⑤ 어떤 기업을 응급처치하고 어떤 기업은 수술해서 회복시키고, 어떤 기업은 망하게 하나? 일부 언론은 스스로 지어 낸 장단에 춤을 추며 기업 구조조정과 회생에 훼방을 놓았다. 금융 시스템을 개혁해 해외 투자자에게 한국의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고 신뢰를 회복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은 금융개혁법 처리를 남의 일처럼 여겼다.
⑥ 당시 한국 경제는 감당하지 못할 외채를 짊어지고 있었다.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면서 외환보유액이 줄어들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외환당국의 방만한 대응이 더욱 악화시켰다. 국내외에서 한국 국가부도의 위기가 거론됐다. 하필 그때 아시아 다른 나라들의 상황도 안 좋아졌고, 빌려준 돈을 한국에서 회수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깊어갔다. 우리가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엇갈려 다투는 사이에 외국 자본은 결정을 내렸다. 한국에서 탈출하라. 위기가 발발했다.
견제장치 없는 오너가의 독주
선진국에서는 우수한 기업 지배구조가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며 경제의 장기적 안정 성장의 기본 요건이라고 인식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해 1996년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강구키로 합의한 뒤 1999년에 ‘기업 지배구조의 기본 원칙’을 마련했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뒤늦게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착수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양해각서에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조건으로 넣었다. 세계은행(WB)은 외환위기 직후 한국 정부에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위한 기술차관 명목으로 4800만 달러 차관을 제공하면서 이 가운데 45만 달러를 기업 지배구조 개선용으로 지정했다. 이후 한국 정부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안 마련, 사외이사제도 강화, 감사위원회 설치와 감사의 독립성 제고, 집단소송제와 대표소송제를 통한 주주 권리 강화 등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다음은 최근 일본의 주간 경제지 [동양경제]가 외환위기 전과 후의 한국 대기업을 분석한 내용이다. ‘외환위기 발생 21년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기업 내 ‘소통’의 부재가 조직 경직화를 낳고 있다. 한국 주재 일본 직원들은 “책임자가 바뀌면 그 때까지의 업적은 사라진다. 사업 지속성 면에서 생각하자면 답답한 적이 많다”고 토로한다. 삼성 등 한국의 재벌 기업에 출장 경험이 있는 후지타씨는 “오너경영이기 때문에 사원들은 위만 바라본다. 부하가 상사에게 뭐라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조직 횡단적인 정보 공유도 불가능하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조직은 경직화를 낳는다. 외환위기 당시 ‘모르는 사이 회사가 도산했다’라고 회상하는 직원이 많았다. 외환위기에 의외로 쉽게 무너진 한국 기업의 체질은 지금도 그대로다. 더구나 한국에서 재벌의 세대 교체 시기가 다가왔다. 한국에선 경영권 승계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혼란을 야기한 선례가 많다…(중략)…한국 기업들이 후계자 체제로 자연스럽게 이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복잡한 그룹 지배에 있다. 외환위기 이후의 외자 유입으로 재벌 주식의 과반수를 외국인 주주가 보유하는 등 오너 일가가 대주주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늘었다. 오너 일가는 지배를 계속하기 위해 그룹 내 기업에서 주식을 나눠가지는 복잡하고 유연성 없는 지배체제를 낳았다. 이것이 기업 경영의 불투명성과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것도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기 위해 행한 합병에 따른 주식 매매에 대해 정부 측에 양해를 구하고 그 대가로 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경제]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 기업의 내부 구조는 외환위기 이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조직문화는 물론 구조적인 문제도 여전하다. 외환위기 때부터 지속적으로 문제시된 순환출자는 외환위기 이후 오히려 증가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금지된 지주사 체제를 부활시키고 이를 장려했다. 실제 많은 기업이 지주사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이들의 지배구조 변화 대부분이 ‘경영적 판단’이 아니라 ‘경영권 방어적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지주사 전환도 경영권 방어 목적?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기업의 속내가 ‘기업 활동을 더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의 소유권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인식이 팽배해서다. 이런 분위기에 이제 정치권까지 움직이고 있다.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도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팔을 걷어 붙였다. ‘재벌 총수 일가 전횡 방지 및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100대 국정과제’에 넣었다. ‘재벌 저격수’라 불리는 장하성·김상조 교수를 각각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공정위원장으로 불러들인 것도 상징적인 제스처다.
롯데·효성·태광그룹 등 재계 순위 50위권 이내의 기업이 잇따라 지배구조를 개편하면서 재계에 ‘김상조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6월 14일 취임 후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남용을 억제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힘쓰겠다”며 “연말이 데드라인”이라고 수 차례 언급한 바 있다. 1차 데드라인이 경과하자 김 위원장은 3월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까지의 시간을 2차 데드라인으로 제시했다. 공정위는 대기업들이 3월 정기 주총에서 ‘자발적 변화’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정위는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편안’과 ‘주주권익 보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공정거래법상 사전규제를 어느 정도 강화할지 판단해 하반기 입법 계획을 세울 방침이다. 공정위는 삼성·현대차·SK·LG·CJ·롯데 등이 투명경영 강화, 지배구조 단순화 및 일감몰아주기 해소, 주총 분산 개최와 주주권익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개선책을 내놓자 데드라인을 연장했다.
다만 재계 순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정중동의 모습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여러 차례 현대차의 지배구조를 언급하며 압박해왔다. 재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공정위가 정한 1차 데드라인에 맞춰 순환출자 해소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했다. 현대차그룹은 그러나 순환출자 구조를 끊어내면서 승계문제까지 동시에 해결할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또 이사회 중심 체제를 만지작거리는 삼성, 미래에셋캐피탈을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두고 있는 미래에셋그룹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재벌 저격수 전면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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