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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로봇, 그리고 최저임금

평창, 로봇, 그리고 최저임금

#1.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은 이 올림픽에서 일부 빙상종목에만 집중됐던 ‘메달 편식’ 성향을 극복하고 썰매·스키 등 설상종목에서도 골고루 메달을 획득했다. 메달의 색깔과 획득 여부에 상관없이 참가했던 모든 우리 선수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 중 특히 해외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던 이들은 아마도 ‘팀킴(Team Kim)’ ‘마늘 소녀(Garlic Girls)’ 등의 별칭이 붙었던 컬링 선수들일 것이다. 아쉽게 우승은 놓쳤지만 예선전부터 세계의 강팀을 파죽지세로 꺾어 파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팀의 주장인 김은정은 정확한 투구 등 대단한 경기력뿐 아니라 이기고 있든 지고 있든 무표정으로 경기 상대방을 질리게 해서 ‘로봇’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2. 필자가 중학생이던 시절이었다. 한 민영 TV방송국에서는 ‘마징가 제트’라는 일본 산 만화 영화가 초등·중학생 사이에서 절정의 인기를 얻으며 방영되고 있었다. 이 만화 영화의 주제가도 덩달아 큰 인기였다. 멜로디와 가사는 수십 년이 지나도 필자의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을 정도다.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인조인간 로버트 마징가 제트, 우리들을 위해서만 힘을 쓰는 착한 이, 나타나면 모두모두 벌벌벌 떠네, 무쇠팔 무쇠다리 로케트 주먹, 목숨이 아깝거든 모두모두 비켜라’. 그런데 TV 화면 하단에 뜨는 가사의 자막에는 ‘로보트’가 아니라 항상 ‘로버트’라고 써 있었고 이를 부르는 남성 4 중창단도 그렇게 발음하고 있었다. 원래 발음이 ‘로보트’가 맞는지 ‘로버트’가 맞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상관없을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떠오르는 이 기계의 발음은 이제 ‘로봇’으로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로봇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걷기도 하고 말도 하는 기계 장치’ ‘어떤 작업이나 조작을 자동적으로 하는 기계 장치’로 나온다. 위의 두 에피소드에 나오는 로봇의 이미지는 긍정적이나,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이 말의 기원은 1920년 카렐 차펙이란 체코의 작가가 발표한 희곡인 [R.U.R.]이다. R.U.R은 ‘Rossumovi Univerzalni Roboti’의 약어이며 작가가 이 작품을 발표 당시에 영어로도 부제목을 붙였는데 약어를 쓰지 않고 ‘Rossum’s Universal Robots’라고 풀어서 썼다. 당시 세계 경제의 중심인 영국에서도 이 연극을 공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한다. 실제 이 작품은 1920, 30년대에 영국과 미국에서 공연되어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카렐 차펙은 1890년에 태어나 1938년에 사망했다. 그는 희곡뿐만 아니라 수필 및 공상과학 소설도 여러 편 썼으며 여행기도 상당수 남겼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7번이나 올라갔으나 끝내 상은 받지 못했다. 창작 활동 이외에도 그의 기본 직업은 언론인이었는데 나치 등 파시즘에 대한 맹렬한 비판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래서인지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는 그를 ‘공공의 적’으로 지목하고 있었고 1939년 독일이 체코를 점령하게 되자 제일 먼저를 그를 체포해 죽이려고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생 골초였던 덕택에 그는 그 몇 달 전 폐렴으로 세상을 떠서 ‘험한 꼴’은 피할 수 있었다. 허탕을 친 게슈타포는 대신 분풀이로 그의 아내와 형 요셉 차펙을 잡아갔다. 결국 요셉은 나치의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그런데 이 요셉 차펙이 로봇이라는 용어의 탄생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R.U.R을 굳이 우리말로 바꾸면 ‘로썸의 범용 로봇’으로 번역된다. 극중 한 인물의 이름으로 쓰인 이 로썸(Rossum)은 ‘이성·지혜·논리’라는 뜻을 가진 체코어 ‘로줌(rozum)’에서 왔다. 그리고 로봇이라는 말은 ‘강제 노역’이란 의미의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왔다. 그러므로 R.U.R을 조금 무리해서 의역하자면 ‘이성의 범용 노예’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래 카렐 차펙은 라틴어를 차용해 극중 인조 인간의 명칭을 만들려 했으나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 망설이던 차에 화가이자 시인인 그의 형 요셉이 이 이름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 희곡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기 2000년경 R.U.R이라 불리는 인조 인간 공장이 있는 섬에 한 여성이 찾아온다. 로썸(Rossum)이라는 해양과학자가 1920년에 연구차 이 섬에 왔다가 우연히 생명의 근원물질(원형질)을 발견하고 동물과 사람을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이 공장의 역사는 시작됐다. 그때 마침 그의 조카가 삼촌을 보러 들렸다가 큰 돈을 벌 기회를 포착하고는, 이에 반대하는 삼촌을 감금한 후 인조 인간을 대량생산하는 공장을 만들었던 것이다. 공장을 방문한 여인의 이름은 헬레나(Helena)로, 로봇을 해방시키려는 인권단체 소속이다. 그러나 그녀도 곧 이 로봇을 해방시키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이 공장의 매니저와 결혼해 이 섬에 눌러 앉는다. 그로부터 10년 후에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로봇이 세계 경제를 좌우할 정도를 넘어 반란을 일으킨다. 세상의 인간을 모두 죽이고 공장에도 들이 닥친다. 무슨 이유에선지 헬레나는 로봇을 만드는 ‘제조 비법’을 태워버린다. 결구 헬레나까지 포함한 모든 인간은 죽임을 당하지만 이 로봇은 자신들과 같은 종족을 계속 생산해줄 알퀴스트(Alquist)라는 엔지니어는 살려 둔다. 그러나 제조 비법이 사라진 상태에서 그도 더 이상 로봇을 생산할 수 없게 되자 로봇들에게 자기를 도와 제조 비법을 되살릴 인간을 찾아 달라고 하지만 로봇 정부는 이 요청을 들어주지 못한다. 생존한 인간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는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면서 가져올 우울한 미래를 그린 것이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크게 인상한 지 두 달이 넘었다. 얼마 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1월 취업자수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33만 명 이상이 증가했다고 하니 언뜻 보아서는 그 충격이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그렇지는 않다. 최저임금 인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숙박 및 음식점업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3만 명 이상 줄었고, 지난해 12월 6만 명 가까이 줄아든 데 이어 고용이 계속 위축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실업급여 청구 건수도 크게 늘어났다는 보도도 이어진다.

고용을 줄이는 것 외에 기업·자영업자 등 노동 수요 측의 대응은 자동화로 옮겨 가는 모습이다. 전체 주유소의 20%인 2400여곳은 이미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PC방 등의 무인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패스트푸드 업계의 무인 주문기 도입도 가속화되고 있다. 산업계 전반에서도 무인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한 대형 물류 업체는 창고에서 주문수량만큼 상품을 골라 담는 작업을 로봇에 맡기는 시스템을 쓰고 있는데, 사람을 쓰는 과거에 비해 작업효율이 약 5배 높아졌다고 한다. 30%이던 당일배송 비율은 70%까지 뛰었다. 게다가 근로시간을 크게 줄이는 정책이 하반기부터 시행될 예정이어서 무인화 바람은 앞으로도 가속화될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무인 기계는 로봇이니 이는 ‘로봇의 사람 대체’ 현상이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이런 현상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정책에 따라 자발적 가속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안타깝기도 하다. 만약 지금 카레 차펙이 살아있다면 정책 당국자와 정치인에게 어떤 경고를 말해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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