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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 책임도 크다고?

성폭력, 피해자 책임도 크다고?

유명인사들이 성차별적· 퇴행적 언급으로 2차 피해 입히는 경우 적지 않아2012년 인도 뉴델리에서 끔찍한 집단 성폭행이 발생했다. 당시 23세의 여대생이 한 버스에서 운전사를 포함한 여섯 명의 남성에게 성폭행과 구타당한 뒤 버려졌다가 사망했다. ‘니르바야(Nirbhaya, 힌디어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성폭행 피해자를 가리킨다)’로 불린 이 사건은 인도와 전 세계에 충격파를 던지면서 가해자들의 신속한 처벌을 촉구하는 광범위한 시위를 촉발했다.

그런데 최근 인도의 한 생물 교사가 이를 두고 피해자의 잘못으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또 다시 파문이 일고 있다. 인도 중부 도시 라이부르에 사는 스넬라타 샹카와르라는 여교사는 국립학교의 9학년과 11학년 여학생들에게 신중한 처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진바지를 입고 립스틱을 바르는 여자들이 ‘니르바야 사건’ 같은 성폭행을 부추긴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이 녹음한 내용에 따르면 샹카와르 교사는 “얼굴이 예쁘지 않은 여자들이 자신의 몸을 노출한다”고 말했다. 또 그녀는 요즘 여자아이들이 ‘수치심’이 없어졌으며 ‘니르바야’ 같은 여성이 결혼하지 않은 남자 친구와 밤늦게 나다니면 성폭행을 당하기 쉽고 또 그런 일을 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도 했다.

뿐만 아니라 샹카와르 교사는 ‘니르바야 사건’이 “피해 여성의 잘못이지 가해 남성들의 잘못이 아니다”고 주장하며 “그런 일을 당하는 여성은 저주스러운 행동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이라고 피해자를 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샹카와르 교사의 그런 언급이 공개되면서 인도 전역에서 공분이 일었다. 트위터에서 많은 사람이 분노를 표했다. 한 네티즌은 “교육계의 이런 사람들이 인도의 미래를 망친다”고 개탄했다.

인도에서 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유명인사들이 성폭행을 두고 성차별적이거나 퇴행적인 언급을 종종한다. 몇 가지 예를 소개한다.
 세레나 윌리엄스
세레나 윌리엄스 / 사진:AP-NEWSIS
테니스 스타인 윌리엄스는 2013년 잡지 롤링스톤과 가진 인터뷰에서 스튜벤빌 성폭행 사건 같은 심각한 문제에 관한 질문을 받고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듯이 이렇게 답했다. “그녀는 16세다. 그런데 기억도 하지 못하는 곳에서 그처럼 술에 취한 게 잘못이 아닌가? 더 심한 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 정도가 다행이다.”

2012년 미국 오하이오주 스튜벤빌의 한 고등학교 미식축구 선수들이 학교축제 중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16세 여고생을 납치해 집단 성폭행했다. 경찰은 사건을 주도한 2명의 선수만을 체포했고, 사건을 서둘러 종결지으려 했다. 그러자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식축구 선수들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고 이 마을의 주 수입원이기도 하기에 이들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지적이었다. 게다가 가해자들은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성폭행하는 장면이 촬영돼 여러 SNS에 올려졌다. 동영상과 사진은 당시 사건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가해자들은 소녀를 몇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성폭행했으며, 엽기적인 행동도 서슴치 않았다. 그러면서 그들을 향한 비난 여론이 빗발쳤고, 성폭행과 그런 문화에 관한 국가적인 차원의 논의가 촉발됐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로드리고 두테르테 / 사진:AP-NEWSIS
필리핀 대통령인 그는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래 여러 차례 논란 많은 언급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해 5월 계엄령 선포지역인 남부 민다나오 섬에서 급진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추종 반군 소탕에 투입된 장병들을 위문하며 “여러분이 (여성을) 3명까지 강간한다면 내가 저지른 짓이라고 해줄 것”이라고 농담으로 말했다.

또 지난해 12월엔 ‘자신의 전성기 시절’ 성폭행 피해자들은 아름다웠고 ‘목숨을 걸 만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닐라에서 정부 고위 관리들과 의원들 앞에서 “그런데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매기 델라 리바에게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우리 시대엔 성폭행 피해자들이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델라 리바는 1960년대 필리핀에서 인기 높았던 여배우였다. 그녀는 1967년 마약에 취한 남자 4명에게 납치돼 성폭행당하고 고문당했다. 고위층 집안 출신인 범인들은 전기의자에 의한 사형을 선고 받았다.

두테르테는 또 2016년 대선을 한 달 앞둔 유세에서도 망언을 했다. 그는 1989년 자신이 시장으로 재직했던 필리핀 남부 다바오에서 발생한 교도소 폭동 사건을 언급하며 “수감자들은 모든 여성을 성폭행했고, 그중에는 호주 선교사도 있었다”면서 “그녀의 얼굴을 봤을 때 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고, 나는 시장이 먼저 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사람 바푸
아사람 바푸 / 사진:XINHUA-NEWSIS
인도의 유명한 힌두교 구루인 바푸는 2012년 델리의 집단 성폭행 사건을 두고 “피해자도 범인만큼 책임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범인들을 오빠라고 부르며 그들 앞에서 그만해달라고 빌어야 했다.” 바푸는 2013년 북부 라자스탄 힌두교 수행처에서 16세 여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난 나이가 넘 들어 그럴만한 성적 능력이 없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경찰 측은 바푸에 대해 “나이에 비해 매우 건강한 몸”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사건과 관련해 유죄 선고를 받고 현재 징역형을 살고 있다.
 G. 토드 보
G. 토드 보 / 사진:YOUTUBE
미국 판사인 그는 2013년 14세 여중생을 성폭행한 남자에게 단 1개월 징역형을 선고해 파문을 일으켰다.

보 판사는 미성년자 성폭행을 시인한 49세 교사 스테이시 램볼드만큼 피해자인 중학생도 “상황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었다”며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램볼드는 2007년 중학생 여제자를 수 차례 성폭행해 그 학생을 자살에 이르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 판사는 그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며 31일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의 집행을 유예하도록 판결했다. 이 소식을 접한 미국 시민들은 인터넷에 보 판사의 사퇴를 요구하는 청원사이트를 개설하는 등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보 판사는 재판에서 가해자가 교사 자격증과 아내, 집을 잃음으로써 충분히 고통을 겪었다는 변호사의 변론을 받아들이며 “성관계 당시 구타가 없었고 여학생의 자살이 성행위 때문이란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데일리 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의 어머니는 보 판사가 “성폭행을 용인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릭 샌토럼
릭 샌토럼 / 사진:XINHUA-NEWSIS
미국 상원의원을 지냈고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그는 후보로서 성폭행 피해자와 낙태에 관한 언급으로 맹비난을 받았다. 그는 “성폭행 피해자가 임신할 경우 힘들겠지만 그런 나쁜 상황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낙태를 거부하고 신의 그 끔찍한 선물을 환영해야 한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성폭행, 근친상간을 포함해 어떤 형태의 낙태도 반대하는 등 보수 색채가 지나치게 강하다. 심지어 자신의 딸이 성폭행을 당해 임신해도 낙태를 하지 말고 아이를 낳도록 설득하겠다고 말했다고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 디뱌 키쇼어 아이비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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