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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적은 오늘의 동지

과거의 적은 오늘의 동지

중국, 이념적 라이벌이던 러시아와 전략적 밀착으로 미국 제치고 아시아 패권 노린다
중국은 시 주석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접한 주변 지역을 넘어 아시아 전역과 아프리카·유럽으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 사진:AP-NEWSIS
아직은 미국이 아시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슈퍼파워다. 그러나 현재 중국과 러시아가 전략적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미국의 아시아 패권에 거세게 도전한다. 세계 최고의 전략 지역 중 하나인 아시아에서 나타나는 위태롭고 복잡다단한 파워 역학을 분석한 최근의 보고서에서 지적된 내용이다.

호주 시드니 소재 싱크탱크 로위연구소는 지난 5월 8일 아시아·태평양 지역 25개국의 국력을 평가한 ‘아시아 파워 지수(API·Asia Power Index)’를 발표했다. ‘경제적 자원’ ‘군사적 역량’ ‘탄력성’ ‘국방 네트워크’ ‘문화적 영향력’ ‘미래 전망’ ‘외교적 영향력’ ‘경제 관계’ 등 8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발휘되는 각국의 파워와 영향력을 측정한 결과다. 미국이 100점 만점에 85점을 얻어 1위에 올랐다. 그런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신흥 초강대국’ 중국이 75.5점으로 미국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중국은 일부 주요 평가 항목에서 미국보다 앞서며, 미국의 세계적인 군사 라이벌로 인식되는 러시아와 전략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상당한 이익을 얻고 있다.

러시아는 이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뒤지지만 중국과 손잡았다는 사실이 러시아의 입지 강화에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파워 지수에서 러시아는 33점으로 5위였다. ‘스마트 강대국’ 일본과 ‘미래의 거국’ 인도보다 뒤졌다. 또 중국은 아직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러시아와 공동전선을 펼침으로써 전통적인 서방 주도의 국제질서에 맞서려 한다.

로위연구소에서 API 프로젝트 조사 책임자를 맡은 에르브 르마이유 선임연구원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면서 그들의 파워가 합쳐진다”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상비군 규모도 가장 큰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3년 정권을 잡은 이래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중국은 시 주석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따라 인접한 주변 지역을 넘어 아시아 전역과 아프리카·유럽으로 영향력과 경제력을 확대한다. 그와 함께 국내외에서 중국의 급속한 성장은 막대한 에너지 수요를 창출했다.

바로 그 측면에서 러시아가 중국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떠맡았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수입했지만 2016년부터는 러시아가 사우디를 제치고 최대 대중국 석유 수출국이 됐다. 러시아와 중국은 아주 복잡한 냉전 역사를 공유한다. 처음엔 공산주의 강국으로서 동지애를 나눴지만 나중엔 이념적인 라이벌로 서로 적대시했다. 그러다가 2001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시 중국에 손을 내밀면서 ‘중국-러시아 선린우호 협력조약’이 체결됐다. 그 이래 양국 관계는 갈수록 공고해졌다. 지난 3월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 모두 국가 수반으로 재선출되면서 국내적으로 권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글로벌 영향력의 추를 서에서 동으로 옮겨 놓았다.

르마이유 연구원은 뉴스위크에 “러시아가 중국의 에너지 의존성을 상쇄해주는 측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어느 나라보다 리스크를 싫어한다. 그래서 러시아와 정략적으로 선린관계를 구축했다. 아주 냉정하고 계산적인 관계다. 따라서 그런 관계는 이득이 없으면 언제라도 쉽게 깨질 수 있다. 또 소련 시대와 달리 러시아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동생격이며 러시아도 그런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아시아 파워 지수에서 군사력만 놓고 보면 중국이 2위, 러시아가 3위다. 러시아군의 대부분은 유럽과 시리아에 배치된 반면 중국군은 아시아 지역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또 중국이 지출하는 국방비는 러시아의 3.5배에 이른다. 물론 두 나라 모두 미국의 국방비 지출과는 비교가 안 된다.현재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이웃나라들의 반발에도 많은 구역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여기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있지만, 중국은 러시아와 군사 관계를 강화하면서 그에 맞서는 상황이다. 2012년 이래 러시아와 중국은 여러 차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미사일과 대테러 훈련만이 아니라 연례 합동 해상 기동연습도 포함됐다. 지난 4월 중국 국방부는 올해 중-러 합동 훈련이 서해에서 실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2년 이래 중국과 러시아는 여러 차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 사진:XINHUA-NEWSIS
또 중국은 러시아와 미국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편에 서겠다는 뜻을 명백히 밝혔다. 지난 몇 달 동안 중국과 러시아의 관리들은 양국 사이에서 돋보이는 전례 없는 수준의 정치·군사 협력을 자랑했다. 예를 들어 지난 4월 개최된 제7차 모스크바 국제안보회의에서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에게 “특히 현재와 같은 상황을 감안해 중국군과 러시아군 사이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확고한 결의를 미국에 보여주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당면한 주요 지정학적 이슈에서도 공동보조를 취했다. 예를 들어 북핵 위기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그리고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하자는 ‘쌍중단(freeze-forfreeze)’ 접근법을 지지한다. 아울러 러시아와 중국은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혐의를 받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겨냥한 미국 주도의 공습에 반대했고, 2015년 체결된 이란 핵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기로 한 미국의 결정을 비난했다. 러시아(시리아에서 이란과 전략적인 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와 중국(이란에서 석유를 수입한다)은 미국·유럽국들과 함께 이란 핵합의 협정 조인국에 포함됐다.한편 푸틴 대통령은 오는 6월 중국 칭다오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중국·러시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의 협력기구) 정상회담에 참석할 예정이다. 7월엔 러시아가 제5차 중국-러시아 엑스포를 개최한다.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에 따르면 최근 중국 상무부의 가오펑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2018년 중-러 양자간 무역이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연간 무역액이 1000억 달러를 초월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로위연구소는 “아시아 국가 다수 사이의 경제적 관계가 강화된다”면서 “세계의 부와 파워가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런 추세의 대부분을 중국이 선도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7월 시진핑 주석은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후 최고 영예 훈장을 수여받았다(왼쪽). 지난 4월 12일 남중국해에서 중국군 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열병식이 열렸다. / 사진:XINHUA-NEWSIS
아시아 파워 지수에 따르면 중국은 3가지 주요 평가 분야(‘미래 전망’ ‘외교적 영향력’ ‘경제 관계’)에서 미국에 앞서며 ‘경제적 자원’에선 중국과 미국이 거의 동률을 이뤘다. 또 중국은 2030년이 되면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을 쉽게 능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상대하기를 꺼리기 때문에 역내 관계에서 더욱 전략적으로 중국의 편에 설 것으로 전망됐다. 중국이 가장 약하게 평가된 분야는 ‘국방 네트워크’였다. 군사 관계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아시아 파워 지수에 포함된 25개국 중 7개국와 긴밀한 군사 관계를 맺고 있어 1위로 평가됐다.

르마이유 연구원은 아직 중국이 국방비 지출을 크게 늘리지 않았고 지금까지 해군 전력 강화에 치중했지만 인공지능(AI)만이 아니라 장거리 미사일과 항공모함 같은 좀 더 전통적인 무기에도 투자를 늘려 방위 능력의 급속한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모든 점을 감안하면 중국은 현재 아시아에서 미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의 경쟁국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중국이 미국보다 더 강해질 것이라고 확언할 순 없지만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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