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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제의 딜레마] 소득 줄어들고 일자리는 늘지 않아?

[주 52시간 근무제의 딜레마] 소득 줄어들고 일자리는 늘지 않아?

재계, 생산성 유지하며 근로시간 줄이기 고심… 고용부 불명확한 가이드라인에 범법자 양상 우려



주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줄인 근로기준법이 7월 1일 시행된다. ‘저녁이 있는 삶’을 잃어버린 직장인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이다. 쉴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지만 그만큼 소득도 줄어들 공산이 크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전체 근로자(5인 미만 사업장, 특례업종 제외)의 11.8%인 95만5000명의 임금이 감소할 전망이다. 정부의 기대처럼 일자리가 늘어날지도 미지수다. 재계에서는 근로시간은 줄이되 인력은 늘리지 않으면서 생산성을 높일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불명확한 것도 문제다. 업무상 지인과 식사나 해외 출장, 워크숍 등이 근로시간에 포함되는지 불분명하다. 이른바 ‘김영란법’ 초기 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딜레마를 짚어봤다. 또 이미 근로시간을 많이 줄인 선진국에서는 ‘워라밸’을 어떻게 이뤄가고 있는지도 살펴봤다.
사진:© gettyimagesbank
대기업 15년차 박동훈(가명) 차장은 요즘 작은 고민이 생겼다. 회사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를 선제 도입해 5시 반 퇴근을 시작해서다. 갑작스러운 ‘저녁 시간’에 어색해하며 일단은 집으로 갔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TV를 보며 아이들을 기다렸다. 중학생 아들도 집에서 기다리는 아빠가 낯설다. 비슷한 경험을 하던 동료들은 제각기 헬스클럽에 다니거나 영어·일본어 학원에 등록하고 자기계발을 시작했다. 단점도 생겼다. 업무 시간이 훨씬 빡빡해졌다. 근무시간이 줄었는데 업무량은 그대로다. 정해진 시한 내에 업무를 마감해야 한다. 차 한 잔 하자거나 같이 담배 한 대 피우자는 이야기가 거의 사라졌다. 박 차장은 “화장실 다녀올 시간도 아껴가며 일하고 있지만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만족감이 더 크다”며 “지금은 다소 어색하지만 남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저녁이 있는 삶’에 적응 중
7월 1일 시행되는 개정 근로기준법의 핵심은 주 52시간 근무제다. 코 앞으로 다가온 52시간 근무를 앞둔 대기업들은 시험 운영에 분주하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전자·SK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은 이미 유연근무제와 자율출퇴근제를 도입했다. 오후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있다. 대기업 가운데 가장 앞서 나간 곳은 신세계다. 지난 12월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시행 중이다. 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한다. 5시 20분에 컴퓨터 전원이, 5시 30분엔 사무실 불이 꺼진다. 오전과 오후, 하루 두 번의 집중근무 시간에는 휴대전화 통화도 눈치 보일 정도로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 회의 시간을 줄였고 전자결재 시스템을 도입해 효율을 높였다. 신세계 관계자는 “직원 반응과 업무 환경을 세심히 관찰하며 효율적으로 제도를 운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직장인의 업무환경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주 52시간 근무제는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추진 예정이다. 제도 도입의 목적은 근로자 복지 향상과 노동재해 감소,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있다. 주무부서인 고용노동부는 이번 조치로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현재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103만 명의 평균 근로시간이 최소 6.9시간 감소하고 14만~18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부는 기업이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원을 더 고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근로자의 근로 조건이 개선되고 여가생활이 늘어나 내수가 진작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103만 명 근로시간 6.9시간 단축 전망
정부의 의도는 좋지만 ‘선한 의지’에서 나온 정책이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산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편법을 정부가 일일이 단속하기 어렵다. 업무는 그대로인데 회사는 ‘퇴근시간 준수’를 요구한다. 근무시간이 줄었는데 업무량은 그대로다. 방법을 찾다 보니 꼼수가 나오고 있다. 현행법에서 공식 출근시간 9시 이전은 ‘업무준비시간’이다. 먼저 나와 있어도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출근시간이 비 자발적(?)으로 앞당겨질 수 있다. 업무량이 많은 날에는 퇴근 카드 찍은 후 계속 남아 야근하거나, 퇴근 후 집이나 회사 인근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매일 한 시간에서 두 시간 강제 휴식 시간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개정법에서는 근로시간과 휴식시간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공식적으론 오침이나 헬스장으로 적혀 있는 휴식시간이 비공식적으로는 업무에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법은 멀고 직장 상사는 가까운 게 현실이다. 비공식적으로 회사 일을 떠맡길 가능성이 있다. 한 중견기업 직원은 “주 52시간에 맞춰 회사에서 일을 마친 후 회사 밖에서 야근을 하게 될 것 같다”며 “퇴근을 앞둔 시간이라도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이를 처리해야 하는 게 직장인의 현실”이라고 푸념했다. 권세웅 가온노무사사무소 노무사는 “결국 업무 강도가 높아지고 재택근무, 조기 출근 같은 비정상적인 근무의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꼼수라도 일을 시켜주는 것이 다행이라는 의견도 있다. 근로자에게 과도한 업무보다 더 무서운 단어는 구조조정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559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신규 채용을 하겠다’는 응답은 26.3%에 그쳤다. 인력을 늘리기보다 조직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구조조정을 선택하는 분위기다. 의정부 모 중견기업 관계자의 상황 설명이다. “기계를 하루 3교대로 돌린다. 물량이 늘어 야간 근무를 하면 항상 숙련된 기능공을 라인에 붙였다. 기존 근로자들이 야근하며 수당을 받았는데 원칙적으로 불법이 됐다. 인원 배치하고 비정규 임용직을 늘려야 생산이 가능하다. 회사가 지불하는 비용에는 변화가 없지만, 정규직 직원들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임금을 올려주면 회사 운영이 어렵다. 장기적으로 자동화 공정을 늘려서 인력 투입을 줄이는 방향으로 갈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구조조정은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

중소기업중앙회는 4월25일부터 5월4일까지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단축 관련 의견조사’를 실시했다. 근로시간 단축 때 예상되는 애로사항으로 ‘가동률 저하에 따른 생산 차질과 납기 준수 곤란’(31.2%)을 가장 많이 꼽았다. 또한 평균 6.1명의 인력이 부족해져 20% 가량 생산이 줄고 근로자의 임금도 월평균 27만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소기업들은 대처 방안으로 ‘근로시간 단축분만큼 신규 인력 충원 고려’(25.3%), ‘별다른 대책 없이 생산량 축소 감수’(20.9%) 등의 답변을 내놨다. 정부 정책을 현장에서 반영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근로자 임금 감소 대책 마련 시급
주 52시간 근무제도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로 근로자 수입 감소가 꼽힌다. 야근과 주말근무가 사라진 근로자의 실질소득 감소폭이 적지 않을 듯하다. 현재 법이 인정하는 주 최대 근로시간은 68시간이다. 법정 근로시간인 40시간 외에 28시간(연장근로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을 더할 수 있다. 7월부터는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고, 연장근로가 12시간을 넘으면 안 되기 때문에 특별수당을 받을 수 있는 16시간이 사라진다. 예컨대 시급 9500원인 근로자의 경우 최대치인 주 68시간을 일하면 422만9000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7월부터는 52시간을 모두 채워 일해야 326만9500원을 받을 수 있다. 주 40시간만 일해온 근로자는 문제가 없지만, 특근으로 326만원 이상 받아온 경우엔 다른 수입원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임금 보전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며 “기본급은 낮고 초과 근로나 각종 수당으로 임금을 채우는 현행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전체 근로자(5인 미만 사업장, 특례업종 제외)의 11.8%인 95만5000명의 임금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1인당 월평균 감소액은 37만7000원(11.5%)이다. 역설적으로 임금 감소폭은 비정규직과 저임금 근로자일수록 커진다. 청소부나 경비 같은 용역직은 월평균 22.1%(40만1000원), 한시적(20.5%)·기간제(16.5%)·파견직(13.4%) 근로자의 급여도 평균보다 많이 감소한다. 강선일 노무법인 혜안 대표노무사는 “고용 형태가 불안정하고 임금이 낮을수록 수당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근로시간 단축 대상을 업종별로 구분한 근로기준법이 달라진 노동 시장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반발이 강했던 사업군으로 건축·조선·게임·광고·감사 업무 등이 꼽혔다. 특정 기간에 업무가 가중되는 특징이 있다. 이들이 내놓은 대안으로 탄력근무제가 있다. 일정 기한 내에서 근로시간을 자율 조정하는 제도다. 기업들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을 3개월에서 1년 정도로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단위 기간을 늘리면 장시간 노동이 다시 일상화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미국·일본·유럽 등지에선 탄력근로제 기간 1년이 보편적이다. 일본은 1년 단위로 정하는데 노사가 합의하면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도 인정받는다. 미국도 최대 1년의 탄력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개정한 일명 ‘마크롱법(노동법 개정안)’이 등장해 노동시간을 기업이 개별적으로 협상할 수 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처럼 일정 기한 내에서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는 등 노동 유연성을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래처와의 저녁 약속도 근로시간?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놓고 가장 많은 논란이 벌어진 주제는 가이드라인이다. 근로와 휴무의 경계선에 올라 있는 애매한 조항이 있다. 거래처와 저녁 약속이나 사내 회식을 근로시간으로 봐야 할지, 임원에게도 주 52시간 규정을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문제는 이에 대한 고용부의 가이드라인이 아직도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고용부는 지난 2월 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차관 주재의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5월 18일엔 65쪽 분량의 설명 자료도 냈다. 그러나 이 자료에선 정작 어디까지를 근로시간으로 봐야 하는지는 빠져 있다.

예컨대 거래처와의 저녁 약속이 있다. 기업마다 해석이 분분한 항목이다. 약속 전면 금지령을 내린 기업이 있는가 하면, 거래처와 저녁은 4시간 일한 것으로 유권해석을 하는 기업도 있다. 세부 사안으로 가면 더 복잡해진다. 저녁 후 맥주를 한잔 마실 때 적용 여부, 그리고 약속 이후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포함해주는지 여부다. 저녁 약속이 잡힌 날은 퇴근을 일찍하거나 다음날 출근을 늦게 하는 회사도 있다. 회사 반응이 애매하면 아예 담당 직원이 대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출장과 워크숍도 논란의 대상이다. 출장 갈 때 이동 시간이나 현지 업체가 제공하는 관광 일정도 근무시간에 포함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워크숍 이동 시간과 마친 다음 귀가 시간 적용 기준도 애매하다. 임원의 근로시간도 어려운 문제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임원이라 하더라도 권한이 적으면 근로자로 볼 수 있어 적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그래도 관리자이기 때문에 적용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현행법은 관리·감독 업무를 하는 근로자에 대해선 근로시간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구체적 사안을 두고 일괄적인 지침을 세우기 어렵다”며 “노사 의견과 전문가 자문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와 기업, 근로자 모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법을 바꾸고 이를 무조건 지키라는 상황”이라며 “명확한 가이드 라인이 나와야 주 52시간 근무제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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