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경제·경영 대가가 건네는 ‘인생 나침반’ 나를 응원하는 노래(3)] 창조의 세계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경제·경영 대가가 건네는 ‘인생 나침반’ 나를 응원하는 노래(3)] 창조의 세계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에반 스피겔 스냅챗 창업자 겸 CEO … “좋아하고 일에 끊임없이 도전하라”
스냅 공동 설립자 에반 스피겔(왼쪽)과 바비 머피.
미국의 한 대학생이 학교 파티와 여성과의 성경험을 이야기 하는 e메일을 보낸다. 그가 유명인이 되고 그게 몰래 유출이 된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의 한 사교클럽 멤버였다. 배 아픈 사람의 심리 혹은 그의 은밀한 사생활을 알려야 하는 의무감이 작용한 것일까? 하긴 e메일의 내용이 상당히 불결하긴 하다. 여성을 성적으로 폄훼하거나 살찐 여자를 욕하는 여성 혐오 내용이 문제가 된다. 잘 생긴 외모에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란 이 친구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변호사 출신으로 전형적인 미국 상류층 가정에서 자랐다. 덕분에 캘리포니아 해변가의 200만 달러 고급 주택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유럽·바하마 등으로 여행을 다녔으며 스노보드를 타기 위해 아버지와 헬리콥터를 타고 캐나다를 방문했다. 그런 그가 아이 하나 딸린 세기의 ‘돌싱 모델 미란다 커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다. 그녀는 그보다 7살 많다. 톱모델에게 1억 달러에 달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런 파격적인 그의 행보에 계속 놀라고 있다. 그 행보의 끝이 어디인지 궁금해한다. 그를 험담하는 사이트의 글을 보면 그가 모범적인 학생은 분명히 아니었음이 입증된다. 그는 많은 여성의 야유를 받았고 공식 사과를 한다. “죄송합니다. e메일을 폭로한 그들은 지금 내가 누군지를 생각하지도 않고 여성에 대한 나의 생각도 고려하지 않고 있어요. 그런 e메일을 보낼 당시 나는 정말 바보 멍청이였어요.”
 “e메일 보낼 당시 나는 정말 바보 멍청이였다”
물론 그가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그만이 알뿐이다. 아무튼 우리는 유명인이 되고 난 후 과거의 흔적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들을 본다.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 덕에 최고급차를 몰고 다닌 그는 대학에서 학점이 모자라 졸업을 하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에반 스피겔. 스냅챗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다. 1990년생인 그는 2014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들었다. 스냅챗은 2015년 포브스가 뽑은 ‘직원 1인당 기업가치’가 가장 큰 회사로 꼽혔다. 스냅챗은 일자리가 많이 요구되지 않는 기술 서비스 기업이다. ‘펑’하고 사라지는 자폭 메시지로 단순히 유행처럼 지나갈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인기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스냅챗은 사진과 동영상 공유에 특화된 모바일 메신저다. 스냅챗의 가장 큰 특징은 보내는 사람이 받는 이의 확인 시간을 설정해 일정 시간 후 메시지를 자동 삭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자기 파괴 기능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5초로 시간을 맞추면 그가 확인한 후 5초 뒤에 자동 삭제되는 식이다. 페이스북과 달리 보낸 자료는 휘발성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보고 있는 사진에 대해 스크린샷 저장도 불가능하다. 페이스북에서 스냅챗 사용자인 친구들을 찾을 수 있으며 이를 연락처 목록에 추가할 수도 있다.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한 스피겔은 제품 디자인을 전공한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멘토인 스코트 쿡 인튜이트 창업자를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만난다. 스코트 쿡은 에반 스피겔에게 인도에서 출시할 인튜이트의 텍스트 기반 플랫폼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줬다. 인튜이트는 개인·중소기업용 재무 소프트웨어다. 스피겔은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스냅챗이 출시된 건 미국에서 페이스북이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2011년 9월이다. 스피겔은 스탠퍼드대 사교클럽인 ‘카파 시그마’에서 친구들과 스냅챗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 ‘피카부’를 개발했다. 디자인 전공이었던 스피겔이 2011년 수업 중 기말 프로젝트를 위해 내놓은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게 아이디어는 운명처럼 오기도 한다. 그는 페이스북을 ‘좋아요’만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페이스북으로 과시하거나 표면적인 감정을 나누어도 실제 삶은 우울하고 어두운 면이 많지 않은가! 그는 페이스북과는 다른 대안적인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게 몇 초 지나면 사진이 사라져서 더 솔직한 사진을 공유하게 되는 ‘스냅챗’이다. 스냅챗은 출시 초기 다른 앱과 달리 페이스북 마케팅을 거의 하지 않았다. 기존 언론 홍보에도 적극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10대들이 입소문을 내주며 스냅챗 초기 인기를 이끌었는데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 살던 스피겔의 사촌 동생이 설치해 쓰기 시작해서, 근처의 10대들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됐다. 스피겔은 스냅챗 개발로 돈을 벌어 가장 먼저 페라리를 구입한다.

모바일 메신저로서 충분한 이용자층을 확보한 스냅챗은 메시징 플랫폼에서 콘텐트 플랫폼으로 진화 중이다. 그들의 서비스를 보자. 라이브 스토리는 하나의 이벤트에 참가한 각자의 영상을 모아 하나의 기록물로 만들어내는 콘텐트다. 같은 시간·장소에서 사용자가 제각각 다른 시점에서 찍어 올린 짤막한 동영상이나 사진들을 스냅챗 큐레이터가 모아 편집해 준다. 결과물은 마치 미니 다큐와 비슷한 형식이 된다. 스냅챗은 내러티브를 우선시하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구축하기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언론사들과 협력하고 있다. 디스커버와 라이브 스토리는 모두 별도의 앱 형태가 아닌 스냅챗 앱 안에 탭 형태로 포함돼 있다. 스냅챗은 여기에 광고를 넣어 수익을 도모한다. ‘카카오톡’ 앱 안에 ‘채널’이나 ‘카카오TV’가 들어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미국에 사는 13~34세의 연령층이 같은 사건에 대한 생중계 방송을 스냅챗 ‘라이브스토리’로 보는 비율이 TV보다 약 8배 높다고 한다. 광고주도 줄 서기 시작했다.
 행운은 그렇게 뜻밖에 찾아온다.
“우리는 창의성에 바탕을 두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다음 5년간은 우리 사용자와 창의성이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교육 과정을 보낼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지만 나이를 불문하고 이용자층을 늘려야 하는 것은 숙제입니다. 하지만 사진으로 이야기하고 기억을 만드는 것은 보편적으로 매력적인 일입니다. 사람들이 이용자가 늘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을 보이는데요. 우리는 사용자층이 증가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어요. 사용자들이 얼마나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재미있어 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성장을 이끌 것이라 믿어요.” 세상에서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젊은 CEO의 활기찬 이야기다. 스마트폰을 대체할 다음 유망 타자로서 카메라를 보는 그의 눈이 매섭게 느껴진다. 카메라에 어떤 놀라운 소프트웨어가 담기게 될지 기대가 된다.

“5년 전에 우리는 카메라가 추억을 포착하는 것 이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카메라가 대화를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의 꿈은 카메라의 기능을 확대해서 우리의 삶을 풍성하도록 보여주는 것입니다. 추억 너머의 능력이죠.”

스냅챗은 넷플릭스처럼 콘텐트를 자체적으로 제작하기도 한다. 콘텐트를 제작해 디스커버를 통해 방영하기도 했다. 짧은 에피소드 콘텐트를 제작하는데, 휘발성 모바일 메신저인 스냅챗처럼 공개된 지 24시간 만에 사라진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 때는 ‘디스커버’에 자체 채널을 만들어 직접 제작한 뉴스를 내보냈다. 스피겔은 e메일 유출 외에 사업을 하면서 상당한 시련을 겪는다. 다수의 전문가는 사진이 수 초 만에 사라지는 휘발성 기능이 도덕적 일탈을 부추기거나 부정한 행위에 사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13년 스냅챗 고객 460명의 정보가 해킹돼 스냅챗을 통해 전달된 수십만장의 사진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개되면서 보안과 프라이버시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그런 시련이 사람을 좀 더 성숙하게 했나! 스탠퍼드를 졸업하지 못한 그가 비록 다른 학교지만 또래들의 대학 졸업식에 연사로 서게 된다. 그가 혹독한 신고식을 뒤로하고 앞으로 비즈니스의 거물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몇 년 전 나는 학교는 다르지만 정확히 여러분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접이 의자에 졸업모자와 가운을 입고 있었지요. 단상에 올라갈 준비를 하면서요. 하지만 나는 졸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스탠퍼드는 졸업장을 받지 못해도 전통적으로 그렇게 졸업식에 참석해야 해요. 누구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른 사람처럼 똑같이 행동해야 합니다. 대학에서는 학점이 모자라면 여름 학기를 다니게 하지요. 나도 그랬어요. 나는 졸업에서 제외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는 결국 이수 학점이 모자라 졸업을 하지 못했다. 친구들이 졸업 모자를 던지는 동안에 기숙사에 머무를까도 생각했으나 마음을 고쳐먹고 뜨거운 태양 아래 앉아 있기로 했다. 그 시간은 상당히 길게 느껴졌다. 졸업하지도 못하는 그를 보러 찾아 온 가족들에게 그는 애써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어머니, 이 연설문을 만들면서 그때 일이 참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다르게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종종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합니다. 무언가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 때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강력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또래 집단에게 따돌림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룹의 구성원이기를 원하지요. 그게 우리의 생물학적 본능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내면이 우리 영혼에게 다른 방향으로 가라고 속삭이고 그 쪽으로 우리를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따른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이고 침투력도 강해 오랫동안 연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준수’란 것을 줄일 수 있는 게 두 가지 있더군요. 하나는 혼자서 내는 반대의 목소리입니다. 다른 하나는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과 사적으로 소통을 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우리에게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사생활을 보호하고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습니다. 민주주의는 대중의 생각을 강제하도록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반대 목소리를 보호하도록 만들어졌죠. 케네디 대통령도 “일치는 자유의 감옥이고 성장의 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에 나는 멋진 미국의 멋진 미술작품에 푹 빠졌습니다. 밥 라우센버그의 이야기인데요. 그는 다양한 방식의 행위와 표현을 통해 ‘이것이 아트다’는 정의의 외연을 확대한 선구적 인물입니다.”
 후세에 의해 지워질 수 있음을 환영하라
혹자에 따르면 20세기의 전반은 피카소가, 후반은 라우센버그가 미술계를 점령했다고 한다. 피카소가 20세기 미술의 문을 열었다면 라우센버그가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현실에 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과거에는 원근법이 현실이던 시절이 있었으나 그건 환상이라면서 자신이 개척한 콤바인 페인팅이 현실이자 사실이라 말한다. 그림은 생활과 예술의 결합으로 스스로 그것을 구분하는 전통적 사고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한 그는 2008년 작고했다.

“그가 젊은 화가였을 때 그의 우상인 빌 드 쿠닝을 찾아 갑니다. 미국 추상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아방가르드 예술을 추구한 뉴욕 스쿨의 일원으로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도 유명하지요. 윌렘 드 쿠닝이라고 공식적으로 불린 이 사내는 술김에 용기를 내서 잭 다니엘 양주병을 들고 초조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왜냐고요. 라우센버그가 그냥 그를 방문하러 온 것이 아니었거든요. 라우센버그는 드 쿠닝에게 그의 그림 중 하나를 구하기 위해 그곳에 온 것이었습니다. 드 쿠닝은 라우센버그가 뭘 하려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라우센버그는 당시에 자신의 작품을 계속 실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고 지우고 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지우는 것은 능가하거나 초월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게 충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지우는 행위를 원하지 않았어요. 그는 이제 그의 영웅의 작품을 지우고 싶어 했습니다. 드 쿠닝은 정말 자기가 좋아하면서도 제자가 흉내를 낼 수 없는 작품 한 점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라우센버그에게 줍니다. 라우센버그는 두 달 동안 그림을 그렸고 훗날 재스퍼 존스가 그림의 프레임을 만들면서 제목을 붙였습니다. ‘밥 라우센버그가 지운 드 쿠닝’. 그게 그림의 제목이었습니다. 라우센버그는 사실상 새로운 것을 창조하였고 그만의 새로운 예술세계를 개척한 것입니다. 드 쿠닝이 말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것은 우리 뒤를 쫓아 오는 세대들을 위한 가장 좋은 그럴 듯한 기초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요. 우리는 그처럼 우리 자신이 그렇게 지워질 수 있음을 환영해야 합니다.”

창조의 세계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으면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기업 문화가 생각난다. 우리는 얼마나 자기보다 똑똑한 후배를 위해서 투자를 하고 있나? 혹시 그 후배가 잘난 것을 못 봐 주겠다고 괴롭히는 조직문화를 만들고 있는지 않는가.

“나는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 왜 당신의 사업을 팔지 않습니까? 돈을 제대로 버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일시적 유행 아닌가요? 여러분이 지금 보트에 타고 있다고 생각합시다. 모든 사람이 보트를 좋아합니다. 뭐가 문제지요? 나는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을 가장 빨리 알아차리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돈을 뭉치로 줄 테니 사업과 이별하라고 할 때 그 제안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업을 팔고 안 팔고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스스로에 대해서 가치 있는 것을 사업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사업을 판다고 한다면 그건 여러분의 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팔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거기에서 뭔가 의미 있는 것을 시작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냅챗을 팔지 않겠다고 하자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었습니다. 오만하다고까지 했습니다.”
 저커버그의 10억 달러 인수 제안 거절
스냅챕 애플리케이션.
그는 드 쿠닝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작품이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 보관돼 있다. 그것은 너무나 가치가 있어서 가격을 따질 수가 없다. 스냅챗은 2013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의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 당시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을 인수할 때와 같은 금액인 10억 달러를 제시했다. 스냅챗은 무료 앱으로 사용자에게 비용을 받지 않았으며 별다른 수익모델도 마련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지만 페이스북의 제안을 거절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의아해했으나 약 1년 후에는 스피겔의 당시 선택이 현명했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스냅챗은 월간 활성 사용자수가 약 1억 명으로 추정됐고, 특히 미국 젊은층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시장조사업체 컴스코어의 조사 결과, 스냅챗은 미국 밀레니얼 세대(18~31세)에서 인기 있는 소셜 앱 3위를 차지했다. 스냅챗과 비슷한 앱도 쏟아지며 스냅챗은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많은 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학자금 융자에 허덕이고 있다. 질 좋은 일자리를 찾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현대 경제에서 밀레니얼 세대는 수많은 도전 속에 있는데 많은 어른이 밀레니얼 세대를 직업윤리가 부족하다느니, 자신 밖에 모르는 오만한, 자아도취적인, 이기적인 세대라고 비난한다. 그런 말을 해도 좋은지 의문이 든다. 처한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인생 선배가 그립다. 응원이 필요한데 웬 비난인가!

“여러분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를 응원하는 신념으로 꿈을 쫓아 가세요. 내가 여러분이 성공할 것을 알고 있는데 여러분 스스로 그것을 기대하셔야지요. 여러분들은 삶의 여정에서 놓여 있는 많은 도전을 잘 해결할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시도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 대해서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네가 아무리 해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란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도 있습니다. 신경 끄세요. 가서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을 하세요. 여러분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많은 실수를 하면 어때요. 나도 수없이 실수를 했습니다.”

그는 동년배에게서 편안함을 느꼈는지 자신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듯한 말을 한다. 그리고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잘못을 저지른 경우 사과를 빨리 하는 게 최선책이라고 말한다. 정공법은 잘못을 과감히 인정하는 용기다. 다만 그 용기는 진실을 담은 그릇이어야 한다. 그게 없다면 비슷한 실수가 반복되었을 때 대중이나 주위의 친구들은 용서를 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여기를 떠나면 여러분들은 풀타임 잡이라는 큰 도전에 직면합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답을 알지 못하는 문제를 푸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분들의 영향력을 보여주기 어려운 시간도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바랍니다. 이번이든 언제든 노력의 결과의 끝을 아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라고요. 사실 결과는 아무도 모릅니다. 살아가면서 반대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세요.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퍼모델과 가정을 꾸렸다. 문제는 앞으로다. 상장 이후 주가는 폭락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뛰어넘을 수 있는 서비스로 기대를 모았는데 시장 반응이 나빠지고 있다. 페이스북의 자회사인 인스타그램이 스냅의 ‘사라짐 기능’을 따라 한 ‘스토리’라는 기능을 사용하면서 미국 10대 젊은이들이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에 스피겔은 ‘뉴스피드’보다는 ‘콘텐트’에 집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렇게 되면 경쟁 업체는 페이스북이 아니라 유튜브가 된다. 소셜미디어에서 소셜을 분리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자기표현의 시대입니다. 친구들의 관심사 위주로 채워지는 뉴스피드보다는 자신의 관심사로 콘텐트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SNS의 가짜 뉴스는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지인들이 공유한 무분별한 콘텐트가 가짜뉴스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부추겼습니다. 읽어 보지도 않은 글을 공유하기도 하는데요.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관심사로 콘텐트 만들어야
스피겔의 정원에서 포즈를 취한 미란다 커와 에반 스피겔. / 사진:미란다 커 인스타그램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다음 세대를 대비하기 위해 서로의 서비스를 모방하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 스냅챗의 리모델링 전략도 그런 차원이다. IT산업에 ‘잊혀질 권리’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인터넷 서비스에서 자신의 정보나 사용 내역 등에 대한 지배력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기업이 아직 많이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이 스냅챗에 열광한 이유는 고정관념을 깨고 모든 콘텐트를 휘발성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자신의 메시지와 사진이 남길 흔적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스냅챗과 라인 등이 도입한 메시지 삭제 기능 역시 권리 강화 요구라는 커다란 흐름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사용자들이 여전히 서비스 사용 전반에서 더 많은 통제력을 지니려는 상황에서 어느 선까지 자율성을 부여할 것인지에 대한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스피겔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존경 받는 부자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많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우뚝 서기를 응원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검은 반도체’ 김 수출 역대 최고기록 달성…10억달러 수출 청신호

2이복현 "상법 개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이 합리적"

3롯데, 해외 부실면세점 철수 검토…케미칼, 자산매각 추진

411월 기록적 폭설에 車사고 60% 급증…보험료 인상 조짐

5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4년만에 승인…통합 LCC도 출범

6이재명 “‘국장’ 떠나는 현실...PER 개선하면 ‘코스피 4000’ 무난”

7롯데바이오로직스 설립 2년 만 수장 교체…신임 대표는 아직

8상법 개정 되지 않는다면 “국장 탈출·내수 침체 악순환 반복될 것”

9열매컴퍼니, 미술품 최초 투자계약증권 합산발행

실시간 뉴스

1‘검은 반도체’ 김 수출 역대 최고기록 달성…10억달러 수출 청신호

2이복현 "상법 개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이 합리적"

3롯데, 해외 부실면세점 철수 검토…케미칼, 자산매각 추진

411월 기록적 폭설에 車사고 60% 급증…보험료 인상 조짐

5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4년만에 승인…통합 LCC도 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