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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부활 꿈꾸는 현대판 술탄?

오스만 제국의 부활 꿈꾸는 현대판 술탄?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의 존립 위협하는 쿠르드족 민족주의를 짓밟고 장기 집권 도모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8월 3일 대통령궁 연설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야심적인 100일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 사진:XINHUA-NEWSIS
역사가 보여주듯이 독재자는 위엄을 얻으려는 욕구에 사로잡혀 말도 안 되는 거창한 계획을 공표하고 실행한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된 선거도 모자라 자신의 재선을 위해 소수민족 쿠르드족을 악마 취급하는 유세를 벌였다. 독재자가 늘 그렇듯이 공동의 적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난세가 닥치면 사람들은 자신감 있는 지도자를 숭배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부활을 이끄는 인물로 생각한다. 그는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쿠르드족을 학살하도록 용인했고 자신의 군대도 풀어 쿠르드족을 공격했다. 그는 반드시 저지돼야 하고 저지될 수 있다.

과거 ‘산악 터키인’으로 불렸던 쿠르드족은 터키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그들 중 다수는 독립을 원한다. 그러나 1999년 분리독립을 추구하던 쿠르드노동자당(PKK)의 마르크스주의 지도자 압둘라 오칼란은 터키 당국에 붙잡혀 투옥된 후 평화를 촉구했다. 대다수는 그의 생각을 따랐다. 그러나 아직도 다수가 시리아, 이라크, 이란의 쿠르드족 거주지를 통합해 과거 ‘쿠르디스탄’의 영광을 되찾는 꿈을 갖고 있다.

2013년 당시 터키 총리였던 에르도안은 쿠르드족의 정체성과 언어를 인정하고 자치권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뒤 터키 정부군과 쿠르드족 민병대 사이의 휴전이 합의됐지만 2015년 적대행위가 재개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PKK 테러리즘에 대응한다고 주장했고, PKK는 터키 정부가 쿠르드족 지역에 댐과 군사기지를 건설해 휴전 합의를 깼다고 맞섰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았든 전쟁은 다시 불붙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무장 헬기, 대포, 기갑부대를 동원해 공격했다. 그 공격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33만5000명이 난민이 됐다. 그중 대다수가 쿠르드족이었다. 유엔 보고서는 파괴된 쿠르드족 마을이 황량한 달 표면의 모습과 비슷해졌다고 묘사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르드족 민족주의를 자신의 존립에 가해지는 위협으로 인식한다. 터키인으로선 처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 ‘아르메니아 집단학살’(20세기 초 오스만투르크 제국에서 거주하였던 기독교계 아르메니아인을 집단으로 살해한 사건)을 돌이키며 에르도안 대통령의 쿠르드족 집단살해를 개탄했다. 그 일로 파묵은 국가모독혐의로 기소됐고, 그의 책을 불태우는 행위가 공개적으로 펼쳐졌다. 국제사회의 항의와 압력으로 파묵은 풀려났다. 그러나 지금도 그는 한때 민주적이고 온건한 무슬림 국가였던 터키가 “공포정치 체제로 치닫고 있다”며 에르도안 정권에 날선 비판을 이어간다.

2016년 에르도안 정권을 무너뜨리려던 군사 쿠데타 기도가 실패로 끝나면서 선포된 국가비상사태는 2년만에 겨우 해제됐지만 철권 통치는 여전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 서부 이즈미르에서 20년 이상 작은 교회를 이끌어오던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을 2016년 10월 테러조직·PKK 지원과 간첩 혐의로 구속했다(건강 문제를 고려해 가택연금 상태지만 유죄 판결이 내려지면 최장 35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그곳으로 가서 싸우려는 이슬람 지하드 외국 투사들을 지원했다. 그들이 터키를 경유지로 삼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IS의 세력 구축을 돕고 수니파 원리주의자가 아닌 모든 사람에 대한 야만적 테러를 조장했다. 터키군이 못 본 체하는 동안 IS는 시리아 코바니에서 쿠르드족을 몰아냈다.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는 미국의 공중 지원을 받아 코바니를 탈환했고, 그 여세를 몰아 IS를 완전 격파하는 전투를 이끌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PKK와 YPG를 하나의 조직으로 본다. 그는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이 난민 수용소가 있던 터키 국경 부근에 PKK가 거점을 유지하도록 허용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라크에서 쿠르드족을 보호하지 않기로 한 미국의 이전 결정에 한층 더 대담해져 시리아 북서부의 쿠르드족 도시 아프린을 공격해 대규모 난민 위기를 초래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제 반(反)아사드 시리아 난민을 터키에서 아프린으로 이주시켜 그곳의 인구 구성을 바꾸고 있다. 또 그는 시리아 도시 만비지의 쿠르드족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며 그곳에서 미군과도 맞설 수 있다고 떠벌렸다. 미국 정부는 그에 맞서지 않고 물러섰다. 중대한 실책이었다. 그에 따라 YPG도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터키 언론은 미국에 승리했다고 자축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시리아의 쿠르드족을 무력화하면서 시아파 국가의 패권을 노리는 이란이 이란-터키 국경에 위치한 칸딜 산악지대에서 동부 쿠르드족 민족주의자들을 학살하는 데 합류하고 싶어 한다. 그는 그처럼 시아파 이란과 연합하려고 하면서도 자신을 수니파의 선봉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원리주의 무장단체 무슬림형제단과 그와 연계된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하마스를 지원함으로써 하마스와 싸우는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자극한다. 또 예루살렘 성전산에서 무슬림 시위를 조장해 그곳 이슬람 사원의 수호자인 요르단의 반발을 산다. 또 예루살렘을 이슬람의 제1도시라고 선언함으로써 이슬람의 최고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관리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불쾌하게 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F35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면서도 나토의 미사일방어시스템 대신 러시아의 S-400 미사일 방어체계 도입을 추진한다. 지난 7월 말 신흥경제국 모임인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정상회의에 비회원국 수반으로 참석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브릭스 가입을 원한다고 밝혔다. 이 모든 것은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미국 프로농구 NBA 뉴욕 닉스에서 뛰고 있는 터키 출신의 에네스 칸터 같은 해외 터키인은 에르도안의 독재 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이 모두 힘을 합해 터키 국민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대항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자유세계는 독재 정권의 요구를 들어줘선 안 된다.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미국은 중요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미국은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을 인정하는 29개국에 합류해야 한다. 터키 정부의 거짓 부인을 묵인하면 쿠르드족을 향한 그들의 공격을 권장하는 결과를 낳는다.

터키의 심각한 경제 문제가 에르도안 정권을 억제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쿠르드족에 대한 정치적 숙청과 공격이 심해지면 서방은 터키에 금융 지원을 중단하고 에르도안 대통령과 가족을 포함해 핵심 인사들을 대상으로 경제제재를 가해야 한다.

자유세계가 에르도안 대통령 견제 조치를 신속히 취할수록 세계는 더 안전해질 것이다. 터키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 조나선 워치텔, 앨버트 워치텔



※ [필자 조나선 워치텔은 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의 공보국장 겸 대변인이다. 그는 언론인으로 ABC, 폭스, 월드와이드 텔레비전 뉴스를 위해 세계 곳곳의 분쟁 상황을 취재했다. 앨버트 워치털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 소재 피처대학의 교수이며 여러 언론에 기고했고 저서 4권을 냈다. 이 글은 필자 자신들의 견해로 뉴스위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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