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글로벌 경제 위기 예고하는 카나리아
터키는 글로벌 경제 위기 예고하는 카나리아
리라화 위기는 글로벌한 문제의 지역적인 표출이며 떠오르는 문제의 전조이기도 하다 최근 재선에 성공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터키 리라화의 급락을 국제사회의 음모라고 비난하면서 “경제 전쟁” “통화 음모” 같은 다양한 명목으로 규탄한다. 일견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제재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관세 부과도 표면상으론 테러 혐의로 억류 중인 미국인 목사 앤드류 브런슨을 석방하도록 터키에 압력을 가하려는 의도로 비친다.
그러나 미국 복음주의 목사의 석방 거부가 터키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잠재하던 위기에 미국의 최근 제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을 뿐이다. 터키의 위기는 거의 대부분 국내에서 비롯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약한 글로벌 정치경제에 뿌리를 뻗고 있다. 전염될 위험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은 터키 정치경제의 구조적 결함에 손가락질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터키는 속담에서 흔히 말하는 바로 그 탄광 속 카나리아다(유독 가스를 감지하면 크게 울어 미리 경고한다). 이는 글로벌한 문제의 지역적인 표출이며 떠오르는 문제의 전조이기도 하다.
터키는 수년 전부터 국제 투자자들의 총아였다. 한때 ‘유럽의 중국’으로 불리던 터키는 오랫동안 글로벌 시장으로부터 상당한 자본을 끌어모았다. 2001~2002년 세계은행 중역을 지낸 케말 더비스가 이끈 탄탄한 금융 구조조정 덕분에 외부 투자자들은 규제가 잘 이뤄지는 터키 금융 부문에의 융자를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터키의 만성적인 구조적 문제 중 다수가 알려졌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에 빠졌을 때도 경계해야 할 만한 위험으로 간주되지 않았다.그러나 외환시장의 투기성이 강하지만 터키 경제성장의 자금줄이던 글로벌 잉여 자본이 고갈됐다. 자본 유동성이 약화됐을 뿐 아니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상으로 신흥시장에 대한 융자가 그만큼 매력을 잃게 됐다.
이 문제는 개인 권력을 강화하려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조치로 더욱 악화됐다. 권위주의로 시장이 영향을 받는 일은 드물지만 독재자가 문제 있는 결정을 내릴 때는 시장이 움츠러든다. 따라서 존경 받는 경제학자 메흐멧 심섹 재무장관을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신의 사위로 교체하기로 하면서 우려가 확산됐다. 터키를 시장의 기대에 맞춰 이끌어온 안전판이 사실상 제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시장과 자본의 문제를 뛰어넘는다. 이번 위기는 보기보다 지정학에 더 깊게 뿌리내려 있다.
터키의 문제 중 다수는 대미 관계와 연관됐다. 그것은 결코 브런슨 목사의 운명에 국한되지 않는다.
두 오랜 우방 간의 관계는 터키가 중동에서 지도적 지위를 추구하기 시작한 2011년 아랍의 봉기 이후 악화돼 왔다. 7년 뒤 시리아 내전에서 양국의 이해가 충돌했다. 그 전선에서 미국은 쿠르드족 파벌이 이끄는 시리아민주군(SDF)을 후원했다. 터키가 호전적인 쿠르드노동자당(PKK) 운동의 분파로 간주하는 세력이다. 그 문제로 양국의 사이가 틀어졌다.
터키는 그에 맞서 시리아 북서부 몇몇 지역의 영토를 장악했다. 먼저 알-밥과 자라블루스시 주변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북서부 아프린주에서 쿠르드족 세력을 몰아냈다. 러시아는 에너지와 무기 거래를 통해 터키와의 관계를 증진하는 한편 터키-미국 이해의 이 같은 뚜렷한 분열을 주도면밀하게 유지하면서 이용했다.결과적으로 터키는 이제 이웃 시리아의 미래를 논하는 협상 테이블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충분히 유리한 결과지만 그 정도로는 터키의 시리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이제 새로운 시련에 직면했다. 이들리브·아프린·알-밥으로부터 터키 철수의 조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시리아 정부군이 북서부 터키 보호령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터키 내 350만 시리아 난민 인구의 미래가 결정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리라화 위기가 발생했다. 시리아 북서부 상당수 지역이 터키의 직접적인 지원에 의존한다. 리라화 사태가 시리아 내전에 더 광범위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이런 지정학적 위험에의 노출은 리라화 시세에 어느 정도 ‘반영’됐지만 시리아 내전에 대한 터키 개입의 실질적인 영향은 간접적이고 완화하기 어렵다. 그로 인해 터키와 미국 간의 갖가지 이견을 해소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에르도안을 ‘신 다극화 세계’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이는 적어도 포부만 놓고 볼 때 여러모로 맞는 말이다. 터키는 오래 전부터 국제개발청(TKIA)을 통하는 등의 방법으로 주변 지역을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힘써왔다. 터키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해외원조 비율 면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트럼프 정부는 지금껏 맡아오던 역할 중 다수에서 손을 떼며 거기에 일조했다. 중동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군사 개입에서 물러나고, 곳곳에서 무역전쟁을 벌이고, 파리기후협약과 이란핵협정 같은 국제협약에서 이탈하며 변덕스럽고 비타협적인 태도를 취했다. 미국의 태도는 다른 강대국, 무엇보다도 중국이 실력행사에 나설 기회를 열어줬다.
터키는 오래 전부터 중국·러시아를 포함한 유라시아·아시아 강국들의 전략적 그룹인 상하이협력기구(SCO) 가입을 열망해 왔다. 그리고 최근 주요 신흥경제 그룹인 BRICS에 공식 편입되려 로비를 벌여 왔다. 러시아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확보하고 중국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터키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서 완전히 탈퇴하려는 유혹을 받을 만하다. 터키는 이란 제재와 관련해 미국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한편 달러 표시 무역거래를 줄여나가면서 다른 나라들도 그런 방향으로 유도했다. 달러의 국제 기축통화 역할에 대한 보기 드문 도전이다.
이 정도라면 미국이 터키를 상대로 일방적인 경제전쟁을 일으킬 만할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현재의 위중한 상황은 모든 강대국 무엇보다도 미국이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새로운 다극화 세계질서를 향한 위험천만한 전환과정의 일부다.
리라 위기는 터키가 이런 변화의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터키는 다양한 갈등과 경쟁의 교차점에 자리 잡아 가장 큰 타격을 받아 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리더십을 약화시키려 적극적으로 힘쓴다. 외부 세계에 터키가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번에 온전히 드러났다. 리라화 급락 뉴스가 전해지자 위안화는 상승하고 유로화는 하락했다. 이번 통화위기가 누구의 잘못이든 세계가 외면할 수 없게 됐다.
- 클레멘스 호프먼, 캔 셈길
※ [클레멘스 호프먼은 영국 스털링대학 국제정치학과 전임강사이며 캔 셈길은 이스탄불 빌기대학 외교학과 조교수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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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국 복음주의 목사의 석방 거부가 터키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잠재하던 위기에 미국의 최근 제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을 뿐이다. 터키의 위기는 거의 대부분 국내에서 비롯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약한 글로벌 정치경제에 뿌리를 뻗고 있다. 전염될 위험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은 터키 정치경제의 구조적 결함에 손가락질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터키는 속담에서 흔히 말하는 바로 그 탄광 속 카나리아다(유독 가스를 감지하면 크게 울어 미리 경고한다). 이는 글로벌한 문제의 지역적인 표출이며 떠오르는 문제의 전조이기도 하다.
터키는 수년 전부터 국제 투자자들의 총아였다. 한때 ‘유럽의 중국’으로 불리던 터키는 오랫동안 글로벌 시장으로부터 상당한 자본을 끌어모았다. 2001~2002년 세계은행 중역을 지낸 케말 더비스가 이끈 탄탄한 금융 구조조정 덕분에 외부 투자자들은 규제가 잘 이뤄지는 터키 금융 부문에의 융자를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터키의 만성적인 구조적 문제 중 다수가 알려졌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에 빠졌을 때도 경계해야 할 만한 위험으로 간주되지 않았다.그러나 외환시장의 투기성이 강하지만 터키 경제성장의 자금줄이던 글로벌 잉여 자본이 고갈됐다. 자본 유동성이 약화됐을 뿐 아니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상으로 신흥시장에 대한 융자가 그만큼 매력을 잃게 됐다.
이 문제는 개인 권력을 강화하려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조치로 더욱 악화됐다. 권위주의로 시장이 영향을 받는 일은 드물지만 독재자가 문제 있는 결정을 내릴 때는 시장이 움츠러든다. 따라서 존경 받는 경제학자 메흐멧 심섹 재무장관을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신의 사위로 교체하기로 하면서 우려가 확산됐다. 터키를 시장의 기대에 맞춰 이끌어온 안전판이 사실상 제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시장과 자본의 문제를 뛰어넘는다. 이번 위기는 보기보다 지정학에 더 깊게 뿌리내려 있다.
터키의 문제 중 다수는 대미 관계와 연관됐다. 그것은 결코 브런슨 목사의 운명에 국한되지 않는다.
두 오랜 우방 간의 관계는 터키가 중동에서 지도적 지위를 추구하기 시작한 2011년 아랍의 봉기 이후 악화돼 왔다. 7년 뒤 시리아 내전에서 양국의 이해가 충돌했다. 그 전선에서 미국은 쿠르드족 파벌이 이끄는 시리아민주군(SDF)을 후원했다. 터키가 호전적인 쿠르드노동자당(PKK) 운동의 분파로 간주하는 세력이다. 그 문제로 양국의 사이가 틀어졌다.
터키는 그에 맞서 시리아 북서부 몇몇 지역의 영토를 장악했다. 먼저 알-밥과 자라블루스시 주변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북서부 아프린주에서 쿠르드족 세력을 몰아냈다. 러시아는 에너지와 무기 거래를 통해 터키와의 관계를 증진하는 한편 터키-미국 이해의 이 같은 뚜렷한 분열을 주도면밀하게 유지하면서 이용했다.결과적으로 터키는 이제 이웃 시리아의 미래를 논하는 협상 테이블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충분히 유리한 결과지만 그 정도로는 터키의 시리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이제 새로운 시련에 직면했다. 이들리브·아프린·알-밥으로부터 터키 철수의 조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시리아 정부군이 북서부 터키 보호령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터키 내 350만 시리아 난민 인구의 미래가 결정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리라화 위기가 발생했다. 시리아 북서부 상당수 지역이 터키의 직접적인 지원에 의존한다. 리라화 사태가 시리아 내전에 더 광범위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이런 지정학적 위험에의 노출은 리라화 시세에 어느 정도 ‘반영’됐지만 시리아 내전에 대한 터키 개입의 실질적인 영향은 간접적이고 완화하기 어렵다. 그로 인해 터키와 미국 간의 갖가지 이견을 해소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에르도안을 ‘신 다극화 세계’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이는 적어도 포부만 놓고 볼 때 여러모로 맞는 말이다. 터키는 오래 전부터 국제개발청(TKIA)을 통하는 등의 방법으로 주변 지역을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힘써왔다. 터키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해외원조 비율 면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트럼프 정부는 지금껏 맡아오던 역할 중 다수에서 손을 떼며 거기에 일조했다. 중동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군사 개입에서 물러나고, 곳곳에서 무역전쟁을 벌이고, 파리기후협약과 이란핵협정 같은 국제협약에서 이탈하며 변덕스럽고 비타협적인 태도를 취했다. 미국의 태도는 다른 강대국, 무엇보다도 중국이 실력행사에 나설 기회를 열어줬다.
터키는 오래 전부터 중국·러시아를 포함한 유라시아·아시아 강국들의 전략적 그룹인 상하이협력기구(SCO) 가입을 열망해 왔다. 그리고 최근 주요 신흥경제 그룹인 BRICS에 공식 편입되려 로비를 벌여 왔다. 러시아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확보하고 중국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터키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서 완전히 탈퇴하려는 유혹을 받을 만하다. 터키는 이란 제재와 관련해 미국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한편 달러 표시 무역거래를 줄여나가면서 다른 나라들도 그런 방향으로 유도했다. 달러의 국제 기축통화 역할에 대한 보기 드문 도전이다.
이 정도라면 미국이 터키를 상대로 일방적인 경제전쟁을 일으킬 만할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현재의 위중한 상황은 모든 강대국 무엇보다도 미국이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새로운 다극화 세계질서를 향한 위험천만한 전환과정의 일부다.
리라 위기는 터키가 이런 변화의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터키는 다양한 갈등과 경쟁의 교차점에 자리 잡아 가장 큰 타격을 받아 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리더십을 약화시키려 적극적으로 힘쓴다. 외부 세계에 터키가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번에 온전히 드러났다. 리라화 급락 뉴스가 전해지자 위안화는 상승하고 유로화는 하락했다. 이번 통화위기가 누구의 잘못이든 세계가 외면할 수 없게 됐다.
- 클레멘스 호프먼, 캔 셈길
※ [클레멘스 호프먼은 영국 스털링대학 국제정치학과 전임강사이며 캔 셈길은 이스탄불 빌기대학 외교학과 조교수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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