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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의 진짜 정체는?

‘가짜뉴스’의 진짜 정체는?

사람마다 달리 해석하고 민주주의 가치 손상하는 위험한 표현으로 “사용하지 않는 게 정답”
말레이시아의 가짜뉴스와 관련된 광고판 앞을 지나는 행인. / 사진:AP-NEWSI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진보 성향의 언론 ‘때리기’를 즐기는 듯하다. 예를 들어 지난 7월 13일 영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관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CNN 기자가 질문하려고 하자 이렇게 반응했다. “CNN은 가짜뉴스다. 난 CNN의 질문을 받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 곁에 있던 폭스뉴스(보수 성향으로 유명하다) 기자에게 “진짜뉴스로 갑시다, 질문하세요”라고 요청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보도하는 미디어를 ‘가짜뉴스 매체’로 통칭하는 인상을 준다. 그는 지난 7월 29일에도 아서 그렉 설즈버거 뉴욕타임스 발행인과의 회동 사실을 본인이 직접 트위터를 통해 밝히며 “엄청난 양의 가짜뉴스를 전하는 미디어들에 대한 얘기, 그리고 가짜뉴스가 어떻게 ‘국민의 적’이 되고 있는지를 얘기했다. 슬프다!”라고 말했다. “미디어가 우리 정부에 대해 보도하는 것의 90%가 부정적이다. 우리 정부가 엄청나게 긍정적인 성과를 이뤄내고 있는 데도 말이다.” 그러자 설즈버거 발행인은 성명을 통해 “나는 대통령에게 그의 말들이 분열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고 직접 말했다”며 “(대통령이 주장하는) ‘가짜뉴스’란 표현은 사실도 아닐 뿐더러 해롭기까지 하다”고 지적했다. “난 대통령이 언론에 ‘국민의 적’이란 꼬리표를 붙이는 것이 훨씬 더 걱정스럽다고 반박했다. 이 선동적인 언어가 언론인에 대한 위협을 높이고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짜뉴스’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 모두 그 의미를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지난해 미국 콜린스 사전에 ‘fake news’가 ‘올해의 단어’로도 선정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거기서 그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요, 또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다.

‘가짜뉴스’의 의미를 두고 사람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일부는 완전히 상반된다. 그뿐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 단어는 민주주의의 지적인 가치를 손상한다. 게다가 ‘가짜뉴스’엔 진짜 아무런 뜻이 없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 용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을 수 있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가짜뉴스’의 의미에 관해 서로 견해를 달리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일부는 문제가 있거나 의심스러운 정보를 전부 다 아우르는 포괄적인 표현으로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대표적인 예가 2016년 미국 대선 기간에 소셜미디어에 등장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피자게이트’다. ‘클린턴이 아동 성착취 조직에 연루됐고 워싱턴D.C.의 피자집 지하실이 그 근거지’라는 내용이었다(이를 사실이라고 믿은 사람이 문제의 피자집에 총을 들고 찾아가 난동을 부리다가 경찰에 체포된 일까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오보에 관해서만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가짜뉴스’가 단순히 틀린 뉴스를 의미한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들은 ‘가짜뉴스’ 대신 ‘틀린 뉴스(false news)’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그러나 언론인 다수는 ‘거짓말’에 가까운 무엇을 의미하는 데 ‘가짜뉴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사람들을 속이려는 의도가 있다는 뜻이다.

미국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의 크레이그 실버먼 선임기자(‘가짜뉴스’라는 표현을 널리 퍼뜨리는 데 일조했다고 알려졌다)는 남부 유럽 발칸반도 중부에 있는 나라 마케도니아에서 운영되는 ‘낚시성 기사 농장’를 조사했다. 자극적인 제목이나 이미지로 사용자의 클릭을 유도해 조회수와 광고 수익을 얻는 기사나 콘텐트를 만들어내는 조직을 가리킨다. 실버먼 기자의 정의에 따르면 ‘가짜뉴스’는 사람들을 기만하려는 의도만이 아니라 이익을 얻으려는 동기도 포함됐다. 이 정의는 ‘낚시성 기사 농장’에는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만 정치적인 동기가 깔린 콘텐트와는 잘 맞지 않는다.그러나 ‘가짜뉴스’는 틀린 기사나 거짓말만을 가리키진 않는다. 인식론 철학의 대가인 마이클 린치 미국 코네티컷대학 교수는 ‘인터넷 셸 게임(internet shell game)’을 개발했다. 대중의 혼동을 유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진실과 허위 정보를 섞어 퍼뜨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일부 진실된 정보도 그 곁에 있는 틀린 정보와 함께 신뢰성을 잃는다. 그럴 때 우리는 진실된 정보와 허위 정보 둘 다를 한데 묶어 ‘가짜뉴스’로 생각한다. 이 경우 ‘가짜뉴스’ 개념은 거짓말보다는 또 다른 미국 철학자 해리 프랑크푸르트 프린스턴대학 교수가 제시한 ‘헛소리(bullshit)’ 개념에 더 가깝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허위라고 믿는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 반면 헛소리를 퍼뜨리는 사람은 진실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은 무엇이든 전달한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자신이 좋아하는 내용에 반하는 기사를 검열하면서 ‘가짜뉴스’라는 명분을 사용한다. / 사진:XINHUA-NEWSIS
미국의 대안 우파(alt-right, 주류 보수주의가 자유방임주의에 기반해 작은 정부와 낮은 세율 등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대안 우파는 백인 남성 중심의 정체성을 중시하며 반다문화주의 등을 내세운다)는 ‘가짜뉴스’를 좀 더 폭넓게 사용한다. 그들이 말하는 ‘뉴스의 조직적인 좌익 편향’을 가리키는 용어로 흔히 사용한다는 뜻이다. 이런 ‘조직적인 편향’이라는 주장은 종종 정당한 기사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동원된다. 자신이 메이 영국 총리를 비난했다는 영국 신문 더 선의 보도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의 편향된 시각’이라고 일축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더 선의 보도는 믿을 게 못 된다는 뜻이었다.

이처럼 ‘가짜뉴스’라는 표현은 서로 다른 의미가 충돌하는 기형적인 용어다. 언어철학은 이런 식으로 유동적인 용어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 도구를 제공한다. 그 의미들은 맥락에 민감하거나 서로 상충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복잡한 분석보다 내가 선호하는 진단은 이렇다. ‘가짜뉴스’는 그냥 아무런 의미가 없다. 터무니없고 무의미한 ‘텅 빈’ 단어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런 표현을 우리가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우익 선동가의 입에서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사용되면 해당 기사의 내용을 믿지 말고 그 기사를 만들어낸 기관을 불신하라는 명령에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24일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열린 해외참전용사회 전국대회에서 연설하면서 바로 그런 메시지를 확실히 전했다. 그는 북미정상회담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이 사실상 ‘빈 손’에 그쳤다는 일부 언론의 비판을 두고 “그들이 전하는 쓰레기 ‘가짜뉴스’를 믿지 말고 우리 말만 믿으면 된다”고 말했다.이런 연설은 예일대학 철학 교수 제이슨 스탠리가 말하는 ‘잠식적 선전(undermining propaganda)’의 전형적인 사례다. 한 가지 가치에 헌신을 표하면서도 그 가치를 손상시키는 연설이라는 뜻이다. 뭔가를 ‘가짜뉴스’라고 비난하면 진실과 객관성, 비판적 사고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 목적으로 그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이 실제로 많다. 그러나 그 용어를 자주 사용하다보면 오히려 진실과 객관성이라는 가치를 깎아내릴 수 있다. 이런 잠식은 여러 가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가짜’라는 주장은 정당한 언론기관에 대한 공공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또 그런 지적인 모욕은 합리적인 이야기를 꺼낼 수 없게 만든다.

이집트 헬완대학 미술학부 벽에 그려진 벽화. 이집트 의회는 최근 ‘가짜뉴스’ 단속을 내세우며 팔로어가 많은 소셜미디어 계정을 감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 사진:AP-NEWSIS
북미와 유럽을 제외하면 ‘가짜뉴스’의 반민주적인 효과가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 여러 국가에서 ‘가짜뉴스’는 정권의 언론 검열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 미얀마 군부와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자신이 좋아하는 내용에 반하는 기사를 차단하기 위해 ‘가짜뉴스’라는 명분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런 반민주적인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가짜뉴스’는 민주적 가치와 연관되기 때문에 기득권 인사들에겐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그 용어를 수용하며 그에 관해 학술대회를 열고 ‘가짜뉴스 과학’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런 시도는 문제가 많다.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구태여 사용하려면 민주적 가치 수호자들조차 그 정의를 둘러싼 언쟁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냥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그런 불필요한 언쟁을 피할 수 있는데 말이다.

더구나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그 표현을 선전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공공 담론에 합리적인 기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선의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이런 선동가의 도구를 지적인 감시에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 결과 ‘열린’ 공공 담론을 보장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손상될 수 있다.

의미 없는 대화와 선전의 정당화를 피하려면 ‘가짜뉴스’라는 단어의 사용을 중단하는 것이 옳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뭘까? ‘거짓말’ ‘헛소리’ ‘신빙성 없는 정보’ 같은 그냥 일상적인 표현으로 얼마든지 ‘가짜뉴스’를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새로운 용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선동가들의 터무니없는 도구를 차용하는 아이러니만은 지양해야 한다.

- 조슈아 하브굿-쿠트



※ [필자는 영국 브리스틀대학 연구원이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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