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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코어스, 베르사체를 품다

마이클 코어스, 베르사체를 품다

약 2조40000억원에 인수 … 성장과 명품부문을 향한 사업 다각화 노려
지난 9월 선보인 베르사체 여성 2019 봄-여름 컬렉션 / 사진:AP-NEWSIS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 중 하나인 베르사체가 미국 패션업체 마이클 코어스에 매각됐다. 명품 세계에 경험이 없는 마이클 코어스는 베르사체를 인수함으로써 이제 그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대담한 모험이지만 수지타산 측면에서 분명히 일리 있는 거래다.

시장의 와해적인 진화를 생각할 때 흔히 우리는 전통 깊은 기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업체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상황을 떠올린다. 그러나 명품 업계에선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듯하다. 마이클 코어스의 베르사체 인수가 바로 그런 사례에 꼽힌다. 이번 인수는 매우 상징적이다. 명품 시장에선 독립적인 업체가 독자적으로 시장에서 존립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반면 케링(보테가베네타·발렌시아가·입생로랑·구치 소유)이나 LVMH(루이뷔통·겔랑·지방시 소유) 같은 대형 그룹이 갈수록 승승장구하는 추세다. 마이클 코어스는 그런 점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 코어스는 베르사체를 21억 달러(약 2조4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베르사체의 지난해 매출 8억 800만 달러의 거의 3배로 너무 많은 액수를 지불했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쇼핑몰 수준의 저렴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씻고 명품 업계에 진입하기 위한 대가라는 관측도 있다. 마이클 코어스 회장 겸 CEO 존 아이돌은 지난해 유럽 명품 구두 브랜드 지미 추를 12억 달러에 인수한 이래 멀티 브랜드화를 통한 선단식 성장 전략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그는 이번 베르사체 인수를 계기로 지주회사 이름을 마이클 코어스에서 카프리 홀딩스(이탈리아의 섬 이름을 땄다)로 바꾸기로 했다고 밝혔다.마이클 코어스는 익히 잘 알려진 명품 브랜드 베르사체를 인수함으로써 성장 전략을 추구하는 동시에 명품 부문을 향한 사업 다각화도 노린다. 실제로 명품 업계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시장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있다. 이런 사업 다각화의 또 다른 목적은 베르사체가 전문지식을 많이 갖고 있는 액세서리와 가죽 상품의 생산을 증대하는 것이다. 이제 통합 매출이 60억 달러에 이르게 된 카프리 홀딩스(마이클 코어스의 후신)는 미국의 1위 명품 업체가 될 전망이다. 에르메스나 랄프 로렌보다 규모가 더 크다. 아이돌 CEO는 현재 전체 매출의 35%에 불과한 핸드백과 가죽 제품 등 액세서리와 신발 판매 비중을 60%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또 현재 운영되는 200여 개 베르사체 매장을 300개로 늘리고 경쟁사들에 비해 크게 뒤처진 중국·일본·한국 등 아시아 시장을 중점 공략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마이클 코어스는 저렴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씻고 명품 부문에 진입하기 위해 베르사체를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AP-NEWSIS
베르사체는 1978년 이탈리아 디자이너 잔니 베르사체가 설립했다. 그리스 신화 속의 메두사 머리 로고로 잘 알려진 명품 패션업체로 화려한 색감과 대담한 문양의 제품을 주로 선보였다. 지분 80%는 베르사체 일가가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지분 20%는 2014년 미국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이 매입했다.

베르사체의 경영 측면에서 보면 브랜드를 매각할 이유가 많았다. 우선 디지털 전환과 세계화 전략이 이전보다 더욱 중요해졌다. 그런 전략을 실행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따른다. 게다가 제품을 판매하기 전부터 후까지 고객과 계속 접촉을 유지하며 소통하는 데도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명품 브랜드의 오랜 강점 중 하나인 제품의 혁신만으로는 이제 더는 충분치 않게 됐다. 요즘은 브랜드가 ‘혁신적인 커뮤니케이터’ 역할도 해야 한다. 제품을 중심으로 하는 체험을 제공하고, 구매 후의 체험이나 충성도 제고 전술 등을 위해 다양한 채널로 소통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매각 이유는 베르사체가 브랜드를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1997년 창업자 잔니 베르사체가 피살된 이래 베르사체 브랜드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베르사체는 가족기업이기 때문에 창업자 사후 부사장 겸 아트 디렉터로 베르사체를 이끌어온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앞으로도 계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디자인 업무를 관장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브랜드의 장기적인 존립이 그녀의 경력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브랜드의 존립을 위해선 매각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외에 베르사체 일가가 이번 매각으로 얻게 되는 막대한 이익도 거래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프랑스에 본부를 둔 케링 그룹도 베르사체 인수에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마이클 코어스가 더 높은 인수 금액을 제시했을 수 있다. 일부 논평가는 마이클 코어스가 성장을 위해 무리수를 뒀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베르사체는 프랑스 기업에 브랜드를 매각할 생각이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여름 난민 문제를 둘러싸고 촉발된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이의 정치적 갈등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이런 거래에선 종종 개인적인 연고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베르사체 일가와 마이클 코어스 사이에서도 그런 요인이 일부 작용했을 수 있다.

베르사체와 마이클 코어스는 서로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져 매각·인수를 결정했다. (왼쪽부터) 베르사체의 조너선 애커로이드 CEO, 도나텔라 베르사체, 존 아이돌 마이클 코어스 CEO. / 사진:AP-NEWSIS
디자인을 담당하는 도나텔라 베르사체와 경영을 맡은 그녀의 오빠 산토 베르사체는 환상적인 콤비로 지금까지 회사를 잘 운영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들은 잔니 베르사체의 사망 후 브랜드 규모를 조정하고 이미지를 전환하면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들의 최근 전략은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예를 들면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가격이 약간 낮은 ‘베르사체 컬렉션’ 같은 자매 브랜드를 재출시하고 지난해 잔니 베르사체를 기념하기 위한 컬렉션으로 ‘클래식 베르사체’ 스타일을 부활시켰다. 베르사체 브랜드는 지금도 상당한 가치를 인정 받는다. 특히 중국처럼 급속히 발전하는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그러나 베르사체의 미래가 반드시 밝지는 않다. 마이클 코어스는 명품 브랜드 경영에 경험이 별로 없다. 현재 마이클 코어스는 많은 제품을 개도국(대부분 중국)에서 제조한다. 또 요즘 소비자, 특히 유럽 소비자는 고가에 팔리는 브랜드에 별 관심이 없다. 마이클 코어스는 인건비와 상품이 저렴한 나라에서 제조함으로써 생신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이제 베르사체를 인수함으로써 베르사체 브랜드의 리스크는 상당히 줄었다. 마이클 코어스의 다음 도전은 명품 부문에서 노하우를 쌓는 것이다.

‘패션은 늘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현재 패션 부문의 진화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많은 대기업이 여러 브랜드를 인수해 몸집을 불리는 반면 대박을 터뜨리는 독립 패션하우스는 갈수록 줄어든다. 마이클 코어스의 베르사체 인수가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 스테판 J. G. 지로



※ [필자는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 교수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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