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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엘리트 위한 통일 정책 개발해야”

“북한 엘리트 위한 통일 정책 개발해야”

미국 랜드연구소 보고서, 평화적 접근법 최선이지만 ‘포스트 김정은’ 세력과의 협상 중요하다고 지적
지난 9월 20일 백두산 정상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올해 남북 정상이 3차례나 만나는 역사적인 긴장완화의 상황이 전개됐다. / 사진:AP-NEWSIS
남북한이 역사적인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평화적인 접근법이 한반도를 통일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군사안보 싱크탱크 랜드연구소는 지난 10월 31일 ‘한반도 통일의 대안적인 길(Alternative Paths to Reunification)’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펴냈다. 국제·국방 선임연구원 브루스 W. 베넷이 한국국제교류재단을 위해 작성한 이 보고서는 한반도 통일로 이어질 수 있는 세 가지 주요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첫째 시나리오는 제2의 한국전쟁, 둘째는 북한 정권의 붕괴, 마지막은 남북 양측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평화의 과정이다.

베넷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점령하거나 북한이 한국을 점령할 수도 있지만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점령했다고 해도 별다른 문제없이 통일되는 게 아니라 막대한 전쟁 비용, 불안정한 평화로 이어지거나 그 반대의 상황으로 다시 나뉠 수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북한 정권이 붕괴한다면 한국·미국이 개입해 후임 정권과의 협상을 통해 통일을 이룰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세 번째 시나리오에서 평화로운 통일은 한국이 주도할 수도 있고 북한이 주도할 수도 있다. 남북한의 전면적인 협력으로 이뤄질 수도 있고, 북한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연방제 방식으로 시도될 수도 있다.”

한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자인 소련과 미국에 의해 분단된 이래 냉전시대의 이념 대립에 따라 완전히 분리됐다. 정부 수립 후 얼마 안 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과 미국이 주도한 유엔 사령부의 도움을 받은 한국이 치열하게 싸웠지만 1953년 공식적인 평화협정 없이 교착 상태로 마무리됐다.

20세기 하반기에 남북한은 적대적인 발언을 주고받으며 서로 자신이 요구하는 조건에 따라 한반도가 궁극적으로 통일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00년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갖고 남과 북이 함께 통일을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내용의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2007년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만난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이 정책이 재확인됐다(두 정상은 6·15 남북공동선언에 기초한 ‘10·4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그러나 그 후 북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한반도를 지배했다.

그러다가 올해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한국 대통령에게 화해의 손을 내민 이래 남북 정상이 3차례나 만나는 역사적인 긴장완화의 상황이 전개됐다. 특히 김 위원장이 오랫동안 북한 정권의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여겨진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를 지지하고 환영했다. 그에 따라 남북한은 평화로 가는 주요 조치를 취했다. 남북한 군과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사령부는 세계에서 가장 견고하게 요새화된 휴전선에 위치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비무장화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통일의 가능성이 거듭 제기됐다. 미국이 의구심을 표하며 속도 조절을 요청하는 데도 문 대통령은 평화 프로세스를 열정적으로 진전시키고 있다.

70여 년에 이르는 분단은 남북한 사이에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베넷 연구원은 “평화적인 통일이 바람직하지만 양측의 사회적·정치적 문화가 너무 달라 완전한 통합이 평화롭게 이뤄진다고 상상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양측 모두 통일을 꿈꾸지만 꿈의 내용이 서로 완전히 다르다. 또 양측은 통일이 이뤄지면 중견국에서 주요 국가로 부상해 세계에서 더 나은 위상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양측 정부와 사회의 차이가 너무 커 단시일에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평화로운 통일은 연방제로 협력 관계를 유지하다가 어느 한쪽이 통일에서 패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 깨질 수 있다. 양측 모두가 만족하는 ‘윈-윈’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전문가들은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는 남북한 사이의 재래식 전쟁으로도 약 10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미국과 외국 관리 다수는 그런 전쟁의 재앙적인 결과를 거듭 경고했다. 이제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화해의 무드가 조성되는 상황에서 베넷 연구원은 협력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위한 잠재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개념적으로 남북한은 연방제를 도입할 수 있다. 정부 기능의 대부분(특히 지방정부의 경우)이 분리된 상태로 남아 있으면서 남북한 사이에 어느 정도의 협력과 통합이 진행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런 통합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확대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완전한 통일에 근접할 만한 수준이 되려면 수년 아니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접근법의 함정은 한쪽 정부가 다른 쪽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넷 연구원은 만약 북한이 정보의 흐름과 군사력에 대한 통제력을 지배하게 되면 “한국이 그것을 받아들일 경우 5~10년은 비교적 안정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이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만약 한국이 인구와 경제를 내세워 주도권을 쥘 경우 일단 북한 엘리트층이 한국 정부와의 관계가 편안해지면 김 씨 일가의 체제는 전복될 수 있다.”

베넷 연구원은 개인적으로 김 씨 정권의 붕괴가 진정한 통일을 이룰 가장 가능성이 큰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과 미국이 그런 시나리오에 대비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런 상황이 중국의 개입과 잠재적인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한국 정부는 ‘포스트 김정은’ 세력과의 협상을 통해 통일 과정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기 위해선 김정은을 대체할 수 있는 북한 엘리트들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한국 정부가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조언했다. “아무튼 한국은 통일을 얻기 위해 전면전을 치르는 방안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경우에도 그렇다. 전쟁을 통한 통일의 비용은 부담하기에 너무 크다.”

-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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