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이솝투자학] 블랙스완도 증시현상 … 품고 가야
[서명수의 이솝투자학] 블랙스완도 증시현상 … 품고 가야
위기 대처법과 ‘고슴도치와 여우’… 오랜 호황 속에 누적된 리스크 터질 수도
어느날 여우가 시냇물을 건너고 있었다. 조심조심 낮은 물을 찾아 건너는데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고 말았다. 여우는 시냇물에 밀려 둥둥 떠내려가는 신세가 됐다. 여우는 허우적거리면서 빠져 나오려고 애를 썼지만 점점 깊은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만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모기떼가 나타나 여우 몸에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입을 콕콕 쑤셔 넣고 피를 쪽쪽 빨아 먹었다. “아 따거워, 아이구 따거워라….” 여우는 소리소리치면서 몸을 흔들어 보았지만 모기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계속 피를 빨아 먹었다. “아니 저런 얼마나 따가울까.” 마침 시냇가에 나와 물을 마시고 있던 고슴도치가 그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여우에게 소리쳤다. “여보게 여우, 내가 모기들을 쫓아줄까?” “아 아닐세, 제발 그러지 말게.” “왜 그러나? “지금 내 몸에 붙어 있는 모기들은 이미 배가 잔뜩 불러 있네. 그러니 앞으로는 내 피를 별로 빨지 않을 걸세. 그런데 자네가 이 모기들을 쫓아보게. 배고픈 새 모기들이 잔뜩 몰려올 것이고, 그들은 내 몸에 달라붙어 피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빨아 먹을 텐데. 안 그런가?” “그건 그렇긴 하지만….” 여우의 말을 들은 고슴도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은 대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한다. 하나는 고슴도치형이고 하나는 여우형이다. 고슴도치형은 거창한 이론 하나에 푹 빠져 세상을 본다. 자신감이 과도하기 때문에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함이 부족하다. 심지어 자신의 예측과 다른 증거가 나와도 생각을 잘 바꾸지 않는다. 이에 반해 여우형은 한결 타협적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파악하고 있으며,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 발걸음을 맞출줄 안다. 여우형 전문가는 시대에 따라 적절한 해결안을 찾아내는 능력을 지녔다. 요즘처럼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상황에서 이기는 쪽은 고슴도치형이 아닌 여우형이다.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블랙스완(검은 백조)’이다. 나라 안팎으로 불길한 사건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노무라증권도 2019년 세계 증시에 블랙스완의 출현을 점치는 전문가 중 하나다. 요인은 많다. 재정적자 수위를 둘러싼 이탈리아와 유럽연합(EU)의 마찰, 최악으로 치닫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리스크까지 유럽 대륙이 정치·경제적으로 총체적 난국을 맞을 수 있다. 여기에 중국의 디폴트 사태, 미국의 경기 둔화까지 주요국이 도미노 위기에 빠져들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금리 인상의 파장이 시차를 두고 미국을 필두로 신흥국까지 경제 펀더멘털에 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물경기의 냉각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26달러를 뚫고 바닥으로 떨어질도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산유국 상당수가 재정위기에 빠져 세계 경제의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물론 블랙스완이란 예기치 못한 대사건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노무라의 블랙스완 출현 전망은 빗나갈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여우형의 자세로 여러 크고 작은 조짐을 두루 살피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블랙스완은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는 인식 때문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 또는 ‘고정관념과는 전혀 다른 어떤 상상’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서양 고전에서 사용됐던 용어다. 그러나 17세기 한 생태학자가 실제로 호주에 살고 있는 블랙스완을 발견함으로써 그 의미가 달라졌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상황이 실제 발생하는 것’이란 의미로 변한 것이다. 금융시장에선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말한다.
블랙스완이 금융계에 널리 회자된 것은 레바논 출신의 금융 전문가 나심 니컬러스 탈레브가 2007년 <블랙스완> 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면서다. 탈레브는 검은 백조의 속성을 3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극단값이다. 극단값은 과거 경험으로부터 그 존재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 기대 영역 바깥에 있다는 이야기다. 둘째, 파괴적이다. 글로벌 경제를,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좋은 예다. 셋째, 블랙스완이 나타나면 그제서야 인과관계를 찾느라 법석을 떤다. 사후적으로 인지할 뿐이지 사전엔 알 길이 없다는 말이다. 탈레브는 여러 블랙스완의 사례를 들었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 1987년 발생한 블렉먼데이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9·11사태도 블랙스완의 예인데, 그 이전엔 대다수 사람들이 미국은 테러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겼다. 초강대국 미국을 감히 건드릴 수 없을 것으로 확신했던 것이다. 1997년에 발생했던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도 일종의 블랙스완이다. 대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당시 대기업들은 차입 경영으로 몸집을 키우다가 외환위기를 겪으며 경영난에 몰린 상당수가 외국인에 팔리는 운명을 맞았다. 나라도 외환보유액이 바닥나 국가부도 사태 직전까지 몰리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과연 우리 앞에 검은 백조가 또 다시 나타날까. 혹 그렇다면 그 충격과 공포를 감당할 수 있을까. 1980년대 이전만 해도 시장은 일정한 흐름에 따라 변한다는 믿음이 강했다. 대부분의 변동성은 보통 정상 범위에서 움직이다 바로 수그러들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 변동성은 일정한 패턴을 따르지 않아 예상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시장은 전통이론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가격변동을 예측하는 일은 소용이 없어진다. 실제 전통이론 대로라면 확률적으로 수천만, 수백만 분의 1에 불과한 사건이 툭하면 터졌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외에 2000년대 초 IT 버블,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 등 굵직한 사건이 10년동안 3번이나 일어났다. 10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사건이 2000년대 들어 집중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 때는 세상에 나와 있는 어떤 첨단 금융기법도 무용지물로 만든다.
블랙스완이 자주 등장하는 환경에서는 예측능력은 무의미해진다. 스스로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내놓는 예측이나 전망은 들어맞는 일이 별로 없다. 따지고 보면 시장처럼 변화무쌍한 분야에선 전문가가 나오기 어렵다. 회계라든가 사진 판독, 보험 분석 등 변화하지 않는 분야는 전문가의 역량이 그런대로 발휘된다. 만약 전문가란 사람이 이런 저런 경제 현상을 들먹이며 검은 백조의 출현을 예고한다면 그렇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맥놓고 무방비 상태로 있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글로벌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후 10년 가까이 무탈하게 지내왔다는 것은 리스크의 축적을 뜻하기 때문이다. 나심 탈레브는 [블랙스완] 출간 이후 예측 불가능한 블랙스완에 대비하는 바람직한 태도 내지 철학을 다룬 [안티프래질(anti-fragile)]을 내놓았다. ‘안티프래질’은 프래질(fragile, 깨지기 쉬운)과 반대되는 의미로, 충격으로부터 오히려 혜택을 보는 것을 말한다. 즉, 어차피 맞추지도 못할 예측을 하느라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기보다 취약한 부분을 최대한 제거해 안티프래질한 특성을 강화하라는 이야기다. 어설픈 합리주의, 통제, 개입을 버리고 차라리 블랙스완과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하라는 것이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블랙스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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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여우가 시냇물을 건너고 있었다. 조심조심 낮은 물을 찾아 건너는데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고 말았다. 여우는 시냇물에 밀려 둥둥 떠내려가는 신세가 됐다. 여우는 허우적거리면서 빠져 나오려고 애를 썼지만 점점 깊은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만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모기떼가 나타나 여우 몸에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입을 콕콕 쑤셔 넣고 피를 쪽쪽 빨아 먹었다. “아 따거워, 아이구 따거워라….” 여우는 소리소리치면서 몸을 흔들어 보았지만 모기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계속 피를 빨아 먹었다. “아니 저런 얼마나 따가울까.” 마침 시냇가에 나와 물을 마시고 있던 고슴도치가 그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여우에게 소리쳤다. “여보게 여우, 내가 모기들을 쫓아줄까?” “아 아닐세, 제발 그러지 말게.” “왜 그러나? “지금 내 몸에 붙어 있는 모기들은 이미 배가 잔뜩 불러 있네. 그러니 앞으로는 내 피를 별로 빨지 않을 걸세. 그런데 자네가 이 모기들을 쫓아보게. 배고픈 새 모기들이 잔뜩 몰려올 것이고, 그들은 내 몸에 달라붙어 피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빨아 먹을 텐데. 안 그런가?” “그건 그렇긴 하지만….” 여우의 말을 들은 고슴도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은 대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한다. 하나는 고슴도치형이고 하나는 여우형이다. 고슴도치형은 거창한 이론 하나에 푹 빠져 세상을 본다. 자신감이 과도하기 때문에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함이 부족하다. 심지어 자신의 예측과 다른 증거가 나와도 생각을 잘 바꾸지 않는다. 이에 반해 여우형은 한결 타협적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파악하고 있으며,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 발걸음을 맞출줄 안다. 여우형 전문가는 시대에 따라 적절한 해결안을 찾아내는 능력을 지녔다. 요즘처럼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상황에서 이기는 쪽은 고슴도치형이 아닌 여우형이다.
고개를 쳐드는 블랙스완 출현 전망들
블랙스완은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는 인식 때문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 또는 ‘고정관념과는 전혀 다른 어떤 상상’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서양 고전에서 사용됐던 용어다. 그러나 17세기 한 생태학자가 실제로 호주에 살고 있는 블랙스완을 발견함으로써 그 의미가 달라졌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상황이 실제 발생하는 것’이란 의미로 변한 것이다. 금융시장에선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말한다.
블랙스완이 금융계에 널리 회자된 것은 레바논 출신의 금융 전문가 나심 니컬러스 탈레브가 2007년 <블랙스완> 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면서다. 탈레브는 검은 백조의 속성을 3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극단값이다. 극단값은 과거 경험으로부터 그 존재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 기대 영역 바깥에 있다는 이야기다. 둘째, 파괴적이다. 글로벌 경제를,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좋은 예다. 셋째, 블랙스완이 나타나면 그제서야 인과관계를 찾느라 법석을 떤다. 사후적으로 인지할 뿐이지 사전엔 알 길이 없다는 말이다. 탈레브는 여러 블랙스완의 사례를 들었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 1987년 발생한 블렉먼데이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9·11사태도 블랙스완의 예인데, 그 이전엔 대다수 사람들이 미국은 테러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겼다. 초강대국 미국을 감히 건드릴 수 없을 것으로 확신했던 것이다. 1997년에 발생했던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도 일종의 블랙스완이다. 대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당시 대기업들은 차입 경영으로 몸집을 키우다가 외환위기를 겪으며 경영난에 몰린 상당수가 외국인에 팔리는 운명을 맞았다. 나라도 외환보유액이 바닥나 국가부도 사태 직전까지 몰리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과연 우리 앞에 검은 백조가 또 다시 나타날까. 혹 그렇다면 그 충격과 공포를 감당할 수 있을까. 1980년대 이전만 해도 시장은 일정한 흐름에 따라 변한다는 믿음이 강했다. 대부분의 변동성은 보통 정상 범위에서 움직이다 바로 수그러들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 변동성은 일정한 패턴을 따르지 않아 예상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시장은 전통이론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가격변동을 예측하는 일은 소용이 없어진다. 실제 전통이론 대로라면 확률적으로 수천만, 수백만 분의 1에 불과한 사건이 툭하면 터졌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외에 2000년대 초 IT 버블,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 등 굵직한 사건이 10년동안 3번이나 일어났다. 10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사건이 2000년대 들어 집중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 때는 세상에 나와 있는 어떤 첨단 금융기법도 무용지물로 만든다.
블랙스완이 자주 등장하는 환경에서는 예측능력은 무의미해진다. 스스로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내놓는 예측이나 전망은 들어맞는 일이 별로 없다. 따지고 보면 시장처럼 변화무쌍한 분야에선 전문가가 나오기 어렵다. 회계라든가 사진 판독, 보험 분석 등 변화하지 않는 분야는 전문가의 역량이 그런대로 발휘된다. 만약 전문가란 사람이 이런 저런 경제 현상을 들먹이며 검은 백조의 출현을 예고한다면 그렇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맥놓고 무방비 상태로 있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글로벌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후 10년 가까이 무탈하게 지내왔다는 것은 리스크의 축적을 뜻하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다면 함께 살아라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블랙스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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