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태의 열국지 재발견(19) 합종과 연횡] 합종의 틈새 파고들어 승리한 연횡
[김준태의 열국지 재발견(19) 합종과 연횡] 합종의 틈새 파고들어 승리한 연횡
진나라 장의, 반(反) 진나라 연대의 구심점... 소진의 전략 무너뜨려 “소진과 장의 두 사람은 참으로 나라를 기울게 만든 위험한 인물이었다.”
“소진과 장의는 나라와 백성을 일으키고 바로잡은 호걸이다.”
차례로 사마천과 제갈량의 말이다. 후자의 경우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내용이기 때문에 정말로 제갈량이 저런 생각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소진과 장의에 대해 상반되는 인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 국제정치뿐만 아니라 기업전략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합종(合從)·연횡(連橫)’이란 단어는 귀곡자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를 통해 구체화됐다. 소진은 반(反) 진나라 연대의 구심점이 되고 장의는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전국시대를 뒤흔들었는데 이번 회는 바로 이들의 이야기다. 우선 소진의 출발은 순탄하지 않았다. 자신을 써줄 곳을 찾아 여러 해 동안 떠돌아다녔지만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빈털터리로 돌아온 그를 보고 어머니는 “농사를 짓든지 장사를 하든지, 그것도 못하겠으면 막일이라도 해서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할 것 아니냐? 세 치 혀를 놀려 부귀를 얻겠다니 그 무슨 망상이냐?”라며 야단쳤다고 한다. 이후에도 소진의 좌절은 계속됐는데 주나라와 진나라에서 모두 냉대를 받았다. 그러자 소진은 방향을 수정한다. 그동안은 단순히 자신을 홍보하러 다녔다면 그때부터는 각 나라 군주들의 최대 현안을 해결해주겠다며 나섰다. 다름 아닌 진나라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다. 당시 진나라는 위앙(본 연재 17회의 주인공)의 부국강병책 덕분에 초강대국으로 떠올랐다. 서쪽 오랑캐라며 무시를 받던 진나라가 이제는 중원의 여러 나라들을 공포에 떨게하고 있었다. 소진은 이와 같은 불안 심리를 이용해 진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6국의 연합인 ‘합종(合從)’ 체제를 제안한다. 연나라 임금에게는 진나라의 동진을 막기 위해 조나라와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하고, 조나라 임금에게는 한나라, 위나라와 힘을 합쳐야 진나라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소진은 이어 한나라·위나라·제나라·초나라를 차례로 방문하며 진나라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섯 나라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진의 주장은 모든 임금들로부터 동의를 얻었다. 각 국의 역량과 자원, 군사·지리적 여건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국익 확보 방안을 제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여섯 나라는 원수(洹水) 땅에 모여 합종 맹약을 체결했고 소진을 맹약을 총괄하는 종약장(從約長)으로 추대했다. 이 때 소진은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임하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천하를 호령하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열국지]는 “여섯 나라 임금이 원수 땅에 모여 맹세했으니 서로서로 의지하여 형제나 다름이 없었다. 비록 그들의 동맹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나 힘을 합친다면 진나라 하나쯤을 없애기는 쉬울 것이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진나라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진과 맞서겠다며 모든 나라들이 한데 뭉쳤으니 말이다. 더욱이 제나라와 초나라는 진나라로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강대국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막강한 힘이 압박해 들어오는 형국이었다. 결국 진나라는 국경인 함곡관을 닫고 15년 동안 암중모색에 들어간다.
그런데 단순히 두 나라끼리의 동맹이라도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율한다는 것은 만만치가 않다. 하물며 여섯 나라가 연합동맹을 맺으려면 각 국의 이익이 매우 복잡하고 첨예하게 뒤섞일 수밖에 없다. 국력의 차이가 크고 각 국이 처한 상황이 다르니 조율하기도 쉽지 않다. 만약 진나라가 초나라에게 위나라를 함께 쳐서 영토를 나눠 갖자고 제안했다고 가정해보자. 초나라가 그 제안을 뿌리칠 수 있을까? 진나라는 경쟁자이고 자국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나라니 너희와는 절대 손을 잡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위나라의 편을 들어줄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언제 올지 모를, 혹은 아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의 위협에 대비한다고 눈앞에 놓인 이익을 포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설령 미래의 위협은 크고 현재의 이익은 사소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진나라로 간 장의는 이 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장의는 각 나라를 이간질해 소진을 곤란하게 만든다. 제나라와 위나라로 하여금 조나라를 공격하게 만듦으로써 합종을 와해시킨 것이다. 결국 소진은 합종의 붕괴에 따른 문책을 받아 연나라와 제나라를 떠돌다 죽음을 맞는다.
일찍이 소진의 전폭적인 후원 덕분에 출세할 수 있었던 장의로서는 소진이 죽자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합종을 무산시키기 위해 각개격파에 나서면서 “지금 합종하려는 자들은 천하를 하나로 만들고 형제가 되기를 약속하고 있지만, 같은 부모에게서 난 친형제라도 돈과 재물을 다투는 법입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합종이라는 것은 양떼를 몰아 사나운 호랑이를 공격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호랑이와 양의 차이는 분명하니, 호랑이와 편이 되지 않고 양떼의 편이 되겠습니까?”라고도 했다. 각자의 국익을 추구하는 국제정치에서 합종이란 이상에 불과하다. 더욱이 약소국끼리 힘을 합치는 것은 현명한 해결책이 못 된다. 그러니 강대국 진나라와 한편이 되어서 이익을 도모하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장의는 기만책을 사용하기도 했다. 초나라에 간 장의는 제나라와의 협력 관계를 단절하면 600리 면적의 땅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초나라 신하 진진이 “진나라가 초나라를 어려워하는 것은 제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나라와 맹약을 끊으면 초나라는 고립되고 맙니다. 진나라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고립된 초나라에게 600리 땅을 준단 말입니까? 더구나 제나라와 진나라가 연합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라고 말렸지만, 땅을 준 다는 말에 혹한 초나라 임금은 장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진진의 경고대로 장의의 말은 사기였다. 초나라가 먼저 제나라와 관계를 끊자 장의는 600리가 아닌 6리를 주겠다며 약을 올렸다. 초나라 임금은 분노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 밖에도 장의는 한나라를 찾아가 초나라를 공격하라고 회유했고, 제나라 왕에게는 이미 모든 나라가 진나라를 섬기기로 했다며 제나라 홀로 외톨이가 될 거냐고 협박했다. 조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연나라에게는 진나라를 섬겨야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지 못한다고 설득한다. 이처럼 장의가 당장 눈앞의 이익을 가지고 각 국을 흔들자 합종의 연대는 손쉽게 허물어졌다. 이후 몇 차례 합종이 다시 추진되긴 했지만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역사가 보여주는 그대로다. 50여 년이 지난 후, 진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연횡이 합종을 이겼지만, 그 자체로 어느 것이 더 낫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어떤 입장에 있느냐에 따라 정반대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인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또 그 과정에서 눈앞의 작은 이익이 미래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심이 없으면 합종과 연횡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쓰러진 여섯 나라처럼 되는 것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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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과 장의는 나라와 백성을 일으키고 바로잡은 호걸이다.”
차례로 사마천과 제갈량의 말이다. 후자의 경우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내용이기 때문에 정말로 제갈량이 저런 생각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소진과 장의에 대해 상반되는 인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 국제정치뿐만 아니라 기업전략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합종(合從)·연횡(連橫)’이란 단어는 귀곡자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를 통해 구체화됐다. 소진은 반(反) 진나라 연대의 구심점이 되고 장의는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전국시대를 뒤흔들었는데 이번 회는 바로 이들의 이야기다.
전국시대 뒤흔든 소진과 장의
소진의 주장은 모든 임금들로부터 동의를 얻었다. 각 국의 역량과 자원, 군사·지리적 여건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국익 확보 방안을 제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여섯 나라는 원수(洹水) 땅에 모여 합종 맹약을 체결했고 소진을 맹약을 총괄하는 종약장(從約長)으로 추대했다. 이 때 소진은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임하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천하를 호령하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열국지]는 “여섯 나라 임금이 원수 땅에 모여 맹세했으니 서로서로 의지하여 형제나 다름이 없었다. 비록 그들의 동맹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나 힘을 합친다면 진나라 하나쯤을 없애기는 쉬울 것이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진나라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진과 맞서겠다며 모든 나라들이 한데 뭉쳤으니 말이다. 더욱이 제나라와 초나라는 진나라로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강대국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막강한 힘이 압박해 들어오는 형국이었다. 결국 진나라는 국경인 함곡관을 닫고 15년 동안 암중모색에 들어간다.
그런데 단순히 두 나라끼리의 동맹이라도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율한다는 것은 만만치가 않다. 하물며 여섯 나라가 연합동맹을 맺으려면 각 국의 이익이 매우 복잡하고 첨예하게 뒤섞일 수밖에 없다. 국력의 차이가 크고 각 국이 처한 상황이 다르니 조율하기도 쉽지 않다. 만약 진나라가 초나라에게 위나라를 함께 쳐서 영토를 나눠 갖자고 제안했다고 가정해보자. 초나라가 그 제안을 뿌리칠 수 있을까? 진나라는 경쟁자이고 자국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나라니 너희와는 절대 손을 잡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위나라의 편을 들어줄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언제 올지 모를, 혹은 아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의 위협에 대비한다고 눈앞에 놓인 이익을 포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설령 미래의 위협은 크고 현재의 이익은 사소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진나라로 간 장의는 이 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장의는 각 나라를 이간질해 소진을 곤란하게 만든다. 제나라와 위나라로 하여금 조나라를 공격하게 만듦으로써 합종을 와해시킨 것이다. 결국 소진은 합종의 붕괴에 따른 문책을 받아 연나라와 제나라를 떠돌다 죽음을 맞는다.
일찍이 소진의 전폭적인 후원 덕분에 출세할 수 있었던 장의로서는 소진이 죽자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합종을 무산시키기 위해 각개격파에 나서면서 “지금 합종하려는 자들은 천하를 하나로 만들고 형제가 되기를 약속하고 있지만, 같은 부모에게서 난 친형제라도 돈과 재물을 다투는 법입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합종이라는 것은 양떼를 몰아 사나운 호랑이를 공격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호랑이와 양의 차이는 분명하니, 호랑이와 편이 되지 않고 양떼의 편이 되겠습니까?”라고도 했다. 각자의 국익을 추구하는 국제정치에서 합종이란 이상에 불과하다. 더욱이 약소국끼리 힘을 합치는 것은 현명한 해결책이 못 된다. 그러니 강대국 진나라와 한편이 되어서 이익을 도모하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장의는 기만책을 사용하기도 했다. 초나라에 간 장의는 제나라와의 협력 관계를 단절하면 600리 면적의 땅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초나라 신하 진진이 “진나라가 초나라를 어려워하는 것은 제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나라와 맹약을 끊으면 초나라는 고립되고 맙니다. 진나라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고립된 초나라에게 600리 땅을 준단 말입니까? 더구나 제나라와 진나라가 연합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라고 말렸지만, 땅을 준 다는 말에 혹한 초나라 임금은 장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상황 따라 합종이 연횡보다 나을 수도
결과적으로 연횡이 합종을 이겼지만, 그 자체로 어느 것이 더 낫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어떤 입장에 있느냐에 따라 정반대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인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또 그 과정에서 눈앞의 작은 이익이 미래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심이 없으면 합종과 연횡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쓰러진 여섯 나라처럼 되는 것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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