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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경의 ‘IF’ㅣ부자를 꿈꾸는 당신에게(10) 좋은 사업 파트너가 있다면] 서로를 믿고 같은 꿈을 꿔야 멀리 간다

[조원경의 ‘IF’ㅣ부자를 꿈꾸는 당신에게(10) 좋은 사업 파트너가 있다면] 서로를 믿고 같은 꿈을 꿔야 멀리 간다

인연이자 악연이었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상반된 성격과 음악적 취향으로 보완관계 되기도
명콤비이자 라이벌이었던 폴 매카트니(왼쪽)와 존 레논. 영국의 사진작가 패티 보이드의 전시 ‘록킹 러브(Rockin’Love)’. 인도에서 그들을 찍었다.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수있어야 한다. 만나도 좋을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동업을 할 때 피해야 할 사람이 있다. 개인적인 욕심이 너무 강한 사람은 멀리하는 것이 좋다. 사명감이 없는 사람은 남의 탓을 잘하기에 함께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인간미가 없는 사람은 언제 변할지 모르기에 꺼리게 된다. 부정적인 사람은 긍정의 에너지를 앗아갈 수 있어 시너지 효과가 생기기 어려울 듯하다. 원칙이 없는 사람도 멀리 할 필요가 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도 함께 일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누군가는 가까운 사람과 동업하지 말라 했다. 돈이 개입되면 오랜 우정과 친분에 금이 가기 쉬우니 사업은 함께 하지 않는 것이 방법이리라. 하지만 친구이면서도 잘 된 경우도 있으니 사업을 함께 하는 것이 맞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하나의 고독한 천재보다 둘이 모여 서로를 보완하고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기도 하다. 환상의 콤비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있었다. 부부 간에도 궁합이 맞아야 금슬이 좋다고 했다. 남인 경우 좋다가도 싫어지는 게 사람 사이인데 오랜 우정을 지속하기는 참 어려울 것 같다. 세기의 4인조 그룹 비틀즈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어땠을까? 그들의 노래를 차례로 들으며 문득 인생과 사랑, 우정을 이야기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어느날 존은 자신의 부인이 싫어진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는 잔소리로 가득했고 그래서 그는 그녀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의 세계를 바꿀 수는 없다.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자기 자신일 뿐이다. 그들의 노래를 요즘 시대의 가사로 변형해 우리네 삶을 조명해 보자.

“그녀의 말이 끊임없는 빗줄기가 됩니다. 그 말이 종이컵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잖아요. 이내 구멍 난 종이컵 사이로 미끄러져 우주 저편으로 사라집니다. 슬픔의 웅덩이가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았지만 나는 마음을 활짝 열고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어 봅니다. 즐거움의 파도를 타는 생각을 해 보니 마음이 가벼워지네요. 파도가 나를 소유하려 듭니다. 거친 파도가 나를 부드럽게 만져 주네요. 나는 그 파도에서 소우주의 부분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누군가 내게 깨달음을 준다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나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단지 나일 뿐이지요. 저 멀리 불빛이 부서집니다. 나는 은하수 저편에서 수많은 불빛이 춤을 추며 내게 손짓하고 있음을 느껴요. 많은 생각이 정처 없이 ‘생각이란 우체통’에서 방황합니다. 불멸의 사랑을 나도 믿었는데 그렇지 못한 나를 자책해 봅니다. 우주를 가로질러 나는 외쳐 봅니다. 누구도 나의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오직 나만이 나의 세상을 열 수 있습니다.”

존에게 여자가 생기자 그의 아이는 풀이 죽는다. 친구 폴은 실의에 빠진 아이에게 용기를 주는 노래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존이 미워지는 마음도 생기지만 어찌할 방법도 없다.

“아이야, 세상 짐을 네 어깨에 다 올려놓으려고 하지 마. 슬픈 노래를 하나 끄집어 내서 경쾌한 노래로 바꿔 봐, 그녀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려고 해봐. 그러면 네 마음이 훨씬 나아질 거야. 너는 언젠가 그녀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될 거야.”
 비틀즈에게서 듣는 세상의 명과 암
그녀는 누구일까? 존은 새로운 연인 오노 요코를 생각해서 폴이 그를 위해 노래를 만들어 주었다고 여겼을까? 세간에는 폴 역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고, 그녀를 받아들이려는 자기를 위로하는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일까? 존은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의 불장난으로 그녀가 임신을 했고 가정을 소홀히 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존과 그의 첫 부인 신시아 사이에서 ‘둘의 힘’은 느껴지지 않고 각자가 따로 노는 느낌이 만연했던 게 사실이다. 그냥 서로가 각자였을 때가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존은 사랑 없는 결혼에 방황하며 더욱 철학적이 되어 가는 자신을 마주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본다. 정식 음악교육을 받지 못하고도 세상을 지배한 음악가는 많다. 비틀즈의 존 레논, 롤링 스톤즈, 도어스…. 누군가는 널리 알려진 록 스타 가운데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은 런던 왕립 음악아카데미를 졸업한 엘튼 존뿐이라고 한다.

“그는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아요. 누구의 소유도 아닌 땅에 앉아, 아무 소용없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어떤 관점도 없고요. 행선지도 알지 못합니다. 이 친구, 당신과 나를 닮지 않았나요. 내 말 좀 들어보세요. 당신이 뭘 잊고 사는지 말해줄게요. 그래도 당신은 세상을 움직일 수 있어요. 그는 정말 눈이 멀었어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지요. 부족한 무언가를 말해주면 좋을 텐데.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느냐고 말하지요. 너무 걱정 말아요. 서두르지 말고 여유를 가져봄은 어떨까요.”

존의 사후에도 전쟁은 이어지고 차별과 억압은 여전히 존재한다. ‘평화로운 세상’을 일구고자 했던 그의 이상은 늘 그렇듯 좌절되고 있는 것이다. 흑과 백의 차별이 만연했던 당시에 비틀즈는 1964년 투어에서 관객들이 피부색에 상관없이 어디에나 앉을 수 있도록 요구했다. 그는 위대한 뮤지션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는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자기 안에 주체할 수 없는 음악에 대한 격렬한 사랑이 끊임없이 솟아남을 느끼고 있었다. 존은 그의 분신인 신시아와의 사이에서 나은 아들을 위해 ‘굿나잇’이란 노래를 만들었다. 그러고 보면 존은 혈육의 정을 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외로운 날 아들을 생각하며 자장가를 부르는 존을 생각해 본다.

“나를 위해서 꾸었던 달콤한 꿈, 너를 위해서 꾸었던 달콤한 꿈, 이제 ‘잘 자’ 하고 말할 시간이야. 태양은 어둠속에 자취를 감추고 ‘잘 자’ 하고 인사를 하네. 눈을 감고 잘 자. 나도 그럴게.”

비틀즈가 해체되고 존은 ‘이매진(Imagine)’ ‘우먼(Woman)’ 등의 노래를 만들며 세상을 향한 외침을 노래한다. 언론이 부추긴 것인지 모르나 존과 폴은 서로를 헐뜯는 존재로 비치기도 한다. 노동자의 아들이자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그의 환경을 떠나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물론 ‘천국은 없다’는 그의 생각에 우리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해보면 쉬운 일이죠. 우리 발 아래 지옥은 없어요. 오직 푸른 저 하늘만 있죠. 모든 사람이 오늘을 위해 사는 세상을 생각해봐요. 국경은 없다고 상상해 봐요. 어렵지도 않아요? 서로 죽일 일도 없고, 종교 역시 없는 세상, 이 모든 사람이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꿔 봐요. 나를 몽상가라 할 수 있겠지만, 혼자만의 꿈은 아닙니다. 하나 되는 세상을. 내 것이 없다고 해봐요. 할 수 있을 거예요. 탐욕과 궁핍도 없고, 인류애만 넘치는, 이 모든 사람이 그런 세상을 나누어갑니다. 그런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파트너에서 적이 되는 것은 백지 한장 차이
1964년 2월 7일 미국 공연을 위해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후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있는 비틀스. 왼쪽부터 존 레논,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 조지 해리슨.
무정부주의자일까? 무신론자일까? 사후에도 돈을 벌고 있는 그가 무소유를 주장했다니 상상이 안 간다. 어쩌면 한번 살고 가는 세상에서 그는 어린 시절 돈에 궁핍했지만, 인기를 얻은 후 돈에 초월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매진이 존 레논의 대표작이라면 예스터데이와 헤이 주드는 폴 매카트니의 대표작이다. 비틀즈가 해체된 후 그들은 역사 속 라이벌 관계가 된다, 사사건건 반목했던 그들은 존이 죽기까지 서로의 존재가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팝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폴은 존의 사후에 이런 말을 한다.

“비틀즈 해체 후 우리가 서로 불편한 관계로 알려져서 속상했습니다. 실제로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존재였죠.”

애증의 관계란 게 있다. 어쩌면 사랑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 아닐까? 인류의 “함께”를 부르짖은 존조차 첫 아내에게 사랑을 온전히 바치지 못했다. 존의 사후에 서로를 그리워하는 관계라고 했지만 폴이 존에 대해 질투심이 없었을까? 비틀즈의 해산 후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큰 심리적 고통을 겪었고, 해체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린 채 서로를 원망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1971년 둘은 자신의 솔로 앨범을 통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먼저 선제공격을 한 쪽은 폴 매카트니였다. ‘Too Many People’이란 곡에서 “너는 굴러 들어 온 복(비틀즈)을 둘로 쪼갰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또 앨범의 뒷면에 딱정벌레가 교미하는 사진을 넣었다. 존 레논은 격분했다. 이를 자신과 오노 요코에 대한 비꼬기로 여긴 것이다. 이에 존 레논은 훨씬 세게 응수한다. 자신의 앨범 이매진에 폴의 앨범의 커버를 비꼬는 사진을 넣는다. 그리고 폴 매카트니를 비난하기 위해 ‘How Do You Sleep?’이란 노래에 “그딴 곡이나 써놓고 잠이 오냐?”는 내용으로 도배를 한다. 이는 오노 요코와 함께 쓴 가사라고 알려져 있다. 폴은 이를 듣고 충격에 빠진다. 다행히 존 레논의 같은 앨범에 수록된 ‘Jealous Guy’라는 곡 내용이 그의 마음을 다소 진정시킨다. 폴 매카트니는 가사에서 존이 그래도 일면 그를 인정해 줌을 알게 된다. 존이 폴의 진가를 인정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폴은 비틀즈 이후 윙스(Wings)를 이끌며 비틀즈에 버금가는 막대한 성공을 거뒀다. 빌보드 톱10 싱글만 22곡이었고 1위곡도 My love, Band on the run, Ebony and ibory를 포함해 9곡이나 된다. 그렇다고 폴이 마냥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성공한 자는 그에 걸맞은 왕관의 무게를 지탱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폴은 자신이 ‘예쁜 레코드를 만드는 팝 가수만으로 기억되지나 않을까’라고 걱정했다. 그는 실제로 음악의 깊이가 없고 상업적이며 존만큼 훌륭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How do you sleep?에서 가장 뼈아픈 지적을 해댄 존의 이야기는 정말 상처가 됐다.

“예쁜 얼굴은 1, 2년 정도 갈지 모르지만 곧바로 사람들은 네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알게 될 거야. 네가 만드는 사운드는 내 귀에 무작(Muzac)으로 들릴 뿐이야.”

무작이란 방송에서 들려나오는 평범한 스탠더드 팝을 가리킨다. 폴은 존에 대한 적의를 감추지 않았으나 가슴이 쓰라린 쪽은 폴이었다. 존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성향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폴은 얼마나 뼈아팠으면 1976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존을 ‘지구상의 최고 악인’이라고 말했을까.

“존은 ‘In my life’를 내가 쓴 사실도 망각해 버렸다. 사실 그 곡은 내가 작곡했다. 그는 파렴치한 돼지일 것이다. 그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깊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 법이다. 존의 사후에도 폴의 증오는 이어졌다. 1992년에도 “난 아직 상처를 받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으니 말이다. 그러나 세월은 흘렀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용서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스스로 여유를 찾으려고 했어요. 난 발라드가 좋습니다. 난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흔히들 가정적이라고 하면 예술의 적이라고 하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단지 가정적인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런던으로 가 일주일에 3일 밤을 보내고 야간업소에 출연해 때로 바지를 내리고 공개적으로 많은 것을 서약할 것인가로 고민할 수 있습니다. 난 결정했습니다. 발라드와 아이들로요. 나는 그런 사람입니다.”
 잘 관리된 라이벌 의식은 성공의 원동력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 장면. 워런 버핏(왼쪽)과 투자 동지인 찰스 멍거가 총회를 주관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서로가 싸우기도 했지만 존과 폴은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서로에게 의지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성공의 원동력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노래에 담긴 의미를 다 새기며 들을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나 글이 다르게 읽히듯이 노래도 다르게 들릴 수 있다. 어제를 그리워하는 노래 ‘예스터데이’가 연인을 잃은 상실감을 표현하든 폴이 존을 미워해 존이 모든 것을 잃고 어제를 그리워하는 노래로 만든 것이든 우리가 알 바는 아니다. 서로에게 지지 않으려는 그들의 모습이 서로를 키우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했다. 존 레논이 없는 비틀즈를 상상할 수 없듯이 폴 매카트니가 없는 비틀즈도 상상할 수 없다. 둘의 라이벌 관계가 존이 죽은 지금에도 비틀즈를 추억하는 이유가 된다. 비틀즈가 해체된 후의 존과 인터뷰한 1980년 죽기 얼마 전 기사를 각색해 본다.

“비틀즈 멤버가 다시 모여서 자선 콘서트를 여는 건 어떻습니까?”

“자선 같은 건 하기 싫어요. 이미 죽을 만큼 자선을 했어요.”

“네?”

“비틀즈가 마지막으로 공연한 1966년부터 내 이익을 위해 콘서트를 열어 본적은 한번도 없어요. 록의 부활을 위한 토론토 공연을 빼고는요. 십일조라고 들어봤나요?”

“자신의 소득을 얼마만큼 기부하는 것 말이죠?”

“그래요. 난 그걸 개인적으로 하고 있어요. 세계 평화를 무대 위에서만 외치진 않을 겁니다.”

1980년 12월 8일 존 레논에게 사인을 받은,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말하는 한 남자가 뉴욕 맨해튼의 다코타 아파트 밖에서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가 지켜보는 가운데 존 레논의 등을 향해 5발의 총을 쏴 4발을 맞췄다. 그는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경찰이 도착하기를 기다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존 레논의 팬으로 자기 자신과 존 레논을 동일시했다. 본명 대신 존 레논이라는 이름을 썼다. 존 레논이 1970년 긴 머리를 자르고 단발 스타일을 하자 자신도 단발을 고수했다. 존 레논이 7살 연상의 일본인 오노 요코와 결혼한 것을 보고 4살 연상의 일본인 여성과 결혼했다. 그는 존 레논 때문에 자신이 위험해졌다고 생각했다. 존 레논의 이매진이 반향을 일으키고 인기가 치솟자 미국과 영국 정부의 감시를 당해야만 했고 자신도 같은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범인은 결국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 존 레논을 죽여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슬픈 운명이었다. 존과 폴은 상반된 성격과 음악적 취향을 지녔기에 서로를 보완할 수 있었다. 존은 자유분방한 성격의 노래를, 폴은 서정적인 음악을 선호했다.
 투자계의 명콤비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
사업에서 좋은 파트너를 얻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 하는 것이 낫다. 어쩌면 우리는 남의 흠을 보기가 쉽다. 그럴 때 파트너의 실수를 고치려 들지 말고 때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파트너에 대한 믿음이 없을 때는 과감히 그와 헤어지는 것이 좋다. 믿음이 없는 사업은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것으로 끝나기 쉽다. 상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그래서 동업에 필수이다. 서로에 대해 믿음을 갖고 함께 꿈을 꾸어야 멀리 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고, 상대의 실수나 허물에 대해서는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헤어지기 쉽다. 물론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경우에서의 얘기다. 임계치를 넘는데 계속 관용을 베푸는 것은 바보스러운 일이다. 서로가 진정으로 서로를 신뢰한다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된다.

투자에도 이런 명콤비가 있다. 여든을 훨씬 넘긴 두 투자가는 아직도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그들은 바로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다. 그들은 버크셔해서웨이의 회장과 부회장을 맡고 있다. 워런 버핏이 유명한 이유는 지속적이고 높은 투자 수익률 때문인데, 그 과정에서 의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찰리 멍거다. 워런 버핏은 찰리 멍거를 스승이자 최고의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를 보면 서로가 보완재가 되어 좋은 화음을 냈지만 서로에게 질투심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죽음과 세월이 그들에게 용서와 그리움이라는 선물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워런 버핏의 찰리 멍거에 대한 진심을 더욱 본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찰리 멍거는 투자에서 워런 버핏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 인물로 보인다. 그가 말한 투자 철학이 우리의 귓전을 울리는 지금 ‘만약에 좋은 사업 파트너가 있다면’을 생각하며 찰리 멍거의 조언을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그의 나이만큼 인생을 관조적으로 보는 혜안이 돋보인다.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을 이해하는 데 경제학 같은 단 한개의 모델만 사용하고, 모든 문제를 그것으로 풀어내려고 합니다. 격언을 하나 예로 들어 보지요.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세상이 못처럼 보인다’. 그런 태도는 문제를 해결하는 매우 미련한 방식입니다. 한두 개의 모델만 사용한다면, 현실 그대로의 모습을 무시하고 당신의 모델에 현실이 맞춰지도록 진실을 이리저리 변형해 곡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혹시 애꾸눈으로 세상을 왜곡해서 보고 있지 않나. 존 레논의 성향이 어떻든 그가 이루고자 했던 평화의 세상은 이뤄져야 한다. 폴 매카트니의 성향이 어떻든 어제에 대한 그리움과 진한 신뢰가 오늘과 내일의 우리를 만든다. 존 레논이 죽은 지 40년이 되어 간다. 그의 사후에 애정 어린 친필 편지를 34년 후에 받은 이가 있다. 영화 같은 이야기다.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스티브 틸스턴. 1971년, 21세에 신인 가수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음악 잡지 [지그재그]와의 인터뷰에서 성공과 부유함이 음악적 재능을 해치게 될까봐 걱정이 된다고 털어 놓는다. 존 레논은 이 인터뷰를 인상 깊게 보았다.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자 신인 가수에게 보내는 편지를 직접 써서 잡지사로 보냈다. 스티브 틸스턴에게 편지가 전달된 것은 어떤 영문인지는 몰라도 34년이 지난 2005년이었다. 존은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유해지는 것이 당신이 우려하는 것처럼 당신의 경험까지 바꾸진 않는답니다. 유일한 변화는 돈·먹을거리·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 뿐이죠. 감정이나 인간관계 등 다른 모든 경험은 똑같아요. 나와 요코도 풍요와 가난을 모두 맛보았죠. 사랑을 담아, 존과 요코”

부는 어쩌면 우리에게 걱정을 덜어주는 역할을 할지는 모르겠다. 인생의 대가들을 보면 결국 부를 좇았지만 그것이 삶의 전부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이다. 대한민국OECD 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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