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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의 경제학] 빌딩 자체가 국력의 상징물

[초고층의 경제학] 빌딩 자체가 국력의 상징물

서울·부산·전주 등지에서 잇따라 건설 추진… 건축비 비싸 사업성 확보 어려워
사진:gettyimagesbank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의 이름이 날려 흩어지지 않게 하자….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 탑은 이른바 바벨탑이다. 하늘에 닿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초고층 빌딩 건축의 유행은 이런 욕망의 현대적 버전인 셈이다. 소위 하늘을 긁는다는 의미(스카이 스크레이퍼)의 초고층 빌딩은 19세기 말 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재료의 출현으로 건설이 가능해지면서 급속도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에 따르면 세계에서 높이 200m 이상 초고층 빌딩은 2013년 73개가 들어선 데 이어 2014년 104개, 2015년 115개, 2016년 130개 등 해를 거듭할수록 급증하고 있다. 2017년에는 147개가 완공돼 연간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올라가는 속도도 빠르다. 1931년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높이 381m, 지상 102층)이 300m를 돌파한 후 미국 윌리스타워(높이 400m, 지상 110층)가 완공(1974년)되기까지 40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500m를 돌파하는 데는 3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만의 타이베이101(높이 508m, 지상 101층)이 2004년 건설됐다. 그리고 6년 후인 2010년에는 600m, 700m를 건너뛰고 단숨에 800m를 돌파했다. 국내 건설회사인 삼성물산이 지은 아랍에미리트 부르즈칼리파(높이 828m, 지상 163층)가 그 주인공. 초고층 전문가들은 기술적으로는 이미 이보다 훨씬 더 높이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론적으로는 2000m는 물론 4000m까지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GBC,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 되나
국내에서도 초고층 빌딩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신사옥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짓기 위한 마지막 행정절차를 끝냈다. GBC는 높이 569m로 지상 105층, 지하 7층 규모다. GBC가 계획대로 2023년 완공하면 국내 최고층 빌딩 자리가 바뀌게 된다. 지금은 롯데그룹이 2016년 말 완공한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롯데월드타워(555m, 지상 123층)가 1위를 지키고 있다. 롯데월드타워는 현재 세계에서 다섯째로 높은 빌딩이다. GBC뿐 아니다. 부산에서는 높이 380m의 초고층 빌딩이 올해 본격적인 건설에 들어가고, 전주시에서는 한 부동산개발회사(시행사)가 옛 대한방직전주공장 터에 높이 430m(지상 143층)짜리 초고층 빌딩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 빌딩이 실제 계획대로 들어선다면 1월 말 현재 세계에서 일곱째로 높은 건물이 된다.

현대차그룹은 GBC 착공을 위해 2월 12일 강남소방서에 GBC의 성능위주설계를 제출한 후 서울시에 건축허가를 접수했다. 성능위주설계는 대규모 공사 직전에 화재 등을 대비해 관할 소방서에 신고하는 과정으로, 통상 사업자가 공사를 시작하겠다는 의미다. 이로써 GBC는 현대차그룹이 부지를 매입한 2014년 9월 이후 5년여 만에 건축허가를 접수하게 됐다. 남은 절차는 이날 접수한 건축허가건에 대한 검토와 굴토·구조심의, 이에 대한 도시관리계획 변경 결정 고시다. 앞서 환경 영향평가와 수도권정비심의에서 논의된 사안의 이행여부가 제대로 담겼는지 최종 검토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경미한 설계변경이 이뤄질 수도 있지만, 이미 심의가 끝난 사안인 만큼 사실상 착공을 위한 행정절차는 모두 끝난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당초 2016년 12월 착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했지만 서울시 환경영향평가,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 문턱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착공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 손실액만 매년 5000억원이 넘을 것이란 전망이다. 표류했던 GBC 사업에 속도가 붙게 된 것은 지난해 말 정부가 ‘2019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조기 착공 지원을 공식화하면서다. 이후 그동안 3번이나 보류됐던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는 한 달여 만에 끝났다. GBC는 서울시의 건축허가가 끝나면 바로 착공에 들어갈 수 있는데, 서울시가 최대 8개월(건축허가 3개월, 굴토 및 구조심의 2개월, 도시관리계획 변경 절차 3개월)이 소요되는 인허가 처리 기간을 5개월 이내로 단축시키기로 함에 따라 6~7월이면 첫 삽을 뜰 수 있을 전망이다.

부산 중구 중앙동 옛 부산시청 땅에서도 초고층 빌딩이 첫삽을 뜬다. 정확히는 10여 년 간 중단됐던 공사를 재개하는 것이다. 롯데그룹이 추진 중인 이 빌딩(부산롯데타워)은 2000년 107층을 목표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사업성 악화 등으로 10여 년 전부터 사실상 공사가 중단됐다. 이후 지지부진하던 사업은 최근 사업자와 부산시와의 협의 끝에 공사 재개를 결정했다. 롯데그룹은 10월께 공사를 재개해 2023년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당초 428m였던 높이는 380m로 낮아졌다. 아파트 등 주거시설을 들인다는 계획도 빼고, 관광만을 위한 시설로 꾸며진다. 부산시에 따르면 높이 200m 정도에 세계 최초로 대형 공중 수목원이 조성된다. 전주에서 추진 중인 초고층 빌딩은 아직 계획만 있다. 지난해 옛 대한방직 부지 21만6464㎡를 사들인 시행사는 이곳에 높이 430m의 초고층 빌딩을 비롯해 아파트 3000가구와 호텔 등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지금의 두바이 만든 건 부르즈칼리파
하지만 특혜 시비 등이 일면서 최근 전주시가 사업 부지에 대한 용도변경 불가 방침을 정하면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현재 이 땅은 공업지역으로, 초고층 빌딩 등을 짓기 위해서는 상업용지로 용도를 바꿔야 한다. 시행사 측은 지난해 말 용도변경을 추진했으나 전주시가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고 사업이 중단된 것은 아니다. 시행사의 개발 의지가 강한 데다 전주시도 “교통, 환경, 주변 영향 등을 고려해 개별 지구단위계획을 신청하면 (용도 변경을) 재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시세차익을 노린 ‘먹튀’ 논란과 특혜 시비 등에 대한 논란이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사업이 본궤도 오를 전망이다.

이 같은 초고층 빌딩은 단순히 계산하면 경제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건물을 높이 지을수록 건축비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보통 30층 이하 건물에 비해 5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은 3.3㎡당 건축비가 1.5~3배에 이른다. 그만큼 더 많은 임대수익을 올려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럼에도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초고층 빌딩 건설을 추진하는 건 상상을 초월하는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초고층 빌딩은 좁게는 해당 지역에서, 넓게는 한 나라의 상징물(랜드마크)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1931년 완공한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는 지난 80년 간 미국 뉴욕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이에 따른 부가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다.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그 주변으로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기도 한다.

부르즈칼리파는 서울시의 웬만한 동 주민 수와 맞먹는 3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그 주변에 호텔과 아파트까지 대거 들어서면서 완전히 새로운 도심 속 도시가 탄생했다. 초고층 빌딩을 ‘도시 속 건물도시’로 표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오늘날 초고층은 국력을 상징하는 용어가 됐다”며 “만약 부르즈칼리파가 없었다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라는 도시가 그 정도로 유명해지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고층 빌딩은 그 자체가 관광 상품이 돼 관광객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엠파이어스테이트는 지금도 매년 1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일본 도쿄의 스카이트리(높이 333m) 역시 개장 이후 연평균 5000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다.

이 같은 관광자원화를 고려해 부산시는 부산롯데타워를 중심으로 부산항 북항재개발지구 문화단지, 기장군 오시리아 관광단지를 연결하는 복합문화관광벨트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빌딩에 세계 최초로 공중 수목원을 조성키로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내수 활성화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서울 롯데월드타워는 직간접적 고용인구가 3만3000명에 이른다. 부산시는 부산롯데타워 건설을 통해 9000억원의 생산유발효과와 2900억원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내수 경기 침체로 대부분의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주저하고 있는 상황에서 초고층 빌딩 건설은 그 자체만으로도 내수 경기 진작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가가치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당장의 사업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사업을 추진하기 쉽지 않다. 2008년 서울시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지으려고 했던 높이 656m(133층)짜리 서울라이트타워도 부동산 경기 위축 등으로 사업성이 악화하면서 결국 무산됐다. 서울시는 공공시설 사유화 방지를 위해 업무시설을 80% 이상 들여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민간 사업자는 아파트를 들여 분양해야만 사업성을 맞출 수 있다고 맞섰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공회전을 거듭하던 중 세계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쪼그라들자 결국 사업을 접기로 한 것이다. 서울라이트타워 뿐만이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서울의 ‘랜드마크’를 꿈꾸던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 9곳 중 롯데월드타워와 GBC를 제외하고는 7곳이 무산됐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추진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부동산 경기가 고꾸라지면서 줄줄이 백지화한 것이다. 초고층 빌딩은 경제가 활황일 때 짓기 시작하지만 이후 경기 과열로 거품이 꺼지면서 불황을 맞는다는 이른바 ‘초고층의 저주’(skyscraper curse)가 현실화한 것이다.
 완공 시점에 불황 맞는다는 초고층의 저주
중국 상하이 푸둥 신구의 상하이타워
초고층의 저주는 1999년 미국 도이치뱅크의 분석가 앤드류 로런스가 100년 간의 사례를 분석해 내놓은 가설로, 경제가 활황일 때 시작하지만 완공 시점에서는 불황을 맞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엠파이어스테이트가 완공하면서 대공항이 엄습했고, 1970년대 시카고 시어스타워(높이 443m, 지상 110층) 완공 즈음 오일쇼크가 왔다.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타워(높이 452m, 지상 88층)가 완공된 1998년에는 아시아 전체가 외환위기로 휘청거렸다. 부르즈칼리파가 개장한 2010년에는 두바이 경제가 급락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최근 중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초고층 빌딩 건설 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017년 완공된 세계 초고층 빌딩의 82%가 중국과 중동 등 아시아에 있다.

특히 2017년 들어선 세계 초고층 빌딩 144개 중 절반이 넘는 76개는 중국에 있다. 경제 발전에 따른 임금 상승, 내수시장 확대, 도시로의 인구 유입 등으로 주택과 사무실 수요 등이 늘면서 중국 전역에서 초고층 빌딩 필요성이 높아진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의 초고층 빌딩 건설 붐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양적 완화 정책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우려한다. 저금리로 갈 곳을 잃은 선진국의 투자자금이 초고층 빌딩 건설을 주도했지만, 상황이 바뀌면 순식간에 ‘돈줄’이 마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발 초고층 저주는 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반면 최근 국내에서 추진 중인 초고층 빌딩은 롯데그룹과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것으로 사업이 다시 중단되거나 백지화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 대형 건설회사 관계자는 “롯데월드타워에서 볼 수 있듯이 단일 회사가 사옥 등으로 쓰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은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더라도 쉽사리 멈춰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의 롯데월드타워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칼리파


※ 초고층 빌딩 - 초고층에 대한 기준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국내 건축법상 초고층 빌딩은 높이 200m 이상이거나 50층 이상인 건물이다.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는 높이 300m이상 건물을 초고층으로 분류한다. 그런가 하면 150m가 넘거나 30층을 넘기는 빌딩을 초고층에 포함시키는 나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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