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우린 우리답게 노래할 뿐이다”

“우린 우리답게 노래할 뿐이다”

중국 청두 출신의 4인조 랩 그룹 하이어 브라더스, 자국 문화 녹여 넣은 랩으로 국제적 명성 얻어
하이어 브라더스의 멤버들. (왼쪽부터) 마시웨이, DZ노우, 사이 P., 멜로. / 사진 : 88RISING
중국 랩 그룹 하이어 브라더스(Higher Brothers)는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Haier) 그룹에서 이름을 따왔다. 2016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이 그룹의 멤버인 마시웨이(25)와 DZ노우(21), 사이. P(23), 멜로(23)는 쓰촨성 청두의 스튜디오에서 비트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때 스튜디오의 에어컨에 새겨진 하이얼 그룹의 로고가 멤버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이얼 그룹의 마스코트인 두 애니메이션 로봇 캐릭터(각각 동양과 서양의 소년으로 묘사됐다)가 새겨진 로고였다.

‘하이얼 형제’로 알려진 이 로봇 캐릭터들은 1995년 나온 만화영화로 더 유명해졌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자연재해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두 주인공은 지금도 중국 본토에서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우리는 하이얼 형제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싶었다”고 마시웨이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런 미래를 상상하며 쓴 노래도 있다.”

그로부터 3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하이어 브라더스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랩 그룹이자 중국 본토 최초로 국제적 칭송을 받는 힙합 밴드가 됐다. 지난 2월 22일 이 그룹은 2집 앨범 ‘Five Stars’를 발표했다. 스쿨보이 Q, J.I.D., 솔자 보이, 덴젤 커리, 스키 마스크 더 슬럼프 갓 등 미국의 유명 래퍼들이 피처링에 참여했다. 이 그룹은 또 오는 5월 글로벌 투어에 나선다.

하이어 브라더스는 지난해 중국 최대 규모의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넷이즈(NetEase, 이용자 수 6억 명 이상)에서 ‘올해의 힙합 아티스트’로 선정돼 아디다스, 스프라이트, 게스, 나이키 등 유명 브랜드로부터 중국 내 광고 제의를 받기도 했다. 중국과 홍콩, 대만 순회공연에서 큰 호응을 얻은 하이어 브라더스는 지난해 봄 최초로 미국 순회공연 길에 올랐다. 그들은 이 투어에 16세기 중국 소설 ‘서유기’의 영문 제목인 ‘Journey to the West’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난 2월 22일 하이어 브라더스는 2집 앨범 ‘Five Stars’를 발표했다. / 사진 : 88RISING
하이어 브라더스는 장르를 불문하고 중국 뮤지션 중 전례 없는 국제적 성공을 거뒀다. 중국 정부는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팝스타를 양성하기 위해 매년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지만 단 한 그룹도 서양에 진출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하이어 브라더스가 이 트렌드를 깼다. 그들은 의도했든 안 했든 ‘중국의 회춘은 중국 문화의 번성과 함께할 것’이라는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의 비전을 빠르게 실현시켜가고 있다.

하이어 브라더스의 국제적 성공은 랩 문화의 가장 효율적인 측면을 활용하는 그들의 능력에 기인한다. 이 그룹은 중국의 자부심을 널리 알리는 이중언어(영어와 만다린어) 노래를 통해서 동양과 서양을 연결시킨다. 88라이징(아시아계 힙합 뮤지션에 초점을 맞추는 뉴욕의 미디어 회사) 소속인 하이어 브라더스는 2017년 ‘Made in China’라는 곡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리치 수프가 프로듀싱한 이 곡은 이들의 첫 앨범 ‘Black Cab’ 수록곡으로 중국인에 대한 편견 뒤에 숨은 위선을 노래했다. ‘내 목걸이와 새로 산 금시계는 중국산이지(My chain, new gold watch, made in China)’ 같은 가사로 그런 위선을 꼬집었다. 하이어 브라더스의 통역사인 라나 라킨이 전주 부분을 읊조린다. ‘랩 음악? 중국? 저들이 대체 뭐라는 거야? 이게 중국 랩 음악이라고? 그냥 ‘칭챙총’하는 것 같은데(Rap music? China? What are they even saying? Is this Chinese rap music? Sounds like they’re just saying ‘ching chang chong)’. 이 노래는 중국인이 과연 랩 음악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에게 내놓는 하이어 브라더스의 답이다. 사이. P는 “난 정말 화가 났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TV에서 보면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중국인을 혐오하면서도) 중국산 제품을 많이 쓴다. 그래서 난 그런 우스꽝스런 현실을 꼬집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인트로에 그 내용을 담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랩을 하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Made in China’는 유튜브 조회 수 1500만 회를 넘어섰다. 미고스·카일·릴 야티·플레이보이 카티 등 기성 래퍼들이 이 노래에 보인 반응을 담은 비디오가 미국에서 하이어 브라더스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줬다. 카일은 “과거 어느 때도 지금처럼 중국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면서 “DZ노우는 ‘중국의 비기(미국 힙합의 전설)’”라고 말했다. 한편 자비에 울프는 “하이어 브라더스는 중국 문화를 랩에 녹여 넣기 때문에 더 인상적이고 경이롭다”고 말했다.
중국과 홍콩, 미국 순회공연에서 성공을 거둔 하이어 브라더스는 오는 5월 글로벌 투어에 나선다. / 사진 : YOUTUBE.COM
하이어 브라더스는 또 중국의 인기 소셜 앱 위챗(WeChat)과 전통 명절인 춘절에 관련된 가사를 트랩비트(힙합의 한 장르)에 녹여 넣었다. 하이어 브라더스를 좋아하든 안 하든 그들이 서양에 중국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선다는 사실에 입을 모아 찬사를 보내는 이유다. “누구의 강요에 의한 건 아니다”고 마시웨이는 설명했다. “우린 우리답게 노래할 뿐이다. 음악으로 진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노래를 만든다.”

요즘은 세계 무대에서 주목 받는 중국인 예술가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다. 영화 ‘엑스맨’의 판빙빙과 디자이너 천펑, 중국계 래퍼 겸 코미디언 아콰피나 등등. 하지만 중국 본토의 검열 제도가 힙합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중국 내 외국 문화 확산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뮤지션들은 진심이 담긴 노래를 만들면서도 정부의 비위를 건드려서는 안 되는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린다.

중국 신문출판광전총국은 지난해 1월 힙합 문화와 몸에 문신을 새긴 연예인의 방송 출연을 금지했다. 중국 언론매체 시나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서는 문신을 했거나 힙합 문화를 묘사하는 연예인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시켜서는 안 된다. PG ONE, GAI 등 중국의 몇몇 유명 힙합 뮤지션이 이 새로운 검열 규칙에 걸려 출연 정지 처분을 받았다. 당국은 이들의 음악 콘텐트가 공산당의 가치관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하이어 브라더스는 중국 정부의 높은 방화벽을 뛰어넘었다.

멜로가 오래 전 솔로 시절 당국과 사소한 충돌을 일으켰던 것을 제외하면 하이어 브라더스의 음악은중국 공안에서 문제 삼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이들의 체제 전복적인 가사와 단정치 못한 옷차림을 잘 아는 사람들에겐 놀라운 일이다. 하이어 브라더스가 어떻게 검열에 걸리지 않았는지를 둘러싼 의문은 이들의 음악이 의도치 않게 공산당 선전에 도움이 됐던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았다.

이 추측을 뒷받침할 구체적 증거는 없지만 일각에서는 신선한 랩 비트 뒤에 숨은 하이어 브라더스의 노래 가사가 외국인 팬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도 중국의 민족주의를 효과적으로 퍼뜨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 정권이 왜 이 그룹의 성장을 가로막지 않았는지 그 진짜 이유는 공산당 내부 사정이 공개되지 않는 한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듯하다.

하이어 브라더스는 당국의 응징이 두려워 검열에 관한 서방 언론의 질문을 회피한다. 이런 태도는 이들이 미국에서 기반을 넓혀가는 데 또 다른 장애 요소가 될 것이다. 문화적 장벽은 높지만 하이어 브라더스가 힙합 문화에서 신선한 사운드와 외국의 영향이 전례 없이 개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기에 미국에 진출한 건 사실이다.

멜로는 글로벌 투어를 앞두고 뉴욕에서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선 다양한 피부색과 배경의 사람들이 우리 콘서트에 온다. 그중엔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라이브 공연에 특별한 에너지와 감성을 불어넣는다.”

- 크리스티나 자오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고려아연 부회장, 장형진 영풍 고문 직격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2레페리-RMHC Korea, 글로벌 진출·사회공헌 상생협력 MOU 체결

3 홍명보 "감독 선임, 불공정이나 특혜라고 생각 안해"

4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 ‘제19회 대산보험대상’ 후보 공모

5“경력 3년 이하 모여라”…토스, 개발자 최대 50명 채용

6빗썸, 창립 11주년 ‘거래 수수료 전면 무료’ 사전등록 진행

7해빗팩토리, ‘시그널플래너’ 이용자 100만명 돌파

8로앤굿, 소송금융 지원 100건 돌파…출시 1년 2개월 만

9노브랜드 도입 이마트24, 500호점 돌파…일매출 최대 50% ↑

실시간 뉴스

1고려아연 부회장, 장형진 영풍 고문 직격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2레페리-RMHC Korea, 글로벌 진출·사회공헌 상생협력 MOU 체결

3 홍명보 "감독 선임, 불공정이나 특혜라고 생각 안해"

4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 ‘제19회 대산보험대상’ 후보 공모

5“경력 3년 이하 모여라”…토스, 개발자 최대 50명 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