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북한의 모델 될 수 없다”
“베트남은 북한의 모델 될 수 없다”
공산주의 특성 약화시키는 자유시장 경제 통한 번영은 김정은 체제의 존재 이유 없애 실존적 위기 초래할 수 있어 베트남은 지난 2월 말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완벽해 보였다. 하노이의 화려한 메트로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면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내용의 빅딜안을 제시하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설득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제재가 해제되고 투자가 허용되면 북한은 절실한 경제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경제는 1990년대 초 북한 정권을 지원하던 소련이 붕괴한 이래 궁핍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아가 만연하면서 인구 약 2500만 명 중 1050만 명이 영양실조일 정도다.
한편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베트남은 그동안 눈부신 성장으로 번영을 구가했다. 베트남 공산당 정부는 1980년대 말 소련식 계획경제가 실패로 판명된 뒤 자유시장 개혁을 도입했다. 오랫동안 모든 시장을 철저히 통제하던 베트남 정부가 그때부터 기업과 농장의 개인 소유를 허용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8일 트위터를 통해 베트남의 이런 경제 성공을 가리키며 “북한도 완전한 비핵화를 실행하면 경제 강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나는 역사학자로서 “베트남이 북한의 모델”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독일 역사에 관한 대학 교과서를 집필하는 중이다(독일은 나의 모국이다). 내가 그 교과서 내용 중에서 1990년대 동독이 소련식 사회주의 경제에서 자유시장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관한 부분을 쓰고 있을 때 마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나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보면 지금 북한은 현대의 베트남보다 냉전시대의 동독과 훨씬 더 비슷하다.
북한과 동독은 두 나라 모두 과거 통일 국가의 반쪽으로 공산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선택한 다른 반쪽과 완전히 분리됐다. 다시 말해 북한과 동독은 자본주의 동포와 함께할 수 없다는 기본 사고방식에서 태어난 나라였다.
한반도가 양분된 것은 1945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소련군과 미군이 일본으로부터 한반도를 해방시켰을 때였다. 연합군은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분리했다. 소련이 북쪽을, 미국이 남쪽을 점령했다. 이 분리의 골은 1950년 6월 더욱 깊어졌다. 북한 공산주의 세력이 한반도를 통일하려고 남한을 침공했다. 이렇게 발발한 한국전쟁은 대리 냉전으로 변했다. 공산주의 중국이 북한을 지원했고, 미국이 남한을 방어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결국 1953년 정전으로 경계선만 약간 바뀌었을 뿐 분단은 그대로 고착됐다.
독일도 한반도처럼 서로 경쟁하는 두 체제로 분리됐다. 1945년부터 1990년까지 45년 동안 자본주의 서독과 공산주의 동독이 베를린 장벽으로 분리된 채 나란히 존재했다. 처음엔 동독의 중앙계획경제가 전후 국가 재건에서 인상적인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이 되자 동독의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소비재와 공산품이 부족해졌다.
동독의 발터 울브리히트 서기장은 경제의 재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경제 통제를 완화했다. 국영업체 경영진이 어떤 제품을 생산해야 할지 결정권을 갖게 됐다(이전엔 그 역할도 정부가 맡았다). 아울러 수익이 나면 그 일부를 업체가 가질 수 있었다. 금융기관도 선호하는 업체가 성장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대출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그에 따라 생산성과 임금이 오르고 소비재가 풍부해졌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 동독은 갑작스럽게 개혁을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갔다.
개혁이 효과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나의 연구와 역사학자 호에르크 뢰슬러에 따르면 동독은 자유로운 경제로 인해 서독과 비슷해지는 상황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서독처럼 되면 체제가 위험해진다는 것이 동독 지도부의 판단이었다. 1968년 소련은 동독의 이웃나라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해 그곳의 경제 자유화와 정치 자유화 실험을 중단시켰다. 동독 정부도 자국 경제가 지나칠 정도로 자유로워졌다고 우려했다. 동독은 휘청거리는 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함으로써 공산주의 통치를 보존하려고 애썼지만 그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서독에 흡수 통일됐다.
공산주의의 중심에는 언제나 경제가 있었다. 계획경제는 소련·쿠바·베트남 같은 나라가 자본주의 민주국가들과 차별화되는 주된 기준이었다. 소련의 블라디미르 레닌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같은 공산주의 지도자들이 자본주의 국가들을 보며 우월감을 가진 것은 오로지 계획경제 덕분이었다. 그러면서 많은 공산주의 정부가 공산당의 권력 독점을 위태롭게 만들지 않는 수준에서 사회주의 경제에 자유시장 자본주의 요소를 일부 융합하는 데 성공했다. 베트남·쿠바·중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물론 그들이 자본주의로 옮겨가는 과정에는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대가가 따랐다. 자유시장 덕분에 부유한 기업가 계층이 늘어났지만 일부 계층은 새로 창출된 부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크게 개선된 생활조건 덕분에 베트남·쿠바·중국의 공산당 정부는 전통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독과 북한은 서로 완전히 닮은꼴로서 베트남·쿠바·중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계획경제는 정치 체제를 상징할 뿐 아니라 공산주의의 유일한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동독과 북한은 자본주의를 선호하는 서독과 남한 동포와는 완전히 다른 경제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탄생한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자본주의 동포들로부터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명확한 경제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 동포들에 흡수되고 만다. 역사가 그런 과정을 명확히 보여준다.
나의 연구에 따르면 북한이 비핵화를 실행하고, 그에 따라 미국의 제재가 해제되면서 북한 경제가 시장사회주의로 전환될 경우 북한은 동독과 비슷한 실존적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번영하는 경제는 북한의 존재 이유를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부의 전체주의 정책, 반미 구호, 고립주의 추진의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북한의 전능한 지도자로선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중앙계획경제를 유지하며 핵무기를 통한 위협으로 권력을 보장 받는 편이 활기찬 자본주의 경제보다 훨씬 나을지 모른다. 김 위원장은 2011년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통치권을 승계한 뒤 북한 주민에게 이전보다 더 나은 생활수준을 약속했다.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북한 경제의 공산주의 특성을 위태롭게 만들지 않고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개혁이다. 하지만 냉전 종식 후 어떤 나라도 그 일에 성공한 적이 없다.
- 토머스 애덤
※ [필자는 미국 텍사스대학(알링턴 캠퍼스)에서 초국가적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여기에 실린 내용은 필자 개인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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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는 1990년대 초 북한 정권을 지원하던 소련이 붕괴한 이래 궁핍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아가 만연하면서 인구 약 2500만 명 중 1050만 명이 영양실조일 정도다.
한편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베트남은 그동안 눈부신 성장으로 번영을 구가했다. 베트남 공산당 정부는 1980년대 말 소련식 계획경제가 실패로 판명된 뒤 자유시장 개혁을 도입했다. 오랫동안 모든 시장을 철저히 통제하던 베트남 정부가 그때부터 기업과 농장의 개인 소유를 허용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8일 트위터를 통해 베트남의 이런 경제 성공을 가리키며 “북한도 완전한 비핵화를 실행하면 경제 강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나는 역사학자로서 “베트남이 북한의 모델”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독일 역사에 관한 대학 교과서를 집필하는 중이다(독일은 나의 모국이다). 내가 그 교과서 내용 중에서 1990년대 동독이 소련식 사회주의 경제에서 자유시장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관한 부분을 쓰고 있을 때 마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나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보면 지금 북한은 현대의 베트남보다 냉전시대의 동독과 훨씬 더 비슷하다.
북한과 동독은 두 나라 모두 과거 통일 국가의 반쪽으로 공산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선택한 다른 반쪽과 완전히 분리됐다. 다시 말해 북한과 동독은 자본주의 동포와 함께할 수 없다는 기본 사고방식에서 태어난 나라였다.
한반도가 양분된 것은 1945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소련군과 미군이 일본으로부터 한반도를 해방시켰을 때였다. 연합군은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분리했다. 소련이 북쪽을, 미국이 남쪽을 점령했다. 이 분리의 골은 1950년 6월 더욱 깊어졌다. 북한 공산주의 세력이 한반도를 통일하려고 남한을 침공했다. 이렇게 발발한 한국전쟁은 대리 냉전으로 변했다. 공산주의 중국이 북한을 지원했고, 미국이 남한을 방어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결국 1953년 정전으로 경계선만 약간 바뀌었을 뿐 분단은 그대로 고착됐다.
독일도 한반도처럼 서로 경쟁하는 두 체제로 분리됐다. 1945년부터 1990년까지 45년 동안 자본주의 서독과 공산주의 동독이 베를린 장벽으로 분리된 채 나란히 존재했다. 처음엔 동독의 중앙계획경제가 전후 국가 재건에서 인상적인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이 되자 동독의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소비재와 공산품이 부족해졌다.
동독의 발터 울브리히트 서기장은 경제의 재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경제 통제를 완화했다. 국영업체 경영진이 어떤 제품을 생산해야 할지 결정권을 갖게 됐다(이전엔 그 역할도 정부가 맡았다). 아울러 수익이 나면 그 일부를 업체가 가질 수 있었다. 금융기관도 선호하는 업체가 성장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대출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그에 따라 생산성과 임금이 오르고 소비재가 풍부해졌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 동독은 갑작스럽게 개혁을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갔다.
개혁이 효과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나의 연구와 역사학자 호에르크 뢰슬러에 따르면 동독은 자유로운 경제로 인해 서독과 비슷해지는 상황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서독처럼 되면 체제가 위험해진다는 것이 동독 지도부의 판단이었다. 1968년 소련은 동독의 이웃나라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해 그곳의 경제 자유화와 정치 자유화 실험을 중단시켰다. 동독 정부도 자국 경제가 지나칠 정도로 자유로워졌다고 우려했다. 동독은 휘청거리는 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함으로써 공산주의 통치를 보존하려고 애썼지만 그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서독에 흡수 통일됐다.
공산주의의 중심에는 언제나 경제가 있었다. 계획경제는 소련·쿠바·베트남 같은 나라가 자본주의 민주국가들과 차별화되는 주된 기준이었다. 소련의 블라디미르 레닌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같은 공산주의 지도자들이 자본주의 국가들을 보며 우월감을 가진 것은 오로지 계획경제 덕분이었다. 그러면서 많은 공산주의 정부가 공산당의 권력 독점을 위태롭게 만들지 않는 수준에서 사회주의 경제에 자유시장 자본주의 요소를 일부 융합하는 데 성공했다. 베트남·쿠바·중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물론 그들이 자본주의로 옮겨가는 과정에는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대가가 따랐다. 자유시장 덕분에 부유한 기업가 계층이 늘어났지만 일부 계층은 새로 창출된 부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크게 개선된 생활조건 덕분에 베트남·쿠바·중국의 공산당 정부는 전통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독과 북한은 서로 완전히 닮은꼴로서 베트남·쿠바·중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계획경제는 정치 체제를 상징할 뿐 아니라 공산주의의 유일한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동독과 북한은 자본주의를 선호하는 서독과 남한 동포와는 완전히 다른 경제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탄생한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자본주의 동포들로부터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명확한 경제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 동포들에 흡수되고 만다. 역사가 그런 과정을 명확히 보여준다.
나의 연구에 따르면 북한이 비핵화를 실행하고, 그에 따라 미국의 제재가 해제되면서 북한 경제가 시장사회주의로 전환될 경우 북한은 동독과 비슷한 실존적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번영하는 경제는 북한의 존재 이유를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부의 전체주의 정책, 반미 구호, 고립주의 추진의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북한의 전능한 지도자로선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중앙계획경제를 유지하며 핵무기를 통한 위협으로 권력을 보장 받는 편이 활기찬 자본주의 경제보다 훨씬 나을지 모른다. 김 위원장은 2011년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통치권을 승계한 뒤 북한 주민에게 이전보다 더 나은 생활수준을 약속했다.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북한 경제의 공산주의 특성을 위태롭게 만들지 않고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개혁이다. 하지만 냉전 종식 후 어떤 나라도 그 일에 성공한 적이 없다.
- 토머스 애덤
※ [필자는 미국 텍사스대학(알링턴 캠퍼스)에서 초국가적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여기에 실린 내용은 필자 개인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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