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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 새 없는 ‘인도양의 눈물’

마를 새 없는 ‘인도양의 눈물’

오랜 내전 시달린 스리랑카에서 부활절 기독교인 노린 연쇄 폭발 테러로 수백 명 사망… 이슬람 급진 무장단체 IS 배후 자처해
스리랑카 중부 해안 도시 네곰보의 성세바스티안 성당이 지난 4월 21일 부활절 미사 도중 폭발로 파괴됐다. / 사진:AP/YONHAP
부활절인 지난 4월 21일 일요일 아침 남아시아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에서 연쇄 폭발 테러가 발생했다. 스리랑카 경찰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8곳에 있는 여러 성당과 호텔 등을 표적으로 삼은 이 테러로 약 360명이 숨지고 500여 명이 다쳤다.

첫 폭발은 수도 콜롬보 시내 코치키케이드 지역 성안토니오 성당에서 발생했다. 이어 중부 해안 도시 네곰보의 성세바스티안 성당, 동부 해안 도시 바티칼로아의 자이언 교회, 콜롬보의 샹그릴라, 시나몬그랜드, 킹스버리 호텔, 콜롬보 남부 외곽의 트로피컬인 게스트하우스, 콜롬보 북부 교외 오루고다와타 공동 주거시설에서 동시다발로 폭탄이 터졌다. 부활절 미사를 위해 성당에 모였던 신도들이 속수무책으로 참변을 당했다. 스리랑카 관광개발청에 따르면 희생자 중 인도, 중국, 미국, 영국, 일본, 덴마크, 포르투갈, 터키 출신 등 외국인도 수십 명에 이른다.

스리랑카는 종족과 종교 갈등에서 비롯되는 극심한 폭력사태의 험난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이번 테러는 기독교의 가장 성스러운 날인 부활절을 축하하는 시점에 스리랑카의 기독교 공동체를 표적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 신자들이 미사에 참석하는 동안 여러 성당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에서는 다수 종족 싱할라족으로 구성된 불교도를 등에 업은 정치 세력들이 과거 영국 식민통치 시대를 지적하며 기독교 등 소수 종교계 주민을 식민시대의 유물로 몰아세운다. 이곳의 불교도(70% 이상)와 힌두교(12.6%), 무슬림(9.7%)은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 등의 식민지배를 당하면서 개종을 강요한 기독교에 강한 적대감을 보인다. CIA 월드 팩트북 2012년 추정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기독교인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로 인구의 7.4%를 차지한다.

불교도는 대부분 싱할라족이지만 스리랑카·인도 타밀족은 거의 전부 힌두교 신자다. 거기에다 소수지만 강한 기독교도 집단이 있다. 그러나 타밀어를 사용하는 무슬림은 무어족으로 인식된다. 수 세기 전 이 지역에 정착한 아랍 상인들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 집단 사이의 이해 충돌과 무력 분쟁으로 스리랑카는 전쟁터로 변했다. 내전은 1983년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무장단체 타밀엘람해방호랑이 반군(LTTE)이 싱할라족 정부군 13명을 살해하면서 시작됐다. LTTE는 자살부대를 만들어 스리랑카 정치 지도자와 정부군을 공격했고 1991년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 암살, 1993년 라나싱헤 프레마다사 전 스리랑카 대통령 암살 등의 배후로 지목받는다. 1987년 미국은 LTTE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했다.

1994년 집권한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전 대통령은 평화 협상을 시도했고 2002년 노르웨이의 중재로 휴전협정이 체결됐다. LTTE가 휴전을 거부하자 정부군은 2009년 군사력을 동원해 LTTE 무장반군을 무력 진압했다. 이때 정부군이 저지른 각종 잔학 행위는 인권 침해 및 인종청소 논란을 낳았다.

LTTE는 무슬림도 표적으로 삼았다. 무슬림은 내전이 끝나도 차별에 시달렸다. 사반세기에 걸친 내전(약 10만 명이 희생됐다)의 대부분은 스리랑카 정부와 LTTE 사이에서 벌어졌지만 대부분 LTTE가 일으킨 사건에서 엉뚱하게 무슬림이 학살과 강제 이주의 대상이 됐다.
현장에서 사망한 신자들의 유족이 다음날 장례식 후 촛불을 밝혔다. / 사진:AP/YONHAP
LTTE는 2009년 싱할라족 불교 지도자인 마힌다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이끈 정부군의 대대적인 공세로 결국 항복했다. 그로써 내전이 종결된 뒤 10년 가까이 평온한 상태가 유지됐지만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라자팍사 전 대통령을 총리로 지명하면서 다시 정국이 불안정해졌다. 그 조치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으로 라자팍사의 총리 임명은 무산됐지만, 스리랑카는 올해 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내전 종식 이래 싱할라 불교 민족주의가 급부상하면서 ‘보두 발라 세나’를 비롯해 정권의 비호를 받아온 불교 극단주의 조직들이 스리랑카의 다른 종교 신자, 특히 무슬림을 탄압했다. 동시에 일부 무슬림은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했다고 알려졌다.

스리랑카 정부는 이번 테러가 지난 3월 15일 무슬림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뉴질랜드 테러의 복수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당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사원에서 백인우월주의자의 총격 테러로 이슬람교도 50명이 숨졌다.

이후 IS는 뉴질랜드 테러에 복수를 다짐했다. IS는 지난 3월 19일 선전 매체 나시르뉴스에 44분 분량의 녹음 파일을 올리고 “뉴질랜드 모스크 두 곳의 살해 장면은 잠자던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를 깨우고 칼리프의 추종자들을 복수에 나서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IS가 이번 사건의 배후를 자처했다. 지난 4월 23일 IS 선전매체 아마크는 “스리랑카 연쇄 폭발이 IS 전사들에 의한 공격”이며 “우리와 전투 중인 연합군에 속한 국가의 국민과 기독교인이 그 표적”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IS가 이번 테러에 직접 가담한 것인지, 아니면 IS가 스리랑카 내 이슬람 단체에 이번 공격을 지시한 것인지 아닌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스리랑카 정부는 먼저 이번 사건의 배후로 현지 급진 이슬람조직인 NTJ(내셔널 타우히트 자마트)를 지목했다. 정부 대변인은 NTJ가 국제 테러조직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는지도 조사한다고 덧붙였다. NTJ는 불상 등을 훼손하는 사건으로 지난해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스리랑카의 무슬림 과격 단체다.

이와 관련해 한편 스리랑카 정부는 인도와 미국 정보당국을 통해 NTJ의 공격 가능성을 사전에 통보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신문은 미국과 인도 정보기관이 테러 발생 전인 지난 4월 4일 스리랑카 정부에 ‘테러 공격이 준비 중이라는 징후를 포착했다’는 내용의 경고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또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테러 2시간 전에도 인도 정보기관이 구체적인 테러 정보를 스리랑카 정부에 제공했다. 그런데도 스리랑카 정부가 이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지 않고 대응에 실패한 것은 정치적 분열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기관을 관장하는 대통령과 정부 부처를 관장하는 총리 사이의 갈등으로 총리조차 테러 첩보를 공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리랑카는 대통령이 국방과 외교를 책임지고 총리는 내정을 통할하는 이원집정부제 국가로, 현 대통령은 지난해 현 총리의 해임을 시도한 적이 있다.

스리랑카 경찰은 이번 연쇄 폭발 테러와 관련된 용의자 50여 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은 추가 테러에 대한 우려 등으로 지난 4월 22일 자정을 기해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발표했다.

-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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