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도 믿을 건 기업
미워도 믿을 건 기업
기업은 탐욕스럽고 악행 저지른다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실제론 세상을 더 안전하고 깨끗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허드렛일 떠맡는다 기업들은 때때로 나쁜 짓을 한다. 제보 전화와 트윗이 쇄도하기 전에 그 문제부터 살펴보자.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들의 악행으로 고객이 피해를 본다. 폴크스바겐이 그들의 오염물질 내뿜는 차가 매연검사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건 나쁜 짓이었다. 2015년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 가격을 정 당 약 14달러에서 750달러로 인상한 튜링 제약도 마찬가지다. 유나이티드 항공이 또 다른 항공편에 필요한 승무원을 앉히려고 고객을 비행기에서 끌어내렸을 때도 그렇다.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마케팅 업체와 정치 캠페인 업체에 개인 정보를 판매할 때 또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전 CEO가 “당신들에게 프라이버시는 전혀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라”며 우리의 우려를 일축할 때 부당하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나 가능한 한 세금을 적게 내려고 애쓰지만, 아마존이나 그와 같은 대기업들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는 뉴스를 접할 때는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은 나쁘게 말하면 범죄자고 좋게 봐도 오만하고 정이 가지 않는 존재다. 농구계의 전설 윌트 체임벌린이 언젠가 말했듯 “골리앗을 응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기업은 뭔가를 해도 하지 않아도 그리고 어쩌면 해야 했을 일로도 욕을 얻어먹는다. 하지만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미국 대선 선거운동이 펼쳐지는 내년 11월 3일까지 그런 말을 질리도록 듣겠지만, 기업이 우리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비리와 언론보도, 트윗과 인스타그램 메시지의 리스트에 묻혀 하나의 근본적인 불편한 진실을 간과하고 있다. 기업이 선행을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통계적으로 그들이 하는 일에서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자선활동을 말하는 게 아니다). 기업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약을 제조한다. 2017년 이전까지 C형 간염으로 해마다 2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은 95%를 치료할 수 있다. 기업은 대다수의 경제력에 맞는 가격에 양질의 음식·의류·주거공간을 제공한다. 1798년 경제학자 T.J. 맬서스는 인구증가로 인한 대량 아사를 예측했다. 오늘날 현재 인구의 8배를 먹여 살릴 만큼 식량이 충분하다. 기업은 교통·통신·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한다. 세상을 더 안전하고 깨끗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허드렛일을 떠맡는다.
우리가 변하면 그들도 변한다. 프랑스 대기업 소유의 PEG 아프리카는 서아프리카 주민에게 신용으로 태양에너지 시스템을 제공한다. 등유와 땔감 같은 비싼 오염 배출 연료를 대체한다. 알코아는 매년 59만t의 알루미늄을 재활용한다. 에너지 사용량이 광석으로 알루미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양의 5%도 안 된다. 나이키는 매립하는 플라스틱 통 50억 개 이상을 재활용했다. 나이키 제품 중 75%에 재활용 물질이 들어간다. IBM은 20여 년 전부터 동성 커플에게도 보건수당을 지급했다. 2014년 약국 체인 CVS는 20억 달러 이상의 연간 매출액 감소를 감수하고 담배 판매를 중단했다. 딕스 스포팅 굿즈는 플로리다주 파클랜드의 교내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매장에서 공격용 무기를 수거해 파기했다. 우리 앞에는 다수의 시급한 문제가 놓여 있다. 기후변화, 저렴한 헬스케어, 데이터 보안, 자동화와 인공지능 기술에 넘겨준 일자리를 대체하는 고소득 일자리의 창출, 치매 노인 돌봄 등이다. 필시 사회보장제도, 주간 고속도로 체계, 민권 문제에서 그랬듯이 한때는 나라에서 솔루션을 제공하겠지 하고 기다렸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교착상태나 자금문제 또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연방정부는 더는 그런 거창한 문제와 씨름하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변화에 가속도가 붙어 정부 솔루션은 항상 한 박자 뒤진다. 2008년 금융시장 붕괴를 초래한 금융파생상품이 대표적인 예다.
다른 누군가 또는 뭔가가 나서야 하는데 기업이 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그들이 해온 일이기 때문이다. 동기가 무엇이든 그들은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해결한다.
기업이 우리 삶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던 듯하지만, 실상 비교적 근대 문명의 산물이다. 1800년대 중반 이전까지 기업 설립은 길고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리고 투자자가 모든 부채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나 1855년 잉글랜드가 투자자의 책임을 한정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 뒤 기업 수와 사업범위가 폭발적으로 확장돼 지금은 전체 경제활동 중 3분의 1을 다국적 대기업이 담당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기업은 크기 즉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규모(scale)가 중요한 경우에 특히 유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규모는 제조·유통·광고·연구개발 등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대기업은 대륙 간 케이블 설치나 철도 건설 같은 대형 사업에 탁월한 효율·효과를 발휘했다. 실제로 기업이 대단히 크고 유능해져 기업이라면 당연히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사람들은 여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컨대 대대적으로 광고해도 소비자가 원치 않는 제품을 사게 할 수는 없다. 맥도널드는 수백만 달러를 들여 건강식 메뉴를 개발해 판촉했지만, 2013년 돈 톰슨 당시 CEO는 미니 당근과 샐러드가 팔리지 않는다고 시인했다. 그리고 2010년 캠벨 수프는 60% 이상의 농축 수프 제조법을 바꿔 나트륨 함량을 줄였다. 그러자 곧바로 제너럴 밀스의 프로그레소에 시장을 빼앗겨 원상 복구해야 했다. 또는 연비 좋은 소형차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가 미국인은 적재량과 파워를 중시한다는 교훈을 얻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산증인이다.
기업은 소비자뿐 아니라 생산성이나 경쟁력을 향상하는 신기술을 외면할 수 없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대처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기후변화 문제를 살펴보자. 규모가 크고 시급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 그리고 전 세계 여러 나라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는 것이 한 가지 솔루션이며 기업들이 대안 에너지원의 상용화를 선도한다. 심지어 메이저 석유회사들까지 다소 소극적이긴 해도 신재생에너지에 6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또 다른 전선에선 캐나다 기업 카본 엔지니어링이 공기를 빨아들여 이산화탄소를 뽑아내는 대형 공업용 흡수장치의 시제품을 개발 중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석유회사 쉐브론이 자금을 후원했다. 기술이 검증돼 대규모로 상용화되면 그 일을 맡기기에 기업만 한 적임자가 없을 것이다. 이민 문제를 살펴보자. 자신이 원해서 살던 집을 떠나 자녀를 이끌고 수천㎞를 걷거나 삐걱거리는 조각배에 올라 노를 저어가며 지중해를 건너려 할 사람은 없다. 그들이 그러는 것은 자신이 사는 나라의 극심한 빈곤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벗어나야 할 만큼 필사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살던 나라를 떠나지 않게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현실 세계의 모범답안을 기업들이 작성하는 중이다.
르완다는 1994년 종식된 참혹한 내전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자원이 부족한 작은 내륙국가다. 기업들에 문호를 활짝 개방했으며 비자를 포함해 많은 기업이 대거 진출했다. 비자는 전자결제 인프라를 구축하고, 결제·정산 서비스의 현지 처리시스템을 개발하고, 기초 금융교육을 한다. 또한 하루 2달러의 소득을 올리는 여성들처럼 전통적으로 은행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모바일 뱅킹 앱을 통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르완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100달러다. 미국 기준으로는 대단하지 않지만, 비슷한 규모에 마찬가지로 자원이 부족하고 내전을 겪은 이웃 나라 부룬디의 3배다.
또는 미국 주변의 문제를 살펴보자. 기업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고 걱정하는 미국인이 많다. 오히려 그들 덕분에 더 안전할지 모른다. 미국 헌법 수정 제1조(언론의 자유)로 인해 정부가 증오 발언을 통제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기업은 소비자의 요구에 반응하고 자신들의 경제적 투표권을 이용해 보통사람들에게 발언권을 준다. 예컨대 버라이어티 잡지에 따르면 폭스 뉴스 앵커 터커 칼슨의 반이민 논평에 맞서 그의 프로그램에서 약 20개 기업이 광고를 철회했다. 또한 극단주의 정치인에 맞설 수 있는 극소수 공인 중에도 기업인이 있다. 전통적으로 이는 좌파 극단주의를 의미했지만 2017년 경제잡지 포천은 트럼프 대통령에 맞설 만한 CEO 리스트를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백인 민족주의자들의 행진을 가리켜 ‘양쪽의 아주 훌륭한 사람들(백인 우월주의자까지 찬양)’이라고 불러 논란을 촉발했다. JP 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언더 아머의 케빈 플랭크, MS의 사티아 나델라, 머크의 케네스 프레이저, 월마트의 더그 맥밀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이 꼽혔다. 프레이저 CEO는 백악관 직속 미국제조업자문위원회에서 사퇴하면서 트윗을 띄웠다. ‘극단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한편 MS·아마존·익스피디아는 입장 표명을 통해 일명 무슬림 여행금지령으로 불리는 행정명령 19769에 대한 워싱턴주의 소송을 지지했다. 연방과 주 모든 차원에서 부담스러운 법을 철폐할 수 있는 곳은 기업과 법원뿐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는 2017년 트렌스젠더 금지 ‘화장실 법안’을 폐지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일정 부분 도이체방크와 페이팔(온라인 결제서비스)의 경제적 압력에 따른 것이다. 동성애 권익 단체 ‘프리덤 포 올 어메리칸스’는 인디애나주 ‘종교 자유’ 법안이 약화한 데는 애플·세일즈포스닷컴·앤지스리스트를 포함한 기업들의 공이 적지 않았다고 말한다. 기업들이 남녀 동성애자 커플에 대한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게 한 ‘종교 자유’ 법안이 발효됐을 때 앤지스리스트는 곧바로 4000만 달러 규모의 인디애나폴리스 본사 확장 공사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정치인들이 관심을 보였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선 신입사원 급료를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게 책정하는 대기업이 많다(일부는 필시 강요에 따라). 경제 정보 사이트 마켓플레이스에 따르면 아마존·뱅크오프아메리카·코스트코·타겟·월마트 등이 대표적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21년까지 시간당 20달러까지 인상을 약속했다. 올스테이트 보험은 지난해 직원 대상의 경제 변화 대처법 교육에 4000만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사(UTC)가 가장 먼저 도입한 방식이다. UTC 경영진은 기술·경제 사이클 탓에 감원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직원들 대상으로 그에 대처하는 ‘재훈련’ 노력을 후원했다. 앞으로 기업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그러기를 기대해야 한다. 그들은 제 기능을 못 하는 정부가 남긴 공백을 메운다. 이는 기업에 대한 불신을 거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신뢰하되 검증하라”는 말에 빗대 표현하자면 “불신하되 확인하라(Mistrust but verify)”는 뜻이다.
미국에는 기업의 행위를 감독하는 법 제도가 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그런 규제가 수십만 건에 달한다. 그렇게 많아도 모든 실수나 비리를 방지하기는 불가능하다. 고용인원 500인 이상 기업의 근로자가 6600만 명을 웃돈다. 그러나 부정을 바로잡을 수는 있다. 그런 면에서 미국에는 확고한 사법제도가 있으며 갈수록 강력해지는 안전장치인 소셜미디어도 있다. 여론이 기업의 행동을 선도한다. 해외 공장의 작업환경으로 오랫동안 비판받아 오던 나이키는 2002년 그런 공장들의 노동 안전과 위생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다. 현대판 힘의 균형인 셈이다.
진보 진영에는 상장 대기업에 기계적으로 반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 대선 캠페인이 달아오르면서 그런 적대적인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젠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악인들이 우리의 가장 믿음직한 친구일 수도 있다.
- 샘 힐, 행크 길먼
※ [샘 힐은 기업자이자 저술가다. 베스트셀러 ‘래디컬 마케팅(Radical Marketing)’의 공저자다. 행크 길먼은 뉴스위크 편집위원이다. ‘모두 해고할 수는 없다(You Can’t Fire Everyone)’의 저자이며 하이 워터 프레스 출판사의 공동창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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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이든 아니든 그들의 악행으로 고객이 피해를 본다. 폴크스바겐이 그들의 오염물질 내뿜는 차가 매연검사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건 나쁜 짓이었다. 2015년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 가격을 정 당 약 14달러에서 750달러로 인상한 튜링 제약도 마찬가지다. 유나이티드 항공이 또 다른 항공편에 필요한 승무원을 앉히려고 고객을 비행기에서 끌어내렸을 때도 그렇다.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마케팅 업체와 정치 캠페인 업체에 개인 정보를 판매할 때 또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전 CEO가 “당신들에게 프라이버시는 전혀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라”며 우리의 우려를 일축할 때 부당하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나 가능한 한 세금을 적게 내려고 애쓰지만, 아마존이나 그와 같은 대기업들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는 뉴스를 접할 때는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은 나쁘게 말하면 범죄자고 좋게 봐도 오만하고 정이 가지 않는 존재다. 농구계의 전설 윌트 체임벌린이 언젠가 말했듯 “골리앗을 응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기업은 뭔가를 해도 하지 않아도 그리고 어쩌면 해야 했을 일로도 욕을 얻어먹는다. 하지만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미국 대선 선거운동이 펼쳐지는 내년 11월 3일까지 그런 말을 질리도록 듣겠지만, 기업이 우리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비리와 언론보도, 트윗과 인스타그램 메시지의 리스트에 묻혀 하나의 근본적인 불편한 진실을 간과하고 있다. 기업이 선행을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통계적으로 그들이 하는 일에서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자선활동을 말하는 게 아니다). 기업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약을 제조한다. 2017년 이전까지 C형 간염으로 해마다 2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은 95%를 치료할 수 있다. 기업은 대다수의 경제력에 맞는 가격에 양질의 음식·의류·주거공간을 제공한다. 1798년 경제학자 T.J. 맬서스는 인구증가로 인한 대량 아사를 예측했다. 오늘날 현재 인구의 8배를 먹여 살릴 만큼 식량이 충분하다. 기업은 교통·통신·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한다. 세상을 더 안전하고 깨끗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허드렛일을 떠맡는다.
우리가 변하면 그들도 변한다. 프랑스 대기업 소유의 PEG 아프리카는 서아프리카 주민에게 신용으로 태양에너지 시스템을 제공한다. 등유와 땔감 같은 비싼 오염 배출 연료를 대체한다. 알코아는 매년 59만t의 알루미늄을 재활용한다. 에너지 사용량이 광석으로 알루미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양의 5%도 안 된다. 나이키는 매립하는 플라스틱 통 50억 개 이상을 재활용했다. 나이키 제품 중 75%에 재활용 물질이 들어간다. IBM은 20여 년 전부터 동성 커플에게도 보건수당을 지급했다. 2014년 약국 체인 CVS는 20억 달러 이상의 연간 매출액 감소를 감수하고 담배 판매를 중단했다. 딕스 스포팅 굿즈는 플로리다주 파클랜드의 교내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매장에서 공격용 무기를 수거해 파기했다. 우리 앞에는 다수의 시급한 문제가 놓여 있다. 기후변화, 저렴한 헬스케어, 데이터 보안, 자동화와 인공지능 기술에 넘겨준 일자리를 대체하는 고소득 일자리의 창출, 치매 노인 돌봄 등이다. 필시 사회보장제도, 주간 고속도로 체계, 민권 문제에서 그랬듯이 한때는 나라에서 솔루션을 제공하겠지 하고 기다렸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교착상태나 자금문제 또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연방정부는 더는 그런 거창한 문제와 씨름하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변화에 가속도가 붙어 정부 솔루션은 항상 한 박자 뒤진다. 2008년 금융시장 붕괴를 초래한 금융파생상품이 대표적인 예다.
다른 누군가 또는 뭔가가 나서야 하는데 기업이 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그들이 해온 일이기 때문이다. 동기가 무엇이든 그들은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해결한다.
기업이 우리 삶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던 듯하지만, 실상 비교적 근대 문명의 산물이다. 1800년대 중반 이전까지 기업 설립은 길고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리고 투자자가 모든 부채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나 1855년 잉글랜드가 투자자의 책임을 한정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 뒤 기업 수와 사업범위가 폭발적으로 확장돼 지금은 전체 경제활동 중 3분의 1을 다국적 대기업이 담당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기업은 크기 즉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규모(scale)가 중요한 경우에 특히 유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규모는 제조·유통·광고·연구개발 등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대기업은 대륙 간 케이블 설치나 철도 건설 같은 대형 사업에 탁월한 효율·효과를 발휘했다. 실제로 기업이 대단히 크고 유능해져 기업이라면 당연히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사람들은 여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컨대 대대적으로 광고해도 소비자가 원치 않는 제품을 사게 할 수는 없다. 맥도널드는 수백만 달러를 들여 건강식 메뉴를 개발해 판촉했지만, 2013년 돈 톰슨 당시 CEO는 미니 당근과 샐러드가 팔리지 않는다고 시인했다. 그리고 2010년 캠벨 수프는 60% 이상의 농축 수프 제조법을 바꿔 나트륨 함량을 줄였다. 그러자 곧바로 제너럴 밀스의 프로그레소에 시장을 빼앗겨 원상 복구해야 했다. 또는 연비 좋은 소형차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가 미국인은 적재량과 파워를 중시한다는 교훈을 얻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산증인이다.
기업은 소비자뿐 아니라 생산성이나 경쟁력을 향상하는 신기술을 외면할 수 없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대처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기후변화 문제를 살펴보자. 규모가 크고 시급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 그리고 전 세계 여러 나라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는 것이 한 가지 솔루션이며 기업들이 대안 에너지원의 상용화를 선도한다. 심지어 메이저 석유회사들까지 다소 소극적이긴 해도 신재생에너지에 6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또 다른 전선에선 캐나다 기업 카본 엔지니어링이 공기를 빨아들여 이산화탄소를 뽑아내는 대형 공업용 흡수장치의 시제품을 개발 중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석유회사 쉐브론이 자금을 후원했다. 기술이 검증돼 대규모로 상용화되면 그 일을 맡기기에 기업만 한 적임자가 없을 것이다. 이민 문제를 살펴보자. 자신이 원해서 살던 집을 떠나 자녀를 이끌고 수천㎞를 걷거나 삐걱거리는 조각배에 올라 노를 저어가며 지중해를 건너려 할 사람은 없다. 그들이 그러는 것은 자신이 사는 나라의 극심한 빈곤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벗어나야 할 만큼 필사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살던 나라를 떠나지 않게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현실 세계의 모범답안을 기업들이 작성하는 중이다.
르완다는 1994년 종식된 참혹한 내전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자원이 부족한 작은 내륙국가다. 기업들에 문호를 활짝 개방했으며 비자를 포함해 많은 기업이 대거 진출했다. 비자는 전자결제 인프라를 구축하고, 결제·정산 서비스의 현지 처리시스템을 개발하고, 기초 금융교육을 한다. 또한 하루 2달러의 소득을 올리는 여성들처럼 전통적으로 은행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모바일 뱅킹 앱을 통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르완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100달러다. 미국 기준으로는 대단하지 않지만, 비슷한 규모에 마찬가지로 자원이 부족하고 내전을 겪은 이웃 나라 부룬디의 3배다.
또는 미국 주변의 문제를 살펴보자. 기업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고 걱정하는 미국인이 많다. 오히려 그들 덕분에 더 안전할지 모른다. 미국 헌법 수정 제1조(언론의 자유)로 인해 정부가 증오 발언을 통제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기업은 소비자의 요구에 반응하고 자신들의 경제적 투표권을 이용해 보통사람들에게 발언권을 준다. 예컨대 버라이어티 잡지에 따르면 폭스 뉴스 앵커 터커 칼슨의 반이민 논평에 맞서 그의 프로그램에서 약 20개 기업이 광고를 철회했다. 또한 극단주의 정치인에 맞설 수 있는 극소수 공인 중에도 기업인이 있다. 전통적으로 이는 좌파 극단주의를 의미했지만 2017년 경제잡지 포천은 트럼프 대통령에 맞설 만한 CEO 리스트를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백인 민족주의자들의 행진을 가리켜 ‘양쪽의 아주 훌륭한 사람들(백인 우월주의자까지 찬양)’이라고 불러 논란을 촉발했다. JP 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언더 아머의 케빈 플랭크, MS의 사티아 나델라, 머크의 케네스 프레이저, 월마트의 더그 맥밀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이 꼽혔다. 프레이저 CEO는 백악관 직속 미국제조업자문위원회에서 사퇴하면서 트윗을 띄웠다. ‘극단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한편 MS·아마존·익스피디아는 입장 표명을 통해 일명 무슬림 여행금지령으로 불리는 행정명령 19769에 대한 워싱턴주의 소송을 지지했다. 연방과 주 모든 차원에서 부담스러운 법을 철폐할 수 있는 곳은 기업과 법원뿐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는 2017년 트렌스젠더 금지 ‘화장실 법안’을 폐지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일정 부분 도이체방크와 페이팔(온라인 결제서비스)의 경제적 압력에 따른 것이다. 동성애 권익 단체 ‘프리덤 포 올 어메리칸스’는 인디애나주 ‘종교 자유’ 법안이 약화한 데는 애플·세일즈포스닷컴·앤지스리스트를 포함한 기업들의 공이 적지 않았다고 말한다. 기업들이 남녀 동성애자 커플에 대한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게 한 ‘종교 자유’ 법안이 발효됐을 때 앤지스리스트는 곧바로 4000만 달러 규모의 인디애나폴리스 본사 확장 공사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정치인들이 관심을 보였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선 신입사원 급료를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게 책정하는 대기업이 많다(일부는 필시 강요에 따라). 경제 정보 사이트 마켓플레이스에 따르면 아마존·뱅크오프아메리카·코스트코·타겟·월마트 등이 대표적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21년까지 시간당 20달러까지 인상을 약속했다. 올스테이트 보험은 지난해 직원 대상의 경제 변화 대처법 교육에 4000만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사(UTC)가 가장 먼저 도입한 방식이다. UTC 경영진은 기술·경제 사이클 탓에 감원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직원들 대상으로 그에 대처하는 ‘재훈련’ 노력을 후원했다. 앞으로 기업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그러기를 기대해야 한다. 그들은 제 기능을 못 하는 정부가 남긴 공백을 메운다. 이는 기업에 대한 불신을 거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신뢰하되 검증하라”는 말에 빗대 표현하자면 “불신하되 확인하라(Mistrust but verify)”는 뜻이다.
미국에는 기업의 행위를 감독하는 법 제도가 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그런 규제가 수십만 건에 달한다. 그렇게 많아도 모든 실수나 비리를 방지하기는 불가능하다. 고용인원 500인 이상 기업의 근로자가 6600만 명을 웃돈다. 그러나 부정을 바로잡을 수는 있다. 그런 면에서 미국에는 확고한 사법제도가 있으며 갈수록 강력해지는 안전장치인 소셜미디어도 있다. 여론이 기업의 행동을 선도한다. 해외 공장의 작업환경으로 오랫동안 비판받아 오던 나이키는 2002년 그런 공장들의 노동 안전과 위생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다. 현대판 힘의 균형인 셈이다.
진보 진영에는 상장 대기업에 기계적으로 반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 대선 캠페인이 달아오르면서 그런 적대적인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젠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악인들이 우리의 가장 믿음직한 친구일 수도 있다.
- 샘 힐, 행크 길먼
※ [샘 힐은 기업자이자 저술가다. 베스트셀러 ‘래디컬 마케팅(Radical Marketing)’의 공저자다. 행크 길먼은 뉴스위크 편집위원이다. ‘모두 해고할 수는 없다(You Can’t Fire Everyone)’의 저자이며 하이 워터 프레스 출판사의 공동창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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