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문제에 초점 맞춘 올해 노벨경제학상] “빈곤은 무지와 게으름 문제 아니야”
[빈곤 문제에 초점 맞춘 올해 노벨경제학상] “빈곤은 무지와 게으름 문제 아니야”
뒤플로, 크레이머, 바네르지 교수 영예… 국제 원조의 효과 높일 현실적 방안 고민 노벨위원회가 10월 14일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빈곤 연구 분야의 권위자들을 선정한 것은 국가 간 양극화가 심화하는 현실 속에서 경제학의 관심이 점점 더 분배 문제로 향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스테르 뒤플로(47)와 마이클 크레이머(55), 아브히지트 바네르지(58) 등 교수 3명은 세계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 원조의 효과를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한 경제학자들이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의 스포트라이트는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가운데 최연소이자 두 번째 여성 수상자인 뒤플로 교수에게 맞춰졌다. 바네르지·뒤플로 교수가 함께 기자회견을 진행했지만, 질문은 주로 뒤플로 교수에게 집중됐다.
바네르지 교수는 이른 새벽 수상 사실을 전화로 통보받은 과정을 설명하면서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우리 부부 중 한 명과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을 하고 싶다면서, 특별히 여성을 요청했다”면서 “나는 자격 미달이라서 침대로 되돌아갔다”고 말해 회견장의 웃음을 자아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은 취재진에게 ‘바네르지와 그의 아내’라는 표현을 삼가달라고 당부하면서, ‘뒤플로와 그의 남편’으로 부르도록 제안했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뒤플로 교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 이들조차 빈곤층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며 “가난한 사람들은 캐리커처 등을 통해 희화화되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뒤플로·바네르지 부부는 2011년 함께 출간한 책 [빈곤 경제학(Poor Economics)]에서 가난이 개인의 무지와 게으름의 문제가 아님을 실증적으로 입증했다. 이 책은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뒤플로 교수는 여성으로서 역대 두 번째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과 관련해 “매우 중요하고 적절한 때에 (수상이) 이뤄졌다”며 “많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고, 남성들은 그들에게 마땅한 존경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뒤플로 교수는 이번 수상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라듐 발견으로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은 마리 퀴리가 상금으로 라듐을 샀다는 내용을 어릴 적 읽었다”면서 “공동 수상자들과 논의해 ‘우리의 라듐’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바네르지 교수는 뒤플로 교수와 함께 2003년 이들이 몸담은 MIT에서 빈곤퇴치연구소를 설립해 빈곤국 원조정책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실증적 방법을 통해 연구했다. 제대로 된 주거와 음식,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실질적인 혜택이 더 많이 돌아갈 수 있을지를 경제학 분석 기법을 활용해 연구한 것이다. 김부열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이들의 연구성과에 대해 “개발경제학은 1940~1960년대에 성장이론 분야로 많이 논의된 분야”라며 “바네르지 교수 등은 개발경제학의 접근 방식을 미시경제학적으로 바꾸는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 나라가 성장하는 경제성장 이론도 중요하지만 개발도상국의 농업, 교육, 보건이 실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평가했다”며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학문적 성과를 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프리카 케냐 사례를 연구한 크레이머 교수의 경우 케냐 초등학생의 결석률과 기생충 피해가 연관이 있다는 점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후 교육 관련 공적개발원조 프로그램에서 구충제 보급이 필수가 됐다.
홍성창 KDI 국제개발협력센터 실장은 “개발협력 사업을 하거나 공적원조를 할 때 무조건 지원하기보다 유인체계를 마련해 어떻게 하면 정책 효과성을 더 높일 수 있을까를 고민한 학자들”이라며 “이를 계량적 연구 결과를 통해 입증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크레이머 교수가 2016년 6월 KDI가 주최한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위한 글로벌 교육재원 콘퍼런스’에 참석해 한국의 경제발전 사례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고 당시 참석자들은 기억했다. 홍 교수는 “크레이머 교수가 한국 역시 교육을 통해 빈곤을 탈출한 아주 좋은 사례라고 언급하며 그런 발전 경험을 다른 개발도상국과 많이 공유해 달라고 강조한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뒤플로 교수는 10월 14일(현지시간) MIT에서 노벨 경제학상을 함께 받은 남편 바네르지 교수와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에 대한 의견을 묻는 한국 취재진 질문에 뒤플로 교수는 “한국은 좋은 개발도상국 발전 모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바네르지 교수도 “기술과 교육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며 동의했다. 크레이머 교수가 MIT에 있을 당시 그에게 경제성장론을 배운 안상훈 KDI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은 “경제학은 부유한 나라의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는 게 아니고 부와 빈곤의 문제를 동시에 보는 것”이라며 “빈곤 문제를 경제학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차기 한국경제학회장)는 “바네르지 교수는 미시경제학 분야에서 두각을 보인 주류 경제학자”라며 “과거 콘퍼런스에서 봤을 때 대단히 분석력 있고 날카로운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라고 해서 다 그런 인상을 주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과거와 달리 주류 경제학계는 물론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에서 분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이번 노벨 경제학상도 그런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 배정원 중앙일보 기자, 연합뉴스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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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스테르 뒤플로(47)와 마이클 크레이머(55), 아브히지트 바네르지(58) 등 교수 3명은 세계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 원조의 효과를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한 경제학자들이다.
뒤플로, 최연소 겸 두번째 여성 수상자
바네르지 교수는 이른 새벽 수상 사실을 전화로 통보받은 과정을 설명하면서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우리 부부 중 한 명과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을 하고 싶다면서, 특별히 여성을 요청했다”면서 “나는 자격 미달이라서 침대로 되돌아갔다”고 말해 회견장의 웃음을 자아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은 취재진에게 ‘바네르지와 그의 아내’라는 표현을 삼가달라고 당부하면서, ‘뒤플로와 그의 남편’으로 부르도록 제안했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뒤플로 교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 이들조차 빈곤층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며 “가난한 사람들은 캐리커처 등을 통해 희화화되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뒤플로·바네르지 부부는 2011년 함께 출간한 책 [빈곤 경제학(Poor Economics)]에서 가난이 개인의 무지와 게으름의 문제가 아님을 실증적으로 입증했다. 이 책은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뒤플로 교수는 여성으로서 역대 두 번째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과 관련해 “매우 중요하고 적절한 때에 (수상이) 이뤄졌다”며 “많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고, 남성들은 그들에게 마땅한 존경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뒤플로 교수는 이번 수상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라듐 발견으로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은 마리 퀴리가 상금으로 라듐을 샀다는 내용을 어릴 적 읽었다”면서 “공동 수상자들과 논의해 ‘우리의 라듐’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바네르지 교수는 뒤플로 교수와 함께 2003년 이들이 몸담은 MIT에서 빈곤퇴치연구소를 설립해 빈곤국 원조정책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실증적 방법을 통해 연구했다. 제대로 된 주거와 음식,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실질적인 혜택이 더 많이 돌아갈 수 있을지를 경제학 분석 기법을 활용해 연구한 것이다. 김부열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이들의 연구성과에 대해 “개발경제학은 1940~1960년대에 성장이론 분야로 많이 논의된 분야”라며 “바네르지 교수 등은 개발경제학의 접근 방식을 미시경제학적으로 바꾸는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 나라가 성장하는 경제성장 이론도 중요하지만 개발도상국의 농업, 교육, 보건이 실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평가했다”며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학문적 성과를 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프리카 케냐 사례를 연구한 크레이머 교수의 경우 케냐 초등학생의 결석률과 기생충 피해가 연관이 있다는 점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후 교육 관련 공적개발원조 프로그램에서 구충제 보급이 필수가 됐다.
홍성창 KDI 국제개발협력센터 실장은 “개발협력 사업을 하거나 공적원조를 할 때 무조건 지원하기보다 유인체계를 마련해 어떻게 하면 정책 효과성을 더 높일 수 있을까를 고민한 학자들”이라며 “이를 계량적 연구 결과를 통해 입증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크레이머 교수가 2016년 6월 KDI가 주최한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위한 글로벌 교육재원 콘퍼런스’에 참석해 한국의 경제발전 사례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고 당시 참석자들은 기억했다. 홍 교수는 “크레이머 교수가 한국 역시 교육을 통해 빈곤을 탈출한 아주 좋은 사례라고 언급하며 그런 발전 경험을 다른 개발도상국과 많이 공유해 달라고 강조한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뒤플로 교수는 10월 14일(현지시간) MIT에서 노벨 경제학상을 함께 받은 남편 바네르지 교수와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에 대한 의견을 묻는 한국 취재진 질문에 뒤플로 교수는 “한국은 좋은 개발도상국 발전 모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바네르지 교수도 “기술과 교육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며 동의했다.
한국은 좋은 개발도상국 발전 모델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차기 한국경제학회장)는 “바네르지 교수는 미시경제학 분야에서 두각을 보인 주류 경제학자”라며 “과거 콘퍼런스에서 봤을 때 대단히 분석력 있고 날카로운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라고 해서 다 그런 인상을 주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과거와 달리 주류 경제학계는 물론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에서 분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이번 노벨 경제학상도 그런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 배정원 중앙일보 기자, 연합뉴스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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